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 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38)
본문 : 요일 3:17
제목 :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사람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형제사랑을 주제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10절 말씀 이하에 계속해서 형제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10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14절)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15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서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6절)
이런 말씀들로 미루어 보아서 형제를 사랑하긴 해야 하겠는데 사랑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별히 지난주에 배운 16절의 말씀처럼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 사랑이란 그런 위대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포기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꼭 목숨을 버리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범위는 목숨을 버리는 것까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재물을 가지고도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주에 배우게 될 18절의 말씀에는 무엇이든지 행함으로 진실함으로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반의어의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라고 했습니다.
재물이 있는 사람이 형제가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도 마음을 닫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 그대로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대로 말씀을 드리면 부정적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나 하고 나 자신에게 적용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긍정문으로 바꾸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형제를 사랑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1.이 세상의 재물을 가진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에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예를 들고 있는 이 사람도 재물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나에게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이 누구를 도와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 할 때 공부를 하는 목적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에게 뭔가는 있어야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재물이 있든지 지식이 있든지 재능이 있든지 뭔가가 있어야 그것을 나누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재물의 부정적인 면은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자연히 이 세상의 쾌락을 좋아하게 되고 유혹을 많이 받게 되고 타락하기가 쉽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죄를 범하기가 쉽다는 것도 잘 압니다.
돈이 없어야 고개도 숙일 줄 알고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도 아는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일 것입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은 천국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이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마음대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타락한 성품 때문에 재물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사용해서 그런 것이지 올바른 물질관만 가진 사람이라면 꼭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재물을 많이 가지고도 바르게 살고 그 재물을 유용하게 사용을 하고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재물관을 바르게 가지지 못하고 신앙의 훈련이 잘 되어 있지 못한 사람에게 재물은 그런 위험한 폭탄이 되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바르게 쓰면 그 재물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유익하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8:18)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5:19).
이렇게 재물은 다 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얻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도 그렇게 구차하게 가난하게 힘들게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그 사랑을 활용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어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전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다닌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평생 부자로 한번 살아 보지 못했습니다.
늘 남에게 도움이나 받고 빚이나 지고 구차한 삶을 살았습니다.
왜 일찍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었던 내가 이렇게 살아야 했는가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았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엄청난 축복을 보지 못하고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좋지 않은 현실만 바라보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스스로를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삶에서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기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주여 주시옵소서만 하고 게으르고 나태하게 삽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도깨비 방망이를 든 사람처럼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2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도적질같은 것으로 돈을 모으려고 하지말고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방법으로 돈을 벌라는 것입니다.
돈은 때로는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기도 하는 아주 위험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재물을 잘 다룰 줄만 알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재물이라고 할 때 엄청나게 많은 돈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재물이라는 말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조금 넉넉하게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나는 갑부가 아니라서 재벌이 아니라서 남을 도와줄 수 없다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조금 넉넉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은 넉넉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여러분 자신만 살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나누어 줄 것이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랑을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넉넉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도와 줄 재물이 풍성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형제의 궁핍함을 보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재물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형제의 궁핍함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은 형제의 궁핍함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본다는 말은 그냥 한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보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보고 이해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우리 육신의 눈도 각각 사람에 따라 시력이 다르듯이 우리의 마음의 눈도 사람에 따라 그 보는 폭이나 깊이가 다릅니다.
똑같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정말로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눈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감정이나 느낌도 없이 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히려 나쁘게 비판하는 눈으로 볼 수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앞 밖에 보지 못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그 현상 밖에 보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야가 좁아져서 고지식하게 삽니다.
육신의 눈이 나빠지는 것처럼 마음의 눈도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이나 처지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회사를 가면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이나 대우가 다릅니다.
업무의 분야도 다릅니다.
고졸자는 자기가 혼자 하는 일만 시킨다면 대졸자는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는 자리에 있게 합니다.
사실 대학이라는 곳에 가면 그렇게 깊이있는 전문 지식을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전공하는 전공과목은 2-3학기 정도면 다 배웁니다.
