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3. 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113)
본문 : 엡 6:14
제목 : 의의 흉배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세상에는 흙이나 돌같이 별로 가치가 없는 것들이 있고 금이나 은같은 가치가 아주 높은 것들도 있습니다.
같은 금이나 은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쓰여지는 용도에 따라서 가치가 틀려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등동물들에 비하면 정말로 가치있는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고 어리석게 가치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은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성도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고 무가치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말씀의 주제는 "의의 흉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무기로 주셨는데 그 두 번째가 의의 흉배라는 것입니다.
제가 서론으로 가치있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의의 흉배와 가치있는 삶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미리 가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의의 흉배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하시어서 능력있고 강한 용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의 흉배
"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치의 표시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이신칭의"가 진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의인이라고 인정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인으로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서글픈 인생이요 가치없는 인생이었는데 이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우리의 가치는 의인이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의의 흉배란 이런 귀한 신분의 가치를 바르게 알고 가치가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 의인으로서의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흉배란 앞가슴을 막는 갑옷을 말합니다.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이 심장이 있는 가슴일 것입니다.
그래서 팔이나 다리부분 보다 이 가슴부분을 잘 방어해야 합니다.
또 이 가슴부분은 마음이나 양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지키고 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흉배"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것이 "의"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의로운 사람임을 알고 의롭게 사는 것이 우리가 사탄의 궤계를 이기고 승리하는 강한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의인이라는 신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선택을 해 주셨습니다.
창세 전에 미리 예정을 하고 선택을 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면서 의로운 사람이라는 칭호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의 의와 상관이 없이 이렇게 귀한 신분을 주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신 것이 참으로 소중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삽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요 선한 사람이요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존경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의로움이나 가치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우리를 욕하고 흉을 본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너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해 주신다면 그것이 가치가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우리가 입어야 할 의의 흉배
본문에 나오는 "의"를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는 앞서 말씀을 드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여하신 의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의로 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의가 아니라 우리가 행하여야 할 의로운 삶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다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행하여야 할 의라고 해석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의와 연관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의로운 삶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하는 의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의 즉 믿음과 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셨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의로운 삶을 살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면서 그 삶 때문에 우리가 의로워진다고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죄를 지으면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
선한 일 조금 해 놓고 그것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 것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실제로 그 가치에 걸맞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면 의로운 삶을 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킬 때 주의할 것은 율법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지켜야 합니다.
성경전체를 바르게 알고 해석을 하여야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율법도 율법 전체가 말씀하고 있는 주제를 바르게 알고 그 주제에 맞추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전체의 뜻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태복음 22장 34절 이하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 중 어느 율법이 큰 율법인가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율법 전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모든 법들의 대 주제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형식적이요 가식적이요 자기의 의를 스스로 나타내고 싶은 마음에서 자기를 자랑하는 마음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드리고 하는 것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감격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랑삼아 자기 의로 여기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공인해 주신 의인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못난 사람이요 죄인이라고 인정을 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 의를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랑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예배는 인간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일이 많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자리에 놓고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을 모으고 힘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예배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눈을 지긋이 감고 팔짱을 끼고 꾸벅꾸벅 졸면서 재미가 있느니 없느니 타령하는 그런 인간중심의 자기중심의 예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 예배를 드리다가 보니까 이제 타성에 젖어서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릴 때가 참 많습니다.
찬송을 부르는데도 너무나 잘 아는 찬송이니까 그 가사의 의미는 생각도 없이 그냥 부릅니다.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이나 너무나 많이 외우다가 보니까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생각도 없이 그냥 줄줄줄 외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 타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 찬송도 바꾸어 보고 순서도 바꾸어 보고 뭔가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서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려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니까 악기도 동원을 해 보고 춤도 추게 해 보고 일어나게도 해보고 손도 들게 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교회는 외국의 교회들과 달리 많은 횟수의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오후, 수요일 저녁, 금요일 낮에는 구역예배 밤에는 기도회...
새벽마다 또 어떤 교회는 매일저녁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타성에 젖어서 의미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나 기도는 그것이 얼마나 많이 드렸느냐 얼마나 자주 드렸느냐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형식적인 예배 마음이 없는 예배 마지못해 억지로 드리는 예배는 수천 번을 드린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의를 내세우려 한다면 오히려 드리지 않은 것만 못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중요한 심장과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강한 용사가 되는 길입니다.
