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2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58)
본문 : 요일 5:2-3
제목 : 계명들을 지키는 것.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지상명령(至上命令)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기록된 말씀을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면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신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무조건 지켜야 하는 명령 즉 지상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모든 족속들에게 전도를 하여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을 하고 마지막에 있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는 말씀에는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것 즉 예수님의 계명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것도 우리가 반드시 시행해야 할 명령인 것입니다.
그 계명을 요한일서에서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우리가 반드시 이유가 없이 무조건 순종해야 할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이런 지상명령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드시 꼭 기필코 행하여야 할 명령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6:4-9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시작하는 말이 쉐마(들으라)라고 해서 이 말씀을 “쉐마본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지상명령으로 알고 열심히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신약의 지상명령과 구약의 지상명령을 비교해보면 핵심이 되는 내용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신약시대의 성도들이나 다 같이 꼭 지켜야 할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조금 다르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을 바르게 알고 잘 숙지하여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집에 있을 때나 길에 행할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이 말씀을 강론하고
손목에다가 매어서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을 하고
그 명령들을 어떻게 하든지 배우고 익히고 잊지 말고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명령을 지킴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외형적인 명령들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여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한 것이 좀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 하나님의 명령 즉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그런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 됨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임을 알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결부되는 것을 알고 율법을 가지고 이웃을 정죄하는 것 보다는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가르쳐 주신 계명들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행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오해를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엉뚱한 길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엉터리로 행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사랑의 기준이 되는 계명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다시 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기준이 되는 계명들을 다시 배워서 바르게 알고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늘 말합니다.
바르게 살자! 훌륭한 사람이 되자! 서로 사랑하자!
그런데 도무지 이런 말이 먹히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바르게 사는 기준을 모릅니다.
훌륭한 사람의 기준을 모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 기본이 되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가르쳐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서로 뗄 수가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 말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관계에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처럼 진정한 사랑에는 상대방의 말에 순종하려는 종의 자세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애인이 예쁘고 사랑스러우면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들어주고 싶습니다.
하늘의 별을 따다가 달라고 해도 따다가 준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작은 심부름을 시켜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에 순종을 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유리하든지 불리하든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독자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남의 일이라서 말이 쉽지 정말로 자기 친 아들을 그것도 둘도 없는 외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일까지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기에 그런 말씀에까지 순종을 했던 것입니다.
역사이래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손해를 보면서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습니다.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던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에도 순종을 잘 하지 않는데 나쁜 일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조금만 불리하면 금방 불순종하고 금방 하나님을 떠나고 금방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드리는 예배마저도 자기들 기분에 맞지 않으면 따라하지 않습니다.
설교나 기도나 찬양이나 자기 기분에 맞춰주면 좋다고 하고 자기의 기호에 잘 맞지 않으면 드리지 않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마음에 맞춰주면 좋은 교회라고 하고 자기 기분에 맞지 않으면 나쁜 교회라고 해 버립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유리하든지 불리하든지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 말씀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역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명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잘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은 그 이상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형제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실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는 아무리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사랑의 하나님의 계명을 벗어난 사랑이라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 사이의 사랑은 그 기준이 애매모호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는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 사랑을 받는 상대방은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사랑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을 때 참된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랑의 범위를 초월합니다.
사랑하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다릅니다.
우리는 사랑스러운 사람만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끔 보면 형제들 중에 마음에 안 드는 형제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때로는 믿었던 형제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형제에 대해서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래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오직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때로는 실망스러워도 계속 그 사람을 믿어주면 나중에는 그 사람이 진짜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이란 그 사랑의 방법도 틀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은 신실한 사랑입니다.
사랑에 거짓이 있거나, 사랑에 변질이 있거나, 사랑에 위선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을 따라 신실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진정으로 용서해 줄줄 알 때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악랄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서까지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누군가가 나를 이용하고
누군가가 나를 배신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심한 손해를 입혔을 때도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잘 배우시고 이해하시어서 하나님의 계명들을 바르게 지킴으로 참된 형제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3.그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본문 3절 말씀에 “…….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즐겁고 기쁜 것입니다.
