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6. 1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28)
본문 : 엡 6:18
제목 : 무시로, 깨어서, 항상 힘쓰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뭘 잘 모르고 사는 것보다는 무엇이든지 잘 알고 살아가는 것이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반대로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는 그냥 모르고 사는 것이 행복할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아는 친구 중에 머리가 참 좋은 똑똑한 친구가 한 사람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평생을 놀고먹고 삽니다.
너무나 뭘 잘 알아서 아무 것도 못합니다.
가게를 하나 하자고 하면 그것 몇 달 하다가 망할 것 뻔 한데 뭐 하려고 시작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취직을 하라고 하면 그 회사 사장이 그냥 월급 줄 것 같으냐 내가 천만 원 벌어다 주어야 겨우 일 이백 줄 텐데 내가 스스로 내 장사하고 말지 하고 취직도 안 합니다.
이것 하면 뭐가 안 좋고 저것 하면 뭐가 나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평생을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인 것은 사실이지만 때로는 모르고 사는 것도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무식하게 무엇이든지 하다가 보면 길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관한 것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안 되고 저렇게 기도하면 응답을 받지 못하고 기도에 이것 저것 제약이 많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는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고 어차피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시기 때문에 구태여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해서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를 잘 안 합니다.

그런데 기도에 대해서 뭘 잘 모르는 사람은 무조건 기도합니다.
뭐는 구하지 말라, 뭐는 구하라, 이렇게 기도하라, 저렇게 기도하라 라는 말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믿고 구하면 주신다는 말만 알고 무조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백번 좋은 일이기 때문에 그냥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에 대해서 모든 것을 잘 알고 원칙에 맞게 바르게 잘 하는 것이 좋겠지만 이것 저것 다 알고 다 깨달으려면 오래 걸리니까 기도에서 만큼은 무식하게 열심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많이 한다고 손해 볼 것이 없는 것이니까 무식하게 틈만 나면 열심히 기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좀 틀리고 부족해도 무조건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는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응답받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는 응답 받는 것뿐만 아니라 기도함으로 우리가 얻는 너무나 좋은 것들이 많은 것이기 때문에 많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기도의 그런 특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무시로 시간도 없이 때도 없이 언제나 수시로 무시로 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기도는 늘 깨어서 항상 기도하고 힘써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설교 제목처럼 무시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깨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1.무시로 기도하라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무시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무시로라는 말은 언제든지 항상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성령님을 받지 못한 사람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찾아가서 기도를 드려야 될 것입니다. 
교회당으로 가든지 기도원으로 가든지 깊은 산속 수도원으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계실만한 곳을 찾아가서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과 동행하는 우리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라도 수시로 무시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무시로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아주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입니다.
모든 날에, 매 시간에,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어느 계절이든지, 어느 기간이든지, 어느 세월, 어느 시대든지, 항상, 무릇....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황은 전혀 없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화가 날 때나 평온할 때나 성공을 했을 때나 실패를 했을 때나 무엇을 시작할 때나 마칠 때나 잠시 멈출 때나 진행 중인 때나 일을 할 때나 휴식을 취할 때나 그 어느 순간 그 어느 상황이든지 다 기도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1)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시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고 여쭈어 보고 시작을 해야 합니다.
사사건건 날마다 하나님께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큰일을 할 때는 당연히 하나님께 먼저 기도해 보고 시작을 하시겠지만 작은 일들도 하나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쉴 틈이 없이 무시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2)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시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느끼는 감정대로, 경험대로 하면 안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습관대로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도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5:7절에 말씀을 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늘 무시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을 미리 정해 주시고 그 계획 속에서 그 계획을 이루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계획을 이루면서 사는 일이 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4)언제나 어디서나 기도하게 하는 일 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기도하게 하는 것이 참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시로 언제 어디서나 기도를 해야 할 이유는 끝이 없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언제나 무슨 일이나 늘 항상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회에 설교도 잘하고 목회도 잘하셔서 존경을 받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기사는 난폭운전자였습니다. 
너무나 차를 난폭하게 몰아서 사람들이 ‘저 사람은 분명히 지옥에 갈거야’라고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갔더니 그 난폭운전사가 천국에 와서 목사님 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잘 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억울해서 따졌습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데 저 난폭한 운전기사보다 못한 대우를 해 주십니까?"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거기 있던 어떤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설교할 때마다 사람들을 기도하게 하기보다는 잠들게 했는데 저 운전 기사는 운전을 할 때마다 사람들을 기도를 시켰잖아요 저 사람이 운전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심으로 살려 달라고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은 없겠지만 한가지 기억할 일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일 기도하게 하는 일 그보다 더 귀한 일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언제나 어디서나 수시로 무시로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깨어서 기도하라.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깨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이 말은 잠자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해석을 해서 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교회에 와서 밤새워서 기도하다가 조금 자다가 또 일을 할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금요기도회도 철야기도회라고 해서 밤새도록 기도하곤 했습니다.

