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37)
본문 : 행 20:25-27
제목 :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25.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새로운 나라 하나님 나라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세례요한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3:1-2)라고 했습니다. 메시야를 통하여 시작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시작할 그 메시야가 오실 때가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말씀을 시작하시면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나라를 시작할 메시야가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새롭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메시야가 오시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빼앗긴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되찾고 이스라엘을 막강한 나라로 다스려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했던 설교에서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지만 하나님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된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거룩한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이 하나님나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그 하나님나라가 완성이 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우리 모두가 살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나라로 시작을 하고 하나님나라가 전파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하나님나라를 계속 전파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40일 동안 계시면서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으로 사도행전이 시작이 됩니다. 베드로 사도나 바울사도를 통하여 그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세계만방에 전파되는 것을 기록하고 있고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장면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사도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놓고 설교를 하는 가운데서도 바울 자신이 그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오늘 설교제목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입니다.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자주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바울이 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자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 표어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입니다. 여기 주고받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은 복이 있는 사람인데 이제 그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도 바울이 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면서 어떤 자세를 취했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복음을 전하면서 그런 심정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본문 25절에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이 얼마나 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힘을 다하고 애를 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중에 왕래를 하면서 하나님나라를 전했고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하나님나라를 간절하게 여러분에게 전한다고 했습니다.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냥 “여러분 중에 왕래하여”라고 표현을 하고 있지만 이 말씀 속에 바울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분주하게 여기저기를 다녔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교통사정은 오늘날 같지가 않았습니다. 걸어서 가거나 배를 타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요즘처럼 길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험한 길이었고 도처에 강도들이 숨어 있었고 가다가 쉴 곳도 없는 다니기가 어렵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배도 요즘처럼 튼튼하고 엔진이 달려서 빨리 가는 배가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노를 젓거나 바람을 이용해서 가는 돛단배였습니다. 풍랑도 심하고 배도 작고 약한 배였기 때문에 배를 탈 때마다 목숨을 걸고 타야만 했을 것입니다.
가는 거리도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도시를 지나서 나라를 지나서 대륙을 건너서 다니는 먼 길이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먼 길을 건너다니면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한번만 방문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두세 번을 왕래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번 갔던 도시를 다시 방문한 것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그대로 변함이 없이 바르게 유지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떠나오면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 복음을 변질시키고 다른 복음을 전하여서 바른 믿음을 따르지 않고 엉뚱한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방문하여서 복음을 바로 잡고 바른 믿음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옛날처럼 다시 왕래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오늘 이렇게 대면하고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하고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다시 오지 못한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라고 강조를 하면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질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결박을 당하고 끌려 다니다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유언적인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유언적인 설교가 그동안 자신이 왕래를 하면서 애를 써서 전파했던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전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절대로 잊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복음이 변질되게 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을 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6절에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복음을 듣고 믿지 않은 사람들에 대하여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바르게 따르지 못하고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도바울이 에스겔 33장을 생각하면서 한 말입니다. 에스겔서 33장에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전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들이 사는 주변에 성을 쌓고 성 위에 파수꾼을 세워서 적군이 침입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적군이 칼을 휘두르며 침입을 하는 것을 파수꾼이 보았습니다. 그러면 미리 약속한 대로 나팔을 불든지 고함을 지르든지 해서 적군의 침입을 알리는 것이 파수꾼의 임무였습니다.
파수꾼이 약속한 신호대로 적군의 침입을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도망을 하거나 방어를 하지 않고 방심하고 있다가 죽임을 당하면 그 책임이 죽은 사람 자신에게 있고 파수꾼에게는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파수꾼이 졸았다거나 다른 짓을 하다가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함으로 인해서 사람이 적군을 피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면 그 피의 책임이 파수꾼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너는 내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치기를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외쳐라 그 말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면 자기 죄 때문에 죽는 것이기 때문에 네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적하지 않고 회개를 외치지 않아서 그 사람이 죄로 인해서 죽으면 그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외쳤기 때문에 당신들이 복음을 믿고 따르지 않거나 다른 복음을 따라서 감으로 멸망을 당한다고 해도 그 책임이 나에게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에스겔과 같이 사도바울과 같이 파수꾼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책임이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파수꾼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여서 우리 주변에 내가 복음을 전하여야 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들이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된다면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의 주변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받은 이 위대한 믿음을 전하여 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단순히 전도해서 우리교회 식구 한 사람 늘리는 것이 전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여 영원한 천국을 알지 못하여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여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복음은 전해도 그만이고 전하지 않아도 그만인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전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면하여야 하는 중대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입으로 복음을 전하기 힘이 든다고 하면 전도지라도 한 장 그 손에 넣어주거나 위대한 믿음 진실한 고백 이 책이라고 한권 선물하시기 바랍니다. 그 책에 믿음의 핵심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읽어보고 믿거나 읽지 않고 믿지 않거나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책임입니다.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7절에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꺼리지 않았다는 말은 움츠러들거나 주저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는 이 일은 너무나 분명하고 너무나 확실한 일이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주저하거나 움츠러들 일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신약의 베드로 사도나 사도바울이나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것을 제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따르려고 했고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고전 1:1)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신이 전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바로 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너무나 확실하고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뜻에 따라서 사람이 계획하고 만든 일이라면 확실하지도 않을 것이고 수시로 변하게 될 것이고 다른 길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생각도 해보고 망설이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추진하신 일이고 그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담대하게 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먼 길을 왕래하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는 사명을 받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거리낌 없이 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처럼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이 복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복음을 받는 것도 복이 있지만 이 복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