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59)
본문 : 요일 5:4
제목 :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이긴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 중에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비참하게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우리는 가장 비참하고 부끄러운 시대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무력을 가지고 전쟁을 통해서 우리나라를 점령한 것이 아닙니다.
잘 살게 해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나라를 그들에게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있어서 전쟁한번 해 보지 못하고 고스란히 나라의 주권을 그들에게 바쳐버린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의 말을 없애고, 우리의 글도 없애고, 우리의 문화를 없애고, 우리들이 가진 이름마저 없애고, 우리를 일본화 시켜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일본화 되어 가는데 동참을 하고 오히려 더 앞장을 서고 고맙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친일파들이 지금도 사람들의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그들과 맞서서 싸우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고 그런 노력을 통하여 마침내 우리나라가 다시 주권을 되찾게 되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세상과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일본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원래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이 사탄의 꾐에 빠졌습니다.
자신들의 말을 들으면 더 잘살게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살게 해 준다는 말에 속아서 그들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잘 살게 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를 노예화시키고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버렸습니다.
우리가 가진 진리를 빼앗고 우리가 가진 신앙을 빼앗고 우리가 가진 바르게 사는 법을 빼앗아버리고 철저하게 하나님 반대편에서 죄를 지으면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사탄을 숭배하고 사탄의 하는 말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선동하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데 타락의 길로 달려가는 데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그 중에 뜻이 깊은 사람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서 빼앗겨버린 영원한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 그들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 여기 모인 우리 성도님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싸움을 하고 있는 독립 운동가들입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빼앗겨버린 타락한 이 세상과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고통이 있더라도 어떠한 희생이 따른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할 사람들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얻는 그날까지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용감하게 싸워야 할 하나님의 용사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제는 성도들이 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끊임없이 유혹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싸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동화되어가고 있고 그들과 거의 한패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친구를 하려고 하지 않고 세상의 친구들이 더 많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취미교실이나 세상의 모임들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지 않고 세상의 문화나 유행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한국인이지만 오히려 일본 사람들 편에 서서 일본사람 앞잡이나 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던 친일파 매국노들처럼 우리도 그런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인이라는 이름만 가졌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세상을 사랑하는 한심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인지 아니면 그들과 싸우면서 살아야 할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무엇을 말씀하는지 그들이 싸워야 할 세상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1절 말씀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누구를 말씀하는 것인지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난 자”라는 말은 출생을 의미하는 말이고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나님께서 낳아주신 하나님의 자녀를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창조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아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주셨다는 말씀이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말씀 속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들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옛날 잘못을 저지르던 사람이 개과천선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을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고 도박이나 마약을 하던 사람이 그것을 끊고 새사람이 된다고 거듭났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생활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지 그 자체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거듭남은 아닙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훨씬 의미가 깊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생명을 가진 즉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나게 해 주심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해주셔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신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났다고 했을 때 그 속에도 많은 의미들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거듭난 생명은 그 생명력으로 인해서 거듭난 삶을 살고 거듭난 삶의 열매들을 맺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듭난 자는 예수님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듭난 자의 가장 큰 특징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거듭난 자는 반드시 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 속에는 교회에 다니는 자란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교회에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에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나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또 이 말씀 속에는 계명을 지키는 자란 의미도 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자는 계명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형제를 사랑하는 자란 뜻도 있습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거듭난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거운 것으로 느끼지 않고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획을 세우시고 선택을 하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시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해주신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우면서 살아야 하는데 싸우지 않고 사는 것은 우리의 이러한 신분을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힘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존재라고 하는 자기 존재 의식, 다시 말해서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셔서 특별하게 태어났습니다.
내가 알건 모르건 간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내게 꼭 어떤 의미를 담아서 나로 세상에 존재하게 했습니다.
그런고로 나는 소중하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다.
나는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난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과 용감하게 싸우게 됩니다.
2. 세상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싸움을 할 때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싸워야할 주적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모르면 싸우지 말아야 할 엉뚱한 사람과 싸움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의 주적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북한 공산당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로 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이념이 많이 바뀌어서 미국이 우리의 적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세상이란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에 반대하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의 역사에 반대하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대표는 사탄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탄은 귀신이나 도깨비처럼 밤중에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괴물로 생각을 합니다.
서양식으로 목의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요즘 사탄은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히려 아름답고 좋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교묘하게 찾아옵니다.
여러분 간첩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다.