육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시기와 질투가 나오고 오히려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에는 항상 기쁨이 수반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가자고 하면 교회에 가면 술도 못 먹게 하고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재미도 못 보게 하는데 그렇게 힘들고 고달픈 것을 왜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그것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술이 우리에게 짐이 되고 담배가 우리에게 짐이 되고 세상 쾌락이 우리에게 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그것을 함으로 우리가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을 하신 것은 그것을 행할 때 우리가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법을 만들고 계명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르게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휘발유로 가는 차를 샀습니다.
그 차에는 그 차의 설명서대로 휘발유를 넣어야 됩니다.
그 차에다가 휘발유를 넣으라고 한 것은 차 주인에게 손해를 보게 하기 위해서 비싼 휘발유를 넣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차에는 휘발유를 넣었을 때 차가 정상적으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 법을 어기고 돈 안 들고 넣기 쉬운 맹물을 넣으면 넣기야 쉽겠지만 그 차는 움직이지 않고 고장이 나고 폐차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 반항심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오히려 더 싫어합니다.
거꾸로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로 살면 되지 왜 여자행세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미며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왜 여자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사는 것이 더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그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볍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주는 계명이라면 그것이 무거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워하는 자들에게 주는 계명이라면 힘들고 어려운 계명을 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녀들을 위해서 주시는 계명이기 때문에 무게는 최소한의 것이고 그로 인한 혜택은 최대한의 것으로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어려움들은 우리에게 유익한 어려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혹은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계명들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할까 라고 원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어려움들 그런 시련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 받아야 할 기본적인 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훈련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큰 일을 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령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대로 행하면 이제부터 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친구로 대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종이 아니라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종은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보통 사람들과 같은 명령이라면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은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요 그것이 우리에게 짐이 되는 무거운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오히려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할 때 예수님의 친구로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우리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무거운 것도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 귀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계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 요일 5:2-3
제목 : 계명들을 지키는 것.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지상명령(至上命令)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기록된 말씀을 지상명령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면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하신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이 무조건 지켜야 하는 명령 즉 지상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모든 족속들에게 전도를 하여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을 하고 마지막에 있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는 말씀에는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것 즉 예수님의 계명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것도 우리가 반드시 시행해야 할 명령인 것입니다.
그 계명을 요한일서에서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우리가 반드시 이유가 없이 무조건 순종해야 할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이런 지상명령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드시 꼭 기필코 행하여야 할 명령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6:4-9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시작하는 말이 쉐마(들으라)라고 해서 이 말씀을 “쉐마본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지상명령으로 알고 열심히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신약의 지상명령과 구약의 지상명령을 비교해보면 핵심이 되는 내용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신약시대의 성도들이나 다 같이 꼭 지켜야 할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조금 다르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을 바르게 알고 잘 숙지하여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집에 있을 때나 길에 행할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이 말씀을 강론하고
손목에다가 매어서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을 하고
그 명령들을 어떻게 하든지 배우고 익히고 잊지 말고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명령을 지킴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외형적인 명령들을 지키는 데만 급급하여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한 것이 좀 안타까운 일입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 하나님의 명령 즉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그런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 됨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임을 알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결부되는 것을 알고 율법을 가지고 이웃을 정죄하는 것 보다는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가르쳐 주신 계명들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행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오해를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엉뚱한 길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엉터리로 행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사랑의 기준이 되는 계명들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다시 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기준이 되는 계명들을 다시 배워서 바르게 알고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늘 말합니다.
바르게 살자! 훌륭한 사람이 되자! 서로 사랑하자!
그런데 도무지 이런 말이 먹히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바르게 사는 기준을 모릅니다.
훌륭한 사람의 기준을 모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그 기본이 되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가르쳐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 이 세 가지는 서로 뗄 수가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 말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관계에서도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처럼 진정한 사랑에는 상대방의 말에 순종하려는 종의 자세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애인이 예쁘고 사랑스러우면 무슨 말을 하든지 다 들어주고 싶습니다.
