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1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24)
본문 : 엡 2:8-9
제목 : 오직 은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여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주제는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입니다.
물론 두말할 여지가 없이 구원은 죽음과 멸망 그리고 그 죽음과 멸망을 초래한 죄에서의 구원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핵심입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 구원이 병에서의 구원, 혹은 가난에서의 구원, 불공평한 사회제도에서의 구원, 고통과 괴로움에서의 구원으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고통의 원인을 살펴보면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결과로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구원의 주요 핵심은 죄와 사망 그리고 멸망에서의 구원입니다.
성경의 가장 주요 핵심구절을 말하라고 하면 어디를 말씀하시겠습니까
요한복음 3:16절일 것입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이 요3:16절 말씀은 교회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써서 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으로 보내 주신 독생자(예수님을)를 믿는 믿음
그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음
이 세가지가 성경말씀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 요한복음 3:16절 말씀과 같이 성경의 대표적인 요절을 하나 더 들라고 하면 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일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도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게 되는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말씀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얻는 것이며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이며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잘 살펴보시고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게 되는 것인가를 바르게 알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1.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구원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수없이 듣지만 너무 의미가 깊어서 잘 실감이 나지 않는 말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라고 정의를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은 "구부리다, 굽히다"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허리를 굽혀 낮은 자리에 있는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옛날에 우리 나라에도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이 한번 행차를 하면 그 행차는 아주 대단했습니다.
왕의 행차가 지나가면 백성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에 누구라도 머리를 들고 왕의 얼굴을 본다든지 일어나서 왕에게로 나온다면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끔 왕이 행차를 멈추고 가마에서 내려와 백성 중에 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축복을 하고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왕의 이러한 행동을 은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꿈쩍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떨고 있는 백성에게 손을 내밀어 등을 두드려 주고 축복을 했다면 그것은 이 백성에게 있어서 은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반 하우스 목사는 이 은혜를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위를 향한 사랑은 예배요
바깥(이웃)을 향한 사랑은 자비요
허리를 굽힌 사랑은 은혜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위를 향한, 즉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혀 낮은 우리 인생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것 그것이 은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느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이 은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 신앙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찬송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신앙은 차원 높은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완전 무료이며 절대 갚으라고 하지도 않고 설령 갚으려고 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 은혜를 받은 기쁨을 더욱 크게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붙잡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살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됩니다.
사소한 근심걱정에서 벗어나며 남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됩니다.
수십억을 가졌으면 몇 만 원 몇 천 원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듯이 하나님께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면 작은 괴로움들에 가슴 아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가슴 벅찬 일이기 때문에 누가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건다고 해도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녀도 그 은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 오해를 하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싸우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붙잡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살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관용을 베풀고 다른 사람들을 덜 정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았으며 그 빚을 어떻게 탕감을 받았는가를 알게 된다면 나도 다른 사람이 내게 진 빚에 대해서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며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이라도 이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율법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가 메마른 곳에는 시비와 싸움이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은혜를 붙잡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살면 더 성숙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하는 것이 더 깊어지고 더 먼 미래를 향하여 보람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믿는다는 신앙고백은 주일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 것일까 하는 마음들이 생기실 것입니다.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은 이 믿음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식과 마음의 감동 그리고 헌신 이 세가지가 믿음의 요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를 결혼과 비유해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결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결혼 대상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나이는 몇 살이고 학력은 어떻고 건강은 생긴 것은 돈은 있는가 성격은 어떤가 취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웬지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정이 들고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랑에 빠지든지 아니면 차차로 사랑하게 되든지 이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 결혼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헌신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말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도 이렇게 세 가지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분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좋으신 분인 줄 알고 너무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신 줄 알면 그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그 분을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그 분을 위해서 희생과 헌신적인 삶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를 들면 사람들은 이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하는 것이구나.