나머지 5-6 학기는 대부분 교양과목들입니다.
이것저것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두루두루 배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대학 졸업자를 우대하는 것은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배움으로 그 시야가 넓어지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다룸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형편을 폭넓게 보고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지도자의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은 꼭 대학에서의 공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통하여 우리의 시야를 넓힐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 농담으로 대학 어디 나왔느냐고 물으면 한강대학 풍덩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대학 참으로 좋은 대학입니다.
졸업만 하지 않고 중간에 자퇴만 할 줄 알면 좋은 대학입니다.
인생을 얼마나 기구한 운명을 살았으면 그 높은 한강다리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려고 했겠습니까
그 정도의 인생경험이면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폭넓게 사람들을 이해하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모든 사람의 모든 형편들을 다 경험을 했다면 모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사랑의 눈으로 동정의 눈으로 보고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서 엄마를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엄마없는 아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린 몸으로 부모님을 잃고 혼자 누어 밤을 보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서러움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아이를 두고 떠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을 먼저 보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당하는 서러움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가족에게 배반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배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업이 부도가 나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몸이 불구가 되어서 장애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으로 여러 가지의 종류들의 아픔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사랑의 눈으로 동정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도 넓어져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여러 가지 경우들을 보면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좁은 마음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 옹고집을 부리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나만 보고 나의 형편만 생각하고 내 기분만 위해서 사는 옹졸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폭넓게 이해하고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도와줄 마음이 막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를 들어 등장하는 이 사람도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는 가졌다고 했습니다.
형제를 도와줄 재물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제의 궁핍함을 자세히 보고 동정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가지가 잘 못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도와주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막아 버리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이 있음에도 형제를 도와주지 못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보고 안됐다고 동정을 하면서도 그를 도와주지는 못합니다.
그 마음에 도와주는 것을 막아 버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가지고도 남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무정한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자기 이익을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데 나만 남을 위해서 산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또 욕심이 있는 사람은 그 욕심 때문에 남의 어려운 형편을 보고도 도와주지 못할 것입니다.
더 잘 살고 싶고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그 끝이 없습니다.
일억 있으면 십억 있는 사람이 부럽고 10억 있으면 100억 있는 사람이 부럽고 그 욕심에는 상한선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욕심이 많은 사람은 절대 남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세상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가진 사람도 남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쩐지 돈이 필요하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돈이란 있을 때 쓰는 것이 제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써보지도 못하고 벌기만 하고 모으기만 하는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면서도 쓰지 않고 자꾸 모으는 것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애착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천년 만년 살기 위해서 죽는 줄도 모르고 끌어안고만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그 마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원한 천국을 믿을 것이요 천국에서의 상급도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기 때문에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고 거기서 상급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면 도와줄 마음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그런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른 기도를 하는 기도의 사람은 한결같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됩니다.
제가 어려움을 당해서 대전에서 살 때 저를 도와주신 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기도를 많이 하시는 신앙이 참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이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어려웠을 때 이 권사님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면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 모르시기에 우리가 그 사실을 하나님께 알려 드리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들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그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은 기도를 잘못하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께 내 마음을 맡기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형제의 어려움을 보고 도와주는데 막하지 않습니다.
창고의 문을 닫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우리 마음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형제의 어려운 형편을 보고 마음을 닫고 그냥 있지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듯이 형제자매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손을 내민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많이 모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재물을 모으시기 바랍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는 눈으로 보기 위해서 시야를 넓히시기 바랍니다.
공부도 하시고 책도 읽으시고 성경말씀도 많이 읽으시면서 마음을 넓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창고의 문을 열고 어려운 사람들 특별히 교회 내에 있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교회의 그런 사역들을 도우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요일 3:17
제목 :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사람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형제사랑을 주제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10절 말씀 이하에 계속해서 형제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10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14절)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15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서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6절)
이런 말씀들로 미루어 보아서 형제를 사랑하긴 해야 하겠는데 사랑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별히 지난주에 배운 16절의 말씀처럼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 사랑이란 그런 위대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포기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꼭 목숨을 버리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범위는 목숨을 버리는 것까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재물을 가지고도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주에 배우게 될 18절의 말씀에는 무엇이든지 행함으로 진실함으로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반의어의문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라고 했습니다.
