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2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60)

  본문 : 행 23:25-35

  제목 : 글라우디오 루시아가 총독 벨릭스 각하께.

 

 

  “25.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우리는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을 합니다. 착하게 생겼는지 험하게 생겼는지, 좋은 직업을 가졌는지 좋지 않은 직업을 가졌는지, 부자로 여유 있게 잘 사는지 가난하게 못 사는지, 말을 부드럽게 잘하는지 험한 말을 하는지 이런 외형적인 것들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합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 제일 예쁜 여배우와 제일 멋있는 남자배우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혼을 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고 사람들이 참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빈틈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최고로 멋있는 남자와 최고로 예쁜 여자가 결혼을 했는데 왜 이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해석을 하기를 그 여자배우는 남자배우 그 자체를 보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나오는 그 남자 배우의 멋진 연기를 보고 사랑을 했고 남자배우도 여자배우의 본래 모습을 보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여배우의 멋있는 모습을 보고 결혼을 한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멋있을 것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고 보니 원래 속사람의 모습은 그런 멋진 모습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 나오던 그 착하고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본래의 모습인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니까 정말로 실망이 되어서 서로 이혼한 것이 아닌가 추즉을 한답니다.

 

  우리 주변이 그런 착한 모습으로 연기를 하고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속에는 죄악이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착한 척하고 우리들을 속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착하고 좋아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바른 길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진리를 알지 못해서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속아서 뭘 잘 알지 못해서 엉뚱한 길로 가면서 다른 사람들도 망하게 하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목사들 중에 착한 일을 많이 하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외형적인 모습만 보면 안 됩니다. 우리들의 영혼, 영원한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가 반드시 알아야 할 복음의 진리를 모르고 다른 복음을 전하여서 엉뚱한 길로 성도들을 이끌고 있다면 그 착한 행실을 가지고 사람들을 멸망에 빠지게 하는 정말로 나쁜 사람입니다.

 

  착하고 훌륭한 것 때문에 그 목사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이 아멘하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반신반의 하면서 따져보고 따르든지 말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말을 하면 무조건 아멘하고 선악을 구별하지 않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와 반대로 악한 사람인 것 같은데 착한 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착하고 바른 삶을 산다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은 아주 악한 사람이 되어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이방인으로서 권력을 휘두르는 악한 사람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

 

  본문 25-26절에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라는 이름은 오늘 본문에 처음 나오는 이름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 이름이 처음 등장하지만 사실은 21장부터 이 사람이 주욱 등장을 하는데 여러분이 많이 들으신 로마군의 천부장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이 천부장이 비교적 착한 사람으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의 직책으로 볼 때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로마 군인으로 점령지인 이스라엘 지방의 치안을 담당하기 위해서 파송된 부대의 천부장이었습니다. 착하고 순한 사람이 맡을 수 있는 그런 직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어려서 일제 강점기 시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 시대에 우리나라에 파송된 일본 군인들은 아주 악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인간이하로 취급을 하고 악하게 대하였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이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와 비슷합니다. 로마가 지배하는 때였고 점령군으로 파송된 로마군은 우리나라에 파송된 일본 헌병들 못지않게 악하게 행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막강한 권력을 가진 로마군의 천부장인 글라우디오 루시아라는 사람이 유독 바울에게만큼은 아주 선하게 대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과 자신의 고통점인 로마 사람이 아니면서도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과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진짜 이유는 그는 하나님께서 준비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한 마음을 가지고 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성령님께서 그와 함께 계심으로 착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로 이 천부장이 당시의 총독이었던 벨릭스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을 보면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유대사람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이라고 했습니다.

   천부장이 총독에게 편지를 하면서 은근히 자신이 옳은 일을 한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죽게 된 것을 내가 그 바울이 로마 사람인 줄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해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천부장이 잘 보이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성전 밖으로 내치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런 소동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천부장이 백부장과 부하들을 데리고 출동하여서 바울을 영내로 끌어들여서 죽음을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소란을 피울 때 거기서 구원했다가 유대인들의 공회 앞에 세우고 바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울의 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제시하지도 못하고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이 판단하기로는 바울이 죽임을 당하거나 결박을 당할만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다만 유대인들의 종교적 율법에 관한 문제로 서로 다툼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라고 했습니다.

  천부장이 생각할 때 바울은 죽임을 당하거나 구속을 당할만한 아무런 죄가 없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무조건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알고 총독께 급히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도 역시 우리가 살펴본 대로입니다. 바울의 생질이 이런 유대인들의 계획을 알고 바울을 거쳐 천부장에게 고했기 때문에 천부장은 지체하지 않고 그 밤에 군사들 4백7십 명을 준비하여 바울을 총독에게 보냈습니다.

 

1)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율법에 관한 문제입니다.

