2008. 8. 3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종합3)
본문 : 요일 3:1-3
제목 :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축구 같은 운동경기를 할 때 경기를 잘 하는 선수는 시야가 넓다는 말을 듣습니다.
바로 자기의 앞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을 넓게 보면서 멀리서 움직이는 선수들을 보고 패스를 하거나 플레이를 하는 것입니다.
시야가 좁은 사람은 자기 앞만 보기 때문에 그런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시야가 넓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눈앞의 일만을 보지 않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대처를 하면서 삽니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만 보고 사는 사람은 그 때 그 때의 기분에 좌우하다가 미래에 손해를 많이 봅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시야가 넓어야 합니다.
바로 눈앞에 벌어지는 것만 보고 살면 신앙이 잘못되기가 쉽습니다.
먼 미래를 보고 바르게 간다고 해도 더러는 가보면 내가 목적하던 곳이 아닐 수도 많습니다.
그런데 전혀 멀리 보지도 못하고 눈앞의 일만 보고 가면 십중팔구는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과거의 우리 모습을 바르게 알고 또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을 미리 알고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우리의 삶이 무척 기쁨이 있고 힘이 나고 자신이 있고 보람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멀리 보지 못하는 우리의 근시안적인 눈이 문제입니다.
오늘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조금 좋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조금 기분이 나쁘면 화를 내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또 우리가 아직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먼 미래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를 바르게 알고 또 먼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바르게 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훨씬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3장을 공부하면서 이미 다 살펴 본 것이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죄를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면서 사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1.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냥 부르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고, 살펴보고, 연구해 보고, 알아보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아무나 붙잡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과 부모자식관계로 태어나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지 지나가다가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아버지 합시다.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부자관계가 성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되는 것이지 아무나 교회에 들어와서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런 큰 영광스런 신분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우리 인간과 비슷한 분이라면 그분의 자녀가 된 것이 그렇게 영광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이 우주만물을 지금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큰 영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교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이라면 인간은 구더기와도 같은 존재이거나 그 이하일 것입니다.
우리가 구더기 한 마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구더기의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책임을 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구더기가 잘 산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덕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괜히 관심을 가지고 봐주다가 구더기가 막 먹자고 하면 오히려 큰일일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에게 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십니다.
우리가 좀 잘 산다고 하나님께 득이 되는 일도 없습니다.
괜히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다가 이것 내놔라 저것 내놔라 하면 귀찮을 뿐입니다.
그냥 아무렇게 살게 내버려 두고 잘못하면 벌을 주고 죽으면 내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비천한 우리를 향해서 허리를 굽히시고 사랑을 베푸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없는 영광입니다.
또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대해서 얼마나 나쁜 죄인인줄을 알면 그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티끌이었던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려고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했던 아주 나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대로 살지 않고 자기마음대로 죄를 짓고 욕심을 부리면서 나쁜 짓만 일삼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저질적인 우리를 악하게 대하시지 않고 원수로 대하지 않으시고 멸망의 길에서 구원을 해 주시기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에는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의 죄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게 하심으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읽어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금방 발견하게 됩니다.
구구절절 참 너무나 좋은 말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백성이 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고 완전한 나라 너무나 좋은 나라인 천국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면 그 신분을 얻는 일은 너무나 힘이 드는 일일 것입니다.
서울대학에 합격을 하는 일보다 고시에 패스하는 일보다 더 힘이 드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일평생을 다 희생하고 땀을 흘리고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얻으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고 형제고 친구고 이웃이고 할 것 없이 다 서로 경쟁자가 되어 물고 싸우고 투쟁을 하면서라도 얻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나 쉽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면 그 좋은 것을 그냥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보람되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영원한 천국도 소유하게 해 주시니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랑을 베푸셔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게 해 주셨는데 우리가 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큰 복을 받은 사람이 누굴까 참 좋겠다. 라고 말하지 말고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인이었고 멸망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었고 하나님과 원수이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산다.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산다.
그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혜택을 받아 누리면서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사시기 바랍니다.
2.장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시야를 넓히면 과거의 우리 모습과 현재의 모습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우리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삽니다.
