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 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42)
본문 : 요일 3:23
제목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지난주에는 21-22절을 중심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얻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원하는 바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기도의 응답을 받는 비결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된다고 했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그러면 그 계명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즉 그의 계명을 지켜야 되는데 그러면 그 계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계명이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규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십계명을 포함한 수많은 율법들과 명령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계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경말씀의 모든 율법이나 명령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최고의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계명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과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계명이 오늘날 우리가 지키면서 살아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 즉 하나님의 계명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하나님의 계명이 즉 율법이나 지켜야 할 규칙들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고 배워서 어떤 때는 그 말씀대로 살면서 복을 받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말씀에 불순종하고 또 말씀조차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계명이 주는 참된 의미를 모르고 겉으로 형식적으로 지키는 척만 하다가 위선자라고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이란 이 율법을 얼마나 많이 지키는가로 판가름이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율법들을 지키면서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으니까 이제 마음껏 자유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계명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살인을 하면 안됩니다.
간음을 하면 안됩니다.
도적질을 하면 안됩니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웃의 집이나 집에 있는 것들을 탐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 법에서도 금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라고 한다면 더더욱 이런 짓을 해서는 절대로 안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 말도 더욱 옳은 말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들의 더 깊은 의미를 알려 주셨습니다.
살인은 꼭 그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만 해도 살인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간음이란 꼭 행동에 옮겨야만 간음죄가 성립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함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만 죄가 아니라 형제에게 욕을 하는 것도 지옥 불에 들어갈 만한 큰 죄라고 했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이런 계명들을 확실히 다 지키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옳은 말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어떻게 서로 조화를 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그 해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계명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계명과 믿음은 정반대의 것으로 생각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느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서 생각을 하기 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계명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명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 말씀을 바르게 정확하게 이해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엉뚱한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기도하는 것이 생명 줄이라고 하는 말씀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한다고 그것이 믿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직분을 많이 맡고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교회의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헌금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헌금을 합니다.
그러나 헌금 그 자체가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뜻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를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같은 뜻으로 해석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구원하실 유일한 분임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계명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동작으로 한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한꺼번에 보면 잘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구별해서 순서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1)믿음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이 우연히 스스로 생겨진 줄 알았는데 주인도 없는 것이고 지금도 저절로 돌아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계시고 그래서 그 창조주가 이 우주의 주인이 되시고 지금도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을 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하면 신앙생활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사는 대로 살다가 죽어 없어지면 그만인 것입니다.
2)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입니다.
성경책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책만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이 성격에 기록된 말씀을 다 이해한다면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알아보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살다가 몰랐어요 하면 될 줄 알아도 그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지금이라도 알아보세요
3)그 말씀 속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셔서 살게 하시면서 우리 인간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을 만들어서 주셨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국법이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에도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지킬 때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는 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4)그 말씀에 우리를 비추어 보면 우리가 엄청난 죄를 지은 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 나는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는데 그 사람은 법을 다 알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도 성경에 기록된 법들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까 가난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자기는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면 알수록 내 자신이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5)내 스스로는 절대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쳐도 내 재산 모두 내 목숨까지 내어 놓고도 그것을 가지고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6)그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대로 멸망을 당하도록 내어 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내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7)그 십자가의 보혈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내 죄를 인함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믿을 때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사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다고 어떻게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저도 이해가 안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고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목사가 꾸며 낸 이야기라면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어떻게 믿고 그런 중요한 일을 결정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믿음을 가지게 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멸망에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시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계명을 주시고 그 계명을 통해서 믿음을 갖게 해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으로 끝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계명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이 제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문맥을 살펴보면 앞에 있는 그는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고 뒤에 있는 그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앞서 서론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모든 계명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계명의 강령입니다.
요즘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씁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살고 사랑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사랑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후배가 저를 참 따릅니다
존경한다고 말도 하고 좋아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와서 목사님 목사님이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실망했습니다.라고 화를 냅니다.