  본문에서 천부장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과 그들에게 고발을 당한 바울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기를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이 율법을 어떻게 해석을 하는가가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은 율법 자체를 하나님께서 주신 엄한 계명으로 보고 누구든지 이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바르게 잘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이고 누가 반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될 수 있는 대로 율법의 말씀처럼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율법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 인생에게 있어서 매우 소중한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그 이상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주신 원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서 주신 좋은 것이지만 문제는 타락한 인간이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내용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칭찬을 받고 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해서 벌을 받고 저주를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런 실패를 잘 알지 못한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율법을 잘 지켜야 된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정작 자신들도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잘 지키는척하는 위선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잘 아는 바울은 이 지구상에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선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율법 앞에서 자신이 죄인인 줄 깨닫고 이런 죄악에서 나를 구원해주실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그것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 이 율법의 문제를 가지고 유대인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과 바울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병존해있습니다. 외형적이지만 비교적 율법을 지키고 선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야 되고 선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타락한 습성을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율법을 자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한번 똑바로 살고 싶습니다. 똑바로 보고 똑바로 알고 똑바로 걸으며 사람들에게 칭찬도 받고 박수도 받고 좀 잘난 척도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되는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음은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데 우리의 형편과 처지가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의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율법을 행함으로가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2) 또 하나 깨달을 것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사용하시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천부장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악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선한 일에 쓰임을 받았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착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큰 재물이 있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 큰일을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만방에 전파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 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일이 소중하다고 여기고 그 일에 쓰임받기를 원하면 하나님께서 능히 그 일을 감당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고 잘난 척 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겸손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몇몇 가지 선한 일을 하고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보다 선한 일을 하지 못해서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부족한 사람을 통해 일하실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총독 벨릭스

 

  천부장 루시아와는 달리 총독 벨리스는 바울에 대해서나 하나님의 일에 그렇게 선하게 쓰임을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의 지위를 이용해서 바울을 정죄하여 처벌하지 않고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하고 바울을 유대인들의 요청대로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천부장이 보낸 편지를 읽고 바울에게 어느 영지 사람이냐고 묻고 길리기아 사람이라고 하자 천부장의 편지대로 바울을 고발하는 사람이 올 때까지 헤롯 궁에 가두고 지키게 하였습니다.

 

  벨릭스에 대해서 성경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역사가들에 의하면 이 사람은 아주 대단한 입지적인 인물입니다. 우선 벨릭스는 원래 노예였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노예가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예로 있다가 자유인이 되고 총독에까지 오르게 된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노예가 총독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많은 돈이 들었을 것이고 엄청나게 머리를 써서 그런 기회를 잡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늘 돈을 좋아하고 돈이나 모든 환경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뒤에 보면 이 사람이 바울을 자주 만난 것은 돈을 좀 받을까 해서이고 바울을 쉽게 풀어주지 않은 것 또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고 그것도 한나라를 다스리는 총독까지 올라왔다면 멋있게 정치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억울한 노예가 없는가를 살펴서 자유인이 되게 해주고 어려운 사람들 편에 서서 일하고 그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서 좋은 일 많이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계속해서 돈 생기는 일만 찾아다니며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지르고 폭정을 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착취하려고만 했습니다. 부인을 세 사람이나 얻었고 그것도 정략적인 결혼으로 귀족이나 왕족과 결혼을 하여 자기의 신분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결국은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하여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노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자유인이 되었으면서 스스로 다시 노예가 된 사람입니다. 재물의 노예가 되어서 돈을 버는 일에 목숨을 걸고 돈 때문에 신세를 망친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하면 참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누구에게 속박 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삽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것들에게 또 다시 노예가 되어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은 참 좋은 것입니다. 요즈음은 돈 가지고 못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고 돈이 우리의 행복을 좌우하는 세상입니다.

  이 돈의 노예가 되어서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평생 돈벌이를 위해서 돈돈하면서 삽니다.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돈에 얽매여서 삽니다.

 

  요즘은 재미난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오락 스포츠 영화 인터넷 이런저런 편리하고 좋은 것들이 나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핸드폰 참 좋은 것입니다. 핸드폰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됩니다. 모든 정보를 알 수도 있고 네이버에 물어보면 박사도 모르는 것 다 알려줍니다. 재미난 영화도 보고 모든 사람들의 소식도 보고 게임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핸드폰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시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아마 예수님 믿는 사람은 핸드폰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면 핸드폰 가지려고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 많을 것입니다.

  좋은 것들을 가지고 편리하게 누리고 좋은 일에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거기에 너무 빠지면 그것의 노예가 되고 불행한 삶을 자초하기도 하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특별이 우리는 죄의 종에서 죽음의 종에서 사탄의 종에서 자유함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그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다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면서 선한 일에 힘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와 총독 벨릭스가 한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는 악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 선하고 중요한 일을 행할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총독 벨릭스는 노예에서 해방이 되어서 높은 총독의 자리까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돈의 노예 명예의 노예 쾌락의 노예가 되어서 비참한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비록 죄악된 사람이지만 하나님께 붙들림을 받을 때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죄의 노예에서 해방이 되어서 참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쾌락 때문에 다시 노예가 되는 비참한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