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1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98)

본문 : 행 15:27-29

제목 : 이 요긴한 것들.

 

“27.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옛날 사람들은 낭만이 있어서 자녀들을 교육할 때나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 할 때 시조를 써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냥 직접 비판을 하지 않고 좋은 글을 써서 이야기 하니까 그 마음을 이해하고 쉽게 잘못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를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이런 유명한 시를 남기고 목숨을 바쳐서 섬기던 왕에게 끝까지 충성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된 데에는 그의 어머니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어머니(이 씨)가 시조를 지어서 아들을 교육시켰는데 그 시조도 유명한 시조입니다.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시기하나니)

  창파에 조히(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백로는 희고 깨끗하여 예로부터 청렴한 선비의 상징하는 새입니다. 자기 아들을 이 백로에 비유하고 간신배들을 가마귀에 비유하여 그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교훈을 담은 시조입니다.

 

  정몽주와는 반대로 고려의 신하이면서 이씨조선을 창건하는데 참여하여 영의정을 지낸 이직이라는 사람은 이런 시조를 썼습니다.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가마귀는 온 몸이 새까맣고 사람들이 불길한 새로 여기고 백로는 온 몸이 하얗고 깨끗하기 때문에 고고함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가마귀는 인간들에게 유익을 주는 새이고 백로는 겉모습만 그럴듯하지 가마귀보다 더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실속은 없으면서 겉보기에만 화려한 사람들이 겉만 보고 사람을 비난하지만 사실은 겉보기에는 별 것이 없어도 실속이 있는 가마귀 같은 사람이 더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보면서 이런 시를 읊었을 것 같습니다.

  이방인 노는 곳에 유대인아 가지마라

  깨끗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더럽혀질까 하노라

 

  그러면 이방인들이

  이방인이 더럽다고 유대인들아 웃지 마라.

  우리가 이방인이라고 속조차 더러울까보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희 유대인들인들 뿐인가 하노라.

 

  그러면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 우리들은 분명히 이 두 새에 비교하면 외형은 백로 같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겉모습만 그럴듯하고 속사람은 아직도 새까만 사람이라면 우리들도 그런 비웃음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을 가지게 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도 그 신분에 걸맞은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겉도 희고 속되 흰 사람이 되어야 하고 신분이 상승 된 것처럼 우리의 삶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삶에 있어서 꼭 실천해야 할 요긴한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신분이 변화된 우리들이 세상을 사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착하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하겠지만 최소한도로 이것만은 꼭 지켜야할 요긴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미 살펴 본대로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말씀이지만 오늘은 좀 더 자세하게 다시 한 번 살펴봄으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멀리할지니라.

 

  우상숭배는 지난번에 말씀을 드린 대로 단순히 우상 앞에 절을 하거나 제물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하나님을 섬기되 진실 되게 섬기지 않는 것도 우상숭배의 죄에 해당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상숭배와도 같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죄는 위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 같았지만 그것은 형식에 불과하고 속사람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그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제사만 드렸습니다. 제사는 우리의 죄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되겠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들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으며 그 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사를 드리면서 제사 드린 그 손으로 나가서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서 겉으로 흉내만 내는 제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셨고 그들은 그로인해 오히려 벌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라는 것을 자주 말씀을 드립니다.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도 그 의미를 잘 모르고 형식적으로 드리면 구약시대의 유대인들과 같은 죄를 짓게 됩니다.

 

  예배 역시 죄에 대한 경각심으로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주로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우리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하심으로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의 중요한 의미를 모르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고 나서 죄에 대한 경각심이 없이 또 죄를 짓고 아무렇게나 살게 됩니다.

 

  예배는 이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배에 성공을 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진실하지 못하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위선으로 드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위선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형식적으로 지키는 척했지만 율법 속에 있는 그 사랑의 정신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신 율법의 참된 의미를 따르지 않고 겉으로만 형식적으로만 지키는 척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미움을 샀습니다.

 

  오늘날 교인들 가운데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척하지만 실질적으로 삶에 있어서는 무신론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같지만 세상에 나가서 살 때는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요즘 미투운동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착한 것처럼 좋은 일 많이 하고 멋있는 일을 많이 하여 인가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알고 보니까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모습과 내려와서 사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설교 할 때는 천사 같은데 밖에서 만나면 아주 다른 사람이 되는 이중적인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연극을 하는 것처럼 쇼를 하는 것처럼 말만 번지레하게 잘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귀어 보면 어떤 사람은 속과 겉이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은 참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말을 하는데 속으로는 나쁜 마음을 감추고 있기 때문에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별것이 아닌 것 같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속과 겉이 같아도 그만 달라도 그만이 아닙니다. 반드시 같아야 합니다. 위선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고 진실한 마음으로 고백하는 신앙만 인정하십니다.

