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2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64)

  본문 : 행 25:1-12

  제목 : 가이사 베스도 아그립바 그리고 바울.

 

 

  “1.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3.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4.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6.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를 여타종교들과 같이 역사의 한 구석에서 몇몇 사람들이 연구하여 만들어서 서서히 발전되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렇게 역사 한 구석에서 시작된 종교들과는 현저하게 다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여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만 있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만물을 다스리면서 이 땅에 살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엄청난 특권을 주셨고 마음껏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주임을 알게 하신 최소한의 규칙을 어김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그로인해서 영원한 생명도 잃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참된 행복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즉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서 다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살게 하는 이 복음의 도는 그 때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직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다시 구원하시기 위한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고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일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나갑니다. 세계 역사의 중심에서 우리 기독교는 시작되고 전개되어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세계역사의 중심은 성경의 역사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사역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교회를 통해서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는 오늘날 역사의 중심입니다.

 

  세계 역사 속에는 많은 강대국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강대국들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세운 나라들입니다. 강대국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태동이 되고 때로는 침략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도 받기도 하면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강대국들을 통해서 복음이 세계만방에 전파되는 역할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의 세계 강대국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고 복음이 전파되는데 많은 일들을 감당한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성경의 기록들과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나라들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후에 일어난 독일이나 영국이나 미국 등의 나라들은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임을 받은 특별한 나라들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아주 작은 나라이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서 세계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나라입니다.

 

  요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사도행전 부분은 로마가 세계를 통치할 때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부터 복음이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갈 때까지 로마라는 나라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크게 쓰임을 받은 나라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끝부분에 특별히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가이사, 베스도, 아그립바에 대해서 살펴볼 것인데 이 사람들 모두가 역시 로마와 관계된 사람들입니다.

 

 

가이사, 베스도, 아그립바

 

1) 로마의 황제 가이사

  주전 100여년 경에 로마를 강대국으로 만든 인물이 가이사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라고 하고 영어로는 줄리어스 시저라고 읽습니다. 가이사, 카이사르, 시저 다 같은 이름입니다.

  이 가이사의 후손들이 로마 황제가 됨으로서 그 가문의 성인 가이사가 황제라는 뜻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그 가문의 성이 아니라 황제를 호칭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이 가이사의 대를 이은 황제들이 여러 명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 '가이사 아구스도'(옥타비아누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전국에 모든 사람들을 다 자기 고향에 가서 호적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가 임신한 상태로 호적 하러 그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다가 거기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이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였고 선지자가 이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의 왕을 사용하셔서 예수님의 나심이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다는 것과 선지자가 예언한 베들레헴에 나시게 함으로서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셨음을 증명해 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가이사 자신은 사람들이 다 각자 호적을 하게 만들어서 세금을 거두기 위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메시야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3장에는 세례요한이 회개하라고 하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를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지 열다섯 해라고 했습니다. 이 디베료가 '디베료 가이사'(티베리우스)라는 로마 황제입니다.

 

  우리가 배운 사도행전 11장 27절 이하에는 안디옥에서 아가보라고 하는 사람이 천하에 큰 흉년이 들것이라고 예언을 했는데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글라우디오가 글라우디오 가이사(클라우디우스)라는 로마 황제였습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사도들이 사역하던 시대에 네로라는 사람이 로마 황제였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사악한 사람으로 이 사람이 기독교를 핍박하여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기독교의 발전에 기여한 로마 황제도 있었습니다. 콘스탄틴이라는 로마 황제는 주후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기독교가 세계만방에 전파되는 일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2) 황제의 도시 가이사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가이사라’라는 도시는 가이사의 도시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로마는 강대국이 되어서 많은 나라들을 점령하고 곳곳에 그들의 통치를 위한 도시들을 건설하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가 지중해를 중심으로 동유럽, 소아시아를 비롯한 중동지역과 아프리카 북부 지방을 점령하여 점령지를 도로로 연결하기 위해서 많은 도로들을 건설하고 주요 거점도시들을 건설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3차에 걸쳐서 전도여행을 한 모든 도시들이 로마의 점령국들이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난 바울은 로마가 점령한 나라들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로마라는 나라를 사용하신 증거들입니다.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로마의 속국이 되게 하시고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때로는 그들을 악한 일로 때로는 선한 일로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3) 총독 베스도

  로마황제 가이사는 각 점령지역에 총독을 파견하여서 그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지역에 파송된 여러 명의 총독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장본인입니다. 본인은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하고 석방하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이 민란을 일으키려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수천 년 동안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성도들 입에 오르내리며 악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우리가 만나고 있는 벨릭스입니다. 벨릭스도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고 사도 바울을 여러 차례에 걸쳐 만나서 복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복음을 따르지 못했습니다.

