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8.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일32)
본문 : 요일 3:7-8
제목 :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가끔 조직폭력이나 마약밀매나 반사회적 범죄자들이 극성을 부리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일이 있습니다.
범법자들이 기승을 부리면 선량한 시민들이 살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범죄자들을 잡아서 처벌함으로 사회의 질서를 지켜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이 범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 같습니다.
범죄자가 없는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고 범죄자가 활보하는 세상은 불안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사는 천국은 이런 범죄자가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죄가 없는 세상,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만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천국의 모습일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결국은 죄를 짓고 사느냐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으니까 그 죄를 어떻게 용서를 받느냐 하는 것과 죄 사함을 받은 성도가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사느냐가 신앙생활의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에 들어와서 계속해서 이 죄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3절)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4절)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5절)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6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다고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고 바르게 살게 놔두지를 않습니다.
사탄이 유혹을 하고 세상의 여러 환경들이 우리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도록 되어가고 있습니다.
적당히 죄를 짓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용납을 하기도 하고 대강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사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2:26절에도 미혹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본문의 미혹도 그와 같은 말입니다.
미혹(迷惑)이라는 말은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 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이라고 해석을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에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일이 있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미혹을 받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이 요한 일서를 기록하면서 많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당시에 교회에 많은 무리를 일으킨 영지주의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영적인 무지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나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그런 영적으로 신비한 지식을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의 영지주의자들 중에는 죄가 영지를 깨달은 자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으므로 범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지식을 깨달은 그 자체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라는 말씀은 이런 생각을 가진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지식을 깨달았다고 죄를 지어도 된다는 이런 어리석은 말에 미혹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광성교회 성도님들도 영지주의자처럼 될 소지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로마서와 에베소서를 공부하면서 "이신칭의"의 진리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칫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죄를 짓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주장에 헷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에 헷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과거에 지은 죄나 현재 짓고 있는 죄나 미래에 지을 모든 죄를 이미 용서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에 헷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사는데 어떻게 법을 다 지키면서 살아 대강 적당히 죄를 지으면서 살아도 괜찮아 라는 말에 혼동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대강 적당히 하는 것이지 맹신자들처럼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 필요가 없는 것이야 라고 하는 말에 헷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미혹을 받지 않아야 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그런 잘못된 주장에 미혹을 받지 않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의를 행하는 자는 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 말씀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에 미혹을 받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의를 행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의를 행함으로 의로운 자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스스로 어떤 일을 해도 의로워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라고 인정을 받는다고 누누이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의를 행한다는 말은 죄를 짓는다는 말과 반대의 말로 생각을 하면 됩니다.
죄를 짓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함으로 의로운 사람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도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현저하게 나쁜 죄를 짓고 있다면 아직 거듭난 사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고의적으로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죄를 짓지 않고 올바르게 살려고 애를 쓴다면 우리가 이미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산다면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로운 사람으로서의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방법이 우리의 삶의 능력이 우리의 삶의 결과가 예수님과 같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셨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고 자신을 희생하여 모든 사람의 죄 사함을 받게 하심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지 않고 의로운 삶을 살면 우리의 삶의 모습도 예수님의 삶의 모습처럼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게 되면 예수님처럼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계셨지만 능력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들을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의로운 삶을 산다면 우리도 능력있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지 않고 나의 욕심을 따라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성도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무능력하게 힘들고 어렵게 사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산다면 예수님처럼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당하셨지만 그것이 실패의 삶을 사신 것이 아니라 승리의 삶을 사신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영광스런 부활과 승천 만 왕의 왕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의롭게 사는 것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록 실패자처럼 보이고 어리석은 자처럼,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예수님과 같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오 어리석은 자의 길로 가는 것도 아니오 예수님과 같은 참된 삶을 사는 것이며 능력있는 삶을 사는 것이며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삶을 사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 말씀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사람들의 말에 헷갈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라고 할지라도 전혀 죄를 짓지 않고 100%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의인은 없나니 한도 없다고 선언을 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죄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의 죄란 세상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삶은 의로운 삶이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산다고 해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흉악한 죄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한 사람은 그가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선하고 아무리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섬기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죄를 짓는 사람이요 사탄에게 속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이 세상의 사람들을 엄격하게 두 가지로 구분을 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거나 사탄의 자녀 이 두 가지로 아주 엄격하게 구별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구별은 이미 되어져 있는 구별이요 그 구별에 따라서 어떤 편에 속한 사람인가에 따라서 그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 편에서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오늘 본문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의를 행하느냐 그러면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자녀요
죄를 행하느냐 그러면 사탄에게 속한 사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죄 자체는 별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이나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이나 사람들이 사는 것은 비슷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산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에 비교해서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더 멋있게 살기도 하고 더 선한 일도 많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약간의 차이가 우리의 신분을 엄청나게 구별을 해 준다는 것입니다.
