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49)
   본문 : 엡 3:17
   제목 : 믿음으로 말미암아 2.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매우 소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사랑과 평화가 넘치고 믿음이 없는 곳엔 싸움이 일어나고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믿음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당당함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중요한 믿음을 편의상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하나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은 의인이 되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속한 것입니다.   

  또 하나의 믿음은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또 하나의 믿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은 나의 노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이제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사는 믿음 즉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옛날처럼 살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귀한 신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허랑방탕하게 타락의 삶을 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신분의 소중함을 알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어떻게 하든지 그 받은 은혜를 누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복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는 것과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뿌리가 내리고 터가 굳어져야 한다는 말씀의 뜻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오늘 본문 말씀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시게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 것 같습니까
  아마 믿음A, 즉 믿음의 사람이 되게하는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시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들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이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시도록 초청하는 기도로 오해를 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여기 믿음이 믿음A, 즉 우리를 구원받은 사람이 되게 하는 믿음이라면 바울이 기도를 해서 믿지 않는 자를 믿는 자가 되게하는 기도가 되기 때문에 마치 구원이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에서 우리가 노력하고 우리가 원하는 바대로 되어지는 것이라고 오해를 하기 쉽습니다.

  마치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 성경구절이 몇몇 군데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요한복음 1:12절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인용하는 구절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을 해야 한다, 나는 몇 년도에 예수님을 영접했다, 당신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까...라는 말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말씀의 핵심이 영접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영접하게 되는 자 믿게 되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13절 말씀을 잘 살펴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3)라고 했습니다.

  영접하게 되는 자는 믿음을 갖게 되는 자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만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영접하는 자란 내 스스로의 뜻으로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영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나 보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라고 권유하면서 전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영접을 한다고 해도 아무리 우리가 믿으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있지 않고 우리의 선택에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쉬운 성경구절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20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문을 열지 않으면 예수님은 문밖에서 기다리고만 계시고 우리가 들어오시도록 허락을 하고 문을 열어 드려야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는 말씀처럼 오해를 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도 잘 살펴보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하신 22절의 말씀에 따라 성령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비롯한 모든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이미 그들 가운데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와 계신 그런 사람들입니다.

  왜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믿음 생활이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니까 예수님께서 오셨다가 다시 나가 버리시고 다시 우리가 문을 열고 맞아 드려야만 우리에게 오신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도 사실은 전적으로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뜻대로  사는 성도들에게 더욱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A가 아니고 믿음B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의 기도도 믿음A가 아닌 믿음B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계시게 하여서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는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해 달라는 것은 예수님을 새로 영접을 하거나 모시어 들이거나 마음에 오시게 해 달라는 것이 이니라 이미 와 계신 예수님을 바르게 모시고 정말로 함께 동행하는 그런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천국 백성이라는 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살지 못하고 그 큰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시게 하고 그 뜻을 받들어서 사시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1)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헬라어에서 계신다는 말 즉 거하다는 말은 단순히 외국인이나 나그네로 머문다는 뜻을 가진 파로이케오(παροικεω)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가 아닌 어떤 장소에 정착해서 그 곳을 영구적인 거주지로 삼는다는 뜻을 가진 카토이케오(κατοικεω)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용한 단어는 카토이케오(κατοικεω)입니다.
  즉 단순이 외국인으로 나그네로 임시로 거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거주지로 아주 정착을 해서 와 계시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과 동행을 한다고 하면서 주일날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만 좋은 일을 할 때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 있어서나 항상 늘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슬픈 일이나 쉬운 일이나 힘든 일이나 언제나 늘 함께 해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얼마나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별을 하고는 이제 그 사람은 내 마음에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깊이 알고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까지 오시게 되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냥 쉽게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고 섬기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냥 아무나 믿고 아무나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구주로 주시기 위해서 수 천년 동안을 거치면서 그 일을 이 땅에서 진행을 해 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을 해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을 때부터 하나님은 예수님을 준비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짐승을 잡아 가죽으로 옷을 해 입혀서 부끄러운 것을 가려 주셨던 그 때부터 노아홍수의 사건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일들을 통하여 출애굽을 통하여 다윗왕을 통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런 저런 모습으로 보여 주시고 말씀하신 구약성경의 모든 기록들이 사실은 모두가 직접 간접적으로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셔서 내가 구세주이니 나를 믿어라 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들만 살펴보아도 얼마나 귀한 일을 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며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물위로 걸으시며 풍랑을 잔잔케도 하셨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기도 하셨고 보통 사람으로는 도저히 하실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고 나를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모진 고난을 당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끝까지 참으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면서까지도 그 부활의사실에 증인이 되었던 생생한 기록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있을 곳을 예비하시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을 하신 그 분을 우리가 믿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칭 예수라고 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무런 한 일도 없이 아무런 믿음도 주지 못하면서 몇 마디 말로 우리를 유혹하여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사이비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행하셨는지를 안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 모진 십자가의 고난을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시면서 끝까지 참으시던 그 모습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구주로 생각을 한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그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그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섬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2.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믿음 생활을 잘 하는 것을 식물과 건축물에 비유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은 마치 식물이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에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식물은 땅 속으로 뿌리를 깊이 내려서 땅으로부터 수분이나 수분에 들어 있는 영양분들을 공급받아서 줄기가 자라고 많은 열매들을 맺고 있습니다.
  시편 1편에서도 복있는 사람을 표현할 때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에 필요한 생명의 양식을 많이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은 절대로 그 믿음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 삶에 풍성한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풍성한 믿음을 가지시고 풍성한 열매들을 많이 맺으시기 바랍니다.

  또 건물을 지을 때 그 기초를 튼튼히 하고 지어야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그 기초가 든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시고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 믿음을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우리의 삶에 실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단순히 알고 믿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됩니다.
  알고 믿는 바를 실천에 옮길 때 비로소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교사로 찬양대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봉사를 하면서 믿음이 자라는 것을 많이 봅니다.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삶도 작은 것 하나부터 실천을 할 때 큰일을 하게 되고 픙성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와 계십니다
  그 주님을 바르게 알고 사랑하며 섬기시기 바랍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시고 믿음의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말씀을 듣고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 생활이 풍성해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