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2. 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76)

  본문 : 행 28:1-10

  제목 :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1.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바울이 죄수의 몸이 되어서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로 가는 여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이사랴에서 아드라뭇데노라고 하는 작은 배를 타고 가서 루기아의 무라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서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대형선박인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갈아타고 로마로 가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백부장에게 겨울이 가까이 오니까 여기서 겨울을 지내고 출항하기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마침 순풍이 불어오니까 출항을 하였는데 바울이 염려했던 대로 유라굴라 광풍이 불어와서 14일 동안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면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한 섬에 도착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대로 276명의 사람이 다 살아서 육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정식 항구도 아닌 이상한 곳에 배를 간신히 대고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수영해서 올라가고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널조각이나 기구들을 타고 육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무슨 섬인지 모르고 올라와서 보니 그 섬에 멜리데라고 하는 섬이었습니다. 멜리데는 지금의 몰타라는 섬나라를 말합니다. 제주도의 6분의 1 정도 되는 아주 작은 섬이지만 주변의 작은 섬들과 함께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섬입니다.

 

  바울 일행이 그곳에서 3개월 정도 머무르면서 겨울을 지내고 봄에 로마로 출항을 했습니다. 그 3개월 동안 바울이 특별히 복음을 전했다는 기사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당연히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도착한 그 만을 사도바울의 만이라고 부르고 있고 그 항구를 사도바울의 항구라고 지금도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사도바울의 행적을 기념하는 기념교회들이 세워져 있고 그 나라의 국민 95%가 비록 천주교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 일행이 그 멜리데 섬에 도착하여 그 섬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과 그 섬에서 일어난 몇 가지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받을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본문 1~2절 말씀에 “1.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라고 했습니다.

 

  멜리데라고 하는 섬에 올라갔더니 거기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베풀고 그들을 영접하였다고 했습니다. 원주민들이 그들을 영접하고 특별한 동정을 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원주민들이 바울 일행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14일 동안이나 별로 먹지도 못하고 파도와 싸워서 그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또 비는 오고 날씨도 춥고 옷은 이미 다 젖었고 그냥 두면 다 쓰러져서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특별한 동정을 베풀었을 것입니다. 불을 피워서 옷을 말리게 하고 먹을 것을 가지고 와서 나누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생각할 것은 당시의 원주민들이 그렇게 사람들을 도와주고 할 그런 착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삼백여 명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흉악한 죄인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갑자기 강도로 변해서 난동을 부리고 덤벼들어서 자기들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진심으로 도와줄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 일행을 위하여 그들의 마음을 착한 마음으로 바꿔주셨을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에 임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착한 마음으로 바꾸어 주신 것은 더 큰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착한 마음으로 대하였고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별로 배운 것도 없는 원주민들이었지만 그들에게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탄 배가 광풍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도착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곳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들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이런 착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마음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함께 살아가도록 착하게 창조해주셨습니다.

  그런 우리가 타락하여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우리 마음을 장악하여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못되게 하고 서로 시기하고 싸우는 나쁜 마음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런 타락한 마음에도 성령님께서 오시면 다시 착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악한 영을 쫓아내고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만 믿으면 되니까 예수님을 믿고 나서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믿으면 모든 죄가 다 용서받게 되니까 예수님 믿기 이전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의 마음에 성령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실 때만 우리가 진심으로 바른 믿음을 고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믿음만 고백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주십니다. 새사람으로 바꿔주시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게 해주십니다.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물론 한꺼번에 완벽하게 깨끗한 마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계시면서 점점 더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고백할 때 이미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해주시지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점점 더 착한 마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여기 모인 저와 여러분은 정말로 다행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도록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도록 마음이 악해져 있고 죄악에 깊이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 마약, 사기, 도박, 오락이나 쾌락에 빠져서 바른 삶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미 사탄에게 충성스러운 종이 되어서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을 하는 것은 그들이 사탄의 종이 되어 죄악에 빠지기 전에 복음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강도같이 흉악한 죄인이 된다고 해도 성령님께서 그를 변화시켜서 예수님을 믿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주 특별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한번 악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사탄의 종으로 평생 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래도 비교적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산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착한 사람이 되게 해주셨고 세상의 죄악에 물들기 전에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조심할 것은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사탄이 다시 우리를 자기 종으로 삼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시초는 우리가 죄를 짓게 하고 죄에 물들어서 믿음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착하게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본문 3~6절 말씀에 “3.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멜리데 섬에서 일어난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한다면 사도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으나 아무 일 없이 살아난 일일 것입니다. 메리데 섬에 바울이 독사에 몰린 이 자리에 기념교회를 세워놓을 정도로 특별한 일입니다.