하늘의 별을 따다가 달라고 해도 따다가 준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작은 심부름을 시켜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 말씀에 순종을 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유리하든지 불리하든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독자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남의 일이라서 말이 쉽지 정말로 자기 친 아들을 그것도 둘도 없는 외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일까지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기에 그런 말씀에까지 순종을 했던 것입니다.
역사이래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손해를 보면서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습니다.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던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에도 순종을 잘 하지 않는데 나쁜 일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조금만 불리하면 금방 불순종하고 금방 하나님을 떠나고 금방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드리는 예배마저도 자기들 기분에 맞지 않으면 따라하지 않습니다.
설교나 기도나 찬양이나 자기 기분에 맞춰주면 좋다고 하고 자기의 기호에 잘 맞지 않으면 드리지 않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마음에 맞춰주면 좋은 교회라고 하고 자기 기분에 맞지 않으면 나쁜 교회라고 해 버립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유리하든지 불리하든지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 말씀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역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명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잘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은 그 이상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형제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실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는 아무리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사랑의 하나님의 계명을 벗어난 사랑이라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 사이의 사랑은 그 기준이 애매모호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는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 사랑을 받는 상대방은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사랑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을 때 참된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랑의 범위를 초월합니다.
사랑하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다릅니다.
우리는 사랑스러운 사람만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끔 보면 형제들 중에 마음에 안 드는 형제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때로는 믿었던 형제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형제에 대해서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래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오직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때로는 실망스러워도 계속 그 사람을 믿어주면 나중에는 그 사람이 진짜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이란 그 사랑의 방법도 틀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은 신실한 사랑입니다.
사랑에 거짓이 있거나, 사랑에 변질이 있거나, 사랑에 위선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을 따라 신실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진정으로 용서해 줄줄 알 때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 있는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악랄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서까지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누군가가 나를 이용하고
누군가가 나를 배신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심한 손해를 입혔을 때도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잘 배우시고 이해하시어서 하나님의 계명들을 바르게 지킴으로 참된 형제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3.그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본문 3절 말씀에 “…….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즐겁고 기쁜 것입니다.
육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시기와 질투가 나오고 오히려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에는 항상 기쁨이 수반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가자고 하면 교회에 가면 술도 못 먹게 하고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재미도 못 보게 하는데 그렇게 힘들고 고달픈 것을 왜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그것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술이 우리에게 짐이 되고 담배가 우리에게 짐이 되고 세상 쾌락이 우리에게 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그것을 함으로 우리가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을 하신 것은 그것을 행할 때 우리가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법을 만들고 계명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르게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휘발유로 가는 차를 샀습니다.
그 차에는 그 차의 설명서대로 휘발유를 넣어야 됩니다.
그 차에다가 휘발유를 넣으라고 한 것은 차 주인에게 손해를 보게 하기 위해서 비싼 휘발유를 넣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차에는 휘발유를 넣었을 때 차가 정상적으로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 법을 어기고 돈 안 들고 넣기 쉬운 맹물을 넣으면 넣기야 쉽겠지만 그 차는 움직이지 않고 고장이 나고 폐차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 반항심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오히려 더 싫어합니다.
거꾸로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로 살면 되지 왜 여자행세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미며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왜 여자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사는 것이 더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그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볍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주는 계명이라면 그것이 무거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워하는 자들에게 주는 계명이라면 힘들고 어려운 계명을 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녀들을 위해서 주시는 계명이기 때문에 무게는 최소한의 것이고 그로 인한 혜택은 최대한의 것으로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어려움들은 우리에게 유익한 어려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혹은 어려움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고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계명들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할까 라고 원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어려움들 그런 시련들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 받아야 할 기본적인 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훈련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큰 일을 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령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대로 행하면 이제부터 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친구로 대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종이 아니라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종은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 보통 사람들과 같은 명령이라면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은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요 그것이 우리에게 짐이 되는 무거운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오히려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길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할 때 예수님의 친구로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우리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어려운 것이 아니요 무거운 것도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 귀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계명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