재물이 있는 사람이 형제가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도 마음을 닫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 그대로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대로 말씀을 드리면 부정적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나 하고 나 자신에게 적용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긍정문으로 바꾸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형제를 사랑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1.이 세상의 재물을 가진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에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예를 들고 있는 이 사람도 재물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나에게 뭔가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이 누구를 도와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 할 때 공부를 하는 목적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에게 뭔가는 있어야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재물이 있든지 지식이 있든지 재능이 있든지 뭔가가 있어야 그것을 나누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재물의 부정적인 면은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자연히 이 세상의 쾌락을 좋아하게 되고 유혹을 많이 받게 되고 타락하기가 쉽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죄를 범하기가 쉽다는 것도 잘 압니다.
돈이 없어야 고개도 숙일 줄 알고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도 아는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남에게 고개를 숙이고 남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힘이 드는 일일 것입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은 천국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이 세상에서 자기 스스로 마음대로 살기를 원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타락한 성품 때문에 재물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사용해서 그런 것이지 올바른 물질관만 가진 사람이라면 꼭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재물을 많이 가지고도 바르게 살고 그 재물을 유용하게 사용을 하고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재물관을 바르게 가지지 못하고 신앙의 훈련이 잘 되어 있지 못한 사람에게 재물은 그런 위험한 폭탄이 되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바르게 쓰면 그 재물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유익하게 사용되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8:18)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5:19).
이렇게 재물은 다 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얻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도 그렇게 구차하게 가난하게 힘들게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그 사랑을 활용하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어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전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다닌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평생 부자로 한번 살아 보지 못했습니다.
늘 남에게 도움이나 받고 빚이나 지고 구차한 삶을 살았습니다.
왜 일찍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었던 내가 이렇게 살아야 했는가를 이제야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았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이 엄청난 축복을 보지 못하고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좋지 않은 현실만 바라보면서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스스로를 의지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삶에서 역사를 일으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기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주여 주시옵소서만 하고 게으르고 나태하게 삽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도깨비 방망이를 든 사람처럼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4:28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도적질같은 것으로 돈을 모으려고 하지말고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방법으로 돈을 벌라는 것입니다.
돈은 때로는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기도 하는 아주 위험한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재물을 잘 다룰 줄만 알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재물이라고 할 때 엄청나게 많은 돈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재물이라는 말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조금 넉넉하게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나는 갑부가 아니라서 재벌이 아니라서 남을 도와줄 수 없다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조금 넉넉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은 넉넉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여러분 자신만 살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나누어 줄 것이 있는 그런 삶을 살도록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랑을 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넉넉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도와 줄 재물이 풍성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형제의 궁핍함을 보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재물을 가진 사람이었고 또 형제의 궁핍함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은 형제의 궁핍함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본다는 말은 그냥 한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켜보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보고 이해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우리 육신의 눈도 각각 사람에 따라 시력이 다르듯이 우리의 마음의 눈도 사람에 따라 그 보는 폭이나 깊이가 다릅니다.
똑같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정말로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눈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감정이나 느낌도 없이 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히려 나쁘게 비판하는 눈으로 볼 수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앞 밖에 보지 못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그 현상 밖에 보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야가 좁아져서 고지식하게 삽니다.
육신의 눈이 나빠지는 것처럼 마음의 눈도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이나 처지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회사를 가면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이나 대우가 다릅니다.
업무의 분야도 다릅니다.
고졸자는 자기가 혼자 하는 일만 시킨다면 대졸자는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는 자리에 있게 합니다.