물론 잠잘 것 다 자고 언제 기도하겠습니까 바쁜 세상에 잠잘 시간 쪼개서 기도하는 것이 참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잠을 자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잠을 자라고 깜깜한 밤을 주셨으니까 그 깜깜한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어떤 집사님은 깨어서 기도한다고 밤새 교회에 가서 기도한 다음 낮에는 집에 와서 실컷 잡니다.
밤에는 잠을 자고 낮에 깨었을 때 기도하고 그것이 더 성경적인지 모릅니다.

본문에서 깨어서라고 하는 말은 정신을 차리고 경성하여 라는 뜻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잠시만 방심을 하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방심하지 말고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언제나 경성하여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일은 좀 소홀히 하기도 하고 내일로 미루기도 하고 조금은 생략하기도 하면서 살아도 상관이 없겠지만 기도하는 이 일 만큼은 소홀히 하거나 미루거나 생략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을 쉽게 보아 넘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따르지 못할 여러 가지의 방해공작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너무나 편하게 재미있게 잘살게 되든지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세상이 되든지 이상한 종교가 생겨서 우리를 미혹하든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핬던 변수가 생겨서 우리의 신앙이 연약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대비하고 철저히 경계하지 않으면 이 복음을 빼앗기고 마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경계를 늦추지 말고 긴장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기도는 옛날처럼 뜨겁지가 못합니다.
옛날엔 참 열심히들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회개할 일이 많았던지 교회에 가면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요즘에는 우는 사람도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외형적이거나 감정적인 일을 가지고 실망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그렇게 우리 일은 없어도 그렇게 뜨겁지는 않아도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불평을 합니다.
목사님 전에는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요즘은 뜨겁지가 않습니까 기도가 뜨겁지가 않으니까 재미가 없습니다.

목사님께서 그 때 마침 부글부글 끓고 있는 주전자의 물을 컵에 부으시면서 그 성도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도가 하는 말이 목사님 좀 식어야 먹지요 이렇게 뜨거운 것을 어떻게 먹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물도 끓을 때는 먹지 못하고 좀 식었을 때 먹는 것처럼 기도도 뜨거울 그 때보다는 조금 식은 후에 진짜가 됩니다.

초신자 때 기도는 펄펄 끓는 기도를 하지만 성숙해지면 좀 뜨겁지는 않지만 정말로 기도다운 기도가 되는 법이라는 것입니다.

눈물이 안 나온다 가슴이 뜨겁지 않다 큰소리로 힘있게 기도하지 못한다 이런 것에 마음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긴장하고 경성하고 깨어서 정신 차리고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3.기도하기를 항상 힘쓰라
무시로 기도하고 깨어서 기도하고 그리고 항상 힘써서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항상 힘쓰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스칼테레시스(προσκαρτερησιs)"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확고부동, 불변, 인내, 계속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기도할 때에 이렇게 변함이 없이 인내하면서 끝까지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절 이하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 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표준 새번역에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응답을 받을 때까지 떼를 쓰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이해를 합니다.
그보다도 이 비유는 우리가 기도할 때 인내하면서 끝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어서 실망하고 낙망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이 비유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억울한 사람의 사정을 들어주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이 우리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거나 아직 시기가 이르거나 우리가 잘 못 구하여 들어주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은 편이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이미 기도는 다 들어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끊임이 없이 계속해서 기도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힘쓰지 않으면 계속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맨날 하고 싶어서 기쁨으로 기도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마음은 스스로 분주해져서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보통 마음으로는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힘쓰고 애를 써서 기도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도를 계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제대로 배워서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기 방법이 틀린다고 해도 우리에게 더 유익을 주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무시로 수시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함상 기도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기도로서만 죄에서 구원되고 유혹을 이길 수 있으며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기도로서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쁘게 일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없는 그리스도인은 생명없는 신자입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절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