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50)
본문 : 요일 4:10
제목 :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보면 가끔 아이들이 사소한 일로 서로 싸워서 사무실로 불려오기도 합니다.
왜 싸웠냐고 물으면 저 아이가 먼저 나에게 욕을 했다고 하든지 저 아이가 먼저 나를 때렸다든지 하는 이유를 붙입니다.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었기 때문에 당연히 거기에 대해서 응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노래를 부르듯이 너희들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이렇게 공부를 시켜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전에 여기 있는 너희들끼리 먼저 서로 사랑하며 지내야 한다. 라고 하지만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작은 일로 서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부부싸움을 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내는 남편이 먼저 잘못을 해서 미워한다는 것이고 남편은 아내가 먼저 잘못을 해서 내가 미워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끼리 서로 싸우는 것도 상대방이 먼저 잘못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에게 잘못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그래서 내가 참을 수 없고 억울해서 못살겠습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집사라고 하면서 장로라고 하면서 목사라고 하면서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라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핑계나 이유들은 사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그 사랑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참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이 이유나 핑계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상대방이 잘해주고 바르게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의 사랑이요 오히려 부족한 사람 연약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사는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이 여기 있으니”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이 “이것이 사랑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참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보고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님들이 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참된 사랑을 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참된 사랑은 먼저 베푸는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라고 했습니다.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
사랑이란 이렇게 나를 먼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내가 먼저 사랑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즉 참된 사랑과 인간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사랑이라는 것을 바르게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사랑에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사랑이라는 것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우주만물을 창조해 주신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대항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원수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그들은 큰일 날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고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고 해도 그저 자기들이 섬기는 미신들처럼 미미한 존재로 취급을 하거나 인간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쓸모없는 신으로 여겨버립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여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살지 못한 죄를 인정하지 않고 아예 하나님을 없다고 주장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안계셨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며 최후의 심판주로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인데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세상 사람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회 안에 있는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주 말은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살펴보면 철저히 이기주의적인 사랑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러니 저에게 복을 좀 주셔서 우리 아들도 잘되고 나도 잘되고 아내도 잘되고 남편도 잘 되고 우리 가족들이 다 원하는 대로 잘 되어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해 주시옵소서 라고 합니다.
그러나다가 기도한대로 응답이 잘 안 되면 하나님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십니까? 저보다 신앙생활도 잘 못하는 아무개는 복을 주시고 나는 왜 안 주시는 것입니까?......
우리의 사랑이란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반대급부를 위해서 하는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 사랑에 비추어보면 사랑한다고 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 나에게 사랑의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 그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2)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기만을 바라고 먼저 사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할 때 아 내가 뭔가 잘난 구석이 있는 모양이구나. 라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할 때는 거기에 붙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원수 같은 우리를,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우리를, 영원히 저주를 받아 멸망을 당해야 마땅한 우리를……. 이런 수식어들이 붙습니다.
로마서 5:6-8절 말씀에 그 사실을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자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혹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의인이나 선한 사람을 위하여 희생을 당하는 사람도 혹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별 볼일이 없는 흉악한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서 대신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은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조차 없는 흉악한 죄인들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바르게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은 비록 우리가 부족하더라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은 비록 내가 이 세상에서 훌륭한 일 선한 일을 많이 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해 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비록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실수를 하고 때로는 사라들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변함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게 해줍니다.
나의 잘나고 못남과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특별히 사랑해 주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하여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비아냥거립니다.
그것은 진리를 잘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흉악한 죄인들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그 죄성을 완전히 버릴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만 다만 그 사실을 아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조금씩은 성화되고 있지만 이 세상에 사는 날까지는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나님을 실망시켰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우리도 먼저 베푸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먼저 베푸는 것은 시간적으로 먼저 사랑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시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나에게 잘못대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나쁘게 대해도 그것을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흠이 있을 때라도 그것을 오히려 감춰주고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였던 한 여자가, 어느 날 사고를 당해 눈 주위의 피부가 몹시 흉하게 오그라들었습니다.
혼기가 꽉 차 있던 그녀는 그 후 계속 선을 봤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녀는 생각다 못해 이름난 메이크업 학원에 다니며, 그 상처를 감추는 화장법을 배워 겨우 흉터를 숨기고, 한 남자와 선을 봐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장사를 나가기 때문에 그녀도 늘 새벽에 일어나 화장을 해야만 했고, 남편의 리어카를 뒤에서 열심히 밀곤 했습니다.
문제는 땀이 날 때였습니다.
남편이 닦아주겠다고 해도 행여 들킬까봐 늘 사양하며 눈 주위를 피해 조심스레 닦아내곤 했었는데,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고, 그날도 예외 없이 남편이 얼굴을 닦아주려고 하자, '어차피 언젠가는 들킬걸.' 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손수건을 꺼내 든 남편은 눈 주위만 빼고 빗물을 정성스레 닦아주더라는 것입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약점을 알고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감싸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 사람이 별 볼일 없는 연약한 존재인줄을 알고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가 나에게 악한 감정을 품고 해를 끼치려고 해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사랑이요 우리가 본받아야 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 참된 사랑을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참된 사랑은 희생과 헌신이 있는 사랑입니다.
본문 말씀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진실한 사랑이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부족한 죄인들을 감싸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만으로 끝이 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잘못을 치료받게 해 주시려고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타락한 이후로 우리 인간들과 하나님의 사이는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을 돌렸기 때문에 또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탄과 한 패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멸망할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화목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 화목제물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말씀으로만 사랑하시지 않고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시키시는 헌신적인 사랑이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라고 했습니다.
땅에 떨어져 죽기로 결단하신 분이 하나님 그분이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어 나를 살려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분의 희생의 터 위에 우리의 구원 꽃은, 생명열매는 맺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나 하나가 구원받기 위해서 누군가의 땀방울이 있었습니다.
나 하나가 주님 앞에 돌아오기 위해서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눈물이 있었습니다.
값진 희생이 있었습니다.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 나는 구원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나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흘리는 눈물과 땀과 희생은 얼마나 값비싼 것입니까?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이 희생과 헌신의 사랑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만 참된 사랑을 하지 못했습니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이 참된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같이 못난 죄인들을 위해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화목제물이 되게 하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우리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도 그 하나님의 찬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참된 사랑을 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