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29)
본문 : 행 9:10-12
제목 :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성경에는 아주 좋은 일을 많이 한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도 기록이 되어있고 간혹 별로 한 일이 없이 잠깐 등장하였다가 사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일을 한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는 반면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도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나니아 라는 사람도 그냥 잠깐 스쳐가는 정도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성경에는 기록이 되지는 않았지만 복음을 위해서 애를 많이 쓴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나니아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냥 왔다가 우연히 이런 일을 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귀한 일꾼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오는 도중 예수님의 빛을 보고 눈이 멀어서 먹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을 때 그에게 안수해서 눈을 뜨게 하고 세례를 베풀어서 세계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한 사람입니다. 교회사에 있어서 엄청난 일을 할 사울을 복음의 일꾼으로 세우는 일을 한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지금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별로 한 일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다 쓰임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큰일을 한 사람만 쳐다보면 우리같이 보통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일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큰 일만 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보이는 큰일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들이 알아보지도 못하고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일을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나라의 일은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다 소중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본문 10절 말씀에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그 때”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미리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진행해나가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지금 이 때는 유대교에 충실했던 사울이 기독교의 훌륭한 일꾼으로 바뀌는 중요한 때입니다. 사울이 예수님의 빛을 보고 음성을 듣고 장님이 되었다가 다시 눈을 뜨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중요한 때입니다.
단순히 사울 한 사람의 변화가 아니라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유다에서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아주 중요한 때입니다. 이런 중요한 때에 이런 중요한 일로 쓰임을 받은 사람이 아나니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때를 볼 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도 이런 중요한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기회라고 합니다. 이런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잘 잡고 나가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기회가 왔어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도 이런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제자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의 열두제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열두 제자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다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언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자 예루살렘에 살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메섹으로 피난을 왔다고 했는데 그 때 피난 온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 그 때 이미 믿고 제자가 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보다 후에 오순절 때 성령이 임하시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 때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식 이름인데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을 가진 이름들이 많이 있지만 당시의 유대인들도 많이 쓰는 이름이었습니다.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나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의 다메섹 사람 아니니아가 있고 우리가 앞서 배운 사도행전 5장에 등장하는 아나나아와 삽비라 부부의 아나니아입니다. 그리고 23장에 등장하는 대제사장 아나니아입니다. 이 세 사람은 다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은혜 아래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각각 다른 삶을 산 사람입니다. 이 세 사람이 아주 방향이 다른 세 가지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대제사장 아나니아도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을 몰라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을 미혹하는 이단의 무리라고 로마 총독에게 고발을 한 사람입니다. 후일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반란 시에 친 로마파로 몰려 유대인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 가운데서 살면서도 그 은혜를 잘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벌을 받아 죽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는 그런 특별한 시기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시기에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쓸 수 있는 재물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특별한 기회에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해서 벌을 받고 죽임을 당한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이 부부의 죄가 헌금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헌금보다는 진실한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진실한 마음입니다. 위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믿음의 고백이 진실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속마음까지 다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거짓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벽한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일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못 된 것 그대로 다 보이면 됩니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부족한대로 나오시면 됩니다.
오늘 본문의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 안에 거하는 사람이며 그 은혜 안에 사는 사람으로서 모범적인 사람입니다. 22장에 보면 바울이 아나니아를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행22:1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따라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만 방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이며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10절 하 반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부르셨습니다. 그 때 아나니아가 대답을 하기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 “환상 중에”서 ‘환상’이란 실제로 보았다는 말입니다. 꿈이나 상상 속에서 어떤 형상을 보았다는 말이 아니라 실지 눈으로 보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실지적으로 보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그 무엇을 실제적으로 보았다는 말입니다.
