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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2.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81)
본문 : 행 13:40-41
제목 :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40.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과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여 버림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인간의 생각과는 좀 다른 것들이 많습니다. 인간의 편에서 볼 때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우리 인간은 아주 좁은 눈앞의 일만 겨우 보고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의 시야가 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서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다 주시면서 단 하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만 먹지 말도록 하셨고 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면 예하고 따르면 됩니다. 그거 아니라도 천지에 먹을 과일이 많았는데 구태여 그것까지 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일을 보면 볼수록 다른 과일과 다르게 더 맛이 있어 보이고 먹고 죽을 만한 독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탄이 유혹하는 대로 아마 이 과일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따먹어버렸고 그로 인해 자신들과 자신들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인간들에게 엄청난 불행을 가져오게 하고 말았습니다.
노아시대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신 말씀도 보통 사람들은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이 지구상에는 비라는 것이 온 일이 없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비가 많이 올 때도 있으니까 홍수로 지구를 멸망시키겠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비가오지 않았던 시대인데 하늘에서 비가 와서 홍수로 이 세상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시니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노아와 그 가족은 순종하여서 구원을 받았고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다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도 도무지 믿을만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자리 잡고 잘 살던 고향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실 때 그 말씀을 믿고 따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100세가 다 되어갈 때까지 아들이 한명도 없었는데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이라는 말씀은 도무지 믿지 못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그 말씀을 믿고 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고 우리 모든 성도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들었던 모세나 다윗의 경우도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도무지 믿지 못할 말씀이었습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이나 치던 사람 그것도 80이 넘은 사람에게 그 막강한 애굽에서 살고 있는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을 꼴랑 지팡이 하나들고 가서 구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도무지 믿고 따를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일개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라고 하시는 것도 다윗에게 도무지 믿고 따를 수 없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나 다윗이나 그런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름으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도바울의 설교 내용이 그런 것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할 구주가 되신다는 것은 누가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을 믿는 것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
본문 40절에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런즉’이라고 하는 말은 지난주에 살펴본 바로 앞의 38절과 39절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파하는 이것이며”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하심을 얻는 이것이라“라는 말씀을 염두에 두고 ‘그런즉’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아라,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설교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눈치 채신 분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20년 동안 이 주제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너무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성경을 살펴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천육백 여 년 동안 이 주제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창세기를 기록하실 때부터 사도요한을 통해 계시록을 기록할 시기가 대략 천육백 년으로 보고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제가 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이 타락할 때부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20년 동안 같은 주제로 말씀을 드린 것은 특별히 여러분을 사랑해서 특별히 여러분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은 사실 아닙니다. 제 설교가 강해설교라는 것을 다 아시잖아요? 성경말씀을 따라 계속 설교하다가 보니까 성경말씀에 항상 그 주제가 중심을 잡고 있어서입니다. 요한복음이나 마태복음이 기록된 복음서를 강해하거나 로마서나 에베소서와 같은 바울서신을 강해하거나 베드로전후서나 요한서신이나 또 사도행전에 이르기까지 다 중심이 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강해설교를 하지 않고 가끔 제목설교나 다른 설교를 할 때는 성경에 설교를 할 만한 좋은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좋아할 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심스러운 것은 거두절미하고 그 본문만 가지고 설교를 하다가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전체의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정말로 몰라도 될 주제를 강하게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른 데로 돌려버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강해설교를 하고 있고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늘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주제로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요? 우리 인간이 듣고 알고 믿어야 할 가장 소중한 말씀이 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한 그런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꼭 알아야 할 말씀이고 반드시 꼭 믿고 따라야 할 말씀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는 세상에서 많이 듣고 배웁니다. 돈 버는 법, 출세하는 법,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사는 법, 무병장수하는 법, 인생을 즐겁게 사는 법 이런 것들은 세상이 더 잘 압니다. 그런 이야기 들으려고 교회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학교가 없어서 교회가 학교고 교회가 세상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해 주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소중한 이야기를 듣는 곳입니다. 