제가 좀 실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실수 좀 했다고 금방와서 따지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실수를 한 것을 따지는 사랑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 무엇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잘못한 것을 가지고 시비를 하는 사람은 사랑의 "사"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이나 하지말고 시비를 걸든지 따지든지 해야지 믿음 좋은 척 사랑이 많은 척 하면서 남이 잘못하는 것보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사랑은 모르는 사람이며 신앙이 뭔지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은 못난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가치도 없고 부족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교회 내에 어떤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라고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유대인과 헬라인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헬라인들을 짐승처럼 생각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도 죄로 여기는 사이였습니다.
그런 원수같은 사람끼리 서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같은 사람끼리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종과 자유자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과 자유인 즉 주인의 사이는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사이입니다.
신분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한쪽은 억압을 하는 사람이고 한쪽은 억압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끼리도 서로를 인정해주고 사랑을 해 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랑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처지에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나와 생각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등을 돌리고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별볼 일 없어 하는 그런 사랑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끔 성도님들이 저에게 와서 불평을 합니다.
아! 아무개가 정말 못됐다, 사람이 그럴 수가 없다, 말 하는 것 보면 정머리가 떨어진다, 그런 사람이 어찌 집사냐.....
그러나 참 사랑이 무엇인 줄을 알고 보면 그런 불평을 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그런 사람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할 줄도 몰라서 말하는 것마다 사람 가슴에 상처를 주는 사람,
생각이 짧아서 너무 뭘 모르는 사람,
자기만 알고 남을 위해서 봉사할 줄도 모르는 사람,
철도 없고, 예의도 없고, 배운 것 없는 그런 사람까지 사랑하라는 말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거룩하신 분이시고 흠도 점도 없는 깨끗한 분이십니다.
무엇하나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에게 비하면 정말 모자라고 흠도 많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별 볼일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하심도 그저 말 몇 마디 하시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신의 목숨까지 그 흉악한 십자가에 희생하시면서 그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정신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으려면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하십니다.
그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이 무엇인 줄 아시고 바른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또 그의 계명은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못났지만 별 볼일이 없는 사람 같지만 주님 안에서 우리가 서로 형제라는 것을 기억하고 서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 요일 3:23
제목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지난주에는 21-22절을 중심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얻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원하는 바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기도의 응답을 받는 비결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된다고 했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그러면 그 계명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즉 그의 계명을 지켜야 되는데 그러면 그 계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계명이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규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십계명을 포함한 수많은 율법들과 명령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계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경말씀의 모든 율법이나 명령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최고의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계명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과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계명이 오늘날 우리가 지키면서 살아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 즉 하나님의 계명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하나님의 계명이 즉 율법이나 지켜야 할 규칙들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고 배워서 어떤 때는 그 말씀대로 살면서 복을 받기도 하고 어떤 때는 말씀에 불순종하고 또 말씀조차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계명이 주는 참된 의미를 모르고 겉으로 형식적으로 지키는 척만 하다가 위선자라고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이란 이 율법을 얼마나 많이 지키는가로 판가름이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율법들을 지키면서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으니까 이제 마음껏 자유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계명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율법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온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살인을 하면 안됩니다.
간음을 하면 안됩니다.
도적질을 하면 안됩니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웃의 집이나 집에 있는 것들을 탐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들은 세상 법에서도 금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라고 한다면 더더욱 이런 짓을 해서는 절대로 안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이 말도 더욱 옳은 말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들의 더 깊은 의미를 알려 주셨습니다.
살인은 꼭 그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만 해도 살인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간음이란 꼭 행동에 옮겨야만 간음죄가 성립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함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만 죄가 아니라 형제에게 욕을 하는 것도 지옥 불에 들어갈 만한 큰 죄라고 했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이런 계명들을 확실히 다 지키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그런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옳은 말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을 어떻게 서로 조화를 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그 해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계명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계명과 믿음은 정반대의 것으로 생각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계명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느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서 생각을 하기 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계명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명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이 말씀을 바르게 정확하게 이해를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엉뚱한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기도하는 것이 생명 줄이라고 하는 말씀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한다고 그것이 믿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직분을 많이 맡고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는 교회의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헌금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헌금을 합니다.
