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1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56)
본문 : 요일 4:20-21
제목 : 거짓말 하는 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거짓말 경연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상금이 푸짐하게 걸렸는지라 많은 경쟁자들이 출전했습니다.
어떤 연사가 올라가서 "글쎄, 나는 큰 바위가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별 반응이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이 올라가, "나는 두부를 먹다가 이가 부러져서 치과에 다녀오는 길입니다"라고 했는데 역시 아무도 웃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연사가 올라가서 "이래봬도 나는 정말 정직한 사람입니다. 내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이윽고 심사위원들은 감탄했다는 듯이 그 사람을 1등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1997년 4월의 통계니까 사람들이 그래도 좀 양심적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갈까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사람은 하루에 8분에 한번 꼴로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해 조사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약속시간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였고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으로는 점원 정치인 언론인 변호사 세일즈맨 심리학자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의 목사님이 예배가 끝날 무렵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주에는 거짓말하는 죄에 대해 설교하려 합니다.
마가복음 17장을 미리 읽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 주 일요일,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목사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가복음 17장을 읽고 왔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읽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자 대부분의 성도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마가복음은 16장까지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거짓말하는 죄에 대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제목은 거짓말하는 자이지만 주제가 거짓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혹은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 삽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거짓말이 없어진다면 참으로 끔찍한 세상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거짓말 때문에 평화가 유지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마음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만 이야기 했다가는 서로 싸움만 벌어지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유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고 천국백성이 되는데 그것이 거짓이 되고 가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될 거짓말이 무엇인가를 오늘 본문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예수님을 믿는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눈에 보이는 바로 옆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형제들 즉 교회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 일서를 배우면서 너무나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사랑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이 싸늘한 사람은 아직 참된 성도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아직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좋다고 자랑하면서 교회의 성도들을 흉보고 욕합니다.
심지어는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목사를 흉이나 보고 비웃기나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 신앙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대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유익이 없느니라. 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 말을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오해를 합니다.
봐라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지 그것도 안하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그들의 주장처럼 눈에 보이는 인간관계가 우선 좋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이지 하나님보다 형제를 더 많이 더 우선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끔 저희 친척들이 저보고 충고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형제들에게 가족에게 잘해야 한다.
부모에게 효도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목사를 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선이 되는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그런 인간관계들이 우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8장 29-30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서 가적과 직업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에게 아무도 “당신은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예수님만 따릅니까? “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족을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실 때 그 사명을 그 명령을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따라야 하는 것이 사명 받은 자의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어떤 핑계도 어떤 이유도 어떤 변명도 필요 없이 그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나는 부모님과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너무나 큰 사랑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고 효성이 깊어서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다 따라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단에 빠졌습니다.
이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단교회로 따라 다닙니다.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일로 인해서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악한 길로 간다면 참 불행한 일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초등학교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교회에 잘 다녔는데 결혼을 해서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내의 동생 처제가 중이 되는 바람에 교회를 그만 두고 절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그에게는 참 불행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무엇보다 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처럼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심지어 나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우선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바꾸어서 설명을 합니다.
교회라는 말은 사실 형제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교회하면 이 교회당 건물을 말하는 것으로 흔히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원래 교회라는 말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 모인 우리 성도들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즉 교회들이 모이는 장소니까 넓은 의미에서 교회당을 교회라는 말로 씁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한다고 할 때 넓은 의미에서 교회당을 사랑하고 교회에서 하는 일들이나 교회의 조직들이나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거짓말하는 자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예수님은 믿는데 교회는 안 간다.
교회에 가면 꼴 보기 싫은 것들이 많아서 안 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교회는 그렇게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부흥시켜 나가는 일입니다.
일평생 살면서 한번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남들이 세워놓은 교회에 가서 불평이나 하고 트집이나 잡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저는 평신도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되어서 성도들이 교회를 건축하는데 너무나 많은 희생들을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들이냐 평생 하는 일이 그 일이니까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바쳐도 되지만 성도들이야 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베풀어 주신 은혜를 안다면 힘이 들고 어려워도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고 세우는 일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평생에 한번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목표하나 없이 세상을 살면 성공해도 허무한 것이고 실패를 해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왜 공부를 하느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왜 운동을 하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왜 음악공부를 하느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
왜 돈을 벌려고 하느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이런 목적 없이 하는 일은 그저 허무한 일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요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곳이요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곳입니다.
