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9. 17.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76)
  본문 : 행 13:24-25 
  제목 :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24.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며칠 전에 아동센터 관계로 소방안전교육을 받고 왔습니다. 교육을 받는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준비되지 않은 기적은 없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대형화재나 대형교통사고가 났는데도 기적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살았다고 할 때 그 기적이라는 것이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사고가 나기 전에 사고가 날 것을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하고 훈련을 한 결과 모든 사람이 무사하게 구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훈련도 없이 사고가 나면 우왕좌왕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지만 미리 대책을 세우고 준비를 하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알게 되고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일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려도 별로 실감을 느끼지 않으실 줄 압니다. 그러나 정말 마지막 때를 맞이해서 그 자리에 서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기적 중에 기적으로 느껴지실 것입니다. 

 

  이 기적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런 엄청난 기적 같은 일이 그냥 우연한 일로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철저한 계획과 그 계획대로 한 치도 틀림이 없는 실행과 수많은 사연들이 우리에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만나도록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시게 하시는 일도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가 믿을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역사들을 통해서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 역사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 앞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바울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일을 위해서 하신 일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이 일을 드디어 세례요한을 통해서 마무리를 하고 있음을 봅니다. 요한을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고 회개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에 세례요한이라고 부릅니다. 때로는 세례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이 광성교회입니다. 흔히 광성 교회라고 하면  빛 광(光) 자와 거룩하다고 할 때 쓰는 성스러울 성(聖) 자를 써서 ‘거룩한 빛’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광야라고 할 때 쓰는 빌 광, 혹은 밝을 광(曠)이라는 글자와 소리 성(聲) 자를 써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뜻을 가진 광성(曠聲)교회라고 하고 싶습니다. 우리교회도 세례요한처럼 회개를 오치고 예수그리스도께로 안내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25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례요한이 자기 임무를 다 마친 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했는데 그것을 바르게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25절에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달려갈 길을 다 마칠 때에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라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마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제자들이 바르게 이해를 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하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주로 믿게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오해를 하여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물었습니다.

 

  세례요한이 행한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을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광야에 나가서 회개하라고 외치고 회개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푼 일이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회개를 외쳤으나 회개하지 않았지만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칠 때 많은 사람들이 와서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이 외칠 때 회개할 생각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왜 요한이 외칠 때 회개를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가까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회개를 외치는 요한의 삶도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했으면 권력도 누리고 생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특권을 버리고 광야로 나가서 메뚜기나 잡아먹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자신의 신변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아주 강하게 회개를 외쳤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10)라고 했습니다.

 

  또 세례요한은 그냥 회개만 외친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과감하게 지적을 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분봉왕은 헤롯 안디바였습니다. 이 사람은 그의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아내로 취했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자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가 목을 쳐서 죽이게 됩니다. 광야에서 회개나 외치면 됐을 텐데 왕의 결혼문제까지 잘못을 지적하다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대중들의 회개만 외친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왕의 잘못까지 지적을 하여서 정의를 실현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이 두려워서 이렇게 강하게 회개를 외치지 못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할 말이 있어도 강하게 외치지 못하고 대강 적당히 설교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착하고 바르게 살아서일까요? 그만하면 믿음생활 잘 한다고 생각해서일까요? 마음에 안심이 되도록 잘 하지 못하지만 곧 잘하게 되겠지 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더러는 믿음이 있든지 말든지 그냥 교회나 가끔 나오고 헌금이나 해 주면 좋고, 교인숫자로 남아 있으면 만족합니다. 잘못했을 때 강하게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는 것이 사실은 유익하게 하는 일입니다. 늘 잘했다고 칭찬만 하다가 보면 사람들이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이런 세례요한의 바른 행동 때문에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걱정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제자로 머무르는 것이 걱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확인을 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혹시 나를 믿고 따르려는 것은 아니냐고 묻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24절 말씀에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라고 한 뒤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걱정하는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런 모습들을 보고 사람들이 혹시 자신을 그리스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사람들을 취합하여 어떤 단체도 만들고 더 나아가서 종교화하고 자신이 교주로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역사상에 나타난 많은 이단들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럴듯한 교리를 내세우든지 그럴듯하게 자기 자신을 미화시키든지 해서 사람들이 자신만을 섬기며 따르도록 만들어버립니다. 일부 타락한 대형교회 목사들도 자신을 미화시키고 인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따르게 하는 잘못된 일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로 오시는 분이 뒤에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그런 행동들을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행동에 박수를 치며 따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그런 선행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해주실 수 있는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하고 그리스도께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부귀영화를 뒤로하고 어려운 삶을 산다고 해도 그것을 가지고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득권을 버리고 청렴하게 산다고 그것으로 인생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청렴하게 가난하게 바르게 산다고 해서 그동안 지은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은 죄는 용서를 받아야 하고 용서해 주실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다고 그 회개만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를 하고 나서 그 회개로 인해서 죄의 용서를 받아야 되는 것이지 그냥 회개만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회개한 후에 반드시 그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정의로운 세상을 외친다고 해도 그것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롭게 살자고 외치는 그 사람도 알고 보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그런 선한 행위를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정말로 중요한 예수그리스도를 다를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과 그리스도를 비교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발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고 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있습니다. 자신을 예수님의 신발의 끈을 풀어드리는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임을 고백하면서 예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세례요한을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로 평가를 하셨습니다. 하나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11:11)라는 평가입니다. 여자가 낳은 사람이란 특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안내를 하고 준비를 한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다 나름대로 일을 했지만 이렇게 예수님 바로 앞에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그런 일을 감당했기 때문에 그를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낮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11:1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백성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도록 부름을 받고 사명을 다한 사람들도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더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세례요한이 제자들에게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던 것처럼 우리 자신들도 우리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자문자답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이십니까? 여러분의 믿음 상태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고행이나 선행을 믿는 사람들입니까?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입니까?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는 사람입니까? 이런 것들은 우리를 구원받게 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만든다는 것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원주로 믿는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누구이십니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까? 전도와 선교는 반드시 구원받은 백성이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인가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10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진심으로 믿는 믿음을 주시고 동시에 그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보십니다. 점점 더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칭의와 아울러 성화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이런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세상 걱정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믿음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 자신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인가?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인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고 진심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요한이 그 제자들에게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의 선행을 보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고 구주가 되심을 알라고 한 말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구주로 믿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이 그 믿음에 있는가를 점검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자 다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