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9.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31)
본문: 딤전 4:9-11
제목: 미쁘다 이 말이여
“9.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코로나 19 때문에 모두가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활동도 할 수 없고 돈도 벌기 힘들고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여행을 다닐 수도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인들은 교회에서 모임을 갖는 것도 제한을 받고 이렇게 찬양도 할 수 없도록 입을 막아놓고 성도와 교제하는 시간도 제한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힘들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교회가 만만하게 보이는지 다른 데는 별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교회만 나쁜 집단처럼 공격하고 괴롭힙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습니다. 직장이나 사업이 점점 어려워지고 그러다가 망할지도 모르겠고 알량한 신앙도 언제 멈출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고통이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비책이 필요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명약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가 한 말은 별로 신뢰하지 못하니까 먼저 이 말을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한스 셀리(hans seyle)라는 내분비 학자입니다. 이 사람은 정신의학계에서 스트레스에 관한 대가로 알려진 사람이며 스트레스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분이 강연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비결을 딱 한 마디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한스 셀리 박사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어플리시에이션(Appreciation)!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감사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귀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어프리시에이션은 감사라는 말로도 번역이 되는 말이지만 그보다 더 강한 말로 감탄 감동으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감사할 때 감탄하고 감동할 때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평균수명이 높은 이유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감사가 더 큰 감동이 되고 감탄이 될 때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가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해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향하여 간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이 세상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천국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더 큰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이 세상의 삶이 괴로울수록 우리는 더 큰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제한을 받고 찬양을 할 수 없고 성도의 교제를 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었던 그날들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나를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그런 날이 오면 더 열심히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교제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코로나 19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가짜가 아니고 진짜임을 확인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더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이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감사드리게 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런 감사나 감격이 없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설교를 듣고 진리를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하면 신앙생활도 쉽게 할 수 있고 이 세상의 삶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가 없습니다. 참으로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생하는 아내일 수도 있고 남편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고 이렇게 한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우리 서로에게 감사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설교를 잘 들으시고 진리를 깨달으시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 받으시고 감격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귀를 닫고 딴생각하고 집중하지 않으니까 감동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에 다녀도 아직 원망하고 불평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미쁘다 이 말이여”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참말이요, 틀림없는 말이며, 확실하고 믿을만한 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확실하고 믿을만한 귀한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깨달으시고 감격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미쁘다 이 말이여”라고 했습니다.
본문 9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미쁘다’라는 말은 참말이요, 틀림없는 말이고, 확실하고, 믿을만한 말이라는 뜻입니다.
이 “미쁘다”라는 말은 주로 하나님께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만 믿을 수 있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말씀만 믿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해주신 말씀 중에 우리가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할 말씀이 있다고 했습니다.
‘미쁘다’라는 단어는 디모데전후서에만 4번 나오는 단어입니다. 모든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 믿을 수 있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특별하고 중요하고 꼭 믿고 따라야 할 중요한 말씀에다가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는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는 사실이 확실하고 믿을만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1절에는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로 인해서 죽으신 것을 알고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처럼 우리도 다시 살게 될 것이 믿을 수 있는 확실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믿을 수 있는 확실한 말씀이 무엇인지 직접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친 복음의 진리에 관한 말씀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특별히 지난 시간에 우리가 배운 바로 앞 절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서 양육을 받고 양육해야 하는 믿음의 말씀과 좋은 교훈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씀” 즉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서 구원에 이르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된다는 말씀은 믿을만한 확실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고 이를 믿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씀은 확실한 진리의 말씀이며 또한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원에 관한 진리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다 그대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차별이 없이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제일 큰 문제는 불공평한 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살아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너무나 잘 살아서 걱정이고 어떤 사람은 먹을 것 가지고도 걱정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자신은 일할 때 공정한 사회 공평한 사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공평하게 하지 못합니다. 공평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공평하게 하겠다고 대학에서 학생을 모집할 때 시험을 치릅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은 이런 지식으로 시험을 치는 것은 불공정한 일입니다.
공평하게 하겠다고 아파트를 지어놓고 돈 있는 사람에게 분양을 합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공평하지만 돈 없는 사람은 불공평합니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먼저 아파트를 줘야지 돈 있다고 아파트를 줍니까?
세상의 모든 일이 돈 있는 사람 실력이 있는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을 우대합니다.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차별대우를 받고 불공평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구원은 그런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실력이 있든지 없든지 돈이 많든지 없든지 권력이 있든지 없든지 그런 것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구원을 받게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받을 수 있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비하면 초라하기도 하고 뭔가 내놓을만한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들이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귀한 진리의 복음을 우리가 받았고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을 가지고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뻐하지 못하고 감격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보면 이 세상에서 이렇게 소중한 것을 받아서 가지고 살면서도 감격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고 아쉬울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본문 10절에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을 위시한 모든 복음의 사역자들이 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힘썼습니다. 그들의 수고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고와 고통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는 그들의 수고와 고통을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고전 4:11-13)라고 했습니다.
이런 복음 전도자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인해서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비교적 쉽게 예수님을 믿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사람들을 위해서 작은 희생과 헌신도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힘쓰는 이유는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희망이나 꿈이나 비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고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목표를 세우고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성공 확률도 높고 보람있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는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일 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꿈들이 많이 있습니다. 원래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이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망을 ‘온전한 확신’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허황된 꿈도 아니고 잘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 사항도 아닙니다. 반드시 확실히 꼭 이루어지는 소망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 자신에게 두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죽어 있는 우상에게 두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살아계신, 전에도 살아계시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이루고 착한 일을 하고 열심히 노력을 한 결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참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악한 존재인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냥 작은 일에는 서로 이해하고 서로 돕고 나누기도 하지만 큰 이익 앞에서는 수시로 바뀌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쉽게 배반하고 쉽게 미워하고 오늘은 좋다고 하다가도 내일은 원수가 되는 그런 것이 인간입니다.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옛날에는 어리석게 우상을 섬겼습니다. 생명도 없는 죽어 있는 것을 신으로 섬기고 짐승들을 신으로 섬기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무당들이 귀신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우리를 속이려고 하지만 그들 또한 자기 이익이나 챙기려고 하는 악한 세력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전지전능하시고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놓으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이 구원의 길을 가고 있음에 대해서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십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일을 다 해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해주시고 햇빛과 구름과 비와 자연의 모든 혜택을 고루 받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혜택을 받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그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일들에 대해서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자연 만물을 다 거저 받아서 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참 나쁜 사람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믿는 사람들의 구주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구주로 오시기는 했지만 구원을 받는 유일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그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조건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들은 다 누리면서 살 수 있지만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표면적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복음은 아주 특별한 사람만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에 선택을 받은 사람 성령님께서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사람만 특별히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 은혜에 감격할 줄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확실히 믿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대해 감격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은 모든 사람이 기쁨으로 받을 수 있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지는 못합니다.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