더러는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에 얼마나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안다면 우리에게 쩔쩔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쩔쩔매기는커녕 우리를 비웃고 무시하고 괄시를 합니다.
그래도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많은 핍박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핍박을 받고 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서신이 기록될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 대부분 노예들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해서 노예에서 해방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노예인 성도들에게 상전에게 노예로서 정성을 다해서 잘 섬기라고 했습니다.
노예가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었다면 당연히 자유인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서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더 고난당하기를 자청하고 더 험하게 순교를 당하기 위하여 구차하게 화형이나 사자밥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뭔가 좀 달라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역시 먹고 살기 위해서 땀을 흘려야 하고
오히려 바르게 살려고 하니까 세상 살기가 더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데에 대한 별 자부심을 기지지 못하고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래에 영광스러운 삶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장래에 이루어질 영광이 확실하게 보장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그것이 아직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가끔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제가 10년이 넘도록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했는데 사는 것이 왜 이럴까요?
혹시 제가 뭘 잘못해서 이런 것은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것도 아주 철두철미하게 말씀대로만 산다고 노력을 했는데도 사는 것은 참 가난하게 어렵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혹시 원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원치 않게 믿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잘 살고 아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부자로 떵떵거리며 잘 사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삽니까? 라고 원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제가 말합니다.
인생 다 살아보셨냐고 요단강건너는 가 보셨냐고
우리 아직 인생 다 산 것 아닙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사실은 이 세상이 끝날 때 우리의 참된 인생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것 가지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타락을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말하기 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더 좋은 것으로 강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상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보이는 이 세상에서 서로 잘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축복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참된 복은 미래에 우리에게 펼쳐질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받을 행복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신비한 몸을 가지고 오실 것인데 우리의 몸도 그와 같이 부활하여 신비한 몸으로 영생의 몸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천국이 어떤 모습일까 잘 상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그 나라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 아픔이나 늙음이나 죽음이 없는 곳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이 없는 곳
끝이 없는 영원한 나라 그 나라가 하나님 나라요 우리가 받게 될 행복의 나라입니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실 것입니다.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가끔 아 내가 이 세상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돈은 한 10억쯤 있었으면 좋겠고 후회할 줄 모르니까 100억쯤 합시다.
집은 60평쯤 되는 아파트 하나 있었으면 좋겠고 시골에 별장하나 덤으로 하고
남편은 장동권 같이 잘 생겼으면 좋겠고 아내는 최진실이나 이효리 같으면 좋겠고 마음도 천사 같고.
직업은 의사나 판사나 변호사쯤 되었으면 좋겠고 자녀들은 서울대나 하버드대에서 서로 오라는 천재가 되었으면 좋겠고
또 뭐가 있을까요 건강이 있습니다.
나이가 먹어도 20대 청년 같은 건강이 유지가 되었으면 좋겠고
더 원하시는 대로 다 말씀을 해 보세요
다 말씀했으면 거기에다가 곱하기 천이나 만을 해 보세요
그것이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영원한 나라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보상입니다.
우리가 기다리고 소망하는 그 나라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너무나 좋고 너무나 완벽하고 영원한나라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깨끗한 삶을 살라.
오늘 본문 3절 말씀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이런 신분을 주시고 우리에게 복된 미래를 약속해 주셨고 그 복된 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우리 성도들인데 그런 우리가 지저분하게 죄나 지으면서 악한 양심을 가지고 욕심이나 부리면서 남에게 피해나 주면서 그렇게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3절 이하에 계속해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과 같고 살인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함에 있어서 말과 혀로서만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으로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17절)라고 했습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23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약속들을 믿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목표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우리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누리는 행복이요 영원한 나라에서 더 큰 상급을 받는 비결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약속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크고 작은 많은 소망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영원한 생명 신비한 몸으로의 부활과 완전한 나라 천국을 소망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성공을 하지 못했고 비교적 초라함 모습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소망을 가진 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림으로 깨끗한 양심으로 세상을 살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요일 3:1-3
제목 :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축구 같은 운동경기를 할 때 경기를 잘 하는 선수는 시야가 넓다는 말을 듣습니다.
