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33)
본문 : 딤전 4:14-16
제목 :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4.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15.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확실하게 확인을 해야 하는데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냥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설마 하던 일이 사실로 나타나서 낭패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설마 하다가 이런 지경이 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교회가 초대교회에 비하면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는 다른 것을 전하는 교회들이 많아졌습니다.
성도들의 삶도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쁜 짓을 해서 손가락질받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도 참 무성의하게 드립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오히려 기분 나쁘게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교회는 잘 돌아가고 성도들은 잘사니까 설마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하면서 세월만 보내다가 이렇게 교회에 모여서 예배도 드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드리는 것도 금지를 당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초대교회 때는 복음을 바르게 전하다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오늘날의 교회는 복음을 버리고 세상을 따라가다가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잘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운동을 벌여야 하는데 남의 탓만 하고 정부 탓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스스로가 잘못한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는 속담에다가 사람을 잡는 몇 가지를 더 붙였습니다. “차차가 사람을 잡는다”, “나중에가 사람을 잡는다”, “괜찮겠지가 사람을 잡는다” 이런 말들입니다.
차차 하지, 천천히 하지, 나중에 하지, 그런 것 안 한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괜찮을 거야, 이런 말들이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고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런 것이 나중에 큰 어려움을 겪게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좀 부지런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 성경 읽는 일 예배 드리는 일 이런 일들에 적극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것 안 한다고 별일 있겠어, 차차 나중에 한가할 때 하지 하고 미루다가 보면 신앙도 점점 시들어지고 신앙생활도 점점 소홀해집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입니다. 이런 어려운 시국에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에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숙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전심전력을 다 하라고 했습니다. 대강 적당히 신앙생활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여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확인하고 진리를 따라 살기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나 자신도 구원에 이르게 하고 또 다른 사람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본문 14절에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네 속에 있는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장로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그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은사란 영적인 재능을 말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이나 능력을 말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고 어떤 사람은 손재주가 좋고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잘 사귀는 재능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고 아이의 앞날을 그 재능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도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에게도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재능을 하나씩 주셨습니다. 그 신앙을 위한 영적인 재능을 은사라고 합니다. 그 은사를 사용해서 자신이 신앙생활 하는데 또 주의 몸 된 교회 일을 하는 데 사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영적인 재능을 은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거저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은사라고 합니다. 또 이 은사를 사용하여 은혜의 복음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하되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라고 은사라는 말로 씁니다.
초대교회 때는 이 은사가 여러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기도로 병을 치료하는 신유의 은사, 여러 나라말로 이야기하는 방언의 은사, 내일 일을 알게 하는 예언의 은사 등 여러 가지 능력을 가진 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특별한 은사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은사를 바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셨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은사만 자랑합니다.
거저 받은 것이니까 거저 주라고 했는데 그것으로 돈벌이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이 잘난 척하기 때문에 그런 은사들을 거두어가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은사는 그런 기적적인 일을 나타내는데 쓰는 은사가 아니라 복음을 알고 전하고 가르치는 은사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하게 은사를 주심으로 복음을 알고 믿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은사가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은사는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은사라는 것입니다.
장로회는 당시 교회의 최고 기관으로 보입니다. 목회자를 안수할 때 장로회의 결의로 장로들이 모여서 안수식을 거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도 목사 장로들이 모인 노회에서 자격을 심사하고 안수식을 합니다.
안수를 받을 때에 특별한 성령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도 다 성령님이 오셔서 복음을 깨닫게 되고 믿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목회자들이나 장로나 집사가 직분을 받기 위해서 안수식을 할 때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들을 주십니다.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목회자들은 특별한 은사를 받는데 그것은 ‘예언’을 통해서 받은 은사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이었고 그 예언의 핵심은 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예언은 예수님의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설교의 핵심이었고 예언의 핵심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안수받을 때 예언 즉 설교를 통하여 받은 은사의 핵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 아는 것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신 은혜 즉 은사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가르칠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입니다. 그 복음을 바르게 설교할 수 있는 것이 목회자가 받은 가장 중요한 은사입니다.
그 은사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은사를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특별히 목회자들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이 은사를 가볍게 여기는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주신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한 말씀처럼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처럼 복음을 말하기를 주저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을 통해 주신 이 특별한 은사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복음을 믿는 이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면 사는 교회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라.