2)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의로운 사람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신분에 맞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면서 율법의 핵심적인 요소인 이웃사랑을 배제합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가지고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십계명의 인간관계에 관한 계명들은 다 이웃사랑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해도 얼마나 하겠습니까
이웃을 위해 우리 목숨을 내어 주겠습니까 우리 전 재산을 팔아서 주겠습니까
그저 남은 시간 남은 물질 조금 나누어주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의를 실천하는 것이요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어서 강한 용사가 되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좋은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공부에 앞서 봉사를 많이 권장하고 있습니다.
봉사를 많이 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합격을 시키고 일정시간 봉사를 한 사람에게 졸업을 할 자격을 줍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지 성경을 아는지는 몰라도 우리 하나님의 법칙을 눈치를 챈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강한 용사가 된다는 것을 그들이 눈치를 채고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율법을 지킨다는 우리가 의롭게 산다는 우리가 그것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위하여 봉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요 우리가 새 힘을 얻어서 강한 용사가 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가 건물이 없고 교인이 많지 않고 목사가 별로 유명한 목사가 아니라고 시시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최고의 교회로 향하여 나아가는 참으로 멋있는 교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 눈에야 시시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의 평가 기준으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의가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신이 지닌 가치를 바로 알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여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자로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인으로서 바른 삶을 살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의인으로서 바른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예배 탕성에 젖은 예배를 타파하고 정말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 함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게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나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은 죄인이었음을 고백하게 하고 어린아이처럼 두 손을 들고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그런 예배를 드리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이웃사랑 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무엇인가를 이웃을 위해서 실천하는 교회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복지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작은 것이지만 실제로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들이 우리교회처럼 알차게 쓰이는 교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목사가 사례를 받아도 저 자신을 위해서 쓰는 돈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교회를 위해서 복지를 위해서 재 투자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선교헌금은 별로 많지 않지만 그 작은 금액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는 이웃사랑헌금이 비록 작은 금액이지만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런 가치 있는 교회의 주인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 자신이 가진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날마다 깨달으시고 가치있는 신분에 걸맞는 가치 있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 엡 6:14
제목 : 의의 흉배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세상에는 흙이나 돌같이 별로 가치가 없는 것들이 있고 금이나 은같은 가치가 아주 높은 것들도 있습니다.
같은 금이나 은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쓰여지는 용도에 따라서 가치가 틀려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등동물들에 비하면 정말로 가치있는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고 어리석게 가치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은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성도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고 무가치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말씀의 주제는 "의의 흉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무기로 주셨는데 그 두 번째가 의의 흉배라는 것입니다.
제가 서론으로 가치있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의의 흉배와 가치있는 삶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미리 가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의의 흉배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하시어서 능력있고 강한 용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의 흉배
"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치의 표시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이신칭의"가 진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의인이라고 인정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인으로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서글픈 인생이요 가치없는 인생이었는데 이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우리의 가치는 의인이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의의 흉배란 이런 귀한 신분의 가치를 바르게 알고 가치가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 의인으로서의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흉배란 앞가슴을 막는 갑옷을 말합니다.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이 심장이 있는 가슴일 것입니다.
그래서 팔이나 다리부분 보다 이 가슴부분을 잘 방어해야 합니다.
또 이 가슴부분은 마음이나 양심을 상징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지키고 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흉배"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것이 "의"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의로운 사람임을 알고 의롭게 사는 것이 우리가 사탄의 궤계를 이기고 승리하는 강한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의인이라는 신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선택을 해 주셨습니다.
창세 전에 미리 예정을 하고 선택을 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면서 의로운 사람이라는 칭호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의 의와 상관이 없이 이렇게 귀한 신분을 주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신 것이 참으로 소중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삽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요 선한 사람이요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존경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의로움이나 가치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우리를 욕하고 흉을 본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너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해 주신다면 그것이 가치가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우리가 입어야 할 의의 흉배
본문에 나오는 "의"를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는 앞서 말씀을 드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여하신 의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의로 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의가 아니라 우리가 행하여야 할 의로운 삶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다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행하여야 할 의라고 해석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의와 연관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의로운 삶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하는 의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의 즉 믿음과 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셨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의로운 삶을 살려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면서 그 삶 때문에 우리가 의로워진다고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죄를 지으면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
선한 일 조금 해 놓고 그것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 것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실제로 그 가치에 걸맞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면 의로운 삶을 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킬 때 주의할 것은 율법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지켜야 합니다.