바로 자기의 앞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을 넓게 보면서 멀리서 움직이는 선수들을 보고 패스를 하거나 플레이를 하는 것입니다.
시야가 좁은 사람은 자기 앞만 보기 때문에 그런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시야가 넓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눈앞의 일만을 보지 않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대처를 하면서 삽니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만 보고 사는 사람은 그 때 그 때의 기분에 좌우하다가 미래에 손해를 많이 봅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시야가 넓어야 합니다.
바로 눈앞에 벌어지는 것만 보고 살면 신앙이 잘못되기가 쉽습니다.
먼 미래를 보고 바르게 간다고 해도 더러는 가보면 내가 목적하던 곳이 아닐 수도 많습니다.
그런데 전혀 멀리 보지도 못하고 눈앞의 일만 보고 가면 십중팔구는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과거의 우리 모습을 바르게 알고 또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을 미리 알고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우리의 삶이 무척 기쁨이 있고 힘이 나고 자신이 있고 보람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멀리 보지 못하는 우리의 근시안적인 눈이 문제입니다.
오늘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조금 좋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조금 기분이 나쁘면 화를 내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또 우리가 아직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먼 미래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를 바르게 알고 또 먼 미래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바르게 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훨씬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3장을 공부하면서 이미 다 살펴 본 것이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죄를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면서 사는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1.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냥 부르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고, 살펴보고, 연구해 보고, 알아보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아무나 붙잡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과 부모자식관계로 태어나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지 지나가다가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아버지 합시다. 아버지라고 부르겠습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부자관계가 성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그만한 근거가 있어야 되는 것이지 아무나 교회에 들어와서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아무 근거도 없이 그냥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런 큰 영광스런 신분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저 우리 인간과 비슷한 분이라면 그분의 자녀가 된 것이 그렇게 영광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오 이 우주만물을 지금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큰 영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교를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이라면 인간은 구더기와도 같은 존재이거나 그 이하일 것입니다.
우리가 구더기 한 마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구더기의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책임을 질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구더기가 잘 산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덕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괜히 관심을 가지고 봐주다가 구더기가 막 먹자고 하면 오히려 큰일일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에게 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십니다.
우리가 좀 잘 산다고 하나님께 득이 되는 일도 없습니다.
괜히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다가 이것 내놔라 저것 내놔라 하면 귀찮을 뿐입니다.
그냥 아무렇게 살게 내버려 두고 잘못하면 벌을 주고 죽으면 내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비천한 우리를 향해서 허리를 굽히시고 사랑을 베푸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없는 영광입니다.
또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대해서 얼마나 나쁜 죄인인줄을 알면 그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티끌이었던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려고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했던 아주 나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양심대로 살지 않고 자기마음대로 죄를 짓고 욕심을 부리면서 나쁜 짓만 일삼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저질적인 우리를 악하게 대하시지 않고 원수로 대하지 않으시고 멸망의 길에서 구원을 해 주시기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에는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의 죄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시게 하심으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읽어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를 금방 발견하게 됩니다.
구구절절 참 너무나 좋은 말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백성이 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고 완전한 나라 너무나 좋은 나라인 천국에서 영원토록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면 그 신분을 얻는 일은 너무나 힘이 드는 일일 것입니다.
서울대학에 합격을 하는 일보다 고시에 패스하는 일보다 더 힘이 드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일평생을 다 희생하고 땀을 흘리고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얻으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고 형제고 친구고 이웃이고 할 것 없이 다 서로 경쟁자가 되어 물고 싸우고 투쟁을 하면서라도 얻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나 쉽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면 그 좋은 것을 그냥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보람되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영원한 천국도 소유하게 해 주시니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랑을 베푸셔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게 해 주셨는데 우리가 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큰 복을 받은 사람이 누굴까 참 좋겠다. 라고 말하지 말고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인이었고 멸망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었고 하나님과 원수이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엄청난 신분을 가지고 산다.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산다.
그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혜택을 받아 누리면서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사시기 바랍니다.
2.장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시야를 넓히면 과거의 우리 모습과 현재의 모습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우리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세상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에 삽니다.
