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 1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45)
본문 : 요일 4:2-3
제목 :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과 사탄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고 그 밖에 모든 사람들은 악한 영 즉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무런 영도 받지 않았다, 나는 무신론자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무당처럼 신 내림 굿을 하고 신을 받은 사람만 영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 사탄의 영향권 내에 있는 사람 즉 사탄의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영향을 받아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죄를 짓고 자기 욕심대로 살며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은 성령님을 받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간혹 자신이 성령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신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을 받으면 뭔가 눈에 보이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방언을 하든지, 예언을 하든지,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든지, 이런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동반이 되어야 성령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성령님을 이미 받았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내에 있는 사람도 성령님의 지배가 아닌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교회 내에 너무나 많은 사탄들이 들어와서 자기들이 진짜인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1절 말씀에서 배우신대로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을 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과 3절의 말씀은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를 구별하는 아주 중요하면서 간단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요 그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오신 것을 설명하는 그런 설교를 하면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서 하는 설교이고.
그와 전혀 상관이 없거나 그와 반대되는 것을 설교라고 하면 그 것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거나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이 되어서 사는 사람이면 성령님을 받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서 사는 사람이고 그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가 없으면 성령님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여러분들은 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다 성령님을 받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성령님을 따라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사람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손을 들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에서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의미를 알고 믿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렇게 고백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그 이름의 뜻을 알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심이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이름의 뜻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가 되심을 믿는 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가장 근본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은 죄에서 구원을 받는 것처럼 소중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지은 죄를 몰라서 그렇고 그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 사실을 알고 보면 이보다 더 큰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도 그 의미와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 즉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실 임무를 가지신 그 직책을 나타내는 말로 쓰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사하실 임무를 가지고 그 직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가장 소중한 믿음이며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뭔가 쉽고 간단하면 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돌려서 복잡하게 설명을 하면 이해를 잘 하지 못하면서도 그 안에 뭔가 있는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쉽고 간단하게 말하면 잘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이 될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일 것입니다.
요한이 이 요한일서를 기록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어찌 이런 악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실 수 있었을까 라고 의심을 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영은 선하고 육신은 악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죄가 없으신 선하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가지셨다는 것을 도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지만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셨다는 것을 믿지 않고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신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뒤에 가서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신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를 설명하겠지만 사실 그 중요한 것을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은 사탄이 진리를 왜곡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이성에 자극을 하여서 이 소중한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 악한 영의 사주를 받고 있는가를 구별하는 쉬운 방법은 이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면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것이요 그렇지 않고 부인하면 예수님을 바르게 믿지 못하는 것이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 분류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소중한 믿음이 세월이 흐름으로 여러 가지로 변질이 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활동하던 중세에는 이 믿음이라는 것이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 선을 행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사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받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냐 아니면 우리 인간들의 행위로냐라고 묻는 것이 바른 믿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고 자기 자신의 의롭고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악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구별을 했습니다.
오늘날은 그렇게 단순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다는 것을 구별하기가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고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많이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구별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성경도 다른 종교의 경전처럼 단순히 인간들이 기록한 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자신들이 지식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들이 가진 알량한 경험들로 판단을 해 보면, 성경은 그저 인간이 기록한 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하나님의 말씀도 있지만 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다 악한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우리가 가진 이 믿음도 진리가 아니라 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철학이나 논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날 대신 죽어주셨다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 인간의 지식으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라는 분이 이 세상에서 가르치신 좋은 도덕적인 교훈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도와주며 나누는 그런 교훈들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웃사랑 나누기나 복지사업들을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그런 일들이 교회가 하는 일의 전부라거나 그것이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여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그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지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여 병을 고치고 기도를 하여 내가 바라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것이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인데 그 소중한 것을 무시하고 무조건 기적을 일으키고 목적을 달성하는 일을 믿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무시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세우신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다소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해서 교회 자체를 부인하고 교회 밖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의 참된 믿음의 구별은 어렵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고 의인은 의롭거나 선한 행위로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거룩한 공회임을 믿고 기적이나 도덕적인 삶 보다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믿음이 성령님께서 주신 참된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 당시의 초대교회시대의 사람들은 영은 선한 것이지만 육신은 악한 것이라는 이원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악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 죄인이며 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면 그렇게 의롭고 선하신 분이 어떻게 천하고 추한 사람으로 태어나실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 당시에 교회 내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영지주의의 가현설에 빠져서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가현설이란 “…….처럼 보인다.”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왔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보이기만 하는 것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이심으로 발자국도 없고 그림자도 없으신 분인데 그냥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러한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역사적으로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영원한 사실이며 아주 중요한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오셨는지 그냥 사람처럼 보이기만 하셨는지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해서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기준을 가지고 성령을 받았느냐 악령을 받았느냐로 구별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람이십니다.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시긴 하셨지만 여자의 몸에서 우리처럼 어린 아이로 태어나신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이 중요하듯이 예수님께서 사람이라는 사실도 참 중요합니다.
