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2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66)
본문 : 요일 5:14-15
제목 :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교회란 마치 두 개의 바퀴를 가지고 있는 수레와 같다고 했습니다.
두 개의 수레바퀴는 크기도 같아야 하고 속도도 같아야 바르게 갈 수 있습니다.
만약에 어느 한쪽만 크고 빠르고 다른 한쪽은 작고 느리다면 수레가 앞으로 잘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도 두 개의 바퀴가 있는데 그것을 하나는 말씀이요 하나는 기도라고 합니다.
말씀과 기도가 같이 중요하게 자기의 역할을 할 때 교회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그 기능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진단해 볼 때 우리가 소유한 두 바퀴는 이상적인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교회는 글을 사랑하는 이 땅의 토양에 힘입어 말씀을 사모하고 터득하는 길은 어느 정도의 틀을 잡은바 있습니다.
신학 교육이 이 땅에서 시작할 때부터 주경신학을 강조한 결과 말씀 위에 교회가 일어섰고 그 말씀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한국의 교회는 숱한 이단 사설의 협공을 막을 수 있는 저력을 과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바퀴는 그렇지 못합니다.
어느 민족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뜨거운 종교심은 기독교에서 강조한 '기도'라는 의식에 쉽게 젖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함성은 365일 하루도 쉼 없이 새벽부터 이 땅의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새벽기도로 시작을 해서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것도 부족해서 기도원에 들어가서 40일 금식기도도 하고 백일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내용을 주의하여 들어 볼 때마다 이 땅의 기도가 진정 성경적이고 기독교의 초대 교회에서부터 내려온 기도의 가르침대로 이해되고 실천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가 기도의 필요성과 그 열심은 강조하여 왔으나 실제로 그 기도의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이해를 돕는 데는 소홀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를 하는 것인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 것인지를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기도는 좋은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기도하면 다 응답을 받는다고만 가르쳤기 때문에 기도가 무엇인지조차도 잘 모르고 그냥 기도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무속신앙에 젖어 있었습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무병장수하기 위해서 여러 신들에게 손을 비비며 기도하는 것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불교가 오늘날처럼 신에게 복을 비는 기복종교가 아니었습니다.
불교 본래의 교리는 어느 부분에서도 이 땅에서의 삶을 위한 부귀영화를 추구하라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불교가 우리나라의 무속신앙과 만나서 오늘날처럼 온갖 부귀영화를 위해서 빌고 비는 기복신앙의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어느 곳도 기도가 이 세상의 성공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꾸어서라도 자기의 요구를 충족시키라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이 무교의 기복신앙을 가지고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데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기도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면서 자기마음대로 하나님을 졸라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기도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간구 외에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펴보고 회개하는 것, 내가 어떻게 하면 말씀대로 살아볼까 하고 마음을 다짐하는 것……. 이런 모든 것이 기도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기도를 간구만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졸라서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라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만 기도한다면 그런 기도는 하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2-3)라고 했습니다.
요즘 성도들은 머리가 좋아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것처럼 무조건 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제게 10억만 주시면 그것 가지고 교회 헌금해서 교회도 짓고 좋은 일도 하겠습니다. 저의 욕심을 채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일을 하기 위해서 그러니 저를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 본문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기도에 관한 말씀이라기보다는 간구에 관한 말씀입니다.
기도의 내용 중에 우리의 소원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부분이 이 간구에 해당이 됩니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시고 올바른 기도를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기도는 성도의 특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가 가진 특별한 권리입니다.
사실 일개 피조몰인 인간이 주물주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무엇을 달라 말라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원래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갔다가는 그 거룩하심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서 무서워하지 않지만 옛날에 왕 앞에 나아가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맙니다.
에스더 시대 때 이야기를 보면 왕비라고 할지라도 왕이 부르기 전에 왕 앞에 나갔다가는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왕 앞에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왕 앞에도 그럴진대 하물며 만왕의 왕이시며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함부로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 성소나 성전시대 때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대 제사장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짐승을 잡아 예물을 드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갔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서 조금만 부정한 일이 있어도 죽게 되기 때문에 아예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허리에 줄을 묶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혹시 잘못해서 죽으면 시체를 가지러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줄을 툭툭 쳐서 반응이 없으면 죽었구나 하고 줄을 당겨 끌어낸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죄 많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특별한 권한을 주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마음대로 이것저것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그런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마음을 열어놓고 마음대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 특권을 주신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말씀을 드릴 때 즉 기도를 할 때 좀 조심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책상을 치면서 어떤 사람은 나무뿌리를 뽑으면서 어떤 사람은 주먹을 쥐고 삿대질을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내가 지금 누구 앞에 나아가서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기도를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이 아주 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소원을 아뢸 수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좀 기도를 잘못하고 아무렇게나 해도 벌을 받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특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기도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바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간구도 내 뜻대로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를 할 때만 귀를 기울이고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도를 함에 있어서도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기도는 어느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특유한 형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드려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기독교의 이 천년 역사에서 한 번도 그 내용이 변질되거나 위치가 변경되어 본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냥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감사와 찬양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 우선이고,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위한 사연은 다음 단계에 속합니다.
