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08)
본문 : 행 16:35-40
제목 :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35.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성경을 읽다가 보면 어떤 말씀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되는 말씀이 있고 반대로 어떤 말씀은 뭐 이런 것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말씀도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생각한 바로 앞의 본문 말씀은 정말로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는 질문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대답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가장 중요하고 정확한 대답입니다.
교회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이 질문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이 질문이 아닌 다른 질문을 가지고 교회에 오는 사람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 온 것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구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만이 와야 하는 곳입니다. 물론 다른 부수적인 것들도 많이 얻을 수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이 구원이기 때문에 다른 것만 가지고 교회에 오는 사람은 핵심을 놓치고 부스러기만 얻는 꼴이 됩니다.
교회는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그 복음을 믿게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장 중요한 핵심교리로 가르치지 않는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핵심교리를 직접적으로 말씀해주는 본문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은 뭐 이런 것까지 기록을 했을까 라고 생각이 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말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덜 중요하고, 직접적인 것이 아니고 간접적인 것이라고 해도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고 예수님을 믿는데 도움이 되는 말씀임에는 분명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자를 만나서 귀신을 내어좇았더니 뒤에서 그것을 통하여 돈을 벌던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없게 된 것에 대해서 분하여 바울과 실라를 당국에 고발을 하였습니다. 고발을 받은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를 옷을 벗기고 매로 치고 깊은 감옥에 차꼬를 채워서 가두고 든든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 죄를 조사하지도 않고 재판을 하지도 않고 무리들의 말만 듣고 그렇게 해버린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큰 소리로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는 도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나고 옥 터가 움직이고 감옥의 문들이 열리고 차꼬가 풀렸습니다. 이를 본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을 간 줄 알고 자결을 하려고 할 때 바울이 큰 소리로 우리가 여기 있으니 자결하지 말라고 했고 간수가 바울 앞에 엎드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라고 질문을 했고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자 그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바울과 신라가 다시 감옥으로 들어와 있는데 날이 새니까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서 바울과 실라를 내어보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냥 나오지 않고 왜 로마 사람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고 부당하게 감옥에 넣은 것을 항의하자 바울이 누구인지 몰랐다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자 놀라서 달려와서 직접 바울과 실라에게 정중하게 나가시라고 말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요지입니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본문 35-36절에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밤새 상관들이 왜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잘못이 없는 줄 알면서도 무리들이 일제히 고발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처벌하는 척 하다가 무리들이 잠잠해지자 아침에 바울과 실라를 풀어주려고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을 하면 그 주장이 옳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그 주장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실라를 고발한 사람들도 사실은 정의를 위해서 바른 요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수익사업이 망하게 될 것을 알고 사람들을 선동해서 죄를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을 선동을 하여서 고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기독교는 언제나 이런 다수의 집단들에 의해서 공격을 받습니다.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사사건건 기독교를 비난합니다. 그 비난이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따르니까 진리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이 늘 위축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라고 해서 꼭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반항하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많은 죄인들이 주장할수록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면서 세상의 것들을 바라고 오는 많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소수의 무리들이라고 해도 진리를 바로 알고 따르는 사람들을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라고 하셨습니다.
또 상관들은 밤새 일어난 일을 보고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간밤에 감옥에서 일어난 사실을 상관에게 보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보통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잡아두다가는 자기들도 곤란한 일을 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들을 내어보내라고 명령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이 일어나도 우연한 것이라고 넘기는 사람도 있고 기적이 일어났다고 해도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적을 많이 체험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많이 하나님의 속을 썩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것 같지만 본문의 간수와 같이 예수님을 믿을 사람은 바로 믿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은 기적이 일어나도 잠시 두려워할 뿐이지 예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기적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가짜 기적을 만들고 우연히 일어난 일을 과장하고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이비 종교나 이단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별한 기적이 아니라 이 세상에 일어나는 보편적인 일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본문 37-39절에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 대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라고 했습니다.