1)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으로만 존재하시지 않고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들은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그저 상상을 해서 만들어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철저하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 살펴보면 이 세상의 모든 역사의 중심은 기독교의 역사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강대국들이 성경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 세상의 역사 속에 존재했다가 사라졌다가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은 거기에 다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역사 속으로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시고 오셨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허상이 아니라 실상이며 진실이며 사실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눈에 보여주면 믿겠다고 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2)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이유 중에 가장 주요한 이유는 우리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의 형벌도 부활도 승천도 또 다시 오시는 것도 다 거짓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그저 소설이거나 그렇게 보이는 착시현상이거나 환상이 아닌 실제적 사실입니다.
부활도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고 승천도 사실입니다.
3)십자가의 대속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이것을 두고 다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이 중심적인 핵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믿게 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은 그 속에 성령님이 계시는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고나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우리의 육신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과거에 사람들이 육신은 악한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악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 안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즉 영적인 것은 선하고 육적인 것은 악하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봉사하고 활동하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이 세상에서 사는 일들은 다 악하고 천하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자 성도님들이 신앙 좀 좋다고 하면 가정 일을 소홀히 하고 교회에서만 살려고 합니다.
특별히 이단들은 영적인 일 즉 신앙을 강조하면서 가정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맹신자들이 되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영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을 해야 될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사람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육신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삶도 죄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악한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선하게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를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받아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받아서 산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그것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성령님의 역사인가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날 대신 죽어주심을 고백하는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의 재림을 바르게 알고 믿는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요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 요일 4:2-3
제목 :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과 사탄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고 그 밖에 모든 사람들은 악한 영 즉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무런 영도 받지 않았다, 나는 무신론자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무당처럼 신 내림 굿을 하고 신을 받은 사람만 영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 사탄의 영향권 내에 있는 사람 즉 사탄의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영향을 받아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죄를 짓고 자기 욕심대로 살며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은 성령님을 받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간혹 자신이 성령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신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을 받으면 뭔가 눈에 보이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방언을 하든지, 예언을 하든지,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든지, 이런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동반이 되어야 성령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성령님을 이미 받았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내에 있는 사람도 성령님의 지배가 아닌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교회 내에 너무나 많은 사탄들이 들어와서 자기들이 진짜인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1절 말씀에서 배우신대로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을 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과 3절의 말씀은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인지를 구별하는 아주 중요하면서 간단한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영이요 그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오신 것을 설명하는 그런 설교를 하면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서 하는 설교이고.
그와 전혀 상관이 없거나 그와 반대되는 것을 설교라고 하면 그 것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거나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이 되어서 사는 사람이면 성령님을 받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서 사는 사람이고 그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가 없으면 성령님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여러분들은 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다 성령님을 받으신 분들이기 때문에 성령님을 따라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사람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손을 들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에서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 의미를 알고 믿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렇게 고백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그 이름의 뜻을 알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심이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이름의 뜻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가 되심을 믿는 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가장 근본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은 죄에서 구원을 받는 것처럼 소중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지은 죄를 몰라서 그렇고 그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 사실을 알고 보면 이보다 더 큰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도 그 의미와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 즉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실 임무를 가지신 그 직책을 나타내는 말로 쓰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사하실 임무를 가지고 그 직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가장 소중한 믿음이며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뭔가 쉽고 간단하면 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돌려서 복잡하게 설명을 하면 이해를 잘 하지 못하면서도 그 안에 뭔가 있는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쉽고 간단하게 말하면 잘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이 될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일 것입니다.
