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9. 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88)
본문 : 엡 5:13-14
제목 : 잠자는 자여 깨어서 일어나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
저는 지난 주간에 비교적 좀 다양한 교파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늘 같은 신학을 공부하고 같은 색깔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목사님들만 만났는데 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같은 믿음이고 똑같은 성경말씀을 가지고 똑같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나가는 사람들이지만 그 신앙의 색깔들은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단이 아닌 이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은 다 옳다고 인정을 합니다.
물론 교회라는 간판을 걸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보다 자신들의 선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사람들은 다행하게도 이 이신칭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아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우리의 삶이 아주 현저하게 뚜렷하게 달라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 하고 헌금이나 좀 하고 그런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도들과 더 친밀하게 하나가 되고 한 가족처럼 언제나 모든 일을 함께 나누고 그 공동체를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을 해야 아 이 사람이 믿음을 가졌구나 하고 인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각오를 가질 때 그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 참 훌륭한 목사님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받는 그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받는 그 은혜가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고 아름다운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신앙을 가진 우리 성도들의 삶이 시시하게 대강 적당히 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면 남다른 체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다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실 때는 일상에서 체험하지 못한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방언을 한다거나 신비한 기적을 체험한다거나 어떤 육체적 이상기운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을 체험할 때 성령님께서 나에게 오셔서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것을 통해서 아 내가 성도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전지 전능하심으로 못 하실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나에게 오셔서 역사를 하실 때 그런 정도의 변화들이 느낌을 갖게 하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일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오신 흔적을 남기시려고 한다면 방언이나 신유나 엄청난 기적이라도 능히 하실 수 있는 분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 흔적들을 발견하고 나와 함께 계시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살자고 하는데 전혀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두 생각을 가진 목사님들과 여러분의 목사인 제가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같은 점은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서로가 공감하는 바입니다.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앞에서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목사님과 또 신앙생활의 어떤 신비한 체험을 강조하는 목사님과 제가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앞서 말씀 드린 두 목사님의 경우 인간의 경험이나 행함을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면 적어도 우리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 할 수 있는 그런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영적인 체험을 했느냐가 믿음을 가진 자이냐 그렇지 않느냐를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말하면서 그 믿음의 확실성에 대해서 말하면서 인간의 행함과 인간의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아무런 느낌도 없이 맹숭맹숭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희미하게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강조합니까
그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강조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도 창세 전에 미리 나라는 인간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나에게 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내가 못난 것을 이미 아시고, 내가 죄지을 줄도 벌써 아시고,
내가 출세도 못하고 빌빌 거리며 살 줄도 먼저 아시고,
내가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 것도 다 아시고,
내가 이 큰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내 맘대로 살 줄도 이미 아시고,
내가 그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 날뛰지 못할 것도 이미 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족한 나에게 이 미련한 나에게 이 감정도 없는 나에게 이 불충한 나에게 이 믿음이라는 어마어마한 것은 은혜로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지 내가 은혜를 갚는 삶을 살든지 살지 못하든지 간에 믿음을 나에게 주시고 한번 준 그 선물은 절대로 다시 회수해 가지 않는다는 것이 믿음에 관한 하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로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귀한 진리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바르게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냉랭하게 앉아 있는 여러분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진리를 여러분이 바르게 이해를 하셨다고 한다면 이렇게 냉랭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기절하거나 졸도하거나 미친 듯이 날뛰거나 춤을 덩실덩실 추거나 너무 기뻐서 웃음보를 참지 못하고 병원에 실려 갈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끄떡없이 이렇게 앉아 계시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진리를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삶은 별 뚜렷한 변화가 없다는 것이 또한 안타까운 점입니다.
바른 신학을 가지고 바르게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보다 그 신앙의 성장이 빠르지 못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 이단들을 보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빙자해서 순 엉터리 사기행각을 벌리지만 그 가르침에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잘 따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을 위협하고 공갈을 하고 억압하는 그런 가르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잘도 따릅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선포하면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에게 억지로 신비한 체험을 강조하면서 신앙생활을 권고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분을 강하게 훈련을 시켜서 아주 힘들게 해서 충성을 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강조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렇게 바른 말씀을 들으시면서 조금 신경을 쓰시라는 것입니다.