특수훈련을 받고 무장을 하고 깜깜한 밤중에 삼팔선에 있는 철조망을 통과하거나 동해바다로 침투하는 사람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서 신분증 하나 만들어 가지고 비행기 타고 들어오면 되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첩들이 중국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오늘은 서울에나 갔다가 올까 오늘은 부산에나 갔다가 올까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옛날처럼 도깨비 모양을 하고 드라큘라 모양을 하고 그렇게 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로 친척으로 마음씨 착한 이웃 아주머니로 우리의 곁에 이미 와 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귀신으로 나타나면 옛날 영화처럼 십자가 하나 만들어 들고 사도신경이나 외우고 주기도문이나 외우면 될 텐데 그게 안 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사탄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까지 침투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성령님을 거슬러 성령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육체의 욕심이 우리가 싸워야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19절 이하에 성령을 거슬러서 우리로 세상을 따르게 하는 육체의 소욕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세상은 현저하게 눈에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과 같은 성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우상숭배나 이단 같은 것들도 있습니다.
술 취함이나 방탕함 같은 것도 있습니다.
술수를 부리는 것, 원수를 맺는 것, 분쟁과 시기, 당을 짓고 분리하는 것....
이런 눈에 보이는 악한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눈에 보이는 이런 현저한 일뿐만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 잘 분별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큰 것이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죄처럼 잘 보이지 않고 자기 스스로도 살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교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가장 큰 방해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죽고 자신의 육체를 쳐서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알게 모르게 나 자신 속에 많이 숨어 있습니다.
자신의 외모, 직업, 지성미, 사회적 위치, 성공, 자녀들 이건 끝이 없습니다.
교만은 자기라는 것을 남에게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자신이 언제나 인정을 받아야 하고 환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언제나 비판받기를 그렇게 싫어합니다.
또 교만은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늘 갖습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믿는 것입니다.
교만은 언제나 성공만을 목적으로 삼고 삽니다.
성공 지상주의를 가지면 남을 인정하지 않고 시기와 미움이 그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은 안일주의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건강만이 모든 관심을 두고 삽니다.
그리고 그저 시간을 보내는 시간들이 많습니다.
별로 주님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게 안일주의입니다.
오후 5시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들고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다가 12시가 다 되어서 들어와도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으면 친구 만나서 잠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고 합니다.
노는 시간의 잠간이라는 게 도무지 대충 어떻게 계산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앉은 자리에서 잡니다.
그리고 5분만 지나도 역겨움을 표시합니다.
이게 그 속에 세상이 들어온 증거입니다.
친구가 등산을 가자, 낚시를 가자, 여행을 가자, 하면 한 가지도 변명이나 구실이 없습니다.
모든 중요한 것 다 접어두고 갑니다.
그러나 새벽 예배에 가지 않는 것을 변명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 이유가 백가지도 넘습니다.
피곤하다, 바쁘다, 그 시간에 어떻게 나가나, 기도를 꼭 새벽에 해야 되나, 기도를 꼭 교회에 가서만 하나……. 이런 저런 핑계들이 많습니다.
안일주의가 마음에 들어오면 모든 나쁜 세상이 다 그 마음에 들어옵니다.
성도는 이와 더불어 싸워 이겨야 합니다.
3. 우리는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세상과 싸워서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과의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이 믿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싸워서 이기게 해 준다는 것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비교적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점점 믿음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으로 유명한 죠지 물러라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내가 사악한 늙은이가 될 때까지 살도록 내어버려두지 마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가 정말로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결국 세속화 되어서 악하고 추한 사람으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A.W. 토저라는 사람이 쓴 “세상과 충돌하라”는 책에 그런 추한 모습으로 늙지 않으려면 마음에 특별한 서원을 가지고 날마다 그 서원을 되새기면서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첫째, 죄의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겠다고 서원하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죄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죄를 용서 받는 길은 그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죄를 지어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살겠다는 몸부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둘째,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우리가 살기 위해서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서 추하지 않으려면 적당한 재물이 있어야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욕심이 우리의 말년을 너무 추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은퇴를 하면서 이 물질 때문에 그동안 섬겨왔던 교회와 분쟁이 일어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셋째, 험담을 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참 좋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을 부풀려서 말하는 것은 더 나쁜 일입니다.
험담을 하다가 보면 때로는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문만 듣고 사실처럼 말하게 되기도 합니다.
넷째, 자신을 방어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살다가 보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합니다.
그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억울함을 다 갚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변명하며 방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서 나를 높이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일을 했다고 해도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고 해야 합니다.
이런 몇 가지 서원들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는 승리자가 되게 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을 반대하고 성령님을 거스리는 이 악한 세상과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마음에 확실히 새기고 최후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요일 5:4
제목 :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이긴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 중에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비참하게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를 우리는 가장 비참하고 부끄러운 시대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무력을 가지고 전쟁을 통해서 우리나라를 점령한 것이 아닙니다.
