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04)
  본문 : 행 7:37-38  
  제목 : 살아 있는 말씀.  

    

  “37.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8.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나이가 들면 병원에 자주 가게 됩니다.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져서 자주 가게 되고 또 주기적으로 검진도 받아야 하고 장기적으로 약을 먹어야 할 병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좀 긍정적인 말을 해 주면 기분이 좋습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 약을 먹으면 괜찮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좀 아는 사이의 의사를 만나면 저를 위해준답시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줍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고 음식도 조절을 하고 체중도 빼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저에게 좋게 해 주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별로 안 좋습니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 동안은 음식도 조절을 하고 운동도 하고 바른생활을 합니다.

 

  교회에 와서 여러분은 무슨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까? 아 참 좋습니다. 그 정도면 신앙생활 잘 하시는 것이니까 복도 받을 것이고 앞으로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좀 좋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사느냐, 그래가지고 복을 받겠느냐, 똑바로 살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실 것입니다. 물론 그런 꾸지람을 듣고 바르게 살아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한동안은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병원에 가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가기 때문에 병원에서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약을 받아서 먹는 것으로 만족을 합니다. 보통 교인들은 교회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바르게 살고 그래서 복을 받아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면서 깨달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면서 무슨 병이든지 다 고쳐서 오래오래 살겠구나 하고 착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병원은 임시방편으로 고장 난 부분을 부분적으로 수리를 해 줄 뿐이지 영구적으로 고치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병이 한두 가지라면 고치면서 살겠지만 수십만 가지 종류의 병이 있다고 하는데 의사도 알지 못하는 병, 병명도 알지 못하는 병, 원인도 모르는 병들도 허다하다고 하는데 그 많은 병들을 어찌 다 예방하면서 살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키고 바르게 착하게 살아서 복을 받고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다니면서 그렇게 실천을 하면 좀 나은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많은 율법들을 다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모든 면에 다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두 가지는 잘 할 수 있겠지만 그 외에 오만가지는 다 잘 못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바르게 살고 복을 받고 칭찬을 받자고 하는 것은 그저 조금 나아지는 것일 뿐이고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나 자신의 부족함을 보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시라도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비참한 인생임을 깨닫고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고 그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유대교 지도자들이 가진 율법과 성전에서의 제사에 관하여 잘 못 알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아주려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잘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성전에서의 제사를 주신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제사는 다 같이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과 제사를 통해서 구세주가 필요함을 알게 하고 그 율법과 제사를 통해 오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라고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모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데반이 모세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그 모세가 말한 나와 같은 선지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8절 말씀에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여서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 광야를 통과하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광야에서의 생활을 “광야 교회”라고 스데반은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무리들이었기 때문에 교회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광야에서 배우고 훈련받고 한 삶이 오늘날 우리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신앙의 훈련을 하면서 사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 광야교회로 있을 때 모세는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습니다. 그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기록한 것이 모세오경이라고 하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부심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서 가지고 있는 민족은 오직 이스라엘 민족밖에 없으니까 그 자부심은 가질만한 자부심입니다. 스데반도 이 말씀을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에 대해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살아 있는 말씀이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엄청난 책들이 있습니다. 서울의 대형서점이나 학교 도서관에 가보면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느낍니다. 저렇게 많은 책들이다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그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했거나 그 분야에서 성공을 했거나 그 분야를 연구해서 학위를 받았거나 한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이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쓴 책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그 책을 쓴 사람들은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견해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고 반대되는 견해도 많이 있고 세월이 흐르면 더 좋은 견해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고 그 종교가 가진 많은 경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전을 살아 있는 말씀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신은 죽은 신이고 잡신이고 신들이 직접 말을 해서 기록을 한 책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신이 살아 있는 신이고 최고의 신이라고 하지만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냥 인간들이 더듬어서 깨달아서 기록을 하고 그것을 신적인 것으로 믿고 사는 것이지 우리 성경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 하셔서 주신 말씀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은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공격을 했지만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한 진리가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그 말씀을 따라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살아 있는 말씀이란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살아 있는 말씀을 전에 우리가 쓰던 개정한글에서는 “생명의 도”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우리가 잘 아는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란 단순히 우리가 말하는 언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말씀으로 번역하기는 좀 다른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이 