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30)
본문 : 행 19:28-34
제목 :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28.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29.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30.바 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31.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32.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33.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34.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복음을 전하러 내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7-8)고 하셨습니다.
복음전파나 그를 위해서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면서 돈을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복음을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고 은혜로 받았고 능력도 은혜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때 거저 받았으니까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에 율법학자들이나 제사장들이나 재판관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위에 돈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나라에서는 단체에서 그들의 생활비를 다 주면서 그들이 개인을 상대로 그들이 하는 일의 대가로 돈을 받을 수 없게 하였습니다. 만약에 이런 사람들이 돈을 받고 무엇을 했다면 그것은 무효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고 이런 중요한 일에 돈이 개입이 된다면 돈으로 인해서 진실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교회가 돈과 밀착이 될 때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갔고 복음은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성전에 장사꾼들이 가득했을 때 성전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예수님께 강도의 굴혈이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자주 말씀 드리지만 중세시대의 천주교도 결국은 타락의 원인이 교회가 돈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혈안이 된 성직자들 때문에 진리가 왜곡이 되고 복음이 변질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마땅히 전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부끄러워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대형교회가 등장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로 인해서 부정적인 것도 많습니다. 교회를 대형교회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고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전하고 심지어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보다는 개인의 경험이나 세상 철학을 동원함으로 교회의 본질을 흐리게 합니다. 교회가 재물의 욕심으로 인해서 기복신앙을 강조함으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엉뚱한 교회처럼 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에베소에는 에베소를 지켜준다고 믿는 아데미라는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었습니다. 데메드리오라는 은 세공업자가 있었는데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은으로 만들어 팔아서 많은 재물을 모아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타나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것들은 다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자 그들의 장사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바울과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의 말을 들은 에베소 사람들이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외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연극장으로 끌고 들어가서 위협을 가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동을 하는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나 그 선동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들이 섬기는 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돈 벌이를 위해서 사람들을 선동했고 사람들은 그의 선동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음을 봅니다.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본문 28-31절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 말은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군중들을 향하여 한 말을 가리킵니다. 데메드리오가 은으로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었는데 사도바울이 나타나서 방해를 했기 때문에 반격을 합니다. 바울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따른다면 우리는 이제 망한다. 우리의 사업도 망하고 우리가 섬기는 신도 헛된 신이 되고 만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지 이것을 막아야 한다고 선동했습니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은 이성적으로 정확하게 판단을 하고 화가 날만한 일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섬기는 신이 가짜신이라고 하니까 무조건화가 났습니다. 그동안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 신이 에베소를 지켜주는 신이고 그 신으로 인해서 다 복을 받아서 잘 산다고 생각하고 지극정성으로 그 신을 섬겼습니다. 그런 위대한 신을 가짜라고 하니까 마음이 좋을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심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동안 자기가 알고 믿고 있던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헛된 것이라고 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불교는 사실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스스로 득도하여 신의 경지에 이른다는 종교입니다. 부처가 자기를 따르라고 하지도 않았고 자기가 복을 준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부처를 신으로 믿고 그것도 복을 주는 신으로 믿습니다. 세상 욕심을 다 버리라고 하는 것아 가장 큰 가르침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를 신으로 추앙하고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들이 돌아가시면 귀신이 된다고 생각하고 돌아가신 날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제사가 뭘 잘못 알고 행한 헛된 것이었음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수긍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그렇게 해 온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수긍하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보통 일들도 분명히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잘못했다고 하면 화부터 냅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그것을 수긍하고 고칠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분노가 가득 찬 사람들은 자신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외치자 온 시내가 요란하게 떠들면서 바울과 같이 다니던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잡고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여기 연극장은 노천극장으로 약 2만 5천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대형극장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시 의회도 열리고 각종 모임이나 강연이 열리는 장소로 보입니다.