잘 살게 해 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나라를 그들에게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있어서 전쟁한번 해 보지 못하고 고스란히 나라의 주권을 그들에게 바쳐버린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의 말을 없애고, 우리의 글도 없애고, 우리의 문화를 없애고, 우리들이 가진 이름마저 없애고, 우리를 일본화 시켜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일본화 되어 가는데 동참을 하고 오히려 더 앞장을 서고 고맙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 친일파들이 지금도 사람들의 욕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그들과 맞서서 싸우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고 그런 노력을 통하여 마침내 우리나라가 다시 주권을 되찾게 되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세상과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일본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원래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이 사탄의 꾐에 빠졌습니다.
자신들의 말을 들으면 더 잘살게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살게 해 준다는 말에 속아서 그들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잘 살게 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를 노예화시키고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버렸습니다.
우리가 가진 진리를 빼앗고 우리가 가진 신앙을 빼앗고 우리가 가진 바르게 사는 법을 빼앗아버리고 철저하게 하나님 반대편에서 죄를 지으면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사탄을 숭배하고 사탄의 하는 말에 따르는 것이 옳다고 선동하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데 타락의 길로 달려가는 데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그 중에 뜻이 깊은 사람들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서 빼앗겨버린 영원한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 그들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오늘 여기 모인 우리 성도님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싸움을 하고 있는 독립 운동가들입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빼앗겨버린 타락한 이 세상과 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고통이 있더라도 어떠한 희생이 따른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할 사람들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얻는 그날까지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용감하게 싸워야 할 하나님의 용사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제는 성도들이 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끊임없이 유혹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싸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동화되어가고 있고 그들과 거의 한패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친구를 하려고 하지 않고 세상의 친구들이 더 많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살지 않고 세상의 취미교실이나 세상의 모임들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삼지 않고 세상의 문화나 유행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한국인이지만 오히려 일본 사람들 편에 서서 일본사람 앞잡이나 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던 친일파 매국노들처럼 우리도 그런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인이라는 이름만 가졌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세상을 사랑하는 한심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인지 아니면 그들과 싸우면서 살아야 할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무엇을 말씀하는지 그들이 싸워야 할 세상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1절 말씀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누구를 말씀하는 것인지를 설명해 드렸습니다.
“난 자”라는 말은 출생을 의미하는 말이고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나님께서 낳아주신 하나님의 자녀를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창조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아주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주셨다는 말씀이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이 말씀 속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들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옛날 잘못을 저지르던 사람이 개과천선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을 마시던 사람이 술을 끊고 도박이나 마약을 하던 사람이 그것을 끊고 새사람이 된다고 거듭났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생활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지 그 자체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거듭남은 아닙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훨씬 의미가 깊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생명을 가진 즉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나게 해 주심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해주셔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주신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났다고 했을 때 그 속에도 많은 의미들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거듭난 생명은 그 생명력으로 인해서 거듭난 삶을 살고 거듭난 삶의 열매들을 맺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듭난 자는 예수님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듭난 자의 가장 큰 특징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거듭난 자는 반드시 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 속에는 교회에 다니는 자란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교회에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에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나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또 이 말씀 속에는 계명을 지키는 자란 의미도 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자는 계명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형제를 사랑하는 자란 뜻도 있습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거듭난 생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거운 것으로 느끼지 않고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계획을 세우시고 선택을 하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시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해주신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우면서 살아야 하는데 싸우지 않고 사는 것은 우리의 이러한 신분을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힘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존재라고 하는 자기 존재 의식, 다시 말해서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셔서 특별하게 태어났습니다.
내가 알건 모르건 간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 내게 꼭 어떤 의미를 담아서 나로 세상에 존재하게 했습니다.
그런고로 나는 소중하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다.
나는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난 특별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과 용감하게 싸우게 됩니다.
2. 세상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싸움을 할 때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싸워야할 주적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모르면 싸우지 말아야 할 엉뚱한 사람과 싸움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의 주적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북한 공산당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로 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이념이 많이 바뀌어서 미국이 우리의 적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세상이란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에 반대하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의 역사에 반대하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대표는 사탄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탄은 귀신이나 도깨비처럼 밤중에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괴물로 생각을 합니다.
서양식으로 목의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요즘 사탄은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히려 아름답고 좋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교묘하게 찾아옵니다.
여러분 간첩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다.
