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1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종2)
본문 : 엡 2:8
제목 :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에베소서 강해설교를 마치고 에베소서 전체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1장의 핵심을 살펴보았습니다.
1장의 핵심어는 "찬송하리로다", "신령한 복", 그리고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언제나 실천하고 살아야 할 중요한 핵심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반 사람들이 받는 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한 복, 완전한 복을 우리가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을 더 알게 하고 예수님을 더 알게 하고 진리의 말씀을 더 잘 알게 해 주시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2장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장의 핵심어는 8절에 있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을 받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여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
기독교의 핵심이 구원이라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이 구원에 대한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기독교만이 확실하게 구원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흔히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는 사람을 건져 주는데 비유를 합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구원을 쉽게 알게 하는 비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불교는 구원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물에 사람이 떠내려가는데 보고 앉아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이고 저 사람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거나 이 생에서 남에게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저지경이 되었구나 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어떻게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서 헤쳐 나오라고 말해줍니다.
당신을 구원해 줄 신은 없으니까 스스로 신이 되라고 합니다.
불교는 석가모니가 신(神)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말합니다.
인간들이 신을 만들어서 섬겼는데 그 신들이 인간을 노예로 삼고 지배를 해 왔기 때문에 인간들이 고통 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의 횡포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가 탄생 시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즉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가장 높다 "라고 하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왜 그 동안 물에 빠지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느냐고 꾸중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저렇게 물이 빠지지 말고 바르게 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흐르는 강물에 뛰어 들어가셔서 그를 붙잡아서 끌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그렇게 떠내려가느냐
왜 헤엄칠 줄도 모르면서 왜 물에 들어갔느냐
왜 스스로 노력을 하지 않았느냐...
이런 저런 이유를 물으시거나 따지지 않으시고 무조건 가서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철학적이거나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 즉 죽음으로 멸망으로 가는 사람을 건져 주는 것을 말합니다.
1.구원 받기 이전의 모습
구원에 대해서 이해를 하려면 먼저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 모습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의 필요성조차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구원관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장 1-3절에는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전에 구원 받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1절)이라고 했습니다.
"그(죄와 허물)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의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사탄)를 따랐으니"라고 했습니다.(2절)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우연히 스스로 생겨나서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무던한 노력 끝에 스스로 진화하여 오늘날 이런 고등한 동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최고이고 인간이 어떻게 살던 간섭할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이 죄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이 남에게 빚을 지거나 죄를 짓거나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죄를 좀 짓는다고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기에 죄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만한 인간들이 스스로 높아지고 교만해져서 하는 억지 주장이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연구해서 만든 과학의 법칙으로도 이 우주가 우연히 존재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든지 우연하게 될 수 있는 세월을 벌어주기 위해서 이 우주가 수억 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억 년이 되었다고 하면 그 많은 세월동안 어떻게 우연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억 년이 아니라 수조 년이 되었다고 해도 스스로 이런 우주의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래될수록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는 것이 과학의 법칙일 뿐입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노예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를 허락해서 마음껏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사탄이 받은 저주와 함께 저주의 죽음으로 멸망으로 달려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그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하나님은 없다고 선언을 하고 하나님께 반항을 하고 하나님과 원수인 사탄을 따라 사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해서 죽음으로 멸망으로 지옥으로 달려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인생은 구원을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을 길도 없습니다
구원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엉뚱한 소리나 하면서 멸망으로 달려갈 뿐입니다.
2.구원을 받는 비결
2장 4-8절에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가 없기 위해서 먼저 말씀을 드릴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인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는 사람에게 여보시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건져줄께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먼저 건져 놓고 당신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요 라고 설명을 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1)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절 말씀에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7절에도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이라고 했습니다.
8절에도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수없이 듣지만 너무 의미가 깊어서 잘 실감이 나지 않는 말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라고 정의를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은 "구부리다, 굽히다"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허리를 굽혀 낮은 자리에 있는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구원이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혀 우리 피조물인 인생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푸셔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죽음에서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그 구원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은혜라고 할 때 이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나 고행이나 선행과 관계가 없이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거저 주셨음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은혜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은혜를 베풀 때 그 은혜를 받기 싫어합니다.
아니꼽게 남에게 도움을 받고 살기 싫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이웃에게 좋은 일 한번 해 보려고 연말연시에 쌀을 수십 가마니 마련하고 나누어주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반갑게 받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할 줄 알았는데 다 안 받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정 사정해서 억지로 받아 달라고 사정을 하고 갔다가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도 받기 싫어합니다.
내 스스로도 엄청 잘 살 수 있는데 괜히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뭐 좀 준다고 하고서 이것저것 요구하고 종처럼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2)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는 것인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그 시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서정을 우리가 배웠습니다만 그 구원의 서정에서 순서는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기도 하고 구원을 받을 자로 선택되고 예정된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제야 어떠했든지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반드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는 말은 때로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과 반대로 쓰입니다.