비록 도덕적으로 좀 약하고 양심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은 삶을 산다고 해도 선한일 좋은 일을 많이 하지 못하고 산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범죄자로 살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을 갖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살면서 선한 일 좋은 일 많이 하면서 떳떳하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즉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잘 살아도 사탄에게 속한 사탄의 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 본문에서 죄란 현저하게 흉악한 죄를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짓는 죄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라도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계속 반복해서 고의적으로 짓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아주 나쁜 죄를 계속 반복해서 고의로 짓고 있다면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를 다시 한번 점검을 해 보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화를 내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미워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사탄에게 속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요 우리가 의를 행하면 예수님처럼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예수님께서 사탄의 일을 멸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 말씀에 계속해서 말씀을 하시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에 헷갈리지 말아야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마귀의 일 즉 죄를 짓는 일을 멸하시러 오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고의적으로 반복해서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사람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유혹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게하고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칼을 높이 빼어 들고 그들을 심판하시려고 하시는데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하시는데 왜 그 사람들 곁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느냐는 것입니다.
옛말에 모진 사람 옆에 있으면 벼락을 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벼락을 맞을 그보다 더 끔찍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따라가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뭐 부러워할 것이 없어서 멸망당할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거기 기웃거리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아주 엄한 명령을 내려놓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멸절을 시키시려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이미 우리가 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서 사는 사람들을 얼마나 강하게 응징을 하시는지를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을 들어가는 장면을 알고 계십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남녀노소하고 무조건 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철저하게 멸절을 시키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쳐죽일 수가 있느냐고 비웃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기는커녕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입니다.
지금 모든 우상숭배자들이 지금 모든 불신자들이 그렇게 비참한 형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참아 주실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싫어하시는 그 죄를 왜 지으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기 위해서 벼르고 계시는 그 죄를 왜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경고를 받고도 무엇이 아까워서 죄짓는 자들과 가까이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당연히 의롭게 바르게 살려고 애를 써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왜 그렇게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느냐 적당히 죄를 지어도 괜찮지 않느냐고 유혹을 하거든 거기 헷갈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하시기 바랍니다.
의를 행하여야 예수님처럼 의로워지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사탄에게 속한 자이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일 즉 그 죄짓는 자들을 멸하러 오셨다
이렇게 확실하게 말씀을 하시기 바랍니다.
의롭게 바르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섬기면서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요일 3:7-8
제목 :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가끔 조직폭력이나 마약밀매나 반사회적 범죄자들이 극성을 부리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일이 있습니다.
범법자들이 기승을 부리면 선량한 시민들이 살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범죄자들을 잡아서 처벌함으로 사회의 질서를 지켜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이 범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 같습니다.
범죄자가 없는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이고 범죄자가 활보하는 세상은 불안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사는 천국은 이런 범죄자가 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죄가 없는 세상, 의로운 사람, 선한 사람만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천국의 모습일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결국은 죄를 짓고 사느냐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으니까 그 죄를 어떻게 용서를 받느냐 하는 것과 죄 사함을 받은 성도가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사느냐가 신앙생활의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에 들어와서 계속해서 이 죄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3절)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4절)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5절)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6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셨다고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의롭고 바르게 살게 놔두지를 않습니다.
사탄이 유혹을 하고 세상의 여러 환경들이 우리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도록 되어가고 있습니다.
적당히 죄를 짓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용납을 하기도 하고 대강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사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2:26절에도 미혹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본문의 미혹도 그와 같은 말입니다.
미혹(迷惑)이라는 말은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 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이라고 해석을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에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일이 있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미혹을 받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이 요한 일서를 기록하면서 많이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당시에 교회에 많은 무리를 일으킨 영지주의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영적인 무지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나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그런 영적으로 신비한 지식을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의 영지주의자들 중에는 죄가 영지를 깨달은 자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으므로 범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영적인 지식을 깨달은 그 자체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는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라는 말씀은 이런 생각을 가진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지식을 깨달았다고 죄를 지어도 된다는 이런 어리석은 말에 미혹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광성교회 성도님들도 영지주의자처럼 될 소지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로마서와 에베소서를 공부하면서 "이신칭의"의 진리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함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칫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죄를 짓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주장에 헷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에 헷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과거에 지은 죄나 현재 짓고 있는 죄나 미래에 지을 모든 죄를 이미 용서 받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에 헷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사는데 어떻게 법을 다 지키면서 살아 대강 적당히 죄를 지으면서 살아도 괜찮아 라는 말에 혼동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대강 적당히 하는 것이지 맹신자들처럼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 필요가 없는 것이야 라고 하는 말에 헷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미혹을 받지 않아야 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그런 잘못된 주장에 미혹을 받지 않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의를 행하는 자는 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 말씀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에 미혹을 받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의를 행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의를 행함으로 의로운 자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스스로 어떤 일을 해도 의로워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라고 인정을 받는다고 누누이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의를 행한다는 말은 죄를 짓는다는 말과 반대의 말로 생각을 하면 됩니다.