특수훈련을 받고 무장을 하고 깜깜한 밤중에 삼팔선에 있는 철조망을 통과하거나 동해바다로 침투하는 사람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서 신분증 하나 만들어 가지고 비행기 타고 들어오면 되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간첩들이 중국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오늘은 서울에나 갔다가 올까 오늘은 부산에나 갔다가 올까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옛날처럼 도깨비 모양을 하고 드라큘라 모양을 하고 그렇게 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친구로 친척으로 마음씨 착한 이웃 아주머니로 우리의 곁에 이미 와 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귀신으로 나타나면 옛날 영화처럼 십자가 하나 만들어 들고 사도신경이나 외우고 주기도문이나 외우면 될 텐데 그게 안 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사탄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까지 침투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성령님을 거슬러 성령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육체의 욕심이 우리가 싸워야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19절 이하에 성령을 거슬러서 우리로 세상을 따르게 하는 육체의 소욕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세상은 현저하게 눈에 볼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과 같은 성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우상숭배나 이단 같은 것들도 있습니다.
술 취함이나 방탕함 같은 것도 있습니다.
술수를 부리는 것, 원수를 맺는 것, 분쟁과 시기, 당을 짓고 분리하는 것....
이런 눈에 보이는 악한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눈에 보이는 이런 현저한 일뿐만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 잘 분별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큰 것이 교만이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죄처럼 잘 보이지 않고 자기 스스로도 살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교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가장 큰 방해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죽고 자신의 육체를 쳐서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알게 모르게 나 자신 속에 많이 숨어 있습니다.
자신의 외모, 직업, 지성미, 사회적 위치, 성공, 자녀들 이건 끝이 없습니다.
교만은 자기라는 것을 남에게 부각시키려고 합니다.
자신이 언제나 인정을 받아야 하고 환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언제나 비판받기를 그렇게 싫어합니다.
또 교만은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늘 갖습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믿는 것입니다.
교만은 언제나 성공만을 목적으로 삼고 삽니다.
성공 지상주의를 가지면 남을 인정하지 않고 시기와 미움이 그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은 안일주의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건강만이 모든 관심을 두고 삽니다.
그리고 그저 시간을 보내는 시간들이 많습니다.
별로 주님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게 안일주의입니다.
오후 5시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들고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다가 12시가 다 되어서 들어와도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물으면 친구 만나서 잠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왔다고 합니다.
노는 시간의 잠간이라는 게 도무지 대충 어떻게 계산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앉은 자리에서 잡니다.
그리고 5분만 지나도 역겨움을 표시합니다.
이게 그 속에 세상이 들어온 증거입니다.
친구가 등산을 가자, 낚시를 가자, 여행을 가자, 하면 한 가지도 변명이나 구실이 없습니다.
모든 중요한 것 다 접어두고 갑니다.
그러나 새벽 예배에 가지 않는 것을 변명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 이유가 백가지도 넘습니다.
피곤하다, 바쁘다, 그 시간에 어떻게 나가나, 기도를 꼭 새벽에 해야 되나, 기도를 꼭 교회에 가서만 하나……. 이런 저런 핑계들이 많습니다.
안일주의가 마음에 들어오면 모든 나쁜 세상이 다 그 마음에 들어옵니다.
성도는 이와 더불어 싸워 이겨야 합니다.
3. 우리는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세상과 싸워서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과의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길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이 믿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싸워서 이기게 해 준다는 것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비교적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점점 믿음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제일 많이 받은 사람으로 유명한 죠지 물러라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내가 사악한 늙은이가 될 때까지 살도록 내어버려두지 마십시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가 정말로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결국 세속화 되어서 악하고 추한 사람으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A.W. 토저라는 사람이 쓴 “세상과 충돌하라”는 책에 그런 추한 모습으로 늙지 않으려면 마음에 특별한 서원을 가지고 날마다 그 서원을 되새기면서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첫째, 죄의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겠다고 서원하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죄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고만 말합니다.
그러나 죄를 용서 받는 길은 그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죄를 지어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살겠다는 몸부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둘째,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우리가 살기 위해서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어서 추하지 않으려면 적당한 재물이 있어야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욕심이 우리의 말년을 너무 추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은퇴를 하면서 이 물질 때문에 그동안 섬겨왔던 교회와 분쟁이 일어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셋째, 험담을 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는 것은 참 좋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을 부풀려서 말하는 것은 더 나쁜 일입니다.
험담을 하다가 보면 때로는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문만 듣고 사실처럼 말하게 되기도 합니다.
넷째, 자신을 방어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살다가 보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합니다.
그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억울함을 다 갚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변명하며 방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서 나를 높이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일을 했다고 해도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고 해야 합니다.
이런 몇 가지 서원들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는 승리자가 되게 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을 반대하고 성령님을 거스리는 이 악한 세상과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마음에 확실히 새기고 최후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