로고스를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큰 원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 즉 로고스는 예수님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그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분이 말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살아 있는 말씀을 “생명의 도”라고 번역을 한 것이 오히려 더 좋은 번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을 생명의 도, 즉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라고 하려면 지금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에 관한 생각이나 제사에 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들이 가진 지식에 의하면 그들이 가진 율법이나 제사는 사람을 죽이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죄를 범하는 자들은 당연한 벌을 받고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법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우상숭배나 남을 미워하고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기만 해도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어기면 다른 것을 다 잘 지켰다고 해도 죄인이 되게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제사는 우리가 죄로 인해서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도 바르게 드리지 않으면 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이나 제사의 용도를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스데반은 그런 유대교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제사가 생명의 도 즉 살리는 말씀이 되려면 그 율법이나 제사제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예수님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짐승의 제사가 우리를 완전히 죄에서 용서받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보내셔서 단번의 제사로 우리 모든 죄를 용서 받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려고 하거나 계속 제사를 지내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교회에서 율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꾸 타락의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윤리 도덕을 잘 가르쳐서 바르게 살게 하고 복을 받고 살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꼭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이나 제자들을 통해서 주신 삶의 원리들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가르치고 기독교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삶의 원리를 가르치고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는 것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거기까지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거나 그것이 교회가 가르치는 핵심이라고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르게 살고 천사처럼 산다고 해도 그런 것을 가지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결국 바른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그게 그것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시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차이가 아니라 정 반대일수도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거나 하나님께 충성함으로 인정을 받고 복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교만하게 자기의 의를 자랑합니다. 속마음보다 겉으로 들어나는 것을 중요하게여기기 때문에 때로는 가식적으로 행동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들을 잊어버리고 무슨 일이 자기 마음대로 잘 안 될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겸손합니다. 선한 일을 하고도 그 공로를 하나님께 돌립니다. 가식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 아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합니다. 잘 되거나 잘 못됐을 때도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성경의 핵심인 줄 알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최고인 줄 알고 그 믿음으로 받는 구원이 우리가 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고 그 복음을 위해서 삽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도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이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이 중요함을 알고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너희 형제 가운데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본문 37절에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율법을 자랑하고 성전에서의 제사를 자랑하고 그 율법과 제사제도를 하나님께 직접 받은 모세를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모세가 한 중요한 말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라고 한 사람이 모세라는 것입니다. 그 모세가 이 말씀도 하나님께 받아서 너희에게 준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신명기 1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18:15)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거의 다 마쳐갈 때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설교를 했는데 그 말씀을 기록한 것이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읽어보면 이런저런 규칙을 말씀하고 그 규칙대로 살지 못할 때 죽인다는 이야기를 자주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17:5)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7:12)

 

  그런 무서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18:16-17)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말씀을 더 듣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호소가 옳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지키지 않으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아무 무서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들려준 말씀이 바로 오늘 스데반이 인용한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18:15)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말씀은 살리는 말씀이 아니라 죽이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도 살리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그 살리는 말씀이 죽이는 말씀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이는 말씀이 아닌 살리는 말씀을 줄 선지자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네 후손 가운데서 네 형제들 중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주실 것인데 너희들은 그 말씀을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너희를 죽이는 말씀이 아닌 살리는 말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같은 선지가 즉 메시야가 올 것을 오랜 세월동안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그 모세와 같은 선지자 즉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우리 예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길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예수님을 가리키는 율법이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민족이고 성전과 제사를 받은 민족이었지만  율법과 제사가 가리키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함으로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무서운 율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믿을 때 이 모든 말씀들이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려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어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살리시는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