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4. 3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21)
본문 : 엡 6:17
제목 : 예언의 말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계22:7) 

미국의 한 대학의 철학교수가(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 Dr.Hugh Moorhead) 세계의 저명한 철학자 작가 그리고 학자 250명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 유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라면 삶의 의미정도는 명쾌하게 대답을 해 줄 줄 알았는데 정말 실망스러운 대답들을 보내 왔더라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나름대로 확신에 찬 대답을 보내 왔지만 어떤 사람들은 솔직히 삶의 목적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대답을 했고 어떤 사람은 혹시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에게 알려 달라고 요청을 한 사람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삶의 의미나 삶의 목적을 뚜렷하게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인생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우리가 가고 있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나이 40이나 50이 되어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그것이 심하면 정신병원에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젊어서는 바쁘게 사느라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좀 할일 다 해 놓고 보니 내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해야 되는 것이다 결혼하면 좋다라고 해서 결혼을 해서 그냥 살았는데 이제 보니 부부라는 것도 맨날 미워하기나 하고 싸우기나 하고 아이고 저 웬수 때문에 내 청춘 다 망쳤다고 원망이나 하면서 삽니다.
자식을 낳아서 키우면 좋다고 해서 열심히 키웠는데 자식이라는 것들이 툭 하면 이렇게 키우려면 면 왜 나를 낳았어라고 원망을 합니다.

돈 좀 벌면 행복해질 줄 알고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빚만 지고 앉았고 몇푼 벌었다고 해도 그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어서 웬만한 돈 가지고는 양이 차지를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부자 소리 들으려면 최소한 70억이나 80억쯤은 가져야 된다는데 그런 돈을 버는 게 그리 쉽습니까
이제 나이들어서 천덕꾸러기나 되어야 하고 눈치나 보며 살아야 할 신세를 생각하면 우울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삶의 뚜렷한 이유와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뚜렷한 임무와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압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운이 좋으면 좀 잘살고 재수없으면 고생만 하다가 죽고 나면 흙으로 돌아가 버리는 허무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을 하신 그 계획에 따라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사명을 완수하고 하나님께서 미리 마련해 두신 영원한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삶의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그런 삶의 목적은 주님 다시 오실 때 영원한 나라로 입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뚜렷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강한 용사가 되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1.예언의 말씀
오늘 우리가 생각할 주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늘 함께 인용한 요한계시록 22:7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예언의 말씀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이 직 간접적으로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많이 라고 하기보다는 사실은 모든 구약이 말씀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그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고 오셔서 하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22:7절에서 예언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조금 축소해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들은 이미 다 이루어졌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일,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일과 그 때에 되어질 일들을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이기 때문입니다.

1)주님이 속히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들은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부활에 관한 약속도 그대로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대신 보내 주신다는 약속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승천하신지 20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약속의 말씀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시의 사람들도 '속히'라는 말에 오늘내일 바로 오실 것으로 생각을 해서 더러는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 약속에 대해서 불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속히 라는 말씀을 시간의 개념보다는 분명히 확실히 꼭 오신다는 강조의 표현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날 동안은 늘 내일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으로 알고 경각심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9,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년을 하루같이 참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와서 구원을 받도록 기다리고 계시지만 그 일이 다 이루어지는 날에는 아주 갑자기 빨리 속히 도적같이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언제까지 계획되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면 그 때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늘 준비하고 사는 사람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지만 준비하지 않고 살던 사람은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엉겁결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2)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2절에 보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고 십자가에 못을 박았던 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오시는 모습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을 믿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 대로 죄값을 치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주님을 위해 흘린 눈물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주님 나라를 위해 땀 흘려 일한 그 충성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을 것입니다.
잘못한 것은 생각도 하지 않으시고 다 이미 용서를 하셨고 잘한 것만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내가 땀 흘린 만큼 평가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낙심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보상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요 우리가 흘린 그 땀에 그 수고에 비교할 수도 없는 너무나 귀하고 복된 것입니다.
영생의 면류관이요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것으로 묘사될 수 있는 너무나 귀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가 복이 있다.
사도 요한은 이 계시록의 말씀을 기록하기 시작을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계1:3)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말씀 특별히 이런 약속의 말씀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어디든지 많이 읽으면 좋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무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좀 더 중요하게 여기고 읽어야 할 대목을 말하라고 하면 현재의 일 보다는 장래의 일 영원한 나라의 일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야 할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고 듣는 것은 이렇게 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듣는 설교를 말합니다.

