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35)

  2020. 9. 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35)

  본문 : 딤전 5:5-8

  제목 :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5.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나 해방 후 대한민국을 건국할 때 이승만 대통령이 나라가 어려울수록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뭉쳐야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외친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형편이 이순신 장군 때나 이승만 대통령 때처럼 여러 가지로 어려운 때라고 생각이 듭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취직도 잘 안 되고 국론이 분열되어서 권력을 잡은 자 편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할지 몰라도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마음이 되고 서로 뭉쳐야 살길이 생기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그와 반대되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함께 모이고 마음을 합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인데 서로 흩어져야만 살길이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 19를 통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마음껏 예배를 드릴 수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모르고 소홀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십자가의 복음을 더 잘 설교하여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고 은혜를 깨닫게 하고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성도들이 입을 크게 벌려서 마음껏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송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게 만듭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서로 나누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데 그냥 세상 이야기나 하고 하나님께 원망 불평이나 했던 것을 후회하게 만듭니다.

 

 

  특별히 가족은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교회입니다. 가족끼리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가족끼리 모여서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불신자처럼 하나님을 무시하고 원망하는 대화를 나눌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그런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고 밖에 나가서는 이 세상의 향락을 좋아하면서 살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최선을 다하여 완수하고 나이 들어서 외로울 때가 되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항상 기도와 간구로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본문 5절에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참 과부에 관한 이야기가 3절에서 16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참 과부를 일반 과부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과부는 혼자 사는 여자를 말하지만 참 과부는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키우고 그러다가 혼자 되어서 60세가 넘은 사람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잘 키운 사람이라고 하면 참 과부가 되지 않습니다. 자녀를 낳아서 잘 키웠는데 혼자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처럼 소가족 시대는 자녀가 있어도 혼자 살기를 원하는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에 자녀가 있어도 혼자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참 과부란 그런 형편 때문에 혼자 사는 여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돌보아 줄 자녀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로 살아도 자녀가 살아 있는 사람은 참 과부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혼자 된 사람을 참 과부라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참 과부가 없기 때문에 특별히 이런 설교를 들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 과부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어떻게 살았든지 나이가 많이 들면 외로운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모두 참 과부처럼 외로운 사람이 되어 가고 있든지 이미 참 과부처럼 외롭게 살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은 나이 들어서 외로운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살다가 보면 혼자 되고 외로워지게 됩니다. 사람은 한결같지 못하고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낙심하며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의 410절에서도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라고 했고 성경에서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자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42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낙심하고 불안해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을 너무 의지하고 살다가 보면 낙심될 때가 많습니다. 이웃이나 친구나 또 평소 존경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을 의지하고 살면 낙심하게 됩니다.

 

 

  사람의 관계는 그때그때 서로 교제하고 작은 것은 서로 나누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다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큰일이 나면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헌신적인 삶을 삽니다. 그렇다고 그 자녀들이 부모님이 자신에 대해준 것처럼 헌신적인 효도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녀도 또 자녀를 낳고 자녀를 위해서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성도와의 관계에 있어서 좋은 관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함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 된 자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너무 의지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늙어지고 그런 사랑을 베풀만한 힘이 없어지면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언제나 약속하신 대로 거기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시고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만 영원하십니다. 끝이 없으시고 언제나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언제나 해야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나이가 들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은 더더욱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삶은 무책임하게 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달라고 조르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입니다.

 

 

  젊은 시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은 지금 닥치고 있는 어려움이나 외로움을 놓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오기 싫어하는 사람 예배드리기 싫어하는 사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을만한 일을 한 사람은 더 하나님께 나오기를 기뻐하고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움을 당할수록 세상이 외롭고 힘들수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젊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본문 6절에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과 향락을 좋아하는 사람과 대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최선을 다하여 책임을 완수하고 신앙인으로서 바른 삶을 산 사람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향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은 사람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향락을 좋아하는 자란 쾌락에 빠진 사람, 사치스럽게 사는 사람, 방탕스럽게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적인 일은 제쳐두고 육신의 쾌락을 따라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전부이고 이 짧은 세상에서 어떻게 하든지 즐기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영생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치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이 세상의 향락에 빠져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 딴 세상 사람처럼 늘 힘들고 어렵게 고난의 삶을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도 다니고 외식도 하고 또 건전한 취미생활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지나치거나 하나님 보다 하나님의 교회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 삶의 원칙에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세상 향락을 더 좋아하고 사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육신은 살아 있지만 영혼은 죽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구원받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죽은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말은 우리의 삶이 죽은 삶이 있는가 하면 살아 있는 삶이 있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이일 저일 열심히 하고 살지만 어떤 일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헛된 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일은 정말로 유익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6:27)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 라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29) 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것은 누구나가 다 하는 일이고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일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일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일 믿음을 위하여 사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영혼도 산 사람이며 세상의 쾌락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그 영혼이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을 위해서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요 살아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여서 죄 사함을 받게 하고 구원을 받게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도 거듭난 사람의 삶을 살게 함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곳입니다. 세상 향락을 위하여 살던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한 일을 하면서 살게 만드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늘 구원의 복음을 듣고 살아서 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만 하면 되는구나 하고 구원을 쉽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삽니다. 어떤 사람이 낙동강 하류에 살고 있었는데 그해에 홍수가 크게 나서 상류에 있는 집들이 떠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떠내려오는 지붕에 한 청년이 있어서 힘들게 배를 타고 가서 구해주었습니다. 그때 사슴 한 마리와 뱀 한 마리가 배를 타는 바람에 그들도 구해주었다고 합니다.

 

  그 청년이 마침 갈 곳도 없고 해서 양아들을 삼고 잘 살았습니다. 그때 같이 구원해주었던 사슴과 뱀이 찾아와서 산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서 부자가 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양아들 삼았던 그 청년은 재산이 탐이 나서 자신을 구해준 양아버지를 모함하고 죽이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낙동강 하구에 돌 비석을 하나 세웠는데 그 비석에다가 사람은 구하지 않는다라고 써서 세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 검은 짐승은 우리 인간을 말합니다.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제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옥으로 달려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따듯한 말로 위로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주어서 멋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의 교만이요 착각이라는 것을 이제야 느낍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만 하면 되는 이 구원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거듭난 사람이 되어서 바른 삶을 살게 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이유를 잘 몰랐는데 이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나를 구원해주셨다고 해도 그 은혜에 감격하지 못하고 쉽게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그냥 말씀으로만 구원해주셨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감격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따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은혜를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그 은혜에 감격하시고 거듭난 사람으로서 성도다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죽은 자처럼 살지 말고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답게 보람된 일 많이 하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받을 것이 없게 하라

 

 

  본문 7~8절에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명하여라고 했는데 이 명령을 받을 사람은 참 과부를 말하고 나아가서 나이가 들어가고 외롭게 된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부모 된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앞 절에서는 자녀 된 자들이 부모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셨다면 본문은 부모 된 자들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친족 특히 가족들을 잘 돌보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하기 전에 부모님들이 효도 받을 만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요즘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너무나 잘합니다. 자녀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 우상이 될 정도로 자녀들을 사랑하고 자녀들이 잘되기 위해서 헌신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고 믿음으로 사는 훈련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간혹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자녀를 잘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가정의 파탄으로 인해서 자녀들이 고통받는 가정이 있습니다. 저는 설교하러 다니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아이를 낳으면 죽지도 말라고 부탁합니다.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만큼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어린 자녀에게 꼭 필요한 것은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자녀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향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이라는 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녀들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이요 불신자 보다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