좀 더 신앙에 대해서 배우고 좀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좀더 그 은혜에 감격하고 좀 더 바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따라서 복음을 알고 진리를 발견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부활과 영생의 씨가 있는 참된 열매를 맺은 자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잘 들으시고 올바른 신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고 바른 믿음을 가진 자 답게 믿음생활도 잘 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죽은 자와 잠자는 자
오늘 본문 14절 말씀에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종류는 죽은 사람이고 한 종류는 잠자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나 잠자는 사람이나 두 사람의 겉모습은 비슷합니다.
잠자는 사람도 숨만 쉴 뿐이지 죽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과 잠자는 사람의 차이는 너무나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생명이 없고 죽은 사람 소망이 없는 사람이지만 잠자는 사람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엄격하게 다릅니다.
문제는 잠자는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그들 가운데 함께 죽은 것처럼 누워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생명이 없는 사람들처럼 그 가운데 누워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미 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그저 한시적으로 주어진 육신의 생명 그것이 끝이 나면 영원한 멸망의 세계로 들어가고 마는 허무한 인생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화려한 옷을 입고 살기도 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재산이 많아서 그 힘으로 떵떵거리면서 살기도 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출세하고, 많은 권력을 가지고 호령하며 살기도 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선한 일도 더 많이 하고 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좋은 일도 많이 해서 존경을 받으며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고 예수님이 없고 진리가 없고 영생하는 생명이 없고 영원히 살 하나님 나라가 없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중요한 것을 가진 우리가 저 불쌍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처럼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깨어라, 일어나라
잠자는 사람은 죽은 사람들처럼 죽은 사람 가운데 누워 있지 말고 잠을 깨어서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우선 잠자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어서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잠을 자는 것은 참 유익한 것입니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서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잠자는 것이 좋고 유익하다고 해서 늘 잠만 자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요즘 젊은이들처럼 밤에는 깨어 있고 낮에는 잠을 자고 하는 것도 건강에 좋지 못합니다.
밤엔 잠을 자고 낮엔 활동을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바른 생활입니다.
그러나 여기 잠에서 깨라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쓰여져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생각 믿음을 위한 우리의 삶은 늘 깨어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바로 뜨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지식에서 깨어나 참된 진리의 말씀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참된 삶인지 무엇이 헛된 삶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두움 속에 있지 말고 밝은 빛이 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서 확실하게 보고 살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그냥 깨우기가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힘이 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이불 속에서 5분만 10분만 하고 잘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말만 해서는 안됩니다
침대에서 밀어 내리든지 손을 잡아 일으키든지 해야 합니다.
영적인 깊은 잠에 빠진 사람도 여간해서는 그 잠을 깨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이적을 체험하게 하든지 정신이 바짝 들게 고통을 당하게 하든지
심한 훈련으로 정신을 차리게 하든지 해서 그 잠을 깨우는 것입니다.
저처럼 일어나라 깨라 그만 자라라고만 하면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잠에서 깨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잠에서 깨기는 했는데 자리에 누워서 딩굴 딩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잠을 자던 자리에서 걸어 나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뭔가 좀 다른 자리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신분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존재가치가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들처럼 같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방법도 달라야 하고
그 돈을 쓰는 방법도 달라야 하고
사람을 대하는 모습도 달라야 하고
취미생활도 달라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고 있으신 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과감하게 그 악인들의 꾀에서 그 죄인의 길에서 그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3.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잠자는 자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깨어서 일어나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을 하고도 생색내기를 좋아합니다.
별것 아닌 일을 하고도 그 일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몰라주면 섭섭해 합니다.
우리 아동복지쎈터 아이 중에 공부하러 오다가 가끔 다른 데로 가 버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 있어서는 그가 다른 데로 가지 않고 복지관까지 오는 것이 아주 큰일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별 사고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주 칭찬을 많이 해 줍니다.