교회의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3.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21절 말씀에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주제는 사실 형제사랑입니다.
형제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형제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이 된다고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형제사랑에서 형제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다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형제자매들도 물론 사랑해야 하겠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형제자매는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1)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사랑하라.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비교해서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은 외형적인 사랑의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들어나는 외형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형제를 사랑함에 있어서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지 겉으로 말로 하거나 행동으로 하는 사랑을 저급한 것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하고 예배를 드리고 하는 외형적인 사랑보다 마음 깊이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마음도 없이 외형적으로 형식적으로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외형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마음 깊이에 참된 사랑이 잇는 사람은 외형적으로도 그 사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랑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사랑일수록 우리의 삶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행동 하나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진실 되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서 마음속으로 사랑한다고 변명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삶에 실천할 줄 알 때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인간관계만 중요시 하는 것은 진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우선이라는 것은 몇 천 번을 강조해도 과하지 않는 중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인간관계는 무시해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당시의 이런 이단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신비한 진리를 발견하는 데만 힘을 썼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아예 무시를 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주 귀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도 우리 성도들이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형제사랑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관계만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은 25장에는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일들이 다 예수님께 한 일과 같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리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준 그 일이 예수님께 한 것과 같은 것이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이 하나님께 한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한 일이, 벗은 자에게 옷 하나 준 것이, 병든 자를 돌봐준 것이, 옥에 갇힌 자를 면회 한번 간 그런 일들이 다 하나님께 한 일과 같이 취급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 우리 형제 중에 병들고 잘못해서 옥에 갇히고 가난하고 헐벗어서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이러한 일들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옆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요일 4:20-21
제목 : 거짓말 하는 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거짓말 경연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상금이 푸짐하게 걸렸는지라 많은 경쟁자들이 출전했습니다.
어떤 연사가 올라가서 "글쎄, 나는 큰 바위가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별 반응이 없습니다.
또 한 사람이 올라가, "나는 두부를 먹다가 이가 부러져서 치과에 다녀오는 길입니다"라고 했는데 역시 아무도 웃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연사가 올라가서 "이래봬도 나는 정말 정직한 사람입니다. 내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해 본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이윽고 심사위원들은 감탄했다는 듯이 그 사람을 1등으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1997년 4월의 통계니까 사람들이 그래도 좀 양심적일 때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갈까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사람은 하루에 8분에 한번 꼴로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해 조사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약속시간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였고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으로는 점원 정치인 언론인 변호사 세일즈맨 심리학자 순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의 목사님이 예배가 끝날 무렵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주에는 거짓말하는 죄에 대해 설교하려 합니다.
마가복음 17장을 미리 읽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 주 일요일,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목사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가복음 17장을 읽고 왔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읽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자 대부분의 성도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마가복음은 16장까지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거짓말하는 죄에 대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제목은 거짓말하는 자이지만 주제가 거짓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혹은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 삽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거짓말이 없어진다면 참으로 끔찍한 세상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거짓말 때문에 평화가 유지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마음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만 이야기 했다가는 서로 싸움만 벌어지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유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구원을 받고 천국백성이 되는데 그것이 거짓이 되고 가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될 거짓말이 무엇인가를 오늘 본문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예수님을 믿는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눈에 보이는 바로 옆에 있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거짓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형제들 즉 교회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 일서를 배우면서 너무나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사랑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마음이 싸늘한 사람은 아직 참된 성도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아직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좋다고 자랑하면서 교회의 성도들을 흉보고 욕합니다.
심지어는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목사를 흉이나 보고 비웃기나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직 신앙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대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유익이 없느니라. 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 말을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보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오해를 합니다.
