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2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61)
본문 : 엡 4:7-10
제목 : 각 사람이 받은 은사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 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교회 안에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다 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면서 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구원자 예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주님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믿음도 하나입니다. 
그 믿음을 고백하고 받는 세례도 하나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게 하고 구원을 얻게 해 주시는 성령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교회도 하나입니다.
그 교회가 바라보고 가야할 목표와 소망도 하나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통일성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들어와서 1절부터 6절까지가 영적 연합 즉 이 하나됨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7절 말씀에 들어서면서 "(그러나)우리 각 사람에게"라는 말로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이 되어있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7절 말씀이 "그러나"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을 때 한 하나님을 섬기고 한 믿음을 가지고 한 소망 한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러나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은혜의 선물을 주셨기 때문에 각자에게 주어진 그 은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똑같다 다 하나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 통일성에 대해서 오해를 합니다.
모든 것이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주장하면서 어떤 사람은 교회 내에서 모두가 동등해야 한다고 하면서 직분이나 어떤 차별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이 바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은 다 같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다 동일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세상에서 하는 일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각각의 분량대로 은혜의 선물로 은사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됨에 있어 또 다른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하나 속에 다양한 은사가 있으며 각자가 가진 은사로 이 하나를 이루어 나가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에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하나이지만 그 하나이면서도 각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이고 어떤 사람은 친척 정도고 어떤 사람은 이웃이고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점에서는 하나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거나 어떤 사람은 그 구원이 불확실한 것이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는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해서 구원을 받았거나 어떤 사람은 주일을 잘 지켜서 어떤 사람은 충성을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 하고 그래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확실히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은 모두가 하나입니다.
그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의 종류와 질은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평등한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좀 차별적인 발언을 했다가는 난리가 납니다.
심지어는 남녀관계도 평등을 외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선천적인 차별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육체적으로 다르게 태어납니다.
하는 일도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남자는 땀을 흘려 일을 하고 여자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차이입니다.
그 차이는 인정을 해야 합니다.

가령 남자는 구원을 받고 여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라고 하는 것은 안됩니다.
남자는 사람 대접을 받고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남자는 좋은 것을 먹고 여자는 나쁜 것을 먹어야 한다거나 남자는 좋은 대접을 받고 여자는 나쁜 대접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할 수 없고 남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도 각각 받은 달란트가 있고 각각의 삶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똑 같이 일률적으로 해 주시지 않았느냐고 원망을 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다양한 세상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편대로 살기 때문에 사는 방법은 다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서로가 각각 다르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은혜의 선물은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은혜의 선물은 믿음으로 받게 되는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오늘 본문에 은혜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11절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때 은사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은사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은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마(χαρισμα)라고 합니다.
요즘 이 카리스마라는 말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로 쓰입니다만 성경에서 은사라고 할 때는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에게 하나님의 사명감당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라고 주시는 달란트, 즉 재능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인 성도들입니다.
그러면서도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로서 하나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각자가 밭은 다양한 은사, 즉 재능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그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분량대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은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께서 분량대로 나누어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원래 은사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은혜의 수여자이며 성령님을 통해서 은사를 수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주셨든지 그리스도께서 바로 주셨든지 그 은사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은사를 받았던지 간에 그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사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판단 기준으로 은사가 크고 좋은 것이 있을지 몰라도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은사가 다 좋은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분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시편 68편 18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의 인용은 많은 신학자들이 여러 각도로 해석을 하고 여러 가지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 좀 난해한 부분입니다.
그런 해석들은 신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대다수 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다시 한번 기억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인용한 시편의 내용은 승리자의 노래입니다.
승리하신 하나님께서 천천 만만의 병거를 거느리고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가시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것은 패배가 아니고 승리라는 것입니다.
승리하신 모습으로 부활 승천하신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각종 은혜를 베푸셨고 이렇게 은사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이기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지옥의 권세를 이기시고 하늘로 승천하시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세상의 모든 권세를 손에 쥐고 계신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자랑스럽지 아니 하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사를 분량대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각자가 받을 만한 분량대로 채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많이 받을 만한 자에게는 많은 것을 작게 받을 만한 자에게는 작은 것을 그릇에 맞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가 그 분량대로 주심을 잘 나타낸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자기가 받은 달란트 대로만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작게 받은 사람은 거기에 맞추어서 일하고 많이 받은 사람은 거기에 맞추어서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산을 하실 때 많이 받아서 많이 일한 사람만 칭찬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대로 충성하면 다 같은 칭찬과 같은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두 달란트를 남긴 것이나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다섯 달란트를 남긴 것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은 얼마나 큰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받은 만큼 일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많은 것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불평하고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많이 받고 그만큼 하지 못한 사람보다 작게 받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 나은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다 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런 우리 성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사장이고 어떤 사람은 말단 사원이고
어떤 사람은 잘났고 어떤 사람은 못났고
어떤 사람은 많이 배워 똑똑하고 어떤 사람은 못 배우고 미련하고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어떤 사람은 병약하고...

우리가 모든 면에서 하나라고 했는데 현실은 이렇게 여러 가지의 차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만 보면서 살면 뭐 그리 서글플 것도 없는데 남들과 비교하다가 보면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다 커 보이고 내가 가진 것들은 다 부족하게만 보이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부자집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좋은 머리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것을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나는 이렇게 못생긴 얼굴로 이 세상에 나왔느냐고 자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배운 자는 잘난 사람은 다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많은 것을 받고 좋은 것을 가지고도 그 값을 하지 못하고 산 사람의 벌은 더 클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 힘들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을 것입니다.
많이 가진 만큼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없는 우리에게야 뭘 기대나 하시겠습니까
그저 본전만 해도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칭찬을 하실 것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만 주어도 아주 잘했다 작은 것을 가지고 충성을 했으니 참 잘했다고 칭찬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많이 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 주시지도 않고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황새이면 황새걸음으로 걸으면 되고 뱁새이면 뱁새걸음대로 걸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으로 충성을 하면 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그 은사를 은혜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은혜의 선물이나 은사나 같은 말로 쓰고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렇게 구분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선물이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은혜로 선물로 받은 은사를 나의 이익을 위해서나 나 자신을 자랑하는데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자기 영광을 드러내는데 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돈 안받는다고 하지만 결국 돈을 받고 그 은사를 사용합니다.
옛날 유명한 권사님 한 분이 엄청난 기적을 몰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까 엄청난 돈이 모아졌습니다.
물론 나중에 깨닫고 그 돈을 선교비로 내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 특별한 은사 말고도 다양한 달란트를 가지고 돈을 많이 만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책을 찍어서 돈을 벌고 그것을 해석하고 설교한 것을 책으로 찍어서 돈을 벌고 우리 예수님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돈들이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진다면 은혜로 선물로 받은 은사를 잘 못 사용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은혜의 선물로 받은 은사는 그 은사를 주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기꺼이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를 주신 목적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를 모두가 바르게 사용할 때 그 교회는 튼튼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목사 혼자서 일하는 교회는 튼튼하게 세워지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맡은 바대로 함께 힘을 합해야 튼튼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바르게 세우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이 진리를 알게 하고 성도들이 은혜를 받게 하고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게 하기 위하여 기도로 말씀으로 돕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그렇게 해서 바르게 선 성도들이 교회를 세워 나갈 때 그 교회는 튼튼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한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천국으로 가고 있는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각자입니다.
우라 각 사람이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 다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은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서로 받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을 해서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받은 은사가 작다고 할지라도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로 충성을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작은 은사를 받았지만 많은 일을 하여서 많이 받고 그 값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