아이구 우리 머시기 오늘은 오락실에 안가고 바르게 잘도 왔네...
그 아이가 집에서 복지관까지 바로 오는 것은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그 아이가 오는 수고보다 사실 복지관에서 그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공부도 시켜 주고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는 성도님들 가운데도 이 아이와 같은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주일날 다른 데로 가지 않고 교회로 오는 것은 성도로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성도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입니다.
대단해 할 일도 칭찬을 받을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옴으로 인해서 받는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받는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교회에 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는 것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는 별 상받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잠에서 깨어나서 일어나서 주님께로 오면 그에게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비춰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빛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진리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믿는 자 모두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각성을 해서 잠에서 깨어나 주님께로 오기만 하면 이렇게 엄청난 것들을 은혜로 선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깨어나서 주님께로 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죽은 자가 아니고 잠자는 자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은 자가 아닌 잠자는 자가 된 것은 누구의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셔서 죽은 자로 이 세상에 오게 하지 않고 산자로 오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것 같지만 죽은 자가 아니라 잠시 잠을 자는 사람이라면 그 죽은 자 가운데서 깨어 일어나 주님께로 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죽은 자였었다면 우리가 깨운다고 마누라가 깨운다고 부모님이 강제로 깨운다고 천지개벽이 일어난다고 그 죽음에서 깨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아침에 눈을 비비고 억지로 일어나서 오기 싫은 교회를 오시기는 했을지라도 여러분이 죽은 자가 아니라 잠자는 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 나는 죽은 자가 아니고 잠자는 자였다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고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무리 호화로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죽어가는 시한부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잠을 자는 게으른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죽은 자가 아니라 잠자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이제 그만 깊은 잠에서 깨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일어나 진리 가운데로 빛 가운데로 그리스도 안으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비추시는 빛은 너무나 강한 능력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참된 행복의 길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본문 : 엡 5:13-14
제목 : 잠자는 자여 깨어서 일어나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
저는 지난 주간에 비교적 좀 다양한 교파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늘 같은 신학을 공부하고 같은 색깔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목사님들만 만났는데 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같은 믿음이고 똑같은 성경말씀을 가지고 똑같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나가는 사람들이지만 그 신앙의 색깔들은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단이 아닌 이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은 다 옳다고 인정을 합니다.
물론 교회라는 간판을 걸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보다 자신들의 선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사람들은 다행하게도 이 이신칭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에 대해서는 아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우리의 삶이 아주 현저하게 뚜렷하게 달라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 하고 헌금이나 좀 하고 그런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도들과 더 친밀하게 하나가 되고 한 가족처럼 언제나 모든 일을 함께 나누고 그 공동체를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을 해야 아 이 사람이 믿음을 가졌구나 하고 인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각오를 가질 때 그 사람이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 참 훌륭한 목사님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받는 그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받는 그 은혜가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고 아름다운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신앙을 가진 우리 성도들의 삶이 시시하게 대강 적당히 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우리가 신앙을 가졌다면 남다른 체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다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실 때는 일상에서 체험하지 못한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방언을 한다거나 신비한 기적을 체험한다거나 어떤 육체적 이상기운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을 체험할 때 성령님께서 나에게 오셔서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런 것을 통해서 아 내가 성도구나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 전지 전능하심으로 못 하실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나에게 오셔서 역사를 하실 때 그런 정도의 변화들이 느낌을 갖게 하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일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오신 흔적을 남기시려고 한다면 방언이나 신유나 엄청난 기적이라도 능히 하실 수 있는 분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 흔적들을 발견하고 나와 함께 계시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살자고 하는데 전혀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두 생각을 가진 목사님들과 여러분의 목사인 제가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같은 점은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서로가 공감하는 바입니다.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앞에서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목사님과 또 신앙생활의 어떤 신비한 체험을 강조하는 목사님과 제가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앞서 말씀 드린 두 목사님의 경우 인간의 경험이나 행함을 중요하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면 적어도 우리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 할 수 있는 그런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영적인 체험을 했느냐가 믿음을 가진 자이냐 그렇지 않느냐를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말하면서 그 믿음의 확실성에 대해서 말하면서 인간의 행함과 인간의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믿음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아무런 느낌도 없이 맹숭맹숭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희미하게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강조합니까
