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7. 3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34)
본문 : 엡 6:24
제목 : 변함없는 사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

에베소서는 교회에 대한 교리를 다시 말하면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에 대한 진리를 짧지만 매우 세밀하게 핵심적인 것들을 잘 정리해놓은 서신입니다.
이것저것 공부할 것 없이 에베소서에 있는 내용만 바르게 숙지한다면 참된 교회,즉 참된 성도로서의 바른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년 7개월 동안 에베소서 강해설교를 하면서 오늘날의 교회가 정말 성경적인 교회인가 정말 진리 안에 바로 서 있는가 정말로 가야할 길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느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한계로 인하여 많은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에베소서에 기록된 교회의 참된 모습과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을 비교해 볼 때 너무나 상반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어떤 사람이 중심이 되어 사람이 세운 교회처럼 보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너무나 세속적이고, 너무나 상업적이고,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극심한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교회를 참된 교회로 인정을 하시는가에 대해서 성경과 현실이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시대에서 에베소서를 아주 자세하게 살펴보면서 확실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우리까지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희망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갈지라도 교회에 대한 참된 진리를 공부한 우리는 교회의 참된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강해설교 마지막 시간을 시작하면서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이 말씀들을 잊지 마시고 진리를 따라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부터 바울의 마지막 인사와 축복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형제들 즉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임하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 우리 성도들은 변함이 없는 사랑으로 우리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 주님을 변함이 없이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을 변함이 없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실 줄 믿습니다.


1.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
우리가 주님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오다가 가다가 우연히 마주쳐서 저놈 좀 잘 생겼네 저놈 좀 똑똑하네 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사랑하시기 시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 연애하다가 결혼을 했으면서도 변함없이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하는 것은 어쩌다 우연히 눈이 맞아서 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눈이 멀었었는지 좋아 보였는데 살아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어쩌다 마주쳐서 만난 부부 사이가 아니라 자식으로 낳았기 때문에 비교적 변함이 없이 사랑합니다.

여기 비교적이라는 말은 부모도 인간이지라 자식이 속을 썩이면 미워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가 모습을 갖추고 이 세상에 나기도 전에 이미 먼저 선택을 하시고 사랑을 하시기 때문에 조금도 후회하시거나 변하시지 않으십니다.
창세 전에 사랑하기로 예정을 한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이 없으심을 잘 나타내는 교리가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입니다.
성도의 견인(堅忍)이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 성도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아서 구원에 이른다는 교리입니다.

성경에는 이 성도의 견인교리를 뒷받침해주는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생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또 그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 갈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39절에도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의 뒷받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인간 스스로의 선행이나 고행이나 율법을 지킴으로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도의 견인교리를 부인합니다.