죄를 짓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함으로 의로운 사람으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도 계속해서 습관적으로 현저하게 나쁜 죄를 짓고 있다면 아직 거듭난 사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고의적으로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죄를 짓지 않고 올바르게 살려고 애를 쓴다면 우리가 이미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산다면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로운 사람으로서의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방법이 우리의 삶의 능력이 우리의 삶의 결과가 예수님과 같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사람들을 사랑하며 사셨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고 자신을 희생하여 모든 사람의 죄 사함을 받게 하심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지 않고 의로운 삶을 살면 우리의 삶의 모습도 예수님의 삶의 모습처럼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게 되면 예수님처럼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계셨지만 능력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들을 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의로운 삶을 산다면 우리도 능력있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지 않고 나의 욕심을 따라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기 때문에 성도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무능력하게 힘들고 어렵게 사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산다면 예수님처럼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당하셨지만 그것이 실패의 삶을 사신 것이 아니라 승리의 삶을 사신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영광스런 부활과 승천 만 왕의 왕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의롭게 사는 것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록 실패자처럼 보이고 어리석은 자처럼,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예수님과 같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오 어리석은 자의 길로 가는 것도 아니오 예수님과 같은 참된 삶을 사는 것이며 능력있는 삶을 사는 것이며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삶을 사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 말씀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사람들의 말에 헷갈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라고 할지라도 전혀 죄를 짓지 않고 100%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의인은 없나니 한도 없다고 선언을 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죄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의 죄란 세상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삶은 의로운 삶이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산다고 해도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흉악한 죄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한 사람은 그가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선하고 아무리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섬기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죄를 짓는 사람이요 사탄에게 속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이 세상의 사람들을 엄격하게 두 가지로 구분을 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거나 사탄의 자녀 이 두 가지로 아주 엄격하게 구별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구별은 이미 되어져 있는 구별이요 그 구별에 따라서 어떤 편에 속한 사람인가에 따라서 그의 삶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사람 편에서 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오늘 본문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의를 행하느냐 그러면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자녀요
죄를 행하느냐 그러면 사탄에게 속한 사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죄 자체는 별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이나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이나 사람들이 사는 것은 비슷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산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에 비교해서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더 멋있게 살기도 하고 더 선한 일도 많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약간의 차이가 우리의 신분을 엄청나게 구별을 해 준다는 것입니다.
비록 도덕적으로 좀 약하고 양심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은 삶을 산다고 해도 선한일 좋은 일을 많이 하지 못하고 산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범죄자로 살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을 갖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살면서 선한 일 좋은 일 많이 하면서 떳떳하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즉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잘 살아도 사탄에게 속한 사탄의 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또 본문에서 죄란 현저하게 흉악한 죄를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짓는 죄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라도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실수를 계속 반복해서 고의적으로 짓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아주 나쁜 죄를 계속 반복해서 고의로 짓고 있다면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를 다시 한번 점검을 해 보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화를 내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미워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사탄에게 속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요 우리가 의를 행하면 예수님처럼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예수님께서 사탄의 일을 멸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 말씀에 계속해서 말씀을 하시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에 헷갈리지 말아야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께서 마귀의 일 즉 죄를 짓는 일을 멸하시러 오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고의적으로 반복해서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사람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유혹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게하고 멸망의 길로 가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칼을 높이 빼어 들고 그들을 심판하시려고 하시는데 그들을 멸망시키려고 하시는데 왜 그 사람들 곁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느냐는 것입니다.
옛말에 모진 사람 옆에 있으면 벼락을 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벼락을 맞을 그보다 더 끔찍한 영원한 형벌을 받을 사람들 곁에서 그들을 따라가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뭐 부러워할 것이 없어서 멸망당할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거기 기웃거리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아주 엄한 명령을 내려놓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멸절을 시키시려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이미 우리가 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서 사는 사람들을 얼마나 강하게 응징을 하시는지를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을 들어가는 장면을 알고 계십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남녀노소하고 무조건 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철저하게 멸절을 시키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쳐죽일 수가 있느냐고 비웃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기는커녕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입니다.
지금 모든 우상숭배자들이 지금 모든 불신자들이 그렇게 비참한 형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참아 주실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싫어하시는 그 죄를 왜 지으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기 위해서 벼르고 계시는 그 죄를 왜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경고를 받고도 무엇이 아까워서 죄짓는 자들과 가까이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사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당연히 의롭게 바르게 살려고 애를 써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왜 그렇게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느냐 적당히 죄를 지어도 괜찮지 않느냐고 유혹을 하거든 거기 헷갈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하시기 바랍니다.
의를 행하여야 예수님처럼 의로워지는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사탄에게 속한 자이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일 즉 그 죄짓는 자들을 멸하러 오셨다
이렇게 확실하게 말씀을 하시기 바랍니다.
의롭게 바르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섬기면서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