바로 이것이 다른 종교의 기도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경배((Adoration)의 기도, 찬양(Praise)의 기도, 감사의 기도(Thanksgiving), 고백의 기도(Confession)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기도의 기본 성격과 형태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구원받은 기쁨과 하나님의 자녀 된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것이 기도의 기본정신입니다.
3)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원리를 따르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다른 종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탁월한 기도의 모형이 있습니다.
그 모형은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주기도문이라고 하여 예배를 드릴 때마다 원문 그대로 기도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은 이 주기도문의 원리를 따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기도입니다.
성경은 기도를 인간의 뜻에 따라 행사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자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하시면서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순간을 앞에 두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절대 절명의 순간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며 그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기도의 가장 중요한 기본 모형으로 남겨지고 있습니다. 이 기도 가운데서 진정한 기도란 언제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의 절대권에 맡기는 순종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의욕이나 욕구보다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의 여부를 진행하실 하나님의 뜻에 겸허하게 맡기고 어떠한 응답도 그대로 순응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도란 하나님의 뜻과 관계가 없이 자신이 뜻을 세우고 그 뜻이 관철 될 때까지 끝까지 떼를 쓰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고 나올 때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도란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같아지도록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그 대답으로서 기도 자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죽이지 않고서는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 욕심대로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따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비록 내 자신의 기도 내용이 정당하다고 여겨질 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가 바른 기도입니다.
비록 어쩔 수 없이 내 중심의 기도를 했을 때라도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겸손한 자세가 성경이 말씀하는 바른 기도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는 이것이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모두 응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나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구한 것을 얻는 줄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하면 결국 그 모든 것은 다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직 받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기도한 내용이 하나님께 들으신바 되었고 자신은 이미 그것을 얻은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씀이 막11:24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보통 아직 받지 못했지만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보면 결국 간구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기다려도 응답이 없으면 실망합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다 내 뜻대로 되는 것만을 응답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것도 이미 응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나에게 더 좋은 일이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기도가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이루어진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가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도 이미 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그 기도를 함에 있어서 내 뜻을 관철시키고 나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참된 기도가 무엇인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기도를 많이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요일 5:14-15
제목 :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교회란 마치 두 개의 바퀴를 가지고 있는 수레와 같다고 했습니다.
두 개의 수레바퀴는 크기도 같아야 하고 속도도 같아야 바르게 갈 수 있습니다.
만약에 어느 한쪽만 크고 빠르고 다른 한쪽은 작고 느리다면 수레가 앞으로 잘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도 두 개의 바퀴가 있는데 그것을 하나는 말씀이요 하나는 기도라고 합니다.
말씀과 기도가 같이 중요하게 자기의 역할을 할 때 교회가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그 기능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진단해 볼 때 우리가 소유한 두 바퀴는 이상적인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교회는 글을 사랑하는 이 땅의 토양에 힘입어 말씀을 사모하고 터득하는 길은 어느 정도의 틀을 잡은바 있습니다.
신학 교육이 이 땅에서 시작할 때부터 주경신학을 강조한 결과 말씀 위에 교회가 일어섰고 그 말씀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한국의 교회는 숱한 이단 사설의 협공을 막을 수 있는 저력을 과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바퀴는 그렇지 못합니다.
어느 민족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뜨거운 종교심은 기독교에서 강조한 '기도'라는 의식에 쉽게 젖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함성은 365일 하루도 쉼 없이 새벽부터 이 땅의 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새벽기도로 시작을 해서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것도 부족해서 기도원에 들어가서 40일 금식기도도 하고 백일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내용을 주의하여 들어 볼 때마다 이 땅의 기도가 진정 성경적이고 기독교의 초대 교회에서부터 내려온 기도의 가르침대로 이해되고 실천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가 기도의 필요성과 그 열심은 강조하여 왔으나 실제로 그 기도의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이해를 돕는 데는 소홀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무엇인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를 하는 것인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 것인지를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기도는 좋은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기도하면 다 응답을 받는다고만 가르쳤기 때문에 기도가 무엇인지조차도 잘 모르고 그냥 기도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무속신앙에 젖어 있었습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무병장수하기 위해서 여러 신들에게 손을 비비며 기도하는 것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불교가 오늘날처럼 신에게 복을 비는 기복종교가 아니었습니다.
