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0. 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93)
본문 : 엡 5:18
제목 :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2.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교회가 하는 일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전파하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와 온 유다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교회의 임무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 전도를 하여 성도들이 많아짐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외적인 숫자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 나가서 이 세상을 정복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기독교인이 1200만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숫자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그저 교회에서만 교인노릇을 하고 세상에 나가서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정복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성도들이 있음에도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전파되어지지도 확장되지도 않은 채로 답보상태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라는 말도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성령 충만하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뜻대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았다는 사람도 교회 내에서는 성령충만을 외치고 있지만 세상에 나가서 살 때는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령충만을 바르게 이해하고 모든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아서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살고 이 세상도 성령충만으로 정복해 나가는 것이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본문 말씀으로 성령 충만함을 술 취함과 비교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마치 술 취함과 비슷해 보이지만 현저하게 다른 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술 취함은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혼란하게 만들지만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각성시키시고 지혜를 주시고 힘과 용기를 가지고 살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성령충만함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오셔서 무엇을 하시는 분이신지를 바르게 앎으로서 성령 충만함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1.보혜사이신 성령 하나님.
성령님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성령님에 대해서 소개하신 말씀을 들으면 좀더 확실하게 좀 더 바르게 이해를 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물론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직접 전하신 말씀이 더 정확하고 더 이해가 빠른 말씀이라고 해도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과 16장에 예수님께서 직접 성령님이 누구신지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미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에 예수님께서 보내 주실 성령님에 관한 약속을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혜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파라글레토스(παρακλητοs)라는 말인데 이 말의 뜻은 "남을 돕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자" 변호사, 중재자, 협조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곁에서 격려하고 권고하고 변호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보혜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 주신 보혜사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일을 다 수행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로 보혜사 역할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임무를 다 수행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 주시도록 성부 하나님께 요구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똑 같은 또 다른 보혜사 그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에 대해서 생각할 때 제일 먼저 아실 것은 그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위가 계시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시는 사실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예수님), 성령 하나님 이 세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 세분이 하나이십니다. 
우리말로는 일체 즉 한 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한 몸이 아니라 한 본질이라고 합니다.
세 분이면서 하나이신, 한 본질이신 그 하나님- 삼위 일체가 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그 삼위 하나님 중의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성령을 받아라, 성령 충만해라 라고 하니까 혹 어떤 사람들은 성령님이 어떤 물건이거나 어떤 능력정도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령님을 받고 성령님이 충만하면 이상한 힘이 생기고 기적을 발휘하고 신비한 삶을 사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받아라"는 말은 물건처럼 받으라는 말이 아니고 마음에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시는데 그 성령님을 마음 깊이 받아 모시고 살라는 것입니다. 
"충만하라"는 말도 물을 붓는 것처럼 가득 채우라는 말이 아니라 마음속에 전적으로 그 성령님을 생각하고 그 뜻을 살피며 그 도우심을 의지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늘 그 사람만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그 사람과 잘 지낼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게 잘 보일 것인가 온통 마음에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을 늘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하고 그 사람의 뜻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려고 하는 이런 마음이 그 사람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도 그런 이치입니다.
우리 속에 와 계신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살려고 하는 그 마음이 충만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2.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성령 충만함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성령충만을 받으려는 사람은 엉뚱한 길로 가기가 쉽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님께서 사람들에게 임하실 때 나타난 특별한 현상들이 많이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령님 하면 아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시는 능력으로만 기억을 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받아서 이상한 말을 하고 병을 고치기도 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하는 그런 일을 하려고 합니다.

성령님께서 처음 우리 가운데 임하실 때 그런 신비한 기적들이 일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임하시는데 그런 기적정도 일어난다는 것이 그렇게 놀라울 일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더 많은 기적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온갖 병들이 다 낫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바람과 파도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고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세어서 5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는다 라고 하면 예수님을 따라서 그런 기적들을 일으켜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나 성령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우리도 그렇게 기적을 일으키시면서 살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심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믿게 하시기 위해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처음 이 세상에 임하실 때도 사람들이 어떻게 그 성령님의 임하심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도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나 하셨지 성령님은 눈에 보기이도 않는 영으로 오셨기 때문에 더더욱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득불 하신 일이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신비한 기적을 동반해서 성령님의 강림하심을 인간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도무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성령님의 임하심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 신비한 기적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신비한 기적이 성령님의 임하심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 예수님께서 성령님께서 오시는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3-14)"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의 충만함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바르게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알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책망하신다는 말은 밝히 드러내신다는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면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바르게 알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가 얼마나 죄가 많은지를 깨달아 알게 해 주십니다.
구원론(성령론)을 공부하신 분이시면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미 다 배우셨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성부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완성해 놓으신 그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 일을 "구원의 서정"이라는 공부를 통해서 이미 배우셨습니다.
구원의 서정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나가시는 순서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 구원의 순서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일이 한두 번으로 끝이 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보고 내 마음대로 살았던 죄를 크게 깨닫는 것은 일생에 한번이겠지만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매일 매일 회개를 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늘 마음에 자신이 죄임임을 깨닫는 것이고 늘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하고 겸손한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성령님의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령 충만함을 빙자해서 오히려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교만해지고 거만해지고 자신이 죄인이 아닌 거룩한 사람으로 위선적인 모습을 하고 삽니다.

의에 대해서라고 하면 여러분은 금방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 시대 때의 서기관들 보다 바리새인들 보다 더 하나님을 잘 서기고 율법을 잘 지키십니까
그들처럼 철저하게 하나님의 법을 따라서 사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의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얼른 로마서 3장으로 돌아가 보시면 그 의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1-22)

성령님께서 의에 대해서 밝히 드러낸다고 하셨는데 그 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의롭게 사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자신의 부족한가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베풀어 주신 그 은혜에 믿음으로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해서도 알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이 그저 사는 것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내 마음대로 무책임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셔서 책임 있는 삶을 살게 하시고 더 나아가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오시면 진리에 대해서 알게 하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진리는 예수님에 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늘나라의 복음을 알게 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알게 해 주시고 예수님의 복음을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시는 것이 성령님의 임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은 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진리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소위 성령 충만하다는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무시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무시하고 성령 충만을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마태복음 5장에서 시작되는 산상보훈의 말씀일 것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은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고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축복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애통함으로 회개하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온유함으로 대하고 긍휼히 여기며 사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청결한 마음으로 화평케 하는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더 성령충만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어 주신 그 사랑을 가슴 가득히 기억하고 사는 삶, 그 사랑에 감사하며 감격하며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예수님 그분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가 영광을 돌려야 할 유일한 분이심을 마음 가득히 생각하며 사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충만합니까.
세상적인 욕망입니까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가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소망이 
여러분 마음에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함을 받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