본문 15절에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언을 통하여 받은 은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이 귀한 믿음을 지키는 일 이 믿음을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은혜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목회자들은 이 은사를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특별한 은혜의 선물인 복음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 특별한 일에 전심전력하여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렇게 귀한 특별한 은사를 주셨는데 이 특별한 은사를 제쳐두고 다른 일에 열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생명력이 있는 것들은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무엇이 잘못되어 있든지 죽어 있는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연약한 상태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잎도 푸르고 줄기도 자라고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 것처럼 신앙의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처음이나 세월이 지난 후에나 늘 그냥 교회만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성장이 없는 사람은 그 믿음이라도 유지가 되면 좋겠지만 작은 어려움이 있으면 쉽게 신앙을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의 열매가 없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예 복음의 씨가 심겨지지 않았거나 죽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혹 간에 사람도 장애인이 있는 것처럼 신앙도 불구의 신앙을 가지고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고는 봅니다.
제가 구월동에서 27년 동안 목회하면서 많은 청소년을 전도하고 신앙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강하게 훈련하거나 성장시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이성 친구 한번 만나고 술 한잔 마시고 나면 언제 교회 다녔느냐는 듯이 너무나 쉽게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귀한 믿음을 주면서 그냥 사정해서 먹을 것도 사 주고 혜택도 받게 해주고 교회만 다니게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하고 훈련을 하고 신앙을 체험하게 하고 강하게 하여서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심전력하라고 부탁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믿음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삶에 체험이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이론적으로만 아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기도해서 응답도 받아보고 하나님께 충성도 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체험해보아야 합니다.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을 위해서 전심전력해서 성숙한 믿음이 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숙함을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성숙한 신앙을 볼 수 있도록 삶의 현장에서 신앙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이란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좋은 일 하고 사는 그런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당연히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서 좋은 일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신앙이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도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잘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사람이 좋은 일은 더 많이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어 보여주어야 할 성숙은 천국을 향해서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성공이나 부귀영화에 연연하지 않고 이 세상은 나그네처럼 살더라도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모습을 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이 있고 영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본문 16절에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네 자신을 살피라고 했습니다. 먼저 자신이 복음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졌는지 점검해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남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 살면서 늘 점검해보아야 할 일이 이 일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지 내 믿음이 과연 바른 믿음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초보자는 아닌지, 뿌리가 없어서 죽어가는 믿음은 아닌지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잘 듣지 않아서 시들어가고 있는 믿음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정말로 이런 귀한 믿음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내가 정말로 천국을 향하여 동행하고 있는 성도들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보다 정말로 천국을 더 사모하고 사는지 이 세상에서 더 잘살아 보려고 몸부림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말로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네 가르침을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네가 교회에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정말로 바른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 제가 하는 설교가 세계 제일의 설교라고 자랑을 합니다. 제가 설교하면서 이런 자신감 없이 그냥 잘 모르겠지만 맞는 것 같아 이러면 제 말을 듣고 따르겠습니까? 그래서 본의 아니게 교만하게 제가 제일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주변의 목사님들을 살펴보니까 다 저처럼 합니다. 다들 자신이 하는 설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설교를 잘한다는 자부심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저처럼 복음을 믿는 믿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음 보다 행함이 최고라고 설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세상에서 잘살고 성공하는 것이 최고라고 설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서 무엇을 최고라고 배웠는가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고 그것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여러 서신서나 사도행전 강해 설교를 통하여 바르게 잘 배웠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표적인 신앙고백인 사도신경 강해 설교도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른 가르침이요 최고의 설교입니다.
이 일을 계속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실 참 어렵습니다. 은혜의 선물을 나누어주는 것인데 그것이 왜 어려울까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좋아하고 우선 이 세상의 행복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천국 복음보다는 이 세상의 복음을 더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이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계속해야 합니다. 너무나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가 아니라 행함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행함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바르게 살아야 구원받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이것을 행함으로”에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이것”은 선을 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가 받은 은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을 삶 속에서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이 아닌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살아가는 믿음의 성숙함을 삶 속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복음을 믿고 믿음을 따라 성숙한 삶을 사는 것이 나 자신도 구원을 받게 하는 너무나 귀한 것이며 이 복음을 듣는 사람도 구원하는 매우 귀한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순교를 당하면서까지라도 계속해야 할 소중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언을 통하여 받은 은사 즉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설교를 통하여 알게 된 은혜의 복음은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이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우리 삶 속에 실천하여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살펴보고 점검해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믿음이고 그 믿음을 바로 전하고 가르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복음이 나를 구원하고 나에게 이 복음을 듣는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