그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강조해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도 창세 전에 미리 나라는 인간을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나에게 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
내가 못난 것을 이미 아시고, 내가 죄지을 줄도 벌써 아시고,
내가 출세도 못하고 빌빌 거리며 살 줄도 먼저 아시고,
내가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 것도 다 아시고,
내가 이 큰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내 맘대로 살 줄도 이미 아시고,
내가 그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 날뛰지 못할 것도 이미 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족한 나에게 이 미련한 나에게 이 감정도 없는 나에게 이 불충한 나에게 이 믿음이라는 어마어마한 것은 은혜로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지 내가 은혜를 갚는 삶을 살든지 살지 못하든지 간에 믿음을 나에게 주시고 한번 준 그 선물은 절대로 다시 회수해 가지 않는다는 것이 믿음에 관한 하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로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귀한 진리를 성경에서 발견하고 바르게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냉랭하게 앉아 있는 여러분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진리를 여러분이 바르게 이해를 하셨다고 한다면 이렇게 냉랭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기절하거나 졸도하거나 미친 듯이 날뛰거나 춤을 덩실덩실 추거나 너무 기뻐서 웃음보를 참지 못하고 병원에 실려 갈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끄떡없이 이렇게 앉아 계시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진리를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삶은 별 뚜렷한 변화가 없다는 것이 또한 안타까운 점입니다.
바른 신학을 가지고 바르게 가르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보다 그 신앙의 성장이 빠르지 못하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 이단들을 보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빙자해서 순 엉터리 사기행각을 벌리지만 그 가르침에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잘 따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을 위협하고 공갈을 하고 억압하는 그런 가르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잘도 따릅니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선포하면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에게 억지로 신비한 체험을 강조하면서 신앙생활을 권고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분을 강하게 훈련을 시켜서 아주 힘들게 해서 충성을 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강조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렇게 바른 말씀을 들으시면서 조금 신경을 쓰시라는 것입니다.
좀 더 신앙에 대해서 배우고 좀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좀더 그 은혜에 감격하고 좀 더 바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따라서 복음을 알고 진리를 발견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부활과 영생의 씨가 있는 참된 열매를 맺은 자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잘 들으시고 올바른 신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고 바른 믿음을 가진 자 답게 믿음생활도 잘 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죽은 자와 잠자는 자
오늘 본문 14절 말씀에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종류는 죽은 사람이고 한 종류는 잠자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나 잠자는 사람이나 두 사람의 겉모습은 비슷합니다.
잠자는 사람도 숨만 쉴 뿐이지 죽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과 잠자는 사람의 차이는 너무나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생명이 없고 죽은 사람 소망이 없는 사람이지만 잠자는 사람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엄격하게 다릅니다.
문제는 잠자는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그들 가운데 함께 죽은 것처럼 누워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생명이 없는 사람들처럼 그 가운데 누워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미 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그저 한시적으로 주어진 육신의 생명 그것이 끝이 나면 영원한 멸망의 세계로 들어가고 마는 허무한 인생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화려한 옷을 입고 살기도 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재산이 많아서 그 힘으로 떵떵거리면서 살기도 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출세하고, 많은 권력을 가지고 호령하며 살기도 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선한 일도 더 많이 하고 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좋은 일도 많이 해서 존경을 받으며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고 예수님이 없고 진리가 없고 영생하는 생명이 없고 영원히 살 하나님 나라가 없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중요한 것을 가진 우리가 저 불쌍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처럼 살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깨어라, 일어나라
잠자는 사람은 죽은 사람들처럼 죽은 사람 가운데 누워 있지 말고 잠을 깨어서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우선 잠자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어서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잠을 자는 것은 참 유익한 것입니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서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잠자는 것이 좋고 유익하다고 해서 늘 잠만 자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요즘 젊은이들처럼 밤에는 깨어 있고 낮에는 잠을 자고 하는 것도 건강에 좋지 못합니다.
