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61)
본문 : 행 24:1-9
제목 :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1.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6하반-8상반 없음)7.8.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사도바울이 유대인 공회와 로마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들을 계속해서 보고 계십니다. 유대인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았고 결말이 나지 않아서 로마총독이 관할하는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 한 사람을 재판하기 위해서 당시의 권력가들이 총집합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인 아나니아가 장로들과 함께 등장하고 로마 총독인 베릭스가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름이 없지만 당시 이스라엘 지방에 파송된 로마군의 최고책임자인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바울을 이곳으로 보냈고 후일 총독이 이 재판을 위해서 다시 부릅니다.
우리가 당시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알면 더 이해가 잘 되고 좋기는 하겠지만 성경에서 그런 것까지 다 공부를 하려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생각해야 할 것은 바울이 이런 재판을 받는 과정이 전 세계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언약에 의한 새로운 구원을 시작하시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사탄이 인간의 구원을 방해하기 위해서 세상의 권력들을 다 동원해서 복음전파를 막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재판을 통해서 당시 유대교와 새로 출범한 기독교가 서로 다툼을 벌리고 있는 쟁점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면 우리가 믿고 따르는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유대교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지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그냥 누가 쓴 소설이 아니라 이 세상의 역사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의 역사 가운데 오셔서 이런 일들을 진행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실제로 역사 속에 있었던 유명한 사람들을 등장 시키고 그들의 실명을 써서 그들이 누군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대교 지도자인 아나니아라는 대제사장이 총독이 주관하는 법정에 와서 바울을 고발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고발하는 내용 중에 바울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라고 했는데 이것이 오늘 설교제목입니다.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본문 1-3절에 “1.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한다는 계획을 들은 천부장이 밤중에 몰래 군사들을 동원해서 바울을 총독에게 보냈고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총독에게 가서 정식으로 바울을 고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닷새가 지났고 천부장의 말대로 유대교 지도자들이 바울을 고발하러 총독에게 왔습니다. 유대교 최고의 지도자인 아나니아라고 하는 대제사장이 장로들을 대동하고 또 특별히 더둘로라고 하는 변호사를 데리고 왔습니다. 피고인인 바울을 변호하러 온 것이 아니고 원고 측 변호인으로 왔습니다.
본문에는 변호사인 더둘로가 우선 총독에게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둘로라고 하는 이름의 뜻이 거짓말쟁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원래 이름인지 나중에 붙여진 별명인지는 잘 모르지만 세상에 이름을 지을 것이 없어서 거짓말쟁이라고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이 말을 하는 것 보니까 평소에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거짓말로 죄 없는 사람을 죄인을 만들기도 하고 죄인을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 이 사람이 주로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보통 총독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 먼저 좋은 말로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거짓말로 아부를 하고 있습니다. “벨릭스 각하, 우리는 각하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오랫동안 평안을 누려왔습니다.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각하의 선견지명으로 이 나라가 여러 가지로 개선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각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현대인성경 번역)
각하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에 우리가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고 있고 각하의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으로 나라가 여러 가지로 개선이 되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각하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총독 벨릭스가 아주 악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이 사람은 노예출신입니다. 노예였다가 자유인이 되었고 총독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은 그가 훌륭한 일을 했기 때문에 아니라 돈으로 권력을 매수해서 이 자리까지 오르게 된 사람입니다.
노예출신이 총독이 되었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돌보아주면서 선한 정치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노예근성으로 더 악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주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면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어렵고 가난한 때를 보상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더 착취하고 더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탁월한 지도력 때문에 평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악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 때문에 불안에 떨고 살았습니다.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고발을 당해서 그 자리에 쫓겨나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감사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항상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지만 총독과 너무나 반대 되는 말로 아부를 하고 거짓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짓 아부로 인해 아부를 하는 사람이나 그런 칭찬을 듣는 사람이 다 어려움을 당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로 칭찬을 잘 합니다. 인사치례의 가벼운 칭찬은 괜찮겠지만 너무 과장하거나 거짓으로 칭찬을 하기 시작하면 자꾸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한 두 번은 고맙게 듣지만 나중에는 아 이 사람은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취급을 당해버립니다.
칭찬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칭찬을 할 때 정말로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진지하게 칭찬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쁜 것을 오히려 칭찬한다든지 거짓 칭찬을 하면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다 해롭습니다.
