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2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49)
본문 : 행 22:1-5
제목 :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자라.
“1.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강해설교를 하면 설교를 듣는 분들은 좀 지루하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설교를 5년차 듣고 있으니까 많이 지루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만 본다고 염려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다 서로 연결이 되어 있고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여기저기를 조금씩 보는 것보다 어느 책이든 한권을 다 보는 것이 유익합니다.
성경 어디를 보든지 그 목적지는 다 같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설교들은 성경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풀어서 성경의 기록목적이 우리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나 제사나 여러 언약들이나 절기들이 다 오실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시면서 때로는 성경의 해석이나 배경이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고 본론만 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드실 것입니다. 어차피 설교의 결론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바쁜데 결론만 알면 되지 이런저런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에 기록된 역사나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하면 지금은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게 아니라고 하면 자꾸 의심이 들 것입니다. 요즘은 교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지 않고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니까 그런 설교를 듣거나 그런 설교를 듣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좀 지루하시더라도 성경의 기록을 꼼꼼히 살피면서 설교가 목사의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들 축복들을 자세하게 살피시고 믿음을 굳건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사도행전 22장의 말씀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22장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들의 고발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된 가운데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래 바울 자신도 유대인으로 태어났고 율법의 엄한 교육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성경의 핵심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께로부터 복음을 받아서 그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바울의 회심 과정은 사도행전에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배운 9장에 기록이 되어 있고 지금 우리가 배우는 22장에 그리고 26장에 한 번 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자신이 누구였는가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자신이 유대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도 유대인으로 출생을 했고 율법도 확실하게 배웠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열심을 낸 사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유대인들은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본문 13절에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2.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히브리말로 “부형들아”라고 부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방인이 아니며 그들의 형제지간인 유대인임을 밝히고 있고 그 증거로 당시 유대인들이 쓰고 있었던 히브리어로 능숙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여기 히브리어란 당시에 유대인들이 쓰고 있는 아람어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라고 했습니다.
앞서서 말씀을 드렸지만 길리기아의 다소지방은 당시의 유명한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나 아덴 같이 대학이 있는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보다 더 문화가 발달하고 지식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방 나라인 길리기아 다소지방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유대인이며 자신이 유대인으로 태어낫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목적은 자신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복음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신도 유대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불량한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유대인으로 가장하여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볼 때 사도바울이 이상한 설교를 하면서 복음이라는 것을 전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유대인으로 가장하고 다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자신이 조상대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임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며 유대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왜 유대인을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해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선민으로 세우신 제일가는 목적은 그들의 후손을 통해 그들의 왕가인 다윗왕가를 통해서 메시야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제일 큰 목적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엉뚱한 목적을 가지고 엉뚱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저 이름만 가지고 형식적으로 교회나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고”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성경 즉 구약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핵심이 복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과 반대되는 복음이 아니라 율법의 목적이 복음이며 율법이 복음으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복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을 잘 배워서 알고 있다는 것으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율법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정확하게 아는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힐렐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이 힐렐 학파가 전통적인 율법학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가말리엘은 이 힐렐 학파의 학문을 이어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말리엘은 당시에 유명한 성경학자이고 정통적인 성경학자로 알려져 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문하에서 율법을 교육 받았다고 하는 것은 정통적인 율법을 잘 배운 사람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힐렐 가말리엘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학파의 제자로서 율법을 바르게 아는 전통적인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율법의 엄한교훈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기 ‘엄한’이라는 단어는 ‘정확한’, ‘틀림없는’, ‘면밀한’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단어입니다. 대강 적당히 배운 것이 아니라 엄격하게 배웠다는 뜻이면서 정확하게 배웠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율법이 정통적인 방법으로 해석되지 않고 각 분파에 따라서 본질과 다르거나 본질이 흐려진 상태에서 교육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율법이라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많이 다른 것을 율법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배운 율법은 그런 잘못된 분파의 사람들에 의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 정통적으로 율법을 가르치는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를 한 정통적인 율법학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 나아가서 바울 자신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로부터 그 율법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각각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있고 성경을 윤리 도덕에 관한 책처럼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율법을 가르쳐서 똑바로 살게 하고 잘못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가르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똑 같은 성경을 가지고 수많은 이단들이 나왔으며 성경을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거짓선생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엉터리로 성경을 해석한 것을 가지고 성경공부 시켜준다고 유혹하는 이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다른 방향으로 해석을 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이단이거나 거짓선생이거나 자신도 잘 모르고 가르치는 어리석은 사람일뿐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기 이전에도 하나님께 대해여 열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대강 적당히 하나님을 섬기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을 했고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 애를 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6-6)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다니면서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된다고 외친 것은 자신이 뭘 모르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고 변명을 합니다.
정통적인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정확하게 율법을 공부한 사람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누구 못지않게 충성을 다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뭘 잘 몰라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뭘 잘못 배워서 이러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을 따르거나 율법을 떠나서 다른 것을 배워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님을 변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본문 4-5절 말씀에 “4.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의 일에 어떻게 열심을 내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가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유대교에 열심이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이 도” 즉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이 도를 박해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정통적으로 배운 사람으로서 그 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여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한 것은 그저 개인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유대교로부터 공식적인 명령을 받아서 수행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 다메섹(Damascus)은 현재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Damascus)이며 때때로 이곳이 수도였던 국가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곳에는 원래부터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지만 특별히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질 때 많은 유대인 기독교들이 이것으로 피난 왔습니다.
로마의 역사가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주후 66년 네로 황제의 대 박해 시에 다메섹에서 학살당한 유대인의 숫자만 1만 명이 넘었던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그로 미루어보아 바울이 기독교인을 잡으러 가던 당시에도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유대교를 따르던 바울이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참 궁금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배우고 따랐던 것을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철저하게 믿고 따르던 것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렇게 지독한 유대주의자가 그렇게 지독한 율법수호자가 그렇게 철저하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일 것입니다. 천지개벽이 일어날 정도의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런 변화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극적인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그냥 보통의 복음이 아님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유대교를 따르던 사람이 그렇게 철저하게 기독교로 바뀐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의 열심이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향한 열심인가, 하나님나라를 향한 열심인가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는 일에 열심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에 열심인가 남을 못되게 하는 일에 열심인가, 남을 잘 되게 해주려는 일에 열심인가 이기심을 위한 열심인가, 이타심을 위한 열심인가 받으려고 하는 일에 열심인가, 나누어 주려고 하는 일에 열심인가 나의 열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잘못된 일에 악한 일에 열심이 있는 사람은 열심히 살수록 나쁜 길로 가는 더 악한 사람이 될 뿐입니다. 선한 일에 바른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은 그 열심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믿음을 위한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억울할 것이 없는 너무나 귀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이 자신이 유대인이며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세우신 목적이 무엇이며 율법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떤 일에 열심을 내야 하는지를 지적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따라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목적이 무엇이며 율법의 용도가 무엇인지 어떤 일에 열심을 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이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위해서 충성하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