제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세상에 유익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반드시 알아야 할 성경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영원한 생명에 관한 복음을 듣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주제를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들이 듣고도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이유는 말을 해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믿을만한 근거가 부족해서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확실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용서를 받을만한 죄를 짓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흉악한 죄인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은 그런 사람들과 달라서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의 것을 훔치고 사람을 죽이고 이런저런 불법을 행하다가 교도소에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들이나 죄 용서를 받는 것이지 우리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는 다는 것을 바라지도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말씀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법을 철저히 지키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그래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지 어찌 예수님을 믿는다고 의로운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멸망으로 달려가는 길에서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를 수 있는 이 소중한 찬스를 놓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이 귀한 것을 놓치고 멸망으로 달려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선지자들이 말씀하신 것 즉 예수님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으라는 것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으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진리의 말씀은 우리가 반드시 믿고 따라야 할 말씀이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사람, 성령님께서 그 안에 역사하시는 사람, 들을 귀가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 이런 특별한 사람만 알아듣고 믿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리라
본문 41절에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도무지 믿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선지자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서 과거에 도무지 믿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멸망을 당하였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41절은 하박국 1장 5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이 이미 멸망을 하고 남 유다가 아직 망하기 전인 주전 650년~627년 사이에 예언을 한 선지자로 봅니다. 자연히 예언의 내용은 남 유다의 멸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여 망한 것처럼 남 유다도 그렇게 망하고 만다는 것이었습니다.
남 유다를 멸망시킬 나라는 갈대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갈대아 사람이란 바벨론을 말합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사납고 성급하게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유다를 침공하여 비참하게 멸망시킬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이 하박국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비록 북 이스라엘이 망했지만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전통적인 다윗 왕가를 떠난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인들의 산당에서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이고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남 유다는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의 왕위가 계속되고 있고, 성전에서 제사도 계속 드리고 있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선지자들이 말하는 것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절대로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가가 명맥상 유지는 되고 있지만 다윗왕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왕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지만 엉터리로 드렸습니다. 왜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냥 짐승만 잡아다가 드렸습니다. 자신들의 죄 때문에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줄을 모르고 그 제사 드리는 손으로 더 흉악한 죄를 지으면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성전 안에까지 우상을 가져다가 두고 섬겼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형식적이고 가식적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척 했지만 율법 속에 있는 바른 뜻을 알지 못하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만 지키는 시늉만 했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따랐다고 했지만 사실은 거짓선지자의 말을 듣고 따랐습니다.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따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평안하다고 외치는 거짓선지자들을 따랐습니다. 정말로 따라야 하는 선지자들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망한다, 회개해야 한다고 외치는 선지자들의 말은 외면했습니다. 그렇게 악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악상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은 당연히 망해야 할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바벨론에 의해서 비참하게 망했습니다. 본문의 말씀대로 그들이 망할 때 놀라고 망했습니다. 선지자들이 말할 때 멸시하던 사람들이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한탄하면서 망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도 마음에 새겨들어야 할 이유는 선지자시대의 유대인이나 예수님 당시와 사도바울 시대의 유대인이나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다 같이 적용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도 이 경고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말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인데 무슨 벌을 받고 망할 일이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고 바르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선지시대의 유대인들과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처럼 형식적으로 겉으로만 사람들 앞에서만 율법을 지키는 척할 뿐 사실은 율법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들은 매주일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예배의 의미나 기도의 의미조차도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선지시대 유대인들처럼 우상을 함께 교회에 가지고 와서 섬기면서도 하나님만 섬긴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온갖 탐욕을 품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면서도 그것이 우상인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잘 알고 진리를 잘 안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탄의 사주를 받은 거짓 선생들이 퍼트린 잘못된 교리를 따르고 진리가 아닌 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죄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비웃고 특별히 믿음만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성경의 핵심 진리를 비웃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놀라면서 망했다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거짓 예언을 하던 거짓 선지자들처럼 돈에 눈이 어두워서 명예에 눈이 어두워서 진리를 바르게 외치지 못한 많은 지도자들이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게 될 것이고 그들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도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진리를 믿지 못했고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진리를 비웃지만 복음의 진리는 반드시 이루어지며 영원할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그 죄 사함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무지 믿지 못할 이 진리를 우리는 믿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