그러나 헌금 그 자체가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뜻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를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같은 뜻으로 해석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구원하실 유일한 분임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계명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동작으로 한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한꺼번에 보면 잘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구별해서 순서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1)믿음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우주 만물이 우연히 스스로 생겨진 줄 알았는데 주인도 없는 것이고 지금도 저절로 돌아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계시고 그래서 그 창조주가 이 우주의 주인이 되시고 지금도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을 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하면 신앙생활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사는 대로 살다가 죽어 없어지면 그만인 것입니다.
2)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입니다.
성경책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책만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이 성격에 기록된 말씀을 다 이해한다면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알아보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살다가 몰랐어요 하면 될 줄 알아도 그런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지금이라도 알아보세요
3)그 말씀 속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셔서 살게 하시면서 우리 인간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을 만들어서 주셨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국법이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에도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지킬 때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는 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4)그 말씀에 우리를 비추어 보면 우리가 엄청난 죄를 지은 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 나는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는데 그 사람은 법을 다 알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도 성경에 기록된 법들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까 가난한 사람이 많이 있는데 자기는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면 알수록 내 자신이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5)내 스스로는 절대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쳐도 내 재산 모두 내 목숨까지 내어 놓고도 그것을 가지고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6)그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대로 멸망을 당하도록 내어 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내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7)그 십자가의 보혈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내 죄를 인함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믿을 때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사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다고 어떻게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저도 이해가 안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고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목사가 꾸며 낸 이야기라면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어떻게 믿고 그런 중요한 일을 결정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믿음을 가지게 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멸망에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시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계명을 주시고 그 계명을 통해서 믿음을 갖게 해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으로 끝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계명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이 제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문맥을 살펴보면 앞에 있는 그는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이고 뒤에 있는 그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앞서 서론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모든 계명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계명의 강령입니다.
요즘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씁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 살고 사랑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사랑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후배가 저를 참 따릅니다
존경한다고 말도 하고 좋아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와서 목사님 목사님이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실망했습니다.라고 화를 냅니다.
제가 좀 실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실수 좀 했다고 금방와서 따지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실수를 한 것을 따지는 사랑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 무엇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잘못한 것을 가지고 시비를 하는 사람은 사랑의 "사"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이나 하지말고 시비를 걸든지 따지든지 해야지 믿음 좋은 척 사랑이 많은 척 하면서 남이 잘못하는 것보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사랑은 모르는 사람이며 신앙이 뭔지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은 못난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가치도 없고 부족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해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교회 내에 어떤 사람들이 함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라고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유대인과 헬라인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헬라인들을 짐승처럼 생각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도 죄로 여기는 사이였습니다.
그런 원수같은 사람끼리 서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같은 사람끼리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종과 자유자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과 자유인 즉 주인의 사이는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사이입니다.
신분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한쪽은 억압을 하는 사람이고 한쪽은 억압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끼리도 서로를 인정해주고 사랑을 해 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랑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처지에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나와 생각이 같지 않다는 이유로 미워하고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등을 돌리고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별볼 일 없어 하는 그런 사랑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끔 성도님들이 저에게 와서 불평을 합니다.
아! 아무개가 정말 못됐다, 사람이 그럴 수가 없다, 말 하는 것 보면 정머리가 떨어진다, 그런 사람이 어찌 집사냐.....
그러나 참 사랑이 무엇인 줄을 알고 보면 그런 불평을 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그런 사람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할 줄도 몰라서 말하는 것마다 사람 가슴에 상처를 주는 사람,
생각이 짧아서 너무 뭘 모르는 사람,
자기만 알고 남을 위해서 봉사할 줄도 모르는 사람,
철도 없고, 예의도 없고, 배운 것 없는 그런 사람까지 사랑하라는 말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거룩하신 분이시고 흠도 점도 없는 깨끗한 분이십니다.
무엇하나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에게 비하면 정말 모자라고 흠도 많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별 볼일이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하심도 그저 말 몇 마디 하시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신의 목숨까지 그 흉악한 십자가에 희생하시면서 그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정신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으려면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하십니다.
그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이 무엇인 줄 아시고 바른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또 그의 계명은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못났지만 별 볼일이 없는 사람 같지만 주님 안에서 우리가 서로 형제라는 것을 기억하고 서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