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5.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14)
본문 : 행 17:24-25
제목 :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24.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제가 여러분에게 우리가 가진 믿음의 위대성을 이야기 하고 그 믿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로 설교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믿음을 강조한다고 하니까 그냥 입술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합니다.
저를 위시해서 오직 믿음을 중요하게여기는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흉악한 죄인이고 또 똑 바로 살기에 얼마나 연약한가를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내 죄가 너무 흉악하기 때문에 그 죄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내가 너무나 불쌍한 인생이기 때문에 이런 나를 죄에서 멸망에서 구원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너무나 감격스럽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연약한 나를 다시 똑바로 살아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가 아니라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임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오직 믿음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복음을 믿는 믿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고 할 때 거기에 전제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고 왜 그것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받게 하는가를 알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에 대해서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그것을 믿는 믿음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주로 설교하는 목사는 성도들이 이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전제하에 그 결론인 복음을 설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뿌리가 되는 구약성경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을 알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는 믿음이 복음을 믿는 믿음에 포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방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설교하는 것을 보면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이방민족에게 갈 때 먼저 그곳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 먼저 들어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를 할 때는 바로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고 구약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바로 복음을 이야기하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들이 알고 있는 구약성경의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그 뜻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을 많이 공부하고도 그 뜻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설명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금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가 그렇습니다. 아레오바고에 모여 있는 아덴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님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종교심이 있어서 이런저런 신들을 섬기고 있었고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도 있었지만 정말 알아야 할 참신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신을 대하는 방법도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에 대해서 바로 이해를 하도록 설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중에도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방신들 중에 한분처럼 생각하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도 이방신을 섬기는 방법과 비슷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홀히 여기고 구원의 길을 이방 신을 섬기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한 설교의 내용을 깊이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구약성경을 직접 인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간단하지만 바르게 알 수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천지의 주재시니
본문 24절에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은 우리가 믿는 모든 믿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고 우리의 믿음의 시작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왜 창조주가 되시는지 어떻게 창조주가 되시는지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습니다. 당연하고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아니시라고 하면 우리가 믿는 모든 믿음은 다 헛것이 되고 맙니다. 그것을 안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공격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과학이라는 것을 동원해서 이 우주 만물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겨서 진화된 것이라고 퍼뜨립니다. 그러나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고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을 믿도록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창조나 진화나 다 같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믿음이라고 한다면 창조는 훨씬 더 과학적이고 믿을만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천지만물을 보면 그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우주만물은 그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라는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우주만물의 조화가 너무나 세밀하고 너무나 기묘하기 때문에 이 우주를 바라보면서 이 우주 만물이 우연히 생겨서 저절로 진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과학자가 말하기를 우주 만물이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하는 것은 큰 점보 비행기를 부속 하나하나 볼트나 너트까지 다 분해해서 모래사장에 흩트려놓았는데 부품 스스로가 다시 헤쳐모여서 다시 비행기로 조립이 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주 만물은 저절로 생길수도 없고 저절로 이렇게 기묘하게 조화를 이룰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렇게 완벽한 우주를 창조하셨음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시라고 했습니다. 우주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주 만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천지의 주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할 때 물론 예수님도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주님이라는 뜻으로 씁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분도 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구원의 주재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의 최우선적인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사람이 먼저입니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우주 만물보다 어떤 제도보다 자연이나 동식물보다 사람이 먼저이고 사람이 좋게 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먹고 마시고 행복해하는 도구로 사용하도록 주셨습니다. 우리는 만물을 다스리고 활용하며 사는 만물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먼저라고 할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보다 먼저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하나님 위에 오를 수는 없으며 사람의 뜻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하나님의 뜻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또 사람이 먼저라고 할 때 조심할 것은 구원도 사람의 행함이 먼저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 편에서 사람의 방법으로 사람의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못한 일부 기독교인들이 구원에 관한 일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의 뜻을 앞세워서 엉뚱한 길로 가게 만듭니다. 사람이 행한 알량한 아주 작은 눈에 보이는 선행을 가지고 마음 속 깊이 있는 추악한 죄를 가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흉악한 죄인이며 인간의 행위로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그 뜻을 거역하고 사람의 선행이나 고행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신칭의의 구원은 즉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천지의 주재 구원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복음에는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다는 이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24절 하반절과 25절에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이 하나님이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을 만드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심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엉터리로 신을 섬겼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신이 그들이 만든 신전에 계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전을 어머 어마 하게 아주 화려하게 만들어 놓으면 거기 신이 들어와서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들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신전들을 지었지만 바울은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손으로 만든 신전에나 계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라고 말합니다.
사실 다윗이 하나님이 계실 성전을 건축한다고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쾌히 승낙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사람을 많이 죽이고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다윗의 손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지만 내심 성전건축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에만 계신다고 생각하거나 성전이 또 하나의 우상이 될까봐서 그런 형상자체를 좋아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도 그런 말을 합니다. 사람이 지은 건물에 하나님이 머물러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서 오히려 나쁜 짓만 하고 잘못된 성전제사 때문에 나라가 망합니다. 몇 번이나 성전은 허물어졌고 예수님도 성전에 돌 하나라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무너질 것임을 예언하셨습니다.
로마 가톨릭이 화려한 성전을 짓는다고 면죄부를 팔고 타락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도 교회당을 성전처럼 건축하고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습니다. 교회가 교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릴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당 건물을 너무 신성시 하여 필요이상으로 크고 화려하게 짓고 또 무리한 건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있는지 모릅니다.
신전이나 성전이나 교회당이나 사람의 손으로 지은 그런 건물 안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영광을 위한 자기 자랑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전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며 또한 무엇이 부족하여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만 하는 그런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신이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이야기해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치라고 강요를 하고 그것을 챙겨서 자기들이 가졌습니다. 신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신으로 만들거나 신이 사람이 가진 것을 착취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귀신들은 철저하게 사람의 것을 착취하는 신들입니다. 귀신이 뭐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차려주는 제사상을 받아먹어야 산다고 하겠습니까? 무당들은 무엇을 하든지 돈을 뜯습니다. 돌아갈 노자 돈이 없어서 귀신이 못 돌아간다고 돈을 요구하고 뭘 많이 바쳐야 장래일도 말해주고 복도 준다고 가르칩니다. 결국은 그 돈이나 음식들은 다 귀신이 아닌 사람들이 가져갑니다.
그런 잘못된 가르침들이 성전에도 교회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소나 양이나 짐승의 피나 제물을 좋아하신다고 오해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를 생각하고 자기가 죽을 대신 짐승의 피를 흘린다는 제사의 본래 정신은 없어지고 하나님께서 뭐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의 손으로 잡아 드리는 짐승을 잡수시는 분으로 오해를 했습니다.
신약시대의 헌금도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교회가 교회의 일원인 성도들을 위해서 교회 안에서 한 몸 된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교회 앞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헌금은 내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나라인 교회를 위해서 사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헌금한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앞서 인용한 25절 하반 절에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무엇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생명도 호흡도 만물도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생명은 우리가 가진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것이고 호흡은 육신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살아 있는 생명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우리 육신이 숨을 쉬고 살아있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육신의 호흡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 즉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생명과 호흡을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모든 만물들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입니다. 우주나 지구나 태양이나 공기나 물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세운 공로나 선행이나 그런 것을 자랑하지 못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아무리 자랑스럽고 훌륭한 것이라고 해도 거기에 하나님을 빼버리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 가운데서 행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의 공로로 돌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삶 우리의 믿음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이방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오해를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