상관들이 생각하기를 그냥 내보내주기만 해도 감사하면서 나갈 것이라고 했는데 그냥 나가라고 했는데도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바울이 큰 소리를 칩니다. 죄 없는 우리를 붙잡아서 재판도 하지 않고 매를 때리고 감옥에 가뒀으면 와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정중하게 나가시라고 해야지 부하들을 보내서 나가라고만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항의를 합니다.
우리 같으면 나가라고 하면 얼른 도망치듯이 벗어나고 싶을 것입니다. 괜히 불평했다가 상관이 와서 안 되겠다고 다시 가두리고 하면 큰 낭패이기 때문에 나가라고 할 때 말없이 얼른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담대하게 너희 상관들이 와서 사과하고 정중히 모시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감옥을 나오지 못해서 애를 태우지도 않았습니다. 감옥을 나가려고 했으면 어제 밤에 그런 기적이 일어났을 때 가만히 나가면 됐는데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맡기시고 그 사명을 다할 때까지 지켜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죄스러운 일이 아니고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너무나 소중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로마 사람임을 말합니다.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함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잘못한 일이 있어도 정식으로 재판을 통해서 해야 되고 지방에서 재판을 했다고 해도 불복하면 로마 중앙정부에서 재판을 한 후에 벌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로마 시민권은 로마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특별히 로마정부에 공을 세운 사람이든지 돈을 많이 지불하고 시민권을 산 사람만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으로 로마 시민권을 가진 것은 조상 중에 누군가가 로마정부에 공헌을 했든지 돈을 많이 주고 시민권을 사서 가족들이 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힘없는 유대인이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당당하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함입니다. 복음을 전하러 세계로 다닐 때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함으로 함부로 잡아 가두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미리 이 사실을 공포한 것으로 보입니다.
복음은 가난한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이나 죄를 범한 사람이나 누구나가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자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 보다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복음을 더 잘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돈도 있어야 하고 권력도 있어야 하고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도덕적으로도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전하는 복음을 사람들이 더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랑했지만 그보다 더 큰 자랑은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몰라봐서 그렇지 알고 보면 엄청난 권세를 가진 시민권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몰라봐서 비웃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면 우리가 가진 이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답게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세상권력 부러워하지 말고 내가가진 이 권력을 자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본문 40절에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사도 바울이 자신이 로마인임을 밝히자 상관들이 달려와서 사죄를 하였지만 그들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를 떠나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계속해서 빌립보에 있을 경우 민란이 일어날 것을 걱정했기 때문에 조용히 떠나주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바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굳이 빌립보를 떠날 이유는 없었습니다. 더 있는 다고해도 로마인인 자기를 법적으로 떠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곳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에는 이미 교회가 시작이 되었고 루디아나 그의 가족들과 귀신들렸던 여자나 간수의 가족들 등으로 교인들이 생겼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가 없어도 교회가 유지되고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일행 중 어떤 사람이 남아서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기꺼이 빌립보를 떠났습니다.
빌립보를 떠나면서 루디아의 집에 가서 형제들을 위로하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루디아의 집에 형제들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미 루디아의 집은 교회가 되었고 교회에 성도들이 모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들보다 더 소중한 형제가 예수님의 피로 한 형제들이 된 성도들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 형제들을 만나서 위로했다고 했습니다. 그 형제들에게 닥칠 어려움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을 따라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그 이후의 신앙생활이 더 어렵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사실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 믿음을 유지하고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면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었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는가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루 이틀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해야 됩니다. 짧다면 짧은 것이 인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오랜 세월을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사탄은 늘 틈을 노리다가 조금만 약점을 보이면 사정없이 유혹을 하고 넘어지게 하기 때문에 평생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참 힘이 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곁에는 늘 위로 자가 필요하고 격려 자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시면 목회자는 여러분에게 위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잘못해도 꾸짖지 않고 늘 격려하는 것은 일평생 한결같이 신앙생활을 잘 하기가 힘이 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힘드시지요, 그래요 힘이 듭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하고 힘들어 한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그래도 조금 더 힘을 내십시오. 이제 다와 갑니다.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이 바로 앞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연약한 소수의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신앙생활이 좀 힘들고 어렵더라도 조금만 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고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힘을 내서 끝까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