모든 종교들은 또 모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에는 구원이란 스스로의 노력과 고행이나 선행이나 규칙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평생을 산속에서 산다든지 수십일 수백 일을 금식을 한다든지 고아들을 불쌍히 여겨 고아원 수백 개를 짓고 전 재산을 팔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해도 그런 것을 통해서는 죄를 용서 받을 수도 없고 구원에 이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이 위대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까짓 것을 왜 우리 힘으로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구태여 십자가를 지시고 그 보혈로 씻고 어쩌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선행이나 고행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교만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불가능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믿음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누구에 의해서 생기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별 볼일이 없는 분이신데 우리가 마음이 착하고 남을 후하게 봐주기 때문에 그냥 믿어 주는 것입니까
아니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믿을 만한 그런 너그러운 사람이 아닌데 우리 예수님이 너무나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믿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너무나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누리는 혜택이 너무나 큰 것이기에
우리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닐뿐더러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교리를 배우신 분이시면 구원론(성령론)을 통해 구원의 서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다 성령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교회로 불러 주시는 것이나 내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알게 해서 죄를 회개하는 일이나 예수님을 알게 해서 믿음을 가지게 하는 일이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이르는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서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물이라고 할 때 대가가 없이 그냥 주신다는 말씀도 포함이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4)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9절 말씀에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이고 그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구원에 이르는 비결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3.구원받은 이후의 우리의 신분
2장 19절 이하에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 이후의 신분에 대해서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19절)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외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나그네나 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외국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받는 그 혜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그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때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나그네이거나 손님이 아닙니다.
나그네나 손님은 그 나라에서 살기는 살되 아무런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런 권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중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며, 많은 봉사를 하고 선한 일을 하였으나 거기에 대한 아무런 영적인 특혜도 받을 수 없는 그런 불행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 모르는 사람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선행을 많이 쌓았다고 해도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누리는 어떠한 영적인 특권도, 권리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닙니다.
불법 체류자도 아니고 집 주변에서 사성대야 하는 그런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고 그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에베소서 2장의 핵심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2장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과 구원을 받는 비결과 구원받은 이후의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믿음으로 선물로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을 받은 우리는 더 이상 외인이나 손님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본문 : 엡 2:8
제목 :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에베소서 강해설교를 마치고 에베소서 전체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1장의 핵심을 살펴보았습니다.
1장의 핵심어는 "찬송하리로다", "신령한 복", 그리고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언제나 실천하고 살아야 할 중요한 핵심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반 사람들이 받는 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원한 복, 완전한 복을 우리가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을 더 알게 하고 예수님을 더 알게 하고 진리의 말씀을 더 잘 알게 해 주시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2장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장의 핵심어는 8절에 있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을 받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여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
기독교의 핵심이 구원이라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이 구원에 대한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기독교만이 확실하게 구원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흔히 물에 빠져서 떠내려가는 사람을 건져 주는데 비유를 합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구원을 쉽게 알게 하는 비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불교는 구원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물에 사람이 떠내려가는데 보고 앉아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이고 저 사람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거나 이 생에서 남에게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저지경이 되었구나 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어떻게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서 헤쳐 나오라고 말해줍니다.
당신을 구원해 줄 신은 없으니까 스스로 신이 되라고 합니다.
불교는 석가모니가 신(神)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말합니다.
인간들이 신을 만들어서 섬겼는데 그 신들이 인간을 노예로 삼고 지배를 해 왔기 때문에 인간들이 고통 속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의 횡포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가 탄생 시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즉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가장 높다 "라고 하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유교에서는 왜 그 동안 물에 빠지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느냐고 꾸중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저렇게 물이 빠지지 말고 바르게 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흐르는 강물에 뛰어 들어가셔서 그를 붙잡아서 끌고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기에 그렇게 떠내려가느냐
왜 헤엄칠 줄도 모르면서 왜 물에 들어갔느냐
왜 스스로 노력을 하지 않았느냐...
이런 저런 이유를 물으시거나 따지지 않으시고 무조건 가서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철학적이거나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 즉 죽음으로 멸망으로 가는 사람을 건져 주는 것을 말합니다.
1.구원 받기 이전의 모습
구원에 대해서 이해를 하려면 먼저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 모습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의 필요성조차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구원관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장 1-3절에는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전에 구원 받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1절)이라고 했습니다.
