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77)

  본문 : 행 28:11-16

  제목 :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1.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우리가 그동안 바울의 행적을 죽 살펴보았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도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평생을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소아시아지방과 서유럽 마게도냐 지방을 거쳐서 로마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바울은 후일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통들을 고린도후서 11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23....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라고 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엄청나게 맞고 심지어 돌멩이로 맞기도 하고 타고 가던 배가 세 번이나 파선이 되고 강도들 동족 중에서 나쁜 사람들 이방인들에게 위험을 당했습니다. 수고하고 애쓰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고난들은 다 당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한두 번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참고 넘어가겠지만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어려움을 당하면 몇 번 하다가 때려치웠을 것입니다.

  또 어려움을 당해도 좀 견딜만한 어려움을 당하면 조금 고생이 되어도 참고 넘어가겠지만 이렇게 죽도록 고생을 하다가 보면 도저히 참을 수도 없고 계속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고생의 세월이 몇 년쯤이라면 그래도 견뎠을 것입니다. 근 30여 년 동안을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생하고 또 고생하고 일평생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면 우리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거나 한 번이라도 원망하고 후회를 하거나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땅끝까지 가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어디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왔을까요?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고 용기도 주셨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와 함께한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전도 여행길에 많은 사람이 동행했으며 이번 마지막 로마로 가는 길에도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했습니다.

 

  누가는 의사로서 육체적으로 연약한 것으로 알려진 바울의 건강을 살폈을 것입니다. 또 여행 중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도 기록하여서 이렇게 우리가 보는 사도행전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제법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니는 도중에 필요한 비용들을 대어주는 재산가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울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 가는 도시마다 바울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바울을 환영해주고 바울을 따뜻하게 대접해주어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바울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곳곳에서 그리스도로 한 형제가 된 사람들이 있어서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본문 11절에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라고 했습니다.

 

  멜리데라는 섬에서 3개월을 보냈습니다. 때가 추운 겨울철이라 배들이 출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을 보내고 봄이 왔을 때 드디어 출항하는 배가 있어서 그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라는 배가 출항을 했는데 이 배에 바울 일행이 승선을 하고 로마로 출발했습니다. 바울과 함께 왔던 276명이 다 그 배를 탔는지 일부만 탔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다 그 배에 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탄 배가 알렉산드리아라고 해서 전에 타고 오다가 거의 파선이 된 그 알렉산드리아 배인 줄 알았는데 같은 이름의 다른 배였습니다. 전에 탔던 알렉산드리아라는 배는 지난번 풍랑에 거의 다 부서졌기 때문에 고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배에다가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당시 이집트의 유명한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출항하는 배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집트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출항해서 지중해의 여러 도시를 거쳐 로마까지 항해하는 배였습니다.

  이 항구도시를 알렉산드리아라고 이름한 것은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도 유명하고 그 왕이 세운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가 유명한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배들이 그 이름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배의 머리 장식에 디오스구로라”라고 했습니다. ‘디오스구로’는 제우스 신의 쌍둥이 아들(카스토르, 폴룩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쌍둥이 아들이 폭풍 가운데서도 배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믿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 사람들은 미신을 많이 믿었습니다. 특별히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들 가운데는 이런 미신을 많이 믿어서 귀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심지어 심청전에 나오는 것처럼 신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그곳 사람들도 이런 미신들을 많이 믿었습니다. 바닷길이 너무나 험하기 때문에 배를 타고 나간 사람들이 무사하게 귀환하기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는데 그중에 중요한 것이 그런 미신의 힘을 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박의 이름도 큰 힘을 가졌던 알렉산더 대왕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하고 쌍둥이 수호신인 디오스구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배가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배에다가 다 붙인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이런 미신을 섬기는 배에 탔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모든 배가 이런 배들이었고 바울이 배를 골라서 탈 힘이 없어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그런 배에 태우시고 로마까지 가게 하신 것은 그들에게 참 신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려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미신들로 자연의 재난을 이길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그런 재난도 이길 수 있는 분이심을 알게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수많은 재난이 있습니다. 그런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행운을 가져다주는 숫자나 물건 같은 것이나 심지어 부적을 사서 가지고 다니기도 합니다.

  이런 재난을 이길 힘은 그런 미신이나 행운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이런 세상의 고난 속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본문 12~14절에 “12.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라고 했습니다.

