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7. 2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68)
본문 : 요일 5:18
제목 : 성도는 범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우리가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예수님을 믿고, 교회라고 하는 같은 이름을 가진 곳에서, 같은 신앙생활을 하지만 그 모습은 참으로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어떤 교회는 방언이라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방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어느 날 보니까 교회에서 이상한 말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주로 순복음계통의 교회들은 믿는 자는 반드시 방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방언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성도로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산으로 기도원으로 다니면서 방언 달라고 기도를 하고 방언을 연습해서 배우기도 했습니다.
장로교회의 성도들은 진짜 방언을 해야 되는지 방언을 하지 못한 우리는 가짜가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에 신앙의 기초가 흔들리기까지 했습니다.
순복음교회가 엄청나게 성장을 하고 세계제일의 교회가 되어서 시비하는 사람이 없어졌지만 옛날 우리 장로교회에서는 이런 오순절 신학을 이단으로 보았습니다.
어떤 교회는 거듭남의 비밀을 강조해서 우리가 거듭난 날이 언제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느닷없이 우리에게 와서 당신 구원 받았습니까?
구원 받았으면 언제 몇 년 몇 월 며칠에 거듭났습니까? 라고 질문을 해서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고 그것도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교회에 엉터리로 다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구원파라는 이단들이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어떤 교회는 다락방 전도를 강조해서 지금까지 전도하지 못한 교인들은 전부 엉터리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거기 한번 교육 받으러 갔다가 온 사람들은 전도하지 않은 교회가 다 엉터리고 전도하지 않은 교회에 헌금한 것도 다 헛일이라고 가르쳐서 헤 깔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다락방교회도 건전한 교단에서 이미 이단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귀신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아픈 것은 다 귀신이 들어서 아픈 것이기 때문에 병에 걸리면 귀신을 쫓아내야 된다고 주장을 하고 여기저기서 환자를 데려다 놓고 귀신 쫓는다고 아픈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달래기도 해서 귀신을 쫓으려고 합니다.
가끔 신문에 목사가 환자를 치료한다고 때려서 죽게 한일이 오르내리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 성경을 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늘 내가 얻어갈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내 마음에 드는가, 무엇이 내 생각에 좋아 보이는가, 이런 것들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핵심 성경의 진리를 모르고 이 사람이 이 말하면 아 거기 무엇이 있는가보다, 저 사람이 저 말하면 아 그것이 옳은가보다 하고 끌려 다니는 것이 한국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성경말씀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어떤 말씀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 있고 어떤 말씀은 바로 진리의 핵심인 말씀도 있습니다.
별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그것도 바르게 해석도 하지 않고 엉터리로 해석을 해서 아주 중요한 것처럼 붙잡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능하면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다 잘 알고 다 바르게 이해를 하면 좋겠지만 어차피 이 많은 말씀들을 다 알지 못할 바엔 정말로 중요한 핵심을 잘 붙잡으시면 됩니다.
사도요한은 요한 일서를 기록하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말씀에 특별한 표시를 한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우리가 알거니와” “알 것이요” “아는 바라”와 같은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 이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진리를 말할 때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제 요한 일서를 마치면서 아주 중요한 진리 몇 가지를 우리에게 말씀하면서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19절에 “또 우리가 아는 것은…….”이라고 했고
20절에도 “또 아는 것은”이라고 했습니다.
이 몇 가지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리이기 때문에 서신 마지막에 이렇게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18절 말씀을 중심으로 “성도는 범죄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요한이 이 서신을 마치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1.우리가 아노라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아노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진리이며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이것만큼은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알잖아, 이것도 모르니, 이런 것도 모르고 신앙생활 하니, 이런 뜻의 말입니다.
요한 일서에는 오늘 본문 말고도 “우리가 아노라”와 같은 표현을 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2:3, 18, 3:14, 15, 24, 4:6, 13, 5:12,15, 18,19,20).
찾아보시면 알겠지만 그 중심 내용에 강조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3:23-24절의 말씀입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요한을 통하여 우리에게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말씀이 이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기본은 바울서신에서 강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는 믿음이 자주 강조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믿음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에게 쓴 것이기 때문에 이미 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기본 배경으로 깔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의 강조점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라고요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그 계명을 지킬 때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모든 좋은 약속들을 우리가 받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즉 하나님 사랑 형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 사함을 이미 받았고 이미 의로운 자라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성도들과 서로 사랑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시다면 방언을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기도해서 병을 고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나가서 예수님 믿으라고 소리치며 전도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내가 언제 구원을 받았는지 언제 거듭났는지 그런 것 몰라도 괜찮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는 방언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방언도 하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 보다 나으니라”(고전14:19)라고 했습니다.
