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1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22)
본문 : 행 8:26-31
제목 : 빌립이 만난 에디오피아 내시
“26.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을 해서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펴져나가는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베드로와 열두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고 스데반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스데반과 같이 일꾼으로 뽑혔던 빌립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이 전파되어 나가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빌립이 에디오피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도자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소식에 놀란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달려와서 그 사람들에게 안수를 하여 성령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의 여러 마을에서도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나타나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로 가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 명령에 따라 그곳에 가보니 에디오피아 사람이 수례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였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성경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수레로 가까이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그 내시에게 지금 읽고 있는 성경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그 뜻을 알겠느냐고 하면서 빌립을 청하여 수례로 올라오게 합니다.
오늘은 여기가지만 읽었습니다만 뒤에 보면 빌립이 이 내시가 읽는 이사야서의 기록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주었고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에디오피아는 지금 아프리카의 중동지방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이집트 아래 수단 아래에 있고 소말리아 옆에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와 멀어서 잘 모르는 나라지만 지금의 인구가 약 1억이나 되는 꽤 큰 나라이고 3천년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라입니다. 구약에서는 구스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스라는 이름의 뜻은 검다는 뜻입니다. 구스는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있는데 함의 아들입니다. 노아가 술을 먹고 누워 있을 때 셈과 야벳은 예의를 갖추고 옷을 입혀드렸는데 함은 비난을 하고 저주를 받습니다. 그 함의 아들이 구스와 가나안입니다. 그 구스인이 내려와서 사는 나라가 오늘 본문의 에디오피아입니다.
또 이 에디오피아는 솔로몬 시대 때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 많은 예물을 가지고 찾아갔던 스바 여왕이 있었습니다. 이 스바여왕과 솔로몬 사이에서 난 아들이 메넬리크 1세인데 이 사람이 에티오피아의 초대황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기록이 없지만 에티오피아의 역사는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로 보아서 에디오피아는 나라가 생길 때부터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을 믿는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처럼 정확하게 알고 섬기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솔로몬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 나라의 여왕의 국고를 맡고 있던 관리인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를 드리러 왔다가 빌립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진짜 복음을 듣게 되고 돌아와서 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에티오피아는 거의 절반이 예수님을 믿는 나라로 남아 있습니다.
역사공부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니까 여기까지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에디오피아라는 나라가 그냥 스쳐지나가듯이 등장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나라가 되도록 미리 준비하신 나라라는 것을 아시면 될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본문 26절에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선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이르되”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할 때 자기 마음대로 아무데나 가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와서 어디어디로 가라고 말씀을 하셨고 빌립은 그 말씀을 따라 그곳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9절에도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내시를 만나서 복음을 전할 때도 성령님께서 구체적으로 내시가 타고 있는 수례로 나아가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우리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이 세상 일 뿐 아니라 저세상과 우주 만물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정하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받게 하는 일 즉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고 하는 모든 일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 나타나는 현상은 시대에 따라서 개인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시대 어떤 사람에게는 주의 사자가 직접 나타나서 명령을 하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일을 하시기도 하고 또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게 인간이 눈치도 챌 수 없게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하시기도 합니다.
빌립이 활동하던 초대교회 시대 때 복음의 전파는 주의 사자가 직접 나타나시기도 하시고 성령님의 역사가 사람들 눈에 보이도록 역사하시기도 하셔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표적을 보아 알도록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주의 사자가 눈에 보이도록 나타나지는 않으십니다. 성령님께서도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역사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분명히 주의 사자가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이 그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영의 세계를 믿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믿고 자기 머리로 이해되는 부분만 믿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자기 지식으로 이해를 하고 자기 힘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없이 주의 사자의 도움이 없이 자기 스스로 세상을 살려고 하고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려고 하니까 힘이 들고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교회 다는 것도 그만 두고 싶고 예수님도 믿어지지가 않고 실망을 하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주의 사자는 천사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일을 하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이 천사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음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일지 못하는 능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한 천사가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와서 악을 행하는 악한 천사인 사탄과 귀신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 사탄의 무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한 자기들과 함께 죄를 범하고 그 죄 값으로 영원한 지옥으로 같이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천사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악한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자기들 머리로 자기 스스로 악한 생각을 하고 악한 일을 도모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능력을 따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삼위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주의 사자들이 착한 천사들이 우리의 삶에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 까지 가라
