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65)
본문 : 행 13:4-7
제목 :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4.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6.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7.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오늘 설교 제목은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 세계 최초로 이방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는데 그 나라가 구브로라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이스라엘 서쪽에 있는 지중해의 섬나라입니다. 북쪽으로는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이 있고 남쪽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연결이 되고 동쪽은 중동지역이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를 키프로스(Cyprus)라고 합니다. 지중해에서 세번째 큰 섬이고 우리나라 남한의 10분의 1정도의 면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은 섬나라가 세계 최초로 공식적으로 선교사가 입국한 나라입니다. 이 구브로 지금의 키프로스라는 나라에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세워서 파송을 했습니다. 그 섬나라에에 선교사가 파송 되어서 행한 일들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고 이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예상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때도 많고 우리의 지식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에 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의 생각이나 지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이 되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기록한 사도행전을 공부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선교가 그냥 우연에 의해서 진행이 되어나가는 것 같지만 치밀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봅니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서 우리의 삶도 그냥 우연히 살아가고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일에 있어서 도구로 사용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서 하나님은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맡은 일들을 함으로서 하나님의 이 거대한 구원사역에 더 크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나바와 사울이 처음 선교지로 가서 선교를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진행하시는 선교의 방법을 보고 우리도 하나님의 선교에 쓰임을 받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본문 4절과 5절에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이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기록하였고 그 주도적인 역할을 사도들이 했다고 해서 사도행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모든 과정을 성령님께서 주도하시기 때문에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최초의 이방인 선교사로 세우는 과정에 있어서도 성령님께서 세우라고 말씀을 하셨고 오늘 본문에도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라고 하심으로 세우는 것이나 보내시는 것이 다 성령님의 주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주관하신다고 할 때 우리가 생각하기를 인간들이 할 수 없는 기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적이 동반될 때 성령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일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하실 때 특별한 경우에 사람들이 하는 방법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때 기적적인 방법으로 일을 진행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통은 우리 인간들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더 많은 역사를 하십니다.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처럼 보이는 일들 가운데서도 성령님의 주도로 진행되는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복음이 전파되는 일, 어떤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일,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되는 일들은 모두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되는 일들입니다.
안디옥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인 바나바와 사울의 첫 선교지는 ‘구브로’라고 하는 지중해의 섬나라였습니다. 본문에 보니까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라고 했습니다. 실루기아는 구브로에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항구였기 때문에 실루기아로 가서 배를 타고 구브로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인 살라미에 도착을 했다는 것입니다.
육지를 통해서 세계 여러 나라로 갈 수 있는데 왜 하필 작은 섬으로 먼저 갔을까요? 안디옥교회에서 멀지 않은 섬이라 쉽게 갈 수 있었기 때문이고 또 거기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곳으로 가야 할 여러 상황들을 이미 만들어 놓으셨고 그 상황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먼저 갔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정황들이 보입니다.
구브로에는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 박해를 피해서 그곳으로 간 기독교인이 있었고 사실은 그들이 먼저 안디옥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이방나라인 안디옥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교회에서 바나바를 그곳으로 파송을 했습니다.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한 이유는 바나바의 고향이 바로 이 구브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구브로에서 온 사람들이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니까 구브로가 고향인 바나바를 보내서 어떤 사람들인가 믿을 만한 사람들인가를 살펴보고자 했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와서 구브로에서 온 사람들을 확인 했을 것이고 거기에 자신을 얻고 더 확실하게 구브로에 복음을 전할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사울을 안디옥교회로 데리고 왔고 바나바와 사울이 한 팀이 되어서 선교사로 세움을 받고 첫 선교지를 구브로로 정하고 구브로로 갔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살펴보면서 모든 일들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구브로가 첫 선교사 파송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스데반의 순교 때부터 역사를 하셔서 박해를 받고 피난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구브로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 이전에 성령님께서는 구브로 출신인 바나바에게 믿음을 주셔서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나바가 고향 구브로를 떠나서 예루살렘에 올 때부터 이미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바나바와 같이 구브로로 가게 된 사울도 그냥 쉽게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이는 역할을 하던 사울을 변화시켜서 복음의 진리를 알게 하시고 세계에 복음을 전할 특별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요한을 바나바와 사울의 수행원으로 두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요한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요한을 가리킵니다. 마가요한과 바나바는 친척지간입니다. 마가요한의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바나바가 마가요한의 외삼촌입니다. 