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42)
본문 : 행 10:5-8
제목 :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5.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교제하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인간은 환경적인 동물이라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사느냐에 따라서 많은 것들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어떤 교회에서 어떤 목회자를 만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교회가 어느 교파, 어느 교단에 속한 교회인가가 중요합니다. 교단에 따라서 성경을 보는 신학이 다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가 고넬료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고넬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베드로를 초청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장면입니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은 교회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방인이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사도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또 고넬료가 베드로 사도를 만남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확실히 배우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청하라.
오늘 본문 5-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사자를 보내셔서 말씀을 하시기를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유대인도 아니면서 유대인들보다 더 진실한 기도를 했고, 내가 기억할만한 선한 일을 많이 했으니까. 내가 너에게 아주 특별한 사람을 소개해 줄 테니까 그 사람을 초청해서 만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넬료가 보통 사람 같으면 좀 특별한 사람을 만나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에게까지 상달이 되고 선행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실만한 큰 일을 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좀 위대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실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아마 이정도가 되면 왕을 만나게 해 주시든지 대제사장이나 아주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게 해 줄 것을 기대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소개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초청해서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베드로라고 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 수제자라고 하는 사람이고 순교로서 부활의 복음을 전한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베드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종교지도자가 된 사람도 아니고 남 몰래 숨어서 복음을 전하는 위험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만나라고 하면서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을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화려한 왕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거룩한 성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 천한 직업으로 생각했던 무두장이의 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그의 집이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해변에 있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고넬료는 좀 실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내기도와 구제를 보시고 특별히 기억을 하신다가 되었다고 한다면 최소한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든지 자기가 사는 곳보다 더 화려한 곳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셔야지 어찌 이름도 없는 사람 그것도 천한 사람이 사는 집에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하실까 라는 실망을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천사가 떠나자마자 하인 두 사람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한 사람을 선정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라는 사람을 초청하기 위해서 욥바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를 하고 또 하나님께서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그런 마음으로 불쌍한 이웃을 구제한 것은 자신의 출세나 이 세상에서의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욕심이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득실을 따지지 않고 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러한 고넬료의 기본자세가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복을 받기 위하여 형식적으로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내가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초청할 것인가.
우리가 설교를 들으면서 그냥 남의 이야기 듣는 것처럼 상식적으로 듣고 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거리가 멀고 상관이 없는 이야기로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많은 상식적인 이야기 보다는, 성경공부식의 설교보다는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일까 생각할 수 있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길게 잔소리도 하지 않을 것이고 한두 마디라도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들을 수 있도록 설교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마음으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에 누구를 초청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천한 무두장이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했습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고 믿음을 따라 살려고 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천사를 통하여 직접 말씀을 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고 베드로를 초청하여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1) 진리를 알고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초청하여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를 통하여 그에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바른 신앙고백을 하여서 예수님께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고 그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동안 예수님 앞에 고백한 신앙고백을 보면서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한 고백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라는 고백입니다. 베드로가 특별히 깡패였거나 사기꾼이었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던 평범하고 착한 어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예수님 앞에 엎드리어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을 한 것은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그 바다에서 말씀 한마디로 엄청난 고기를 잡게 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우리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엄청난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는 죄용서 받는 방법을 모를 때 하는 고백입니다. 우리에게 죄 용서를 받는 길이 없다면 당연히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밝은 빛 앞에 서 보면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로 하나님 앞에 서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형을 당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피해서 멀리 있는 것이 다행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은 아직 믿음을 시작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자랑을 하면서도 믿음의 가장 기초가 되는 이 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끔 자기 자신은 죄를 범하지 않고 잘 살았다고 자랑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 안에서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기가 잘났다고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남의 흉을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더 흉악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왜 나에게 이런 부당한 대우를 하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그 다음의 고백이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로인하여 구원을 받게 해 주신다는 말씀에 사람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다 떠났습니다. 기적을 보고 몰려온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많은 혜택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영생의 말씀을 듣고 다 떠나버렸을 때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입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고백할 신앙고백이 이 영생에 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일이 있다고 해도 이 영원한 생명에 관한 말씀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이 영생의 말씀이 선포되는데 세상 이야기 들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도 영생의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는 가지 않고 이 세상의 축복 이야기만 하는 교회에 더 잘 갑니다. 그래서 이상한 교회들은 사람들 끌어 모으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도 아닌 영생의 말씀도 아닌 세상의 개똥철학, 세상의 축복 이야기를 합니다. 장사꾼의 이야기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영혼을 죽이는 사기꾼들 이야기에 현혹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한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가 되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최고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라고 하시면서 베드로가 한 이 신앙고백을 토대로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이 신앙고백을 위해서 있는 곳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신앙고백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곳입니다.
한번 더 따라하겠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즉 우리를 구원할 분이시며 우리를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몇 년 동안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배를 불법으로 개조를 하여 사람이 더 많이 타게 하고, 화물을 몇 배나 더 많이 싣고 운항이 서투르고 이런 저런 요인들이 있어서 배가 침몰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구조를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침몰되어 가고 있는 배안에 수백 명의 학생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구조를 직접 담당해야 할 선장이나 선원들은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을 해버렸습니다.
상황 파악을 바로 하고 구조 명령을 내려야 할 사람들이 임무를 다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사람들이 죽음을 당해서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대통령이 그런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잠을 잤는지 뭘 했는지 딴 짓이나 하고 구조하지 못했느냐고 질책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난파선을 타고 죽음을 향해서 침몰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 잠이나 자고 있다면 큰일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 빠져 죽는 것을 보고도 구원할 능력이 없다면 큰일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우리를 나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잠이나 자고 다른 일 바쁘다고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능히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자신 있게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우리가 가진 이 신앙고백이 정말로 위대합니다. 이 신앙고백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무나 귀한 것임을 꼭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2)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베드로는 바른 신앙고백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고백을 따라 산 사람입니다. 그가 한 신앙고백이 정말 중요하고 참된 고백임을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증언하기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순교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 위대한 믿음은 진실한 고백이 함께 동반해야 합니다. 신앙고백대로 삶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이 따르지 않고 말로만 하는 고백은 의미가 없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상달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허락하시고 용납을 하시지만 항상 악하게 사는 사람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서도 아직도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서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하나님께 상달이 되고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셔야 그 효력을 발생하는데 그런 삶이 따르지 않는 위선적인 고백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6-7)
원래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면 악은은 그의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무지한 인간들이 자기가 행하는 일이 불의한 일인지도 악한 일인지도 모르고 살기 때문에 그 잘못을 알고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손을 내미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셔서 그것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 반드시 그 죄악을 버리고 불의를 버리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옛날 세상에 살 때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서 세상의 쾌락을 위해서 먹고 마시던 그런 습관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남의 탓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던 습관들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답게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인정받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실천하면서 살아야 할 두 가지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하는 참된 교회를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모여서 바른 믿음을 배우고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억하고 새 사람으로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기억되게 하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