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7. 1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81)
본문 : 엡 5:2
제목 :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러분이 잘 아시는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쓸 수 있는 온갖 아름다운 말이나 심지어 천사가 말을 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말을 할지라도 그 말속에 사랑이 없으면 그저 시끄러운 징소리나 꽹과리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예언을 하고, 온갖 비밀을 알고, 온갖 지식을 다 알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 지식에 그 믿음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 몸까지 불사르게 내어 준다고 해도 그런 행동 속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은 모든 일에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좋고 아무리 화려하고 아무리 훌륭한 일이라고 해도 거기에 사랑을 빼고 나면 아무 소용도 없는 아무 유익도 없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사랑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름답지가 못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많은 부부들이 헤어지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많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많은 교회들이 분쟁에 휘말려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이 사회가 황폐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고통과 좌절 속에서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 불필요한 많은 것들을 쌓아 놓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워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말은 사랑한다고 하지만 참된 의미도 모르고 참된 사랑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참된 사랑의 의미를 말씀해 주고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여야 하는데 그 사랑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기준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이 우리가 실천하면서 행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랑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잘 들으시고 참된 사랑을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사랑 
오늘 본문 말씀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여기 "그"는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이고 "우리"는 여기모인 우리들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신다고 하실 때 자신을 버리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좀 더 실감이 나게 말씀을 드린다면 여기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면 그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기 우리는 피조물이고 예수님은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죄인이고 예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재판장이십니다.
여기 우리는 배은망덕한 파렴치한 인생이요 예수님은 은혜를 베푸신 분이십니다.
여기 우리는 힘없이 죽어가는 인생이요 예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실 만한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수님께서 별 볼일 없는 피조물이요 죄인이요 배은망덕한 자요 힘없이 죽어가는 우리 인생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버리셨습니까
하늘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존심 능력 권능 영광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이 실감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이 사항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애완견 한 마리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 애완견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애완견을 살리는 방법은 내가 개가되어서 대신 죽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이 이까짓 개 한 마리 다시 사면되지 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신 개가 되어서 죽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조금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개들이 하도 주인에게 사랑을 받을 짓을 잘하고 개를 자식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간혹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좀 더 가깝게 표현을 하자면 바퀴벌레나 구더기나 징그러운 뱀이 죽어간다고 사람이 대신 바퀴벌레나 구더기나 징그러운 뱀이 되어 대신 죽어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정신이 돈 사람이 아니면 바보가 아니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시고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도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이해하기 힘든 일이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든 못하든 우리가 믿든 믿지 않든 간에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을 한번 돌아봅시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말로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을 조금도 희생하지 않고 사랑을 하려고 합니다.
내가 가진 물질, 내가 가진 경험이나 지식, 내가 가진 지위, 내가 가진 권리, 내가 가진 자존심, 내 생각, 내 뜻, 심지어 내 기분까지도 조금도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사랑이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내 자신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려는 이기적인 것을 사랑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서 내 자신을 버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받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 이기심 내 생각 내 기분까지 포기하고 그 사람을 사랑할 때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자신에게는 가장 비참한 것을 우리에게는 가장 최고의 선물을 주신 사랑
본문 말씀에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랑이란 나를 희생시켜서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나는 고통을 당하지만 그에게는 기쁨을 주는 것 그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최고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셨는데 하늘 보좌와 영광을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했습니다.

제물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쓰여지는 예물을 말합니다.
그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생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 제물로 그 생축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제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생축이 어떤 의미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예수님의 사랑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들을 위하여 한가지 특별한 제도를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이 제사제도입니다.
제사란 단순히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제사제도를 오해해서 무조건 많은 것을 바치면 좋은 줄로 압니다.
그러나 제사란 하나님께 무엇을 바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제물을 바치는지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를 해야 참된 제사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싫어하시고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범죄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도록 법으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그 법 앞에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벌을 받아서 죽임을 당하고 형벌을 받아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한 길을 주셨는데 그것이 이 생축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제도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흠이 없는 소나 양같은 살아 있는 짐승을 끌고 옵니다.
그 짐승 즉 생축에다가 안수를 하고 내가 받을 죄의 형벌을 전가시킵니다.
내 대신 그 생축이 죄의 형벌을 받게 함으로 내가 죄의 형벌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제사의 제도입니다.

내 대신 끌려 온 그 생축을 칼로 찔러서 피를 흘리게 하고 몸은 여러 조각으로 찢어서 불에 태움니다.
그 피흘리는 모습을 보고 그 태워지는 모습을 보고 아 내가 이렇게 하나님께 벌을 받아야 할 죄인이었구나 하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비참함을 알고 다시는 죄를 짖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제사제도입니다.

그러면서 이 제사제도의 더 큰 목적은 결국 예수님께서 구약시대의 그 생축처럼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실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구약시대의 제사의 제물에 쓰이던 생축처럼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참으로 비참하게 피를 흘리고 살을 찢김으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버리시고 제물과 생축이 되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하여"라는 말로도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모든 죄의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사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해서 그 좋은 제도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버림을 받았던 것처럼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바르게 알지 못해서 이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성도들이 알고 믿어야 하는 가장 소중한 복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 교회에 다니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제물과 생축이 되셨다는 것은 이렇게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자신은 가장 큰 희생 즉 비참한 죽음을 당하시면서 우리에게는 가장 큰 선물 가장 큰 축복을 주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신 사랑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이 하나님께 드려진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노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 아실 것입니다.
노아는 그 시대에 세상에 살 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게 되었을 때 유일하게 자신과 가족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살아 남게 되었던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죽고 난 후 홍수가 끝이 난 후 그들이 배에서 내려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일이었습니다.
가장 정결한 짐승 중에서 가장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제단을 쌓고 그 피를 흘리고 그 제물을 태워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요소 속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게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랑 때문에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이웃에게 밥이나 주고 돈이나 주고 이 귀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심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도 그 대상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가깝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게 해 주는 일이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신앙생활을 잘 하게하고 하나님께 복을 받게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큰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죄의 용서를 받은 우리는 이제 짐승을 죽이는 제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는 것이 이 예배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찬식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나누어 먹고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나누어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이 떡을 먹으면서 이 잔을 마시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의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에게 최고의 은혜를 나누어주신 그 참된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하심을 본받아 참된 사랑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라고 하신 이 말씀을 평생 기억하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