 

  벨릭스의 뒤를 이어서 베스도가 총독으로 왔습니다. 베스도도 바울에 대해서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끝까지 유대인들에게 내어주지 않고 바울이 로마에 가서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도록 해준 사람입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석방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4) 분봉왕 아그립바.

  로마가 통치할 때 이스라엘 지방에는 분봉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총독을 파송해서 나라를 다스리기도 했지만 분봉왕을 세워서 정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분봉왕은 헤롯의 가문에서 대를 이어서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실제적인 권세는 총독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왕으로서 위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닌 에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환심을 사고자 유대교로 개종하기는 했지만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무시하는 이방인 출신이었습니다.

  헤롯왕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고 하자 자기의 자리를 빼앗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그 사실을 알고 그냥 가버리자 그 지역의 아이들을 다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헤롯 안디바가 유대 분봉왕이 되었는데 그 형제의 아내를 취했다가 세례요한에게 지적을 받자 세례요한을 죽인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을 때 예수님을 심문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뒤에 여러 사람들이 왕위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다음절에 등장하는 아그립바라고 소개된 사람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입니다.

 

  이들은 유대의 분봉왕이었지만 로마황제에 의해서 임명되었기 때문에 친로마적이었고 유대인들을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로마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의 재판

 

  오늘 본문 말씀은 새로 부임한 총독 베스도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의 일로 시작합니다. 베스도가 부임한지 삼일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은 자신이 다스릴 나라의 중심부인 예루살렘의 동태를 살피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유대교 지도자들과 만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자 거기 있던 대제사장과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이 다시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지난번 벨릭스 총독이 있을 때 고발한 것과 똑 같은 것을 가지고 다시 고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 더 요구하기를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재판하지 말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와서 재판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하면 바울의 죄가 밝혀질 것이라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오는 도중에 매복하였다가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고발하는 내용이나 작전이나 다 지난번에 써먹은 그대로를 가지고 다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총독이 바뀌었으니까 새로 부임한 총독이 자기들에게 선심을 쓰고자 원하는 대로 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베스도 총독은 이미 전임 총독에게 그런 정보들을 전해 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작전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가이사랴에 와서 다시 고발을 하면 재판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십일쯤 지난 후에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돌아온 베스도가 바울을 다시 재판대 앞에 세우고 그를 따라 온 것으로 보이는 유대인들이 여러 가지 중대한 일로 바울을 고발하였습니다.

  그들이 뭘 고발했는지 알 수 없지만 바울의 답변을 보면 아마도 지난번 고발한 내용과 같은 것을 가지고 고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고발에 대해서 바울은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항변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만약에 바울 자신이 죽을죄를 지었다면 당당하게 죽을 것이지만 죄가 없는데 죽을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꾸 여기서 재판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 가서 최후의 재판을 받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를 한 후에 바울의 제안대로 로마로 가서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게 하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사실 바울의 이런 재판 과정들은 그것을 통해서 로마로 가고자 하는 바울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것은 앞으로 300여년 후인 주후 313년에 있을 로마 황제에 의한 기독교의 공인을 위함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을 받고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가기 위한 엄청난 일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일은 이런 역사를 통하지 않으셔도 또 이런 인간들을 동원하지 않으셔도 간단하게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냥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들어서 천국에 데려다 놓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역사의 현장 속에서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진행시키고 계십니다. 각 사람이 보고 깨닫고 스스로의 신앙을 고백하고 천국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보입니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 그냥 누군가가 쓴 허구의 소설이 아니며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이며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계획대로 진행하시고 계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 이런 역사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가를 보고 그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원인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버리지 못한 것은 자신들이 종교를 통해서 얻는 기득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잘 살려고 하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억지를 부리고 기독교를 반대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거부했습니다.

 

  로마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호감을 가지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세상의 돈 출세 같은 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믿음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결국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욕심들을 얼마나 많이 버리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도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있는 한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한 복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키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복음이 세계 역사의 중심이며 이 복음을 믿는 일과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세계역사의 핵심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역사 속에서 실패한 인간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그런 모습들을 우리의 모습에서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시고 구원의 복음을 믿고 전하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