그런 환상 중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나니아야 라고 부르시니까 아니나아가 바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런 경험을 많이 했든지 아니면 언제나 그런 대답을 할 준비를 하고 살았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라도 자주 나타나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에 전에 경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늘 그런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늘 기도로 묵상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언제라도 부르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늘 이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도 언젠가 아주 중요한 일에 한두 번은 쓰시려고 준비하실 때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환상으로 어떤 기적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시지는 않으시겠지만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고백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지나가거나 모른 체하고 그냥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갚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우리의 목숨까지 다 내어놓는다고 해도 그 은혜를 갚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작은 심부름 하나 시키실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큰일에 아주 작은 역할을 주셨을 때 그 역할을 감당할 마음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무엇을 시킨다고 해서 우리가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다 준비를 하시고 우리는 그냥 아주 작은 힘만 가지고 따르면 됩니다. 나를 통해서 일은 하시되 하나님께서 다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설교를 듣다가, 무슨 일을 하다가 문득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얼른 대답을 하십시오.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시고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시키시면 이런저런 핑계들을 많이 댑니다. 내가 하는 일이 너무나 소중하고 떠 이런저런 일이 너무나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음에 좀 한가해지면 이 복잡한 일이 끝나면 하겠다고 미룹니다.
인생이 그렇게 길지도 않고요 우리가 하는 일들이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어느 날 다 버리고 가야할 것들입니다. 내가 가진 지식 내가 가진 능력 내가 가진 재물 다 없어지고 말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다고 할 때 대답하고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은혜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서 엄청난 것들을 받았는데 평생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참 서글픈 삶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의 일들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그런 일들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그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 두고 가야 하는 것들일 뿐입니다. 이 세상 살면서 한번 이라도 주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살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세우는 소중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본문 11, 12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일어나서 직가라고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라는 사람의 집을 찾아서 그 집에 기도하고 있는 다소사람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아라. 그 사람이 지금 기도하는 중이다. 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 직가라는 거리는 헬라어를 뜻으로 번역을 한 말입니다. 헬라어로 유데이안(Εὐθεῖαν)이라는 거리인데 그 뜻이 직가 즉 곧은 거리라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길은 구불구불한 길들인데 여기만 쭉 뻗은 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시리아 다메섹 즉 다마스쿠스에 이 곧은길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사울이 기도하고 있는 중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섬기면서 많은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고 하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기도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정말로 기도같은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냥 시간을 따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도록 형식적으로 기도를 했다면 지금은 진심으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 뭘 구하는 기도를 했다면 지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세상을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깜깜한 암흑 속에서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많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 예수님이 메시야가 되신다는 것을 알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모라보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인 죄가 얼마나 큰 죄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진짜 기도입니다. 내 욕심이나 채우려고 마음에 소원이나 아뢰고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세상 복을 바라고 하는 기도는 기도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그 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을 알고 그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는 기도가 진짜기도입니다. 이런 기도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직가로 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기 사울이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기도하고 있는 사울을 일으켜 세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소중한 일을 담당하는 일꾼을 만들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아나니아의 사역이 있었기 때문에 사울 같은 사람이 그 귀한 사명을 감당하여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아나니아에게 하신 명령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어진 명령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꾼을 세우고 파견하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가르치고 이 복음의 진리를 바로 아는 사람을 많이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많은 설교와 가르침을 받고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아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감당할 때가 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가진 이 복음운동을 더 힘 있게 전개할 일꾼들을 세우는 일에도 함을 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동안 아동센터와 청소년 공부방을 통하여 많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는 그들 중에서 복음의 일꾼을 양성해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목회자훈련원을 세워서 운영하면서 많은 목회자들에게 이 복음운동을 전개하자고 호소하고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알고 복음을 전하게 해야 합니다. 복음을 바로 알고 전하고자 하는 목회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힘을 주고 마음껏 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도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귀한 일에 쓰임을 받는 아나니아와 같은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통해서 사울과 같은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라는 한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의 크신 일에 쓰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아나니아의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예라고 대답을 하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는 귀한 일을 감당할 준비를 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은혜 아래 사는 사람이 꼭 해야 할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