칭찬을 듣는 사람도 조심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 칭찬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잘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거짓 칭찬에 우쭐대고 교만하게 되면 불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아도 이런 아부성 칭찬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이런 거짓 칭찬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기독교인으로 정말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로 건국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백성들에게 욕을 먹고 망명을 해야 했던 원인은 밑에 있는 사람들의 거짓 칭찬 때문이었습니다.
각하 잘 돼갑니다. 각하가 없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계속해서 각하가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됩니다. 이런 아부 때문에 정말로 그런 줄 알고 장기집권을 하려다가 그런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분뿐만 아니라 많은 정치인들이 주변의 그런 사람들 때문에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여론을 조작하고 당신이 최고라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바른 정치를 하지 못하고 욕을 먹고 물러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그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유대인이라고 한다면 이런 말은 하나님께만 할 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통해서만 그들이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아갈 때 그들의 삶이 개선이 됩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런 유대인들이 이렇게 사람에게나 아부하고 세상권력에 따라 살려고 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큰 은혜인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발견하지 못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때로부터 10년이 채 안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당하고 성전도 다 무너지고 2천여 년 동안을 나라도 없이 떠돌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권력에 아부하고 의지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외치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복음전파를 방해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4절에서 9절까지는 변호인인 더둘로가 바울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원고인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대신해서 바울의 죄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죄가 많지만 총독각하를 괴롭게 하지 않기 위해서 큰 죄 몇 가지만 고발을 한다고 했습니다.
1) 전염병 같은 자라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전염병이란 한 사람이 아프면 그를 아프게 한 세균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돼서 그 사람도 아프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꼭 육체적인 질병에만 이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잘못된 사상이나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니까 마치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바울을 만나기만 하면 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바울을 만나기만 하면 다 예수님을 믿고 그를 따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나쁜 길로 인도하는 전염병 같은 사람으로 고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세계만방에 퍼지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역사가 바울과 함께 하심으로 바울을 만나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그것도 유대교 지도자들이 이 하나님의 일을 염병으로 취급을 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나쁜 길로 끌고 간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말대로 “우리가 보니”였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냥 타락한 인간의 눈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사역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염병으로 보는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2)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많이 연구한 유대인들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이었는데 성경에서 예언한대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난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고 하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고발하는 사람이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것은 나사렛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우두머리라고 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이단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유대교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기독교는 이단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시작은 하나님으로 구약성경으로 같이 시작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꼬리가 다른 이단으로 보지만 기독교는 유대교를 꼬리가 없는 잘못된 집단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몰라보고 따르지 않은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하여서 천하게 여겼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면서 나사렛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가 되심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3) 성전을 더럽게 함으로
바울의 죄목을 성전을 더럽게 한 죄라고 고발을 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들과 다니는 것을 보고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고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감으로 성전을 더럽힌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전을 더럽게 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성전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맡아서 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 도다.”(마21:13)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장사를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이 성전을 통해서 성전 제사를 통해서 그들의 이익을 챙김으로 성전이 장사하는 곳으로 바뀌게 하여 더럽혔습니다. 성전의 의미나 제사의 의미도 모르고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리지 못함으로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성전이 이렇게 장사의 도구로 사용될 것을 아시고 다윗이 성전을 건축한다고 했을 때 다른 이유를 대면서 건축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 왕 때 와서 성전건축을 허락하시기는 하셨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생각하셨던 대로 성전이 우상이 되고 성전이 장사꾼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성전은 없습니다. 교회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는 장소일 뿐입니다. 성전은 우리의 몸이 성전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당 건물이 성전으로 일컬어지고 예수님을 자랑하기 보다는 큰 교회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교회당 건물을 자랑합니다.
교계 신문을 보면 교회를 소개하거나 광고를 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사진이 교회당 건물 사진입니다. 교회당 건물 사진이나 목사님 얼굴 사진이 자랑거리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얼마나 정확하게 선포되고 성도들이 얼마나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사는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고 성도다운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교회일수록 목회자들이 재산을 탐하여 세습을 하고 부도덕한 삶을 삶으로서 성전이라고 하는 교회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런 당치도 않은 것들을 가지고 바울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죄목으로 그들 자신들이 벌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바른 진리를 따르는 바울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이런 아첨꾼들 때문에 세상이 바로 서지 못하고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복음을 따르는 우리들이 고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세계만방에 전파되기를 원하셨던 바로 그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저주를 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