불교 본래의 교리는 어느 부분에서도 이 땅에서의 삶을 위한 부귀영화를 추구하라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불교가 우리나라의 무속신앙과 만나서 오늘날처럼 온갖 부귀영화를 위해서 빌고 비는 기복신앙의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어느 곳도 기도가 이 세상의 성공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꾸어서라도 자기의 요구를 충족시키라는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많은 성도들이 무교의 기복신앙을 가지고 세상의 복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는데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기도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면서 자기마음대로 하나님을 졸라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기도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간구 외에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펴보고 회개하는 것, 내가 어떻게 하면 말씀대로 살아볼까 하고 마음을 다짐하는 것……. 이런 모든 것이 기도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기도를 간구만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졸라서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라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만 기도한다면 그런 기도는 하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4:2-3)라고 했습니다.
요즘 성도들은 머리가 좋아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것처럼 무조건 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제게 10억만 주시면 그것 가지고 교회 헌금해서 교회도 짓고 좋은 일도 하겠습니다. 저의 욕심을 채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일을 하기 위해서 그러니 저를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오늘 본문 말씀은 기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기도에 관한 말씀이라기보다는 간구에 관한 말씀입니다.
기도의 내용 중에 우리의 소원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부분이 이 간구에 해당이 됩니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시고 올바른 기도를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기도는 성도의 특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가 가진 특별한 권리입니다.
사실 일개 피조몰인 인간이 주물주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무엇을 달라 말라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원래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갔다가는 그 거룩하심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서 무서워하지 않지만 옛날에 왕 앞에 나아가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맙니다.
에스더 시대 때 이야기를 보면 왕비라고 할지라도 왕이 부르기 전에 왕 앞에 나갔다가는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왕 앞에 마음대로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왕 앞에도 그럴진대 하물며 만왕의 왕이시며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함부로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 성소나 성전시대 때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성소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대 제사장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짐승을 잡아 예물을 드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들어갔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서 조금만 부정한 일이 있어도 죽게 되기 때문에 아예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허리에 줄을 묶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혹시 잘못해서 죽으면 시체를 가지러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줄을 툭툭 쳐서 반응이 없으면 죽었구나 하고 줄을 당겨 끌어낸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죄 많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특별한 권한을 주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마음대로 이것저것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의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그런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마음을 열어놓고 마음대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 특권을 주신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말씀을 드릴 때 즉 기도를 할 때 좀 조심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책상을 치면서 어떤 사람은 나무뿌리를 뽑으면서 어떤 사람은 주먹을 쥐고 삿대질을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내가 지금 누구 앞에 나아가서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기도를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이 아주 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소원을 아뢸 수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좀 기도를 잘못하고 아무렇게나 해도 벌을 받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특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사실 기도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바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간구도 내 뜻대로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를 할 때만 귀를 기울이고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도를 함에 있어서도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기도는 어느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특유한 형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드려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기독교의 이 천년 역사에서 한 번도 그 내용이 변질되거나 위치가 변경되어 본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냥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감사와 찬양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 우선이고,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위한 사연은 다음 단계에 속합니다.
바로 이것이 다른 종교의 기도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경배((Adoration)의 기도, 찬양(Praise)의 기도, 감사의 기도(Thanksgiving), 고백의 기도(Confession)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기도의 기본 성격과 형태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구원받은 기쁨과 하나님의 자녀 된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것이 기도의 기본정신입니다.
3)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원리를 따르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다른 종교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탁월한 기도의 모형이 있습니다.
그 모형은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주기도문이라고 하여 예배를 드릴 때마다 원문 그대로 기도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은 이 주기도문의 원리를 따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기도입니다.
성경은 기도를 인간의 뜻에 따라 행사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자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하시면서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가장 심각하고 어려운 순간을 앞에 두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절대 절명의 순간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며 그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의 기도의 가장 중요한 기본 모형으로 남겨지고 있습니다. 이 기도 가운데서 진정한 기도란 언제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의 절대권에 맡기는 순종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의욕이나 욕구보다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의 여부를 진행하실 하나님의 뜻에 겸허하게 맡기고 어떠한 응답도 그대로 순응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도란 하나님의 뜻과 관계가 없이 자신이 뜻을 세우고 그 뜻이 관철 될 때까지 끝까지 떼를 쓰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고 나올 때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도란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같아지도록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그 대답으로서 기도 자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죽이지 않고서는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 욕심대로 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따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비록 내 자신의 기도 내용이 정당하다고 여겨질 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가 바른 기도입니다.
비록 어쩔 수 없이 내 중심의 기도를 했을 때라도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겸손한 자세가 성경이 말씀하는 바른 기도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는 이것이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모두 응답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나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구한 것을 얻는 줄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하면 결국 그 모든 것은 다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직 받지 않았다고 해도 이미 기도한 내용이 하나님께 들으신바 되었고 자신은 이미 그것을 얻은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씀이 막11:24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보통 아직 받지 못했지만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보면 결국 간구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기다려도 응답이 없으면 실망합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면 언젠가는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다 내 뜻대로 되는 것만을 응답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것도 이미 응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나에게 더 좋은 일이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기도가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이루어진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가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도 이미 응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그 기도를 함에 있어서 내 뜻을 관철시키고 나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참된 기도가 무엇인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기도를 많이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