누가 옆에서 방언으로 기도를 하면 거기 기 죽지 말고 깨달은 말 다섯 마디만 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사랑 형제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 정도 다섯 마디면 일만 마디 방언을 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을 실천하면 그 외에 다른 것은 좀 부족하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진리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다른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해도 거기에 마음이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힘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2.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여기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하나님께로서 난 자란 우리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인 우리 성도들은 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죄를 짓는 사람은 성도가 아니라는 말로도 이해를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말입니다.
바로 앞서서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성도는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기도할 것도 없을 것인데 왜 기도하라고 부탁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요한일서 1장 10절에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가 나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우리 하나님을 거짓말 하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우리가 성도가 되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은 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말은 우선 앞 절의 말씀에 근거해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말한다고 봅니다.
17절 말씀에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살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는 짓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 본 대로 사망에 이르는 죄란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예수님을 믿다가 믿음을 버리는 죄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면 즉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거듭난 자가 되었고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귀한 믿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고 또 이렇게 귀한 믿음을 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 말은 이 말의 자체의 뜻으로 해석을 해야 됩니다.
“범죄치 않는다”는 말은 헬라어에서 현재형으로 현재 시제는 계속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NIV 영어성경에서는 “does not continue to sin”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리스도인은 죄에 거하지 않습니다“라고 번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도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은 이 말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믿음에서 떠난 자는 성도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사람은 이미 성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이 말씀 즉 성도는 계속해서 죄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해도 이 세상에 사는 한 죄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유혹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그 죄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그 죄를 짓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실수로 돼지우리에 넘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거기서 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번 죄에 빠지면 자포자기 하고 그 죄에 머물러 있습니다.
어차피 한번 죄를 짓는 것이나 두 번 짓는 것이나 죄인이기는 마찬가지이니까 한번 죄를 짓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거나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지었다고 해도 회개하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번 전과자가 되면 대부분 그 죄를 되풀이하면서 전과 2범 3범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한번 죄를 지으면 오히려 더 많이 깨닫고 회개하여 오히려 더 착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어쩌다가 실망할만한 일을 저질렀을 때 성도님들은 그 자리에 머물지 말고 얼른 그 자리에서 돌아오면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악한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납해 주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십니다.
성경 전체가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우리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음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 성도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란 우리 성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악한 사탄이 우리를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절대로 손을 대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10:27절에서 아무라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종국적으로 그 생명을 보장받았습니다.
비록 우리는 실수와 허물과 연약함이 한없지만 주님이 곁에 계시고 지켜주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든든한 일인지 모릅니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만지는 것은 가볍게 손을 얹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전혀 악한 자 원수 마귀가 성도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마귀에게 접촉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들이 가끔 죄에 빠집니다.
죄에 빠져서 넘어져서 고통을 당하면서 원망을 합니다.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내어버려 두십니까?
왜 나를 시험에 들게 해서 이런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까?
정말 나를 지켜주시는 것이 맞습니까?
정말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내어버려 두어서 방치해서 돌봐주시지 않으셔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저도 한 때 그런 원망을 했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일성수도 잘하고 헌금도 꽤 하고 교회 여러 가지 봉사도 많이 했는데 하나님이 왜 나를 이렇게 절망에 빠지게 하십니까?
죄는 용서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그 하나님이 맞습니까?
이런 원망을 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까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저의 편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저를 바른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또 이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로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시지만 그 말씀을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행하였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라고 했는데 욕심만 키우면서 살았습니다.
겸손하게 살라고 했는데 교만하게 살았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살라고 했는데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살았습니다.
열심을 품고 최선을 다하면서 살라고 하셨는데 일하지 않고 게으르고 나태해서 쉽게 일확천금을 노리면서 살았습니다.
심지 않은데서 거두려고 하고 십자가 없는 영광을 누리려고 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의 곁에 서서 말씀을 하시는데
여기저기에 해서는 안 된다고, 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의 빨간 신호등을 켜 두셨는데 그 신호를 보고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내가 너무 똑똑해서 내버려 두셔요 내 인생의 나의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살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주님은 저쯤 서 계시고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기만 하십시오.
나는 주님의 도움 없이도 잘 사는 사람입니다.
괜히 나를 도와준다는 말씀하지 마세요.
이런 교만이 나의 앞에 올무가 되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들고 스스로 인정을 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까지
깨달아 알 때까지
우리 스스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을 하시면서 우리를 늘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고 승리하도록 해 주십니다.
그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죄의 길을 떠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잊지 말고 알아야 할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 성도는 범죄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죄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