내가 주님을 알아야 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해야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믿음에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 가지 요소가 있지만 그 세 가지 요소는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믿음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누구에 의해서 생기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별 볼일이 없는 분이신데 우리가 마음이 착하고 남을 후하게 봐 주기 때문에 그냥 믿어 주는 것입니까
아니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믿을 만한 그런 너그러운 사람이 아닌데 우리 예수님이 너무나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믿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총각이 아가씨를 만났는데 아 이 아가씨를 알고 보니까 호박이 넝쿨 채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재벌의 무남독녀 외동딸이고 얼굴이나 몸매는 미스코리아가 왔다가 뺨 맞고 갈 정도이고 머리도 좋아서 학벌도 좋고 게다가 마음씨까지 착하고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좋은 신부감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총각은 이 사실을 알고 그 여자를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헌신적으로 아내에게 봉사하고 결혼생활을 위해 헌신하였다고 한다면 이 사살과 헌신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그 신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 정도의 여자가 있다면 그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너무나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누리는 혜택이 너무나 큰 것이기에
우리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닐 뿐더러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교리를 배우신 분이시면 구원론(성령론)을 통해 구원의 서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다 성령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교회로 불러 주시는 것이나 내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알게 해서 죄를 회개하는 일이나 예수님을 알게 해서 믿음을 가지게 하는 일이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이르는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서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물이라고 할 때 대가가 없이 그냥 주신다는 말씀도 포함이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3.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에 믿음이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이고 그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라는 분은 그의 책 "은혜의 각성"이라는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이단은 인본주의 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인본주의란 모든 일들을 인간 중심으로 즉 인간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을 할 때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에게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우고 열심히 일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외치면서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능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구원을 받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자기 스스로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고 고행을 하여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간들의 죄악된 모습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굵직굵직한 범죄 사건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인본주의의 발상에서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류를 범죄자로 만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것도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엄청난 죄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도 인류가 온 지구상에 흩어지게 되고 말이 여러 가지로 나뉘게 되는 큰 벌을 받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도 결국은 인본주의에서 온 것입니다.
인간들이 힘을 합하여 하나님께 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내려도 죽지 않게 하늘까지 탑을 쌓아서 대항을 하자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내에도 이 인본주의의 사상이 많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왜 죄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런 것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스스로 노력하여 의인이 되고
선한 일을 많이 하여서 스스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고
인간끼리 서로 도와주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협력하여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가 믿음으로만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는다는 핵심교리를 가진 우리 기독교가 불교나 천주교나 유교같은 것과 손을 잡고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다는 이 진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이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무리 아름답고 선하다고 할지라도 그 행위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귀한 믿음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 엡 2:8-9
제목 : 오직 은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여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주제는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구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입니다.
물론 두말할 여지가 없이 구원은 죽음과 멸망 그리고 그 죽음과 멸망을 초래한 죄에서의 구원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핵심입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 구원이 병에서의 구원, 혹은 가난에서의 구원, 불공평한 사회제도에서의 구원, 고통과 괴로움에서의 구원으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고통의 원인을 살펴보면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결과로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구원의 주요 핵심은 죄와 사망 그리고 멸망에서의 구원입니다.
성경의 가장 주요 핵심구절을 말하라고 하면 어디를 말씀하시겠습니까
요한복음 3:16절일 것입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이 요3:16절 말씀은 교회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써서 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으로 보내 주신 독생자(예수님을)를 믿는 믿음
그 믿음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음
이 세가지가 성경말씀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 요한복음 3:16절 말씀과 같이 성경의 대표적인 요절을 하나 더 들라고 하면 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일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도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게 되는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말씀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얻는 것이며
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이며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잘 살펴보시고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게 되는 것인가를 바르게 알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1.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구원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수없이 듣지만 너무 의미가 깊어서 잘 실감이 나지 않는 말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라고 정의를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은 "구부리다, 굽히다"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허리를 굽혀 낮은 자리에 있는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옛날에 우리 나라에도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왕이 한번 행차를 하면 그 행차는 아주 대단했습니다.
왕의 행차가 지나가면 백성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에 누구라도 머리를 들고 왕의 얼굴을 본다든지 일어나서 왕에게로 나온다면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가끔 왕이 행차를 멈추고 가마에서 내려와 백성 중에 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축복을 하고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왕의 이러한 행동을 은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꿈쩍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떨고 있는 백성에게 손을 내밀어 등을 두드려 주고 축복을 했다면 그것은 이 백성에게 있어서 은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반 하우스 목사는 이 은혜를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위를 향한 사랑은 예배요
바깥(이웃)을 향한 사랑은 자비요
허리를 굽힌 사랑은 은혜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위를 향한, 즉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서 허리를 굽혀 낮은 우리 인생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것 그것이 은혜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 깊이 느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이 은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 신앙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찬송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신앙은 차원 높은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완전 무료이며 절대 갚으라고 하지도 않고 설령 갚으려고 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 은혜를 받은 기쁨을 더욱 크게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붙잡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살면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됩니다.