사실 대학이라는 곳에 가면 그렇게 깊이있는 전문 지식을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전공하는 전공과목은 2-3학기 정도면 다 배웁니다.
나머지 5-6 학기는 대부분 교양과목들입니다.
이것저것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두루두루 배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대학 졸업자를 우대하는 것은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배움으로 그 시야가 넓어지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다룸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형편을 폭넓게 보고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지도자의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은 꼭 대학에서의 공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통하여 우리의 시야를 넓힐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 농담으로 대학 어디 나왔느냐고 물으면 한강대학 풍덩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대학 참으로 좋은 대학입니다.
졸업만 하지 않고 중간에 자퇴만 할 줄 알면 좋은 대학입니다.
인생을 얼마나 기구한 운명을 살았으면 그 높은 한강다리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려고 했겠습니까
그 정도의 인생경험이면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폭넓게 사람들을 이해하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모든 사람의 모든 형편들을 다 경험을 했다면 모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사랑의 눈으로 동정의 눈으로 보고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서 엄마를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엄마없는 아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린 몸으로 부모님을 잃고 혼자 누어 밤을 보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서러움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아이를 두고 떠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을 먼저 보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당하는 서러움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가족에게 배반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배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업이 부도가 나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몸이 불구가 되어서 장애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이 당하는 고통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으로 여러 가지의 종류들의 아픔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사랑의 눈으로 동정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도 넓어져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여러 가지 경우들을 보면서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좁은 마음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 옹고집을 부리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나만 보고 나의 형편만 생각하고 내 기분만 위해서 사는 옹졸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폭넓게 이해하고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도와줄 마음이 막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를 들어 등장하는 이 사람도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가지는 가졌다고 했습니다.
형제를 도와줄 재물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제의 궁핍함을 자세히 보고 동정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가지가 잘 못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도와주어야 되겠다는 마음을 막아 버리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이 있음에도 형제를 도와주지 못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보고 안됐다고 동정을 하면서도 그를 도와주지는 못합니다.
그 마음에 도와주는 것을 막아 버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가지고도 남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무정한 세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도 할 것입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자기 이익을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데 나만 남을 위해서 산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또 욕심이 있는 사람은 그 욕심 때문에 남의 어려운 형편을 보고도 도와주지 못할 것입니다.
더 잘 살고 싶고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은 그 끝이 없습니다.
일억 있으면 십억 있는 사람이 부럽고 10억 있으면 100억 있는 사람이 부럽고 그 욕심에는 상한선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단 욕심이 많은 사람은 절대 남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세상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가진 사람도 남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쩐지 돈이 필요하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돈이란 있을 때 쓰는 것이 제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써보지도 못하고 벌기만 하고 모으기만 하는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면서도 쓰지 않고 자꾸 모으는 것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애착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천년 만년 살기 위해서 죽는 줄도 모르고 끌어안고만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그 마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원한 천국을 믿을 것이요 천국에서의 상급도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기 때문에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고 거기서 상급도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면 도와줄 마음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그런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른 기도를 하는 기도의 사람은 한결같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됩니다.
제가 어려움을 당해서 대전에서 살 때 저를 도와주신 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기도를 많이 하시는 신앙이 참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이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어려웠을 때 이 권사님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면 그 사실을 하나님께서 모르시기에 우리가 그 사실을 하나님께 알려 드리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들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그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은 기도를 잘못하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께 내 마음을 맡기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형제의 어려움을 보고 도와주는데 막하지 않습니다.
창고의 문을 닫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우리 마음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형제의 어려운 형편을 보고 마음을 닫고 그냥 있지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듯이 형제자매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손을 내민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많이 모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재물을 모으시기 바랍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는 눈으로 보기 위해서 시야를 넓히시기 바랍니다.
공부도 하시고 책도 읽으시고 성경말씀도 많이 읽으시면서 마음을 넓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창고의 문을 열고 어려운 사람들 특별히 교회 내에 있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교회의 그런 사역들을 도우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