봐라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지 그것도 안하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그들의 주장처럼 눈에 보이는 인간관계가 우선 좋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이지 하나님보다 형제를 더 많이 더 우선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끔 저희 친척들이 저보고 충고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형제들에게 가족에게 잘해야 한다.
부모에게 효도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목사를 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선이 되는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그런 인간관계들이 우선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8장 29-30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서 가적과 직업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에게 아무도 “당신은 가족을 돌보지 않고 예수님만 따릅니까? “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족을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실 때 그 사명을 그 명령을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따라야 하는 것이 사명 받은 자의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어떤 핑계도 어떤 이유도 어떤 변명도 필요 없이 그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나는 부모님과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너무나 큰 사랑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고 효성이 깊어서 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다 따라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단에 빠졌습니다.
이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단교회로 따라 다닙니다.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일로 인해서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악한 길로 간다면 참 불행한 일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초등학교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교회에 잘 다녔는데 결혼을 해서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내의 동생 처제가 중이 되는 바람에 교회를 그만 두고 절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그에게는 참 불행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무엇보다 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처럼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심지어 나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우선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바꾸어서 설명을 합니다.
교회라는 말은 사실 형제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교회하면 이 교회당 건물을 말하는 것으로 흔히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원래 교회라는 말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 모인 우리 성도들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즉 교회들이 모이는 장소니까 넓은 의미에서 교회당을 교회라는 말로 씁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한다고 할 때 넓은 의미에서 교회당을 사랑하고 교회에서 하는 일들이나 교회의 조직들이나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거짓말하는 자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예수님은 믿는데 교회는 안 간다.
교회에 가면 꼴 보기 싫은 것들이 많아서 안 간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교회는 그렇게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부흥시켜 나가는 일입니다.
일평생 살면서 한번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남들이 세워놓은 교회에 가서 불평이나 하고 트집이나 잡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저는 평신도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되어서 성도들이 교회를 건축하는데 너무나 많은 희생들을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들이냐 평생 하는 일이 그 일이니까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바쳐도 되지만 성도들이야 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베풀어 주신 은혜를 안다면 힘이 들고 어려워도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고 세우는 일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평생에 한번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목표하나 없이 세상을 살면 성공해도 허무한 것이고 실패를 해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왜 공부를 하느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왜 운동을 하느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왜 음악공부를 하느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
왜 돈을 벌려고 하느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이런 목적 없이 하는 일은 그저 허무한 일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요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곳이요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곳입니다.
교회의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3.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21절 말씀에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주제는 사실 형제사랑입니다.
형제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형제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이 된다고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형제사랑에서 형제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다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형제자매들도 물론 사랑해야 하겠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형제자매는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1)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사랑하라.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비교해서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은 외형적인 사랑의 행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들어나는 외형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형제를 사랑함에 있어서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지 겉으로 말로 하거나 행동으로 하는 사랑을 저급한 것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하고 예배를 드리고 하는 외형적인 사랑보다 마음 깊이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마음도 없이 외형적으로 형식적으로 그렇게 행동을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사랑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외형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마음 깊이에 참된 사랑이 잇는 사람은 외형적으로도 그 사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랑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사랑일수록 우리의 삶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행동 하나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진실 되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서 마음속으로 사랑한다고 변명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삶에 실천할 줄 알 때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인간관계만 중요시 하는 것은 진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우선이라는 것은 몇 천 번을 강조해도 과하지 않는 중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인간관계는 무시해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당시의 이런 이단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신비한 진리를 발견하는 데만 힘을 썼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아예 무시를 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주 귀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도 우리 성도들이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형제사랑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관계만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은 25장에는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일들이 다 예수님께 한 일과 같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리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준 그 일이 예수님께 한 것과 같은 것이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이 하나님께 한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한 일이, 벗은 자에게 옷 하나 준 것이, 병든 자를 돌봐준 것이, 옥에 갇힌 자를 면회 한번 간 그런 일들이 다 하나님께 한 일과 같이 취급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 우리 형제 중에 병들고 잘못해서 옥에 갇히고 가난하고 헐벗어서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이러한 일들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옆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