 

  비가 오고 추우니까 사람들이 나무를 가져다가 불을 피웠습니다. 바울도 나뭇단을 가져다가 불에다 넣었는데 그 나뭇단 속에 있던 독사가 뜨거워서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원주민들이 그것을 보고 바울이 독사의 독 때문에 죽을 줄 알았습니다. 독사의 독 때문에 온몸이 퉁퉁 붓든지 아니면 갑자기 쓰러져 죽든지 할 줄 알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독사를 털어서 불에 넣어 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가진 두 가지의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공의에 관한 사상입니다.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그 대가로 벌을 받게 된다는 사상입니다.

 

  바울이 뱀에 물렸을 때 그 원주민들이 생각하기를 바울이 살인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인죄를 지었기 때문에 신이 풍랑을 일으켜서 죽이려고 했지만 어쩌다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죽음을 피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공의가 살아 있어서 결국 독사에 물려 죽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우리 인생들 양심 속에는 이런 공의의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착하게 사는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짓을 하고 사는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잘 지켜지면 모든 사람이 다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과 그를 따르는 악한 사람들이 이런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잘살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원리에 따르면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잘 살에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악하게 사는 사람은 반드시 그 죄악에 대하여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 이런 하나님의 원리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원리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착하고 바르게 사는 삶을 통하여 의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완전하게 착한 사람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벌을 받는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보고 원주민들은 사도바울을 신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을 신이라고 하면서도 그 앞에 절을 하거나 예를 갖추지 않은 것을 보면 신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신이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을 정말로 신이라고 생각했다면 신을 두려워하고 섬기던 당시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신 앞에 벌벌 떨면서 신에게 예를 갖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만 신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신이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보아서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별히 바울과 함께하셨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지만 그 어려움을 이기고 피할 길을 하나님께 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늘 함께 해주십니다. 비록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어려움을 당하기는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지혜도 주시고 힘도 주시고 기회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특별히 하나님께서 자녀처럼 여겨주시는 특별한 우리 성도들은 그런 경험을 많이 하면서 삽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합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일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본문 7~10절에 “7.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라고 했습니다.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보블리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멜리데 섬이 그렇게 일찍 복음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기독교 국가로 남아 있는 것은 이 보블리오라는 지도자 한 사람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도자가 악한 생각을 가지고 바울 일행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 다른 방법을 통하여 바울 일행을 로마까지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블리오가 지도자로서 바울 일행에게 호의를 베풀고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대대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본인 자신도 친절한 마음으로 자기 땅에다가 임시숙소를 만들고 바울 일행을 영접했습니다. 그런 친절이 또 더 좋은 일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로 누워 있을 때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낫게 해주었습니다. 당시의 이질을 동반한 열병은 사람의 손으로 고칠 수 없는 중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고칠 수 있는 병이었습니다.

 

  그의 부친뿐만 아니라 섬에 사는 많은 사람도 그 소식을 듣고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보블리오의 친절 덕분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입은 보블리오와 섬사람들은 석 달 동안이나 후한 예로 그들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섬을 떠나서 로마로 향할 때 필요한 것들을 배에 실어 주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사는 삶의 원리도 이런 친절을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잘 되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잘되도록 도와주면서 사는 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베푸는 삶이 우리의 삶에도 기적을 불러오는 삶이 됩니다. 이렇게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동정의 삶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으면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례를 베풀고 또 성찬예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예식은 우리가 피로 세운 새 언약에 참여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산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더 착하고 보람된 삶을 살려고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