더러는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에 얼마나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안다면 우리에게 쩔쩔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쩔쩔매기는커녕 우리를 비웃고 무시하고 괄시를 합니다.
그래도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많은 핍박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핍박을 받고 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서신이 기록될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 대부분 노예들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해서 노예에서 해방이 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노예인 성도들에게 상전에게 노예로서 정성을 다해서 잘 섬기라고 했습니다.
노예가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었다면 당연히 자유인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서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더 고난당하기를 자청하고 더 험하게 순교를 당하기 위하여 구차하게 화형이나 사자밥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뭔가 좀 달라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역시 먹고 살기 위해서 땀을 흘려야 하고
오히려 바르게 살려고 하니까 세상 살기가 더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데에 대한 별 자부심을 기지지 못하고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래에 영광스러운 삶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장래에 이루어질 영광이 확실하게 보장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그것이 아직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가끔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제가 10년이 넘도록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했는데 사는 것이 왜 이럴까요?
혹시 제가 뭘 잘못해서 이런 것은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생을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것도 아주 철두철미하게 말씀대로만 산다고 노력을 했는데도 사는 것은 참 가난하게 어렵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혹시 원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원치 않게 믿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잘 살고 아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부자로 떵떵거리며 잘 사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삽니까? 라고 원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제가 말합니다.
인생 다 살아보셨냐고 요단강건너는 가 보셨냐고
우리 아직 인생 다 산 것 아닙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사실은 이 세상이 끝날 때 우리의 참된 인생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것 가지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타락을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을 말하기 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더 좋은 것으로 강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상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보이는 이 세상에서 서로 잘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축복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참된 복은 미래에 우리에게 펼쳐질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받을 행복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신비한 몸을 가지고 오실 것인데 우리의 몸도 그와 같이 부활하여 신비한 몸으로 영생의 몸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천국이 어떤 모습일까 잘 상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그 나라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 아픔이나 늙음이나 죽음이 없는 곳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이 없는 곳
끝이 없는 영원한 나라 그 나라가 하나님 나라요 우리가 받게 될 행복의 나라입니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실 것입니다.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가끔 아 내가 이 세상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돈은 한 10억쯤 있었으면 좋겠고 후회할 줄 모르니까 100억쯤 합시다.
집은 60평쯤 되는 아파트 하나 있었으면 좋겠고 시골에 별장하나 덤으로 하고
남편은 장동권 같이 잘 생겼으면 좋겠고 아내는 최진실이나 이효리 같으면 좋겠고 마음도 천사 같고.
직업은 의사나 판사나 변호사쯤 되었으면 좋겠고 자녀들은 서울대나 하버드대에서 서로 오라는 천재가 되었으면 좋겠고
또 뭐가 있을까요 건강이 있습니다.
나이가 먹어도 20대 청년 같은 건강이 유지가 되었으면 좋겠고
더 원하시는 대로 다 말씀을 해 보세요
다 말씀했으면 거기에다가 곱하기 천이나 만을 해 보세요
그것이 우리가 장차 받게 될 영원한 나라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보상입니다.
우리가 기다리고 소망하는 그 나라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너무나 좋고 너무나 완벽하고 영원한나라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깨끗한 삶을 살라.
오늘 본문 3절 말씀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이런 신분을 주시고 우리에게 복된 미래를 약속해 주셨고 그 복된 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우리 성도들인데 그런 우리가 지저분하게 죄나 지으면서 악한 양심을 가지고 욕심이나 부리면서 남에게 피해나 주면서 그렇게 살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3절 이하에 계속해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죄를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과 같고 살인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함에 있어서 말과 혀로서만 사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으로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17절)라고 했습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23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약속들을 믿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목표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우리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누리는 행복이요 영원한 나라에서 더 큰 상급을 받는 비결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약속하셨는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크고 작은 많은 소망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영원한 생명 신비한 몸으로의 부활과 완전한 나라 천국을 소망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성공을 하지 못했고 비교적 초라함 모습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소망을 가진 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림으로 깨끗한 양심으로 세상을 살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