 

  로마로 가는 도중에 들렸던 도시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록된 도시들은 이탈리아에 속한 도시들이었습니다. 이미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에 도착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멜리데를 떠난 배는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수라구사는 이탈리야 남부 시실리섬의 항구도시입니다. 그 섬에 사도바울이 그곳에 들러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장소와 돌 제단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사흘 동안 머문 것은 당시의 기상 상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배로 싣고 오던 물건을 내리거나 다른 물건들을 싣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울은 그곳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냈습니다. 레기온은 이탈리아반도의 남쪽 맨 끝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이 도시에서는 남풍이 일기를 기다렸다가 하루 만에 남풍을 만나서 떠난 곳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보디올은 이탈리아반도의 중심부로 꽤 올라온 부분입니다. 바울이 가고자 했던 로마에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보디올에 이미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하기 이전에 이곳 사람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되었던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갔던 사람들이 당시 일어났던 기적을 보고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와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서로 형제라고 칭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불렀습니다.

  교회 안에 형제들은 육신의 형제들보다 더 친밀하게 지내야 하는 형제들입니다. 육신의 형제는 이 세상에서만 형제지만 영적인 형제는 영원토록 형제지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일주일 동안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만났는데 자신들이 있는 것으로 바울을 청했고 바울은 그들의 초청을 받고 가서 일주일 동안을 머물렀습니다.

 

  바울이 죄수의 몸이었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초청을 받아서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인솔하던 백부장이 바울을 신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이 도망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았을 것이고 오히려 바울 덕분에 그들이 모두 목숨을 건진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거기 머물면서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그동안 어려운 여행으로 인해서 지친 몸을 회복시키고 편히 쉬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나 마나 바울을 강사로 부흥회를 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기적을 보고 복음을 듣기는 했지만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마음이 많았을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복음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바울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듣기 싫다는 사람에게도 억지로라도 전해야 할 복음인데 듣겠다고 한다면 신나게 전했을 것입니다.

 

  제가 요즘 복음을 전할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설교나 강의할 기회가 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설교가 쉬운 것 같지만 참 어렵습니다. 설교 한편 작성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설교를 듣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든지 가서 설교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고 그들 중의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된다면 더없이 기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본문 15절~16절에 “15.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라고 했습니다.

 

  14절 마지막 부분에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라고 했습니다. 보디올에서 형제들과 일주일을 머문 후에 거기를 떠나서 로마로 왔습니다. 보디올에서 로마까지는 육로를 통해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에도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울 일행이 로마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나왔다고 했습니다.

 

  압비오 광장은 로마에서 65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광장이었습니다. 압비오 광장은 압비오 대로상에 있는 광장인데 압비오 대로는 로마로 통하는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도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도로는 로마의 장군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의 입성을 할 때 이용하는 도로라고 했습니다. 군사들이 승리의 입성을 할 때 군중들이 도로에 나와서 열렬히 환영했던 길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승리의 도로로 입성을 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나와서 환영을 하는 것은 복음의 승리를 예고하는 귀한 발걸음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을 초라한 죄수의 몸으로 입성을 하지만 후일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귀한 발걸음이었기 때문입니다.

 

  트레이스 타베르네는 세 개의 숙소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로마에서 50Km 떨어진 곳입니다. 압비오에서도 형제들이 마중 나와서 환영을 했고 좀 더 올라오니 트레이스 타베르네에도 형제들이 마중을 나와서 바울 일행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영을 받은 바울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위축될까 봐 미리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을 준비하시고 바울에게 힘과 용기를 얻게 해주셨습니다.

 

  요즘에 우리나라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서 여기저기서 수시로 기독교인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기독교인들은 정말로 몇 명 안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정말로 반가웠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당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마음대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이렇게 재판을 받으러 로마까지 죄수의 몸으로 끌려오고 있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면서 바울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바울에게 큰 용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능력이 있구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구나 하는 것이 바울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우리 교회 구성원들이 많아지게 하는 것은 복음을 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게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도들이 많아지는 것이 우리 서로에게 믿음의 담력을 주는 귀한 것입니다. 소수의 사람이 모여서 예수님을 믿으면 힘이 없어집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적어지면 복음의 능력을 의심하게 됩니다. 우리 서로에게 힘이 되고 믿음의 담력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많아지도록 열심히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 일행이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곳곳에서 바울 일행을 마중 나와 환영하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바울은 힘을 얻고 담대함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도 저에게 힘을 얻게 하고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귀한 분들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더욱 큰 힘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에 힘을 쓰셔서 교회가 부흥하는 일에 사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