요한이 이 요한일서를 기록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어찌 이런 악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실 수 있었을까 라고 의심을 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영은 선하고 육신은 악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죄가 없으신 선하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가지셨다는 것을 도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지만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셨다는 것을 믿지 않고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신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뒤에 가서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신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를 설명하겠지만 사실 그 중요한 것을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은 사탄이 진리를 왜곡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이성에 자극을 하여서 이 소중한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 악한 영의 사주를 받고 있는가를 구별하는 쉬운 방법은 이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면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것이요 그렇지 않고 부인하면 예수님을 바르게 믿지 못하는 것이요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으로 분류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소중한 믿음이 세월이 흐름으로 여러 가지로 변질이 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이 활동하던 중세에는 이 믿음이라는 것이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 선을 행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사는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받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냐 아니면 우리 인간들의 행위로냐라고 묻는 것이 바른 믿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고 자기 자신의 의롭고 선한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악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구별을 했습니다.
오늘날은 그렇게 단순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다는 것을 구별하기가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고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많이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구별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성경도 다른 종교의 경전처럼 단순히 인간들이 기록한 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자신들이 지식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들이 가진 알량한 경험들로 판단을 해 보면, 성경은 그저 인간이 기록한 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가끔 하나님의 말씀도 있지만 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다 악한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우리가 가진 이 믿음도 진리가 아니라 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철학이나 논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날 대신 죽어주셨다는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없이 인간의 지식으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라는 분이 이 세상에서 가르치신 좋은 도덕적인 교훈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도와주며 나누는 그런 교훈들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웃사랑 나누기나 복지사업들을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그런 일들이 교회가 하는 일의 전부라거나 그것이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여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그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지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여 병을 고치고 기도를 하여 내가 바라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것이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인데 그 소중한 것을 무시하고 무조건 기적을 일으키고 목적을 달성하는 일을 믿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무시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세우신 소중한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다소 부정적인 면이 있다고 해서 교회 자체를 부인하고 교회 밖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의 참된 믿음의 구별은 어렵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고 의인은 의롭거나 선한 행위로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거룩한 공회임을 믿고 기적이나 도덕적인 삶 보다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믿음이 성령님께서 주신 참된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 당시의 초대교회시대의 사람들은 영은 선한 것이지만 육신은 악한 것이라는 이원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악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 죄인이며 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면 그렇게 의롭고 선하신 분이 어떻게 천하고 추한 사람으로 태어나실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 당시에 교회 내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영지주의의 가현설에 빠져서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가현설이란 “…….처럼 보인다.”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왔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사람처럼 보이기만 하는 것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이심으로 발자국도 없고 그림자도 없으신 분인데 그냥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러한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역사적으로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영원한 사실이며 아주 중요한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오셨는지 그냥 사람처럼 보이기만 하셨는지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해서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기준을 가지고 성령을 받았느냐 악령을 받았느냐로 구별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람이십니다.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시긴 하셨지만 여자의 몸에서 우리처럼 어린 아이로 태어나신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이 중요하듯이 예수님께서 사람이라는 사실도 참 중요합니다.
1)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으로만 존재하시지 않고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들은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그저 상상을 해서 만들어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철저하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 살펴보면 이 세상의 모든 역사의 중심은 기독교의 역사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강대국들이 성경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 세상의 역사 속에 존재했다가 사라졌다가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은 거기에 다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역사 속으로 우리와 같은 몸을 가지시고 오셨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허상이 아니라 실상이며 진실이며 사실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눈에 보여주면 믿겠다고 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2)예수님의 십자가 부활 승천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이유 중에 가장 주요한 이유는 우리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의 형벌도 부활도 승천도 또 다시 오시는 것도 다 거짓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그저 소설이거나 그렇게 보이는 착시현상이거나 환상이 아닌 실제적 사실입니다.
부활도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고 승천도 사실입니다.
3)십자가의 대속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이것을 두고 다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이 중심적인 핵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믿게 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은 그 속에 성령님이 계시는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고나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4)우리의 육신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과거에 사람들이 육신은 악한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악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 안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즉 영적인 것은 선하고 육적인 것은 악하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봉사하고 활동하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이 세상에서 사는 일들은 다 악하고 천하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자 성도님들이 신앙 좀 좋다고 하면 가정 일을 소홀히 하고 교회에서만 살려고 합니다.
특별히 이단들은 영적인 일 즉 신앙을 강조하면서 가정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맹신자들이 되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영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을 해야 될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사람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육신의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삶도 죄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악한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선하게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를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받아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받아서 산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그것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성령님의 역사인가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날 대신 죽어주심을 고백하는 그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의 재림을 바르게 알고 믿는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요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