 

  속과 겉이 같은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목표입니다. 겉보기에는 좀 어설프더라도 속이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 성화되어 나가는 목적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진실한 마음 진실한 언어 진실한 행동을 하려고 애쓰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인간의 교만이 우상숭배에 해당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사탄의 종이 되는 계기가 된 것이 인간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 인류가 죄에 빠지고 사탄의 종이 되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오늘날의 우상숭배도 인간의 교만으로 인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피조물로서 당연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지만 그것을 부인하고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앞세우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따르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뜻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선다고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자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칼빈은 위선과 교만을 하나님의 눈에 가장 증오하는 악이라고 단언했으며 특별히 위선을 모든 악의 어미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이 교만과 위선을 극복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음행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세워주신 가족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는 악한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음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신 것처럼 매우 나쁜 것입니다.

 

  음행은 탐욕에서 나오는 것이며 탐욕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성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탐욕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육체적인 쾌락에 탐닉하여 자신을 조절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육체의 쾌락에 대한 탐욕 때문에 많은 올무를 만나게 됩니다. 사소한 사행성 오락 때문에 도박이나 경마에 빠지고, 기분전환으로 마신 술 때문에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에 빠지고, 육욕을 참지 못하여 잘못된 이성 관계에 빠지게 되는 이런 저런 것들이 다 육신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탐욕을 버리는 일에서 시작이 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탐욕을 그대로 두고는 바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이기적인 삶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이타적인 삶을 사는데 있어서 탐욕은 큰 걸림돌이 됩니다.

 

  우리의 욕심을 따라서 그 욕심이 이루어진 삶을 산다고 하면 그것이 신앙적으로는 성공이 아니고 실패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 성공으로 인해서 십중팔구는 교만에 빠집니다. 그 성공으로 인해서 세상을 즐기는 음란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의 쾌락으로 인해서 하나님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은 없어지고 맙니다.

 

  교회의 부패나 지도자들의 부패는 이런 탐욕에서 시작이 됩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그 본질을 흐리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서 장사꾼처럼 되고 사기꾼처럼 됩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 백성과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차이점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에서의 축복을 사모했고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이 세상 보다는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면서 이 세상의 욕심을 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교회가 어느 날부터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기 보다는 이 세상의 축복을 갈망하는 삶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보다 율법을 더 좋아하고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에 들어온 거짓 선생들이 모든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육체의 탐욕에 부채질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탐욕을 버리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요한 요긴한 것입니다.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탐욕이 모든 죄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할지니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말은 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를 먹음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매어 죽인 것을 먹는 것도 그 피가 몸속에 있기 때문에 피를 먹는 것이며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 됩니다.

 

  이 피를 멀리하라는 명령은 노아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생명을 소중히 하라는 말씀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바르게 재해석을 해 주시면서 단순히 살인만 금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형제에게 노하지 말라, 형제에게 어리석은 놈이라고 욕을 하지도 말라,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고 하지 말라,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만한 일을 하지 말라, 그리고 고발하는 자와 빨리 화해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사람을 죽인 것만 살인죄가 아니라 형제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원말을 들을만한 일을 하고 잘못을 하고도 화해하지 않는 이런 모든 일들도 살인죄에 해당에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죄가 미미한 죄가 아니고 흉악한 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을 받게 되고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하는 죄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고 말면 성도님들이 아이고 큰일 났다 나도 지옥 가겠네. 라고 걱정을 하실까봐 미리 말씀을 드리는데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다고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산상수훈은 교만한 유대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은 율법을 잘 지켰다고 자랑하는 것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원래 정신을 잘 모르고 외형적인 것만 가지고 율법을 다 지켰다고 교만을 떠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 앞에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이 살아야 할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까지 완전히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이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해서 도달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얼른 가서 화해를 하고 와서 드려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도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도가 된 후에 우리가 행하여야 할 매우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상숭배를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위선과 교만이 우상숭배에 해당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행을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향한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면 사탄의 올무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생명뿐만 아니라 형제에게 사소한 원망거리도 생기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손잡아 주고 좋은 길로 인도하는 주안에서 한 형제로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