그리고 마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지만 베드로사도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마가복음을 기록할 정도로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예루살렘교회의 부조를 마치고 안디옥교회로 돌아올 때에 마가요한을 데리고 왔는데 선교지에 수행원으로 함께 갈 심상으로 같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최초의 선교지인 구브로 선교를 위해서 성령님께서는 미리 사전 작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구브로 출신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오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하셨고 그의 생질인 마가요한을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서 예수님을 배우게 하셨고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복음의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마가요한의 친척들이 살고 있는 구브로에 가선 전도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구브로에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한 성령님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살려고 할 때 억지로 이런저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습니다.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성실히 수행을 하다가 보면 그 일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손길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전도를 할 때 복음을 전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나의 주변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 예수와 서기오 바울
본문 6절과 7절에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구브로에 처음 도착한 살라미가 동쪽의 작은 도시라고 한다면 바보라는 도시는 반대편 서쪽 끝에 있는 구브로의 수도였습니다. 살라미에 도착해서 섬을 가로질러 바보에 도착을 하여서 거기서 본격적으로 복음전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다음 시간에 살펴볼 것이지만 구브로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 유대인의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면서 유인을 배제하고 이방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계만방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차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서도 구브로에서 우선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 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유대인들이 믿고 섬기던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오늘은 우선 바나바와 사울이 구브로에서 처음만난 마술사 바예수라는 사람과 총독인 서기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도 꽤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서기오 바울이라는 사람은 당시 구브로를 다스리고 있던 총독이었습니다. 당시 이 구브로도 로마가 다스리는 나라였고 서기오 바울은 로마가 보낸 총독이었습니다. 구브로라는 나라의 제일 큰 권력을 가진 통수권자였습니다. 이런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권력을 이용해서 자기 이권이나 챙기고 사람들이나 괴롭히면서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지식이나 권력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를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 총독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바예수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마술사라고 했습니다. 마술사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마술사가 아닙니다. 마술사란 천문, 지리, 의학을 비롯하여 점성술에 능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학문에 탁월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마술사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든 지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마술사 바예수라는 사람이 총독의 자문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의 자문을 받던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몹시 자존심이 상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잘못되면 자기가 누리던 총독 자문관의 역할도 잃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총독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만나지 못하게 해야 했습니다.
모든 지식에 능한 사람이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고 자기의 지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라면 선한 욕심일 것입니다. 이런 지식을 두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과 만나서 잘못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거짓 선지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깊이 있게 해석을 해서 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의 지식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으로 바르게 자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거짓으로 속여서 자기의 이익이나 챙기는 그런 마술사라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총독의 이름은 서기오 바울이고 마술사의 이름은 바예수입니다. 이 이름이 당시에 흔한 이름이기는 하지만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총독이고 마술사라고 하는 것은 이 역시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총독이 이름은 서기오 바울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사울의 이름도 바울입니다. 바울이라는 이름의 뜻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위대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스스로 작은 자라고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지식이 최고인 줄 알고 교만한 사람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복음의 진리는 알 수 없으며 예수님을 믿는 이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마술사의 이름은 바예수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구원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구원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원자가 아니고 구원자의 아들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자신을 높이는 엄청 교만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그 사람을 거짓선지자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서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구원을 빙자해서 사람들을 속이기나 하는 사람이고 진짜 구원의 길을 방해하는 방해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그럴 듯하게 모이지만 구원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는 교회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선포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이단들과 거짓 선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온갖 좋은 단어들을 다 가져다 쓰면서 정작 이름뿐인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리, 영생, 구원, 재림, 복음, 찬양, 선교 이런 좋은 단어들을 사용하여 교단 이름을 만들고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만 거짓뿐이고 이름뿐인 이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예수교 혹은 기독교 혹은 그리스도교입니다. 같은 뜻이지만 서로 다른 이름을 씁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이런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시면서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등장시키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짜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이해하고 마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바른 진리를 우리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세계만방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진리의 복음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이런저런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심으로 우리가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낼 때 성령님께서 더 큰 힘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