밤엔 잠을 자고 낮엔 활동을 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바른 생활입니다.
그러나 여기 잠에서 깨라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쓰여져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생각 믿음을 위한 우리의 삶은 늘 깨어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바로 뜨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지식에서 깨어나 참된 진리의 말씀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참된 삶인지 무엇이 헛된 삶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두움 속에 있지 말고 밝은 빛이 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서 확실하게 보고 살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그냥 깨우기가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힘이 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매일 아침 이불 속에서 5분만 10분만 하고 잘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말만 해서는 안됩니다
침대에서 밀어 내리든지 손을 잡아 일으키든지 해야 합니다.
영적인 깊은 잠에 빠진 사람도 여간해서는 그 잠을 깨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비한 이적을 체험하게 하든지 정신이 바짝 들게 고통을 당하게 하든지
심한 훈련으로 정신을 차리게 하든지 해서 그 잠을 깨우는 것입니다.
저처럼 일어나라 깨라 그만 자라라고만 하면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잠에서 깨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잠에서 깨기는 했는데 자리에 누워서 딩굴 딩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잠을 자던 자리에서 걸어 나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뭔가 좀 다른 자리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신분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존재가치가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들처럼 같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방법도 달라야 하고
그 돈을 쓰는 방법도 달라야 하고
사람을 대하는 모습도 달라야 하고
취미생활도 달라야 합니다.
아직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고 있으신 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과감하게 그 악인들의 꾀에서 그 죄인의 길에서 그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3.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잠자는 자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깨어서 일어나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을 하고도 생색내기를 좋아합니다.
별것 아닌 일을 하고도 그 일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몰라주면 섭섭해 합니다.
우리 아동복지쎈터 아이 중에 공부하러 오다가 가끔 다른 데로 가 버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 있어서는 그가 다른 데로 가지 않고 복지관까지 오는 것이 아주 큰일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별 사고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주 칭찬을 많이 해 줍니다.
아이구 우리 머시기 오늘은 오락실에 안가고 바르게 잘도 왔네...
그 아이가 집에서 복지관까지 바로 오는 것은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그 아이가 오는 수고보다 사실 복지관에서 그 아이를 위해서 하는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공부도 시켜 주고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는 성도님들 가운데도 이 아이와 같은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주일날 다른 데로 가지 않고 교회로 오는 것은 성도로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성도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입니다.
대단해 할 일도 칭찬을 받을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옴으로 인해서 받는 은혜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받는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교회에 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는 것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는 별 상받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잠에서 깨어나서 일어나서 주님께로 오면 그에게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비춰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빛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진리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믿는 자 모두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각성을 해서 잠에서 깨어나 주님께로 오기만 하면 이렇게 엄청난 것들을 은혜로 선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깨어나서 주님께로 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죽은 자가 아니고 잠자는 자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은 자가 아닌 잠자는 자가 된 것은 누구의 은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셔서 죽은 자로 이 세상에 오게 하지 않고 산자로 오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것 같지만 죽은 자가 아니라 잠시 잠을 자는 사람이라면 그 죽은 자 가운데서 깨어 일어나 주님께로 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죽은 자였었다면 우리가 깨운다고 마누라가 깨운다고 부모님이 강제로 깨운다고 천지개벽이 일어난다고 그 죽음에서 깨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아침에 눈을 비비고 억지로 일어나서 오기 싫은 교회를 오시기는 했을지라도 여러분이 죽은 자가 아니라 잠자는 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 나는 죽은 자가 아니고 잠자는 자였다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고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무리 호화로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죽어가는 시한부 인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잠을 자는 게으른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죽은 자가 아니라 잠자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이제 그만 깊은 잠에서 깨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일어나 진리 가운데로 빛 가운데로 그리스도 안으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비추시는 빛은 너무나 강한 능력이 있어서
여러분에게 참된 행복의 길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