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68)
본문 : 행 13:13-16
제목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3.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사도행전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나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명령을 하셨고 제자들은 그 명령대로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13장에 들어오면서 그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열두제자가 아닌 바울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면서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유대문화와 헬라문화를 동시에 배우고 경험하여서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된 기독교를 이방인들에게 전하기에 적합한 사람입니다. 사울이라고 불리던 그가 13장부터는 자연스럽게 바울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사울은 유대식 이름이고 바울은 헬라식 이름으로 이방인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라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선교여행을 했는데 1차 선교 여행에서 3차 선교 여행까지로 구별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그의 선교여행이 막을 내립니다. 1차 선교여행은 안디옥교회에서 시작을 해서 구브로섬과 소아시아지역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2차 선교여행은 소아시아지역(지금의 터키)과 유럽의 일부지역에서 선교를 했고 3차 선교여행은 1,2차 선교지역을 다시 돌아보면서 복음을 전했고 마지막으로 로마로 올라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브로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 일행이 배를 타고 소아시아지역인 밤빌리아의 버가로 가서 복음을 전했고 더 나아가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바울이 최초로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 이전에도 복음을 전하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전했지만 회당에서 공식적으로 설교를 한 것은 처음이로 보입니다. 앞서서 베드로의 설교와 스데반의 설교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바울의 설교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바울이 설교하기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본문 13절에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라고 했습니다.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 있는 버가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첫 선교지가 구브로라는 지중해 연안의 섬나라라고 했습니다. 바보는 그 섬의 수도였고 항구도시였습니다.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로 갔다고 했는데 버가는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의 해안도시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잘 아실 텐데 복음이 세계만방으로 전파되면서 한꺼번에 먼 나라로 전파되지 않고 주변의 나라들로부터 점점 멀리 점차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봅니다. 예루살렘에서 서쪽에 있는 구브로로 갔다가 구브로에서 북쪽의 소아시아로 갔다가 그 다음에는 점점 더 서쪽에 있는 유럽으로 복음이 전파됩니다. 유럽의 입구 쪽에 있는 로마로 복음이 전파되어서 로마의 국교가 되게 하고 나중에는 유럽에서 서쪽인 미국으로 가서 미국의 서쪽인 우리나라가 있는 아시아지역으로 와서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다시 중동으로 가면서 서쪽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선교여행을 할 때 늘 동역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번 1차 여행 때는 바나바가 같이 왔고 요한도 같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구브로에서 버가로 올 때 요한은 함께 오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마가요한으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베드로사도의 제자였고 함께 동행한 바나바의 생질입니다.
마가요한이 왜 중도에서 돌아갔는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부잣집 아들로 힘든 선교여행을 견디지 못해서 돌아갔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실 때도 뒤따라 가다가 위기가 닥치자 걸치고 있던 홑이불을 던져버리고 도망을 갔던 사람입니다.
그가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간 이유는 아마도 바울과 마음이 맞지 않아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닌 베드로사도의 제자였고 그도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으로서 예수님께 직접 배운 제자가 아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마가요한에게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후일 마가가 다시 바울과 동행하려고 했을 때 거절하고 그와 같이 가기를 원하는 바나바와도 결별을 하게 됩니다. 단순히 겁이 많다는 이유로 그렇게 강하게 거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선교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바울에게 있어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같이 하고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일을 같이한다고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바른 복음을 알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좋다, 착하다, 부지런하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함께 할 사람을 구별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바른 진리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잘해주고 아무리 좋은 것을 주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이단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조금 엇비슷하다고 해서 받아주면 안 됩니다. 그 작은 차이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는 너희가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른 교훈 즉 복음을 따르지 않는 자는 잘 살펴보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께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할 사람은 철저하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무장이 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좀 부족하고 힘이 없다고 할지라도 바른 복음 안에 있을 때 진정한 복음의 일꾼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4,15절에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세워서 파송한 안디옥교회는 이스라엘 바로 북쪽에 있는 수리아(지금의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교회였지만 본문의 안디옥은 지금의 터키지방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이스라엘이 나라가 망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자 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살게 되었는데 여기 비시디아 안디옥에도 유대인들아 많이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세우고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 모여서 기도를 하고 성경말씀을 낭송하고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설교를 통해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보다도 이런 회당들이 오늘날 교회에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회당에 모여서 같이 읽은 말씀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모세오경을 말하고 선지자의 글이란 대소선지서를 말하는 것이지만 대개 구약성경을 이야기 할 때 율법과 선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구약성경을 읽어놓고 그 뜻이 무엇인지를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구약성경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받은 선민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고 잘 산다고 했는데 지금 그런 말씀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망하고 성전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되었는데 그런 약속의 말씀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생각 같으면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이방인들처럼 이방신이나 섬기고 살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은 하나님을 떠나지 못하고 이렇게 모여서 말씀을 낭독하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을 하여 복음을 전하는 바울사도가 그곳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마침 그들이 회당 안에 들어 온 것을 보고 청중에게 권면할 말이 있으면 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서 베드로의 설교나 스데반의 설교를 살펴봤지만 철저하게 구약성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설교도 다음 주부터 살펴보겠지만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그 많은 사건들이 그 많은 축복의 약속들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하는 것임을 설명하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시대의 회당에 앉아서 구약성경을 낭독하고 이 세상의 축복들을 바라고 있는 사람들처럼 구약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의 축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통해서 발견해야 할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간의 도리로 지켜야 하는 율법을 강조하고 세상 축복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간판을 걸고 예수교라는 간판을 걸고 교회당에 십자가를 우뚝 세워두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고 바르게 사는 일을 무시하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복 받고 잘살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의 핵심을 놓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아시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신 그 뜻을 바르게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안 된다고 포기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주셨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자기 스스로 착한 일을 하고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그런 교만한 마음을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저 한두 가지 한 착한 일을 내세우지 말고 마음속에 가득한 죄악의 무서움을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자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는 성경의 교훈을 바르게 알고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6절에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유독 ‘들으라’라고 하는 말씀을 자주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명기 6장의 말씀도 ‘들으라’로 시작을 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6:4)라고 시작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들으라’로 시작을 합니다. 단순히 들으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들으라고 시작하는 신명기의 말씀처럼 듣고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언제나 이 말씀을 강론하고 손목에 매여 기호로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으라고 하신 것처럼 철저하게 이 말씀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첫 설교인 산상수훈을 말씀하시고 마치시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무리가 잘 아는 로마서의 말씀에서도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진리도 알고 진리를 알아야 믿음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데 말씀을 듣는 것은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항상 말씀을 들어야 하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그 대상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라고 했습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진리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들으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선택하신 선민 이스라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은 아니지만 이방인으로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도 들으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에게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선민이 있습니다. 유대인들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을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복음의 말씀을 우리들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듣기는 듣습니다. 그러나 듣는 것으로 끝이 나고 진리를 알지 못하고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듣는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만 들리는 신비한 비밀의 복음입니다. 마가복음 4:23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후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하셨는데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니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하면서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을 보면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대부분이 다 잘 들으시지만 다른 교회에 가서 말씀을 선포하면 유난히 잘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이 들리시면 여러분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혹시 말씀이 잘 안 들리면 들으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지시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는 바울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특권이며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의 핵심인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이 우리교회를 통해서 세계만방에 전파되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