설교를 잘 듣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여러분 귀가 따갑도록 들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경험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강조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듣지 않는 사람은 아예 오지 않는 사람보다야 낫겠지만 오나마나 한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데 세상에 나가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이나 하고 살겠느냐는 것입니다. 
설교를 잘 듣는 사람도 교회 문만 나가면 잊어버리고 마음대로 사는데 아예 듣지도 않는 사람이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듣기가 싫을 때도 있겠지만 들으십시오
때로는 오늘 저 말씀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들으십시오
듣다가 듣다가 보면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여러분의 삶에 말씀으로 젖어 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만 한다면 정말 인생을 바르게 보람있게 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가운데 예언의 말씀 즉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 복음에 대해서 잘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의 삶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려고 사람들을 어떻게 하든지 불러 모으려고 세상 이야기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복된 삶만 주장을 하니까 그 교회에 다니면 잘 살 것 같고 우리같은 교회에 오는 사람은 늘 가난할 것 같고 하니까 그 쪽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을 뵙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천국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복이 있는 사람이었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예언의 말씀 장래에 될 일에 대한 약속의 말씀에 관심을 많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그 나라를 대비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앞서 인용한 계시록 1장 3절의 말씀에, 또 오늘 함께 인용한 본문 계시록 22:7절 말씀에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지킨다는 말은 실천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 말씀을 변질되지 않도록 없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이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록해서 남겨 주신 이 성경말씀 외에 다른 말씀을 가져다가 붙이거나 또 어떤 특정한 말씀을 없애고 전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십자가의 복음 외에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을 섞어서 전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는 말씀들을 스스로 깨달았다고 또 산에 가서 계시를 받았다고 지껄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혹시 옛날에 무당이나 점쟁이한테 가 보신 분 계십니까
가보면 뭘 자기가 엄청난 것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 집에 액운이 들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래 그런 것을 아니까 내가 도사다....

알기는 뭘 압니까 거기 찾아오는 사람치고 근심걱정 없어서 오는 사람이 있습니까 대강 보고 말 몇 마디 시켜 보면 적당히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 가지고 깜박해서 돈 빼앗기고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교회에도 그런 무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말로 예언을 한다거나 영원한 세계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삶에 관한 예언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개를 돌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언이라고 할 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개인의 일을 미리 알려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이 예언이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믿는 자들이 받을 상급에 대한 말씀이 예언이라고 하는 것임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예언의 말씀에다가 무엇을 보태는 사람도 벌을 받지만 이 예언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을 빼는 사람도 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보통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면서 자신은 성경의 말씀만 설교를 한다고 자랑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설교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이 예언의 말씀을 주제로 설교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른 설교가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핵심은 빼먹고 세상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진정한 목사가 아닙니다.
사소한 것을 빼는 것도 잘못인데 하물며 성경의 핵심을 빼먹고 다른 설교만 강조를 한다면 그 사람이 많은 사람을 모으고 인기가 있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참된 목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이 예언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계시록의 마지막부분인 22:20절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잘 쓰는 인사말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말을 당시의 사람들이 쓰던 아람어로 "마라나 다"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서로 만나면 "마라나 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너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지 않고 먹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 인사가 무엇이었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라는 인사가 최고의 인사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날마다 고대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만나서 하는 인사가 "마라나 다"였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가 그들의 인사였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우리도 늘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면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자세로 사는 것이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이 세상에 소망을 걸고 이 세상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삶이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고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삶이 힘이 들고 가난하여서 고통을 당하십니까
그러나 그것이 복입니다 언제라도 "마라나 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걱정되는 일이 많고 근심되는 일이 많고 눈물 흘릴 일이 많은 사람일수록 "마라나 다"를 외치며 살 수 있기 때문에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의 눈에 눈물을 씻기시고 우리의 억울함과 우리의 수고들을 갚아 주실 것입니다.
다시는 늙고 병들고 죽을 일도 헤어질 일도 근심걱정을 할 일도 눈물을 흘릴 일도 없는 완전한 나라 기쁨의 나라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지키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마라나 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늘 용솟음치시기 바랍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여러분의 강력한 무기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