그러나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고 이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을 거두어 가시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성도의 견인교리를 부인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성도의 견인(堅忍)을 견인차(牽引車)에 많이 비교합니다.
한문으로 쓰면 틀린 말이고 그 의미하는 뜻도 틀립니다.
성도의 견인에서 견인은 굳을 견(堅)과 참을 인(忍)을 써서 굳게 서서 참고 인내함으로 끝까지 그 자리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견인차의 견인(牽引)은 문자 그대로 이끌 견 이끌 인을 써서 이끌고 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천국까지 이끌고 가신다는 점에서 이 견인차에 성도의 견인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에 견인차가 자주 옵니다.
불법주차 단속을 위해서 자주 오는데 제차도 두 번 견인을 당했습니다.
주차해서는 안될 자리에 주차를 했더니 그만 끌고 가 버렸습니다.
기분이 참 안 좋았습니다.
또 한번은 차가 고장이 나서 어쩔 수 없이 견인차를 불렀습니다.
정비소에 가서 고쳐야 되는데 꼼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견인차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인하시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불법을 행하고 있을 때 그 곳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한번 죄악에서 구원받은 의인이 죄인의 길에 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받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고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곳에서 우리를 견인해서 고쳐 주심으로 우리가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려고 하지말고 견인차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이렇게 꼼짝달싹 못하는 지경에 있습니다.
저를 이 어려움에서 이끌어 내어 주옵소서 라고 요청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여러 번 견인당하신 분들이 여기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견인을 당할 때 기분이 나쁘셨지요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을 천국까지 이끌고 가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언어로 다 설명을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변함이 없으심도 확실하게 다 설명할 언어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그 사랑은 언제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을 꼭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목회 초창기에 기도를 시작하면서 가끔 "우리를 사랑하시되 언제나 변함이 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시작을 했습니다.
그 말만 나오면 가슴이 뭉클하고 감동이 오고 눈물이 났습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그 동안 사람들에게 많이 속았고 많이 배반을 당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잘 나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반을 하고 친한 척 하다가 이권이 개입되면 하루아침에 안면을 바꾸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의 관계도 참 섭섭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주간에 목사님 은혜 받았습니다. 목사님 좋으십니다라고 해 놓고도 조금만 섭섭한 일이 있으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안녕히 계시라 하고 떠나 버리고 그나마 섭섭하다는 말이라도 하고 떠나는 사람은 좀 양반입니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날 때는 말없이 라는 노래를 좋아하는지 그냥 가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 떠나고 나면 한두 달은 제정신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다른 교회로 간다고 그것이 죄이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여기저기 다녀 보아야 좋은 것도 알고 나쁜 것도 알고 여기서 이런 장점 저기서 저런 장점 배우기도 하고 다양한 경험들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교인이 떠나는데 왜 목사가 가서 붙잡든지 사정을 하든지 안하고 내버려 두느냐고 말을 합니다. 
저는 너무나 가슴 아픈 그것 때문에 마음에 받은 상처 때문에 더 많은 상처를 받을까 봐 그냥 포기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처럼 조석으로 변하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착하게 살다가 어쩌다가 실수로 죄를 짓거나 나쁜 짓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시고 우리를 떠나 버리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천만 다행인 것은 우리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그렇게 변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 잘 했을 때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나 부자로 성공을 했을 때나 망해서 알거지 신세가 되었을 때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나 손가락질을 받을 때나 언제나 한결같이 변함이 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성도의 변함없는 사랑
하나님께서 이렇게 변함이 없이 우리를 사랑을 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좀 살기 편하고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금방 하나님 그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세로 살면 안됩니다.
때로는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우리를 그런 곤경에 빠뜨리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우리의 잘못 우리의 실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당시 최강대국인 갈대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갈대아 사람들과 싸울 능력도 무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두렵고 떨리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박국 3:17-18절에 그 노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했습니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다고 했습니다. 밭에도 소출이 없어서 먹을 양식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에는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과는 관계가 없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까지 사랑하시며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그렇게 고달픈 삶을 살 때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되는 일도 없고 살아갈수록 절망적인 상황만 앞을 가로막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변함이 없이 사랑한다고 뭐 거창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순교를 하겠습니까 전 재산을 팔아서 주님께 드리겠습니까
설령 그렇다고 하드라도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한번 더 오고, 말씀 한번 더 듣고, 찬송 한번 더 하고, 기도 한번 더 하고, 작은 착한일 한번 더 하고...

사실 그런 작은 일마저도 변함이 없이 끝까지 언제나 항상 그렇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조석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주 작은 일에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옹졸하고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한결같이 변함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연약하다는 것을 우리 주님께서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작은 충성도 하나님께서 크게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은혜가 있을지어다
에베소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은혜가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랑을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변함이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것이 뭐 대단하거나 공로가 되거나 상을 받을 만한 일은 못됩니다.

그러나 그 작은 일 그 하잘 것 없는 사랑을 공로로 인정을 해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 당연한 일을 칭찬하시고 상을 주시고 복을 주시고 영생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 대단한 일입니다.
이 바쁘고 복잡한 세상에서 주일마다 꼬박꼬박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이 모든 시간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 많은 시간 중에 한두 시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 그것도 예배를 통해서 받는 축복들을 생각하면 뭐 그리 내세울 만한 일도 자랑할만한 일도 아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선한 일로 인정을 해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마다 교회에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여러 가지 명목으로 헌금을 드리는 일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돈이 없으면 한시도 살 수 없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는 돈이 우리의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해 보면 애당초 우리의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내가 다 쓰고 조금 바치는 것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치는 작은 헌금을 보시고 귀히 여기시고 엄청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일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일까지 귀하게 여기시고 거기에 반드시 상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귀한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태초부터 영원까지 조금도 흔들리거나 변함이 없이 한결같이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생업 위에 앞날 위에 영원토록 변함이 없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