왜 이 두 사람을 잡아서 연극장으로 데리고 갔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바울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바울을 따르는 사람이라도 붙잡아가서 자기들 식으로 재판을 하고 사형을 시켜서 화풀이를 하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소식을 듣고 연극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무슨 대책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신 잡혀간 그리스도인이 해를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류하였습니다. 바울이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들을 사람들도 아니기 때문에 잘못하면 바울까지 죽임을 당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만류하였습니다. 심지어 아시아의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을 보내서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고 통지하였습니다. 바울이 거기 들어갔다가는 봉변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만류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이 제자들과 친구들의 만류를 따라서 거기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말이 옳게 생각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기대를 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본문 32절에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화가 나서 모였으면 왜 화가 났는지를 알아야 할 텐데 화가 난 이유도 몰랐고 거기 모인 이유도 잘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저런 말을 하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서로 분란만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거기 모이게 하고 막상 자신은 뒤로 빠져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화가 나게 만들어서 불법집회를 하게 만들고 나서 본인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이 폭행을 하거나 살인을 하는 사고를 치르고 나서 하는 말이 그 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노조절이 안 되거나 정신적인 병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면 이성을 잃어버리고 엉뚱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 연극장에 모인 사람들도 지금 화가 치밀어 올라있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믿고 섬겼던 신이 가짜라고 한다는 그 한마디에 화가 나서 몰려온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말에 흥분하며 화풀이를 하려고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잘못된 일을 하여 죄를 짓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이런저런 유혹에 넘어가서 잘못된 후에 “아 내가 그 때 귀신에 홀렸나봐 내가 미쳤나봐”라고 하면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문 사기꾼들은 여러분들에게 최면을 걸기도 합니다. 아주 교묘한 말로 깜박 속아 넘어가게 만듭니다. 지나고 나면 “어떻게 내가 그런 말에 속아 넘어 갔을까”라고 생각되는 유치한 속임수에 그냥 넘어갑니다. 사람이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서 그 욕망 때문에 이성을 잃고 다른 사람의 속임수에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항상 성령님께 의지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바라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육신의 지나친 욕망들을 제어해 주시고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살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늘 묵상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경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구원의 복음을 읽고 듣고 살기 때문에 복음을 바르게 알고 믿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도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혜의 말씀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특별히 잠언 같은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혜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이 읽으셔서 이 세상을 사는 지침서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본문 33-34절 말씀에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도 그 무리 가운데 모였던 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신이 아니라고 해서 아데미 신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 화가 나서 모인 자리에 왜 유대인들이 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바울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함께 화풀이를 하려고 모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도 그들이 성경을 바르게 알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한 메시야가 되심을 전파했기 때문에 그들이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이 소동을 벌리고 있는 곳에 함께 와서 사도바울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항의를 하고 물러나라고 함께 외쳤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대인인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알렉산더가 손짓을 하면서 변명을 하려고 했다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르다고 변명을 하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우리와 전혀 다르다 그러니 우리를 기독교와 같이 취급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모르니까 당연히 자기들이 섬기는 신이 최고라고 외치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성경을 알고 그 성경이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라는 설명을 듣고서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이 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해도 같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 싫다고 이방의 헛된 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복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성경 말씀들을 가지고 변명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핵심을 잘 모르는 어리석음을 나타낼 뿐입니다.
화가 난 에베소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구차한 변명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다 같은 부류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변명이나 다른 유익한 이야기라도 들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따르는 신이 최고이고 그것이 아니라는 사람의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큰 소리로 외칩니다.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라고 외치기를 두 시간 동안이나 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아데미 신이 제일 큰 신이다. 아데미 신이 우리 에베소 사람들을 지켜주는 신이다. 그동안 그들이 믿고 있던 신앙고백을 큰 소리로 외치면서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외치는 것은 오직 그 신앙만 갖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다 거짓말이니 절대로 듣지도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말로 자기 자신을 세뇌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이런 의식이 강합니다. 자기가 듣고 믿는 바를 절대로 바꾸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자꾸 자기 자신을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바른 말을 하고 좋은 말을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철저하게 꾸며진 사기꾼 같은 이단의 말에 속아서 진리를 바르게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기꾼이나 이단들은 너무나 세밀하게 작전을 세우고 그럴듯하게 꾸며서 쉽게 믿고 따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통해 반복해서 교육을 함으로 거기에 빠져들게 만들고 헤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돈을 벌기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종교 사기꾼들의 말에 현혹되어서 맹목적으로 따른 사람들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런 장사꾼 같은 사이비 이단을 따르지 않고 개혁주의의 바른 진리를 따르고 바른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잊지 마시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