"그(죄와 허물)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의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사탄)를 따랐으니"라고 했습니다.(2절)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우연히 스스로 생겨나서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무던한 노력 끝에 스스로 진화하여 오늘날 이런 고등한 동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최고이고 인간이 어떻게 살던 간섭할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이 죄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이 남에게 빚을 지거나 죄를 짓거나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죄를 좀 짓는다고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기에 죄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만한 인간들이 스스로 높아지고 교만해져서 하는 억지 주장이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연구해서 만든 과학의 법칙으로도 이 우주가 우연히 존재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든지 우연하게 될 수 있는 세월을 벌어주기 위해서 이 우주가 수억 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수억 년이 되었다고 하면 그 많은 세월동안 어떻게 우연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억 년이 아니라 수조 년이 되었다고 해도 스스로 이런 우주의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래될수록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는 것이 과학의 법칙일 뿐입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노예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를 허락해서 마음껏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사탄이 받은 저주와 함께 저주의 죽음으로 멸망으로 달려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그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하나님은 없다고 선언을 하고 하나님께 반항을 하고 하나님과 원수인 사탄을 따라 사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해서 죽음으로 멸망으로 지옥으로 달려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인생은 구원을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을 길도 없습니다
구원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엉뚱한 소리나 하면서 멸망으로 달려갈 뿐입니다.
2.구원을 받는 비결
2장 4-8절에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해가 없기 위해서 먼저 말씀을 드릴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인가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는 사람에게 여보시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건져줄께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먼저 건져 놓고 당신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요 라고 설명을 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1)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5절 말씀에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7절에도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이라고 했습니다.
8절에도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수없이 듣지만 너무 의미가 깊어서 잘 실감이 나지 않는 말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라고 정의를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은 "구부리다, 굽히다"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허리를 굽혀 낮은 자리에 있는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구원이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혀 우리 피조물인 인생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푸셔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죽음에서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그 구원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은혜라고 할 때 이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나 고행이나 선행과 관계가 없이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거저 주셨음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은혜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은혜를 베풀 때 그 은혜를 받기 싫어합니다.
아니꼽게 남에게 도움을 받고 살기 싫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이웃에게 좋은 일 한번 해 보려고 연말연시에 쌀을 수십 가마니 마련하고 나누어주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반갑게 받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할 줄 알았는데 다 안 받겠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정 사정해서 억지로 받아 달라고 사정을 하고 갔다가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도 받기 싫어합니다.
내 스스로도 엄청 잘 살 수 있는데 괜히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뭐 좀 준다고 하고서 이것저것 요구하고 종처럼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2)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는 것인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그 시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서정을 우리가 배웠습니다만 그 구원의 서정에서 순서는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순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기도 하고 구원을 받을 자로 선택되고 예정된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제야 어떠했든지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반드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는 말은 때로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과 반대로 쓰입니다.
모든 종교들은 또 모든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에는 구원이란 스스로의 노력과 고행이나 선행이나 규칙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위대한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평생을 산속에서 산다든지 수십일 수백 일을 금식을 한다든지 고아들을 불쌍히 여겨 고아원 수백 개를 짓고 전 재산을 팔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해도 그런 것을 통해서는 죄를 용서 받을 수도 없고 구원에 이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이 위대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까짓 것을 왜 우리 힘으로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구태여 십자가를 지시고 그 보혈로 씻고 어쩌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선행이나 고행이나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교만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불가능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믿음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누구에 의해서 생기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별 볼일이 없는 분이신데 우리가 마음이 착하고 남을 후하게 봐주기 때문에 그냥 믿어 주는 것입니까
아니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믿을 만한 그런 너그러운 사람이 아닌데 우리 예수님이 너무나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믿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너무나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누리는 혜택이 너무나 큰 것이기에
우리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닐뿐더러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교리를 배우신 분이시면 구원론(성령론)을 통해 구원의 서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다 성령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교회로 불러 주시는 것이나 내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알게 해서 죄를 회개하는 일이나 예수님을 알게 해서 믿음을 가지게 하는 일이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이르는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서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물이라고 할 때 대가가 없이 그냥 주신다는 말씀도 포함이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4)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9절 말씀에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이고 그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구원에 이르는 비결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3.구원받은 이후의 우리의 신분
2장 19절 이하에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난 이후의 신분에 대해서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19절)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외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나그네나 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외국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받는 그 혜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그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때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나그네이거나 손님이 아닙니다.
나그네나 손님은 그 나라에서 살기는 살되 아무런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런 권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중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며, 많은 봉사를 하고 선한 일을 하였으나 거기에 대한 아무런 영적인 특혜도 받을 수 없는 그런 불행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 모르는 사람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선행을 많이 쌓았다고 해도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누리는 어떠한 영적인 특권도, 권리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이상 외국인이 아닙니다.
불법 체류자도 아니고 집 주변에서 사성대야 하는 그런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고 그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에베소서 2장의 핵심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2장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모습과 구원을 받는 비결과 구원받은 이후의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받기 이전의 우리의 모습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믿음으로 선물로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을 받은 우리는 더 이상 외인이나 손님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