앞에서 인용한 26절 말씀에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라고 했습니다.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빌립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 사자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본문이 말씀을 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냥 주의 사자가 나타났다고만 믿으시면 됩니다. 거기에다가 주의 사자 모습을 이야기 해놓으면 장사꾼들이 사기꾼들이 비슷하게 하고 와서 자기가 주의 사자라고 헛소리하고 다닐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 모습을 소개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라는 말에 주의를 해서 보아야 합니다. 남쪽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메셈브리아(μεσημβρία)”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메소스(μεσος)” 즉 중간에 하는 뜻을 가진 단어와 “헤메라(ἡμέρα)” 즉 날 낮 하루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직역을 하면 낮 중간에 정오에 하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정오에 해가 남쪽에 있기 때문이 이 단어를 남쪽이란 뜻으로 사용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이 단어를 “남쪽”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단어를 사도행전 22:6절에서는 “오정” 즉 정오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시계도 정확한 시계가 있고 위치도 위성을 통하여 정확하게 지정을 할 수도 있고 내비게이션이 있으니까 시간만 정해주고 주소만 알려주면 바로 그것에 도착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는 시계도 해를 보고 대강 정하고 지도도 정확한 것이 없으니까 확실한 시간에 확실한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시간과 정확한 장소를 알려주셨습니다. 남쪽에 정오에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정확하게 거기 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광야에서 그 사람을 꼭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아프리카를 향하여 가고 있는 그 사람을 지금 꼭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에 보내놓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 자리가 그 시간이 꼭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서 헤맸습니까? 가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더위를 못 참아서 그냥 올 뻔 했습니까? 그 시간에 거기 가니까 그 사람이 지나가고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났고 복음을 전했고 전하니까 바로 믿고 믿으니까 바로 세례를 받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은 이렇게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진행이 되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가는 길이 좁은 길 좁은 문이라고 합니다. 그 길이 어렵고 힘들어서 좁은 문 좁은 길이라고 했겠지만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무나 예수님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때나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인데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은 백 년 전의 사람들부터 앞으로 교회가 50년이 계속될지 백년이 더 계속될지 모르지만 5천년의 역사 속에서 겨우 일이백년 동안만 문이 열려 있어서 좁은 문입니다. 그것도 이런 문이 열려 있는 시대에 산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을만한 바른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 빼고 구경꾼 빼고 억지로 다니는 사람 빼고 나면 소수의 무리들만 바른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알고 이렇게 좋은 교회에 와서 저를 만났습니까? 알고 온 것은 아니고 와 보니까 좋은 줄 알았지요? 아직도 좋은지 모르고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업목사 장사꾼 목사가 아닌 순교자의 후손을 만나서 순교의 정신으로 복음을 증언하고 있는 저를 만나서 진짜 복음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제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잘 모릅니다. 저 남쪽에서 태어난 사람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살다가 왜 인천에 와서 이렇게 목회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천이 고향인 분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경상남도에서 부산에서 경상북도에서 광주에서 전라남도 하고도 소흑산도에서 충청도에서 서울에서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모여 있습니다. 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나쁜 짓을 하고 잘못된 길로 간다면 그냥 우연한 모임이고 쓸데없는 모임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모여서 정말로 바른 십자가의 복음으로 무장을 하고 바르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서 모인 모임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서 특별히 사방에서 우리를 여기 불러 모으신 줄 믿습니다.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본문 27-28절을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이 에디오피아 사람은 에디오피와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고 있는 요즘 같으면 재부부 장관이나 총리쯤 되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간다게라는 것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이집트 왕을 바로 라고 하고 로마 왕을 가이사라고 하는 것처럼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라는 나라가 이스라엘과 관련이 깊은 나라라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의 자손인 구스라는 사람의 후손들이고 성경에는 없지만 에디오피아 사람들이 자칭 자기들이 솔로몬 왕의 후예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아주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이방인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사람들은 정확하게 이방인들에 불과합니다.
구스는 노아의 손자라고 해도 자기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큰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아서 남의 종이나 하고 살라고 한 사람들입니다. 모세가 구스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자 형제들이 화를 내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 그를 성경은 “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내시는 우리나라 궁전에 있었던 내시와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내시가 궁전에서 중요한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왕궁의 관리를 이야기 할 때 내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그런 성경에서 그를 내시라고 확실히 표현라고 있는 것은 뜻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은 이스라엘 사람이어야 하고 남자여야 하고 또 남자이면서 신체에 아무런 불구가 있어서는 안 되며 완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그가 예루살렘에 예배를 하러 간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과연 성전에 들어갈 수나 있었을까요? 그냥 이방인의 뜰에서 구경이나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배를 구경하는 것으로 드린 것이라고 인정을 하고 만족을 하고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그는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좋다고 해서 성경을 읽고 있기는 했지만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대로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무 뜻도 모르고 그냥 읽기만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의 재산관리를 맡은 내시는 어렴풋이나마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드리려고 하고 성경을 읽으려고 했던 것을 보아서 종교적인 사람이요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착한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창제 전에 선택하셨고 그를 통하여 한 나라에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계서 특별히 역사하셔서 예수님의 복음을 듣게 하시고 바로 세례를 받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종교적인 수준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도 모르고 예배를 드릴 자격도 없으면서 그냥 구경만 하고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거기서 복음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그냥 좋은 일하고 착하게 살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교회를 잘 안다니려고 합니다. 교회에 안 다니는 이유가 여러 가지로 많습니다. 그 중에 대부분은 교회가 착한 일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나쁜 목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많은 불평 자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교회를 안 나오면 몰라도 착하게 살지 않는다고 교회를 안 나오는 사람은 참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 우리가 교회에 옵니까? 고상한 당신들처럼 착하게 살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교회에 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고 칭찬받으면서 살고 싶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그렇게 살 수 없는 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교회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맨날 교회에 오는 것을 감격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맨날 회개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맨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삽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같은 부족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삼위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그 하나님의 일을 맡은 착한 천사들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하는 이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시고 정확하게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여정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도해 가시는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참된 예배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