사소한 근심걱정에서 벗어나며 남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됩니다.
수십억을 가졌으면 몇 만 원 몇 천 원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듯이 하나님께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면 작은 괴로움들에 가슴 아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가슴 벅찬 일이기 때문에 누가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건다고 해도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녀도 그 은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 오해를 하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싸우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붙잡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살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관용을 베풀고 다른 사람들을 덜 정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았으며 그 빚을 어떻게 탕감을 받았는가를 알게 된다면 나도 다른 사람이 내게 진 빚에 대해서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며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이라도 이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율법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가 메마른 곳에는 시비와 싸움이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은혜를 붙잡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고 살면 더 성숙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하는 것이 더 깊어지고 더 먼 미래를 향하여 보람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믿는다는 신앙고백은 주일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예수님을 믿기는 믿는 것일까 하는 마음들이 생기실 것입니다.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은 이 믿음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식과 마음의 감동 그리고 헌신 이 세가지가 믿음의 요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를 결혼과 비유해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결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결혼 대상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나이는 몇 살이고 학력은 어떻고 건강은 생긴 것은 돈은 있는가 성격은 어떤가 취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아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웬지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정이 들고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랑에 빠지든지 아니면 차차로 사랑하게 되든지 이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 결혼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헌신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말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도 이렇게 세 가지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으며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분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좋으신 분인 줄 알고 너무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신 줄 알면 그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도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그 분을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그 분을 위해서 희생과 헌신적인 삶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를 들면 사람들은 이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하는 것이구나.
내가 주님을 알아야 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해야 하고 내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해야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믿음에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 가지 요소가 있지만 그 세 가지 요소는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믿음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라는 것이 누구에 의해서 생기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별 볼일이 없는 분이신데 우리가 마음이 착하고 남을 후하게 봐 주기 때문에 그냥 믿어 주는 것입니까
아니오 그 반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믿을 만한 그런 너그러운 사람이 아닌데 우리 예수님이 너무나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믿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총각이 아가씨를 만났는데 아 이 아가씨를 알고 보니까 호박이 넝쿨 채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재벌의 무남독녀 외동딸이고 얼굴이나 몸매는 미스코리아가 왔다가 뺨 맞고 갈 정도이고 머리도 좋아서 학벌도 좋고 게다가 마음씨까지 착하고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좋은 신부감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총각은 이 사실을 알고 그 여자를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헌신적으로 아내에게 봉사하고 결혼생활을 위해 헌신하였다고 한다면 이 사살과 헌신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그 신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 정도의 여자가 있다면 그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이 나간 사람이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너무나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누리는 혜택이 너무나 큰 것이기에
우리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닐 뿐더러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교리를 배우신 분이시면 구원론(성령론)을 통해 구원의 서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다 성령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교회로 불러 주시는 것이나 내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알게 해서 죄를 회개하는 일이나 예수님을 알게 해서 믿음을 가지게 하는 일이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이르는 모든 일들을 성령님께서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물이라고 할 때 대가가 없이 그냥 주신다는 말씀도 포함이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3.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에 믿음이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믿음이고 그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라는 분은 그의 책 "은혜의 각성"이라는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이단은 인본주의 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인본주의란 모든 일들을 인간 중심으로 즉 인간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인본주의라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을 할 때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에게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우고 열심히 일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외치면서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능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구원을 받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자기 스스로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고 고행을 하여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간들의 죄악된 모습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굵직굵직한 범죄 사건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인본주의의 발상에서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류를 범죄자로 만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것도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엄청난 죄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도 인류가 온 지구상에 흩어지게 되고 말이 여러 가지로 나뉘게 되는 큰 벌을 받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도 결국은 인본주의에서 온 것입니다.
인간들이 힘을 합하여 하나님께 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내려도 죽지 않게 하늘까지 탑을 쌓아서 대항을 하자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 내에도 이 인본주의의 사상이 많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왜 죄가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런 것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스스로 노력하여 의인이 되고
선한 일을 많이 하여서 스스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고
인간끼리 서로 도와주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협력하여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가 믿음으로만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는다는 핵심교리를 가진 우리 기독교가 불교나 천주교나 유교같은 것과 손을 잡고 함께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다는 이 진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이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무리 아름답고 선하다고 할지라도 그 행위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귀한 믿음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