성경전체를 바르게 알고 해석을 하여야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율법도 율법 전체가 말씀하고 있는 주제를 바르게 알고 그 주제에 맞추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전체의 뜻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태복음 22장 34절 이하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 중 어느 율법이 큰 율법인가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율법 전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모든 법들의 대 주제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형식적이요 가식적이요 자기의 의를 스스로 나타내고 싶은 마음에서 자기를 자랑하는 마음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드리고 하는 것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감격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랑삼아 자기 의로 여기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공인해 주신 의인입니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못난 사람이요 죄인이라고 인정을 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 의를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랑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예배는 인간이 중심이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일이 많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자리에 놓고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을 모으고 힘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예배는 편안한 자리에 앉아서 눈을 지긋이 감고 팔짱을 끼고 꾸벅꾸벅 졸면서 재미가 있느니 없느니 타령하는 그런 인간중심의 자기중심의 예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 예배를 드리다가 보니까 이제 타성에 젖어서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릴 때가 참 많습니다.
찬송을 부르는데도 너무나 잘 아는 찬송이니까 그 가사의 의미는 생각도 없이 그냥 부릅니다.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이나 너무나 많이 외우다가 보니까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생각도 없이 그냥 줄줄줄 외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 타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 찬송도 바꾸어 보고 순서도 바꾸어 보고 뭔가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서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 하려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니까 악기도 동원을 해 보고 춤도 추게 해 보고 일어나게도 해보고 손도 들게 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교회는 외국의 교회들과 달리 많은 횟수의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오후, 수요일 저녁, 금요일 낮에는 구역예배 밤에는 기도회...
새벽마다 또 어떤 교회는 매일저녁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타성에 젖어서 의미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나 기도는 그것이 얼마나 많이 드렸느냐 얼마나 자주 드렸느냐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형식적인 예배 마음이 없는 예배 마지못해 억지로 드리는 예배는 수천 번을 드린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의를 내세우려 한다면 오히려 드리지 않은 것만 못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중요한 심장과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강한 용사가 되는 길입니다.
2)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의로운 사람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신분에 맞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면서 율법의 핵심적인 요소인 이웃사랑을 배제합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가지고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십계명의 인간관계에 관한 계명들은 다 이웃사랑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해도 얼마나 하겠습니까
이웃을 위해 우리 목숨을 내어 주겠습니까 우리 전 재산을 팔아서 주겠습니까
그저 남은 시간 남은 물질 조금 나누어주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의를 실천하는 것이요 율법을 실천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어서 강한 용사가 되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좋은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공부에 앞서 봉사를 많이 권장하고 있습니다.
봉사를 많이 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합격을 시키고 일정시간 봉사를 한 사람에게 졸업을 할 자격을 줍니다.
왜 그럴까요 그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지 성경을 아는지는 몰라도 우리 하나님의 법칙을 눈치를 챈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강한 용사가 된다는 것을 그들이 눈치를 채고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우리가 율법을 지킨다는 우리가 의롭게 산다는 우리가 그것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위하여 봉사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요 우리가 새 힘을 얻어서 강한 용사가 되게 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가 건물이 없고 교인이 많지 않고 목사가 별로 유명한 목사가 아니라고 시시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최고의 교회로 향하여 나아가는 참으로 멋있는 교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 눈에야 시시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의 평가 기준으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의가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신이 지닌 가치를 바로 알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여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자로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인으로서 바른 삶을 살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의인으로서 바른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예배 탕성에 젖은 예배를 타파하고 정말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게 함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게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나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은 죄인이었음을 고백하게 하고 어린아이처럼 두 손을 들고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그런 예배를 드리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이웃사랑 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무엇인가를 이웃을 위해서 실천하는 교회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이 복지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작은 것이지만 실제로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들이 우리교회처럼 알차게 쓰이는 교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목사가 사례를 받아도 저 자신을 위해서 쓰는 돈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교회를 위해서 복지를 위해서 재 투자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선교헌금은 별로 많지 않지만 그 작은 금액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는 이웃사랑헌금이 비록 작은 금액이지만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런 가치 있는 교회의 주인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내 자신이 가진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날마다 깨달으시고 가치있는 신분에 걸맞는 가치 있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