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97)
본문 : 행 7:9-10
제목 :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9.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10.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보통은 장남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사람이었지만 요셉은 야곱이 제일 사랑하던 아내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요셉 자체는 그렇게 훌륭하거나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형들에게 미움을 살 짓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자질 하거나 형들의 미움을 살만한 꿈 이야기 같은 것을 형들에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힘이 있거나 어려움을 이길만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힘이 있거나 지혜가 있었다면 형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나 노예로 팔려고 할 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똑똑한 머리나 지혜나 힘이 없었기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사고 따돌림을 당하고 결국 노예로 팔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된 후에도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결국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노예보다 더 비참한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주 특별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때 하나님께서 그를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왕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애굽과 자기 온 집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도 크게 지혜롭거나 큰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우리 앞에 늘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환난도 있고 고통도 있고 인간의 머리로 해결할 수 없는 곤란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가, 우리 혼자 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런 어려운 일들이 다 해결이 되고 그런 어려운 일들이 오히려 더 좋은 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혼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지혜로 세상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함께 하시는 삶이 금년에 우리가 목표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해지는 삶이라고 믿습니다. 혼자 힘들게 살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힘 있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본문 10절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입니다.
요셉이 세상을 살면서 당한 환난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습니까? 많은 환난을 당했을 것이지만 성경은 특별한 것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의 형들에 의해서 죽을 고비를 맞은 것이고 그러다가 노예로 팔려간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귀한 아들이었지만 남도 아닌 형들에 의해서 그런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요셉이 형들에게 좀 얄미운 짓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형들이 잘못한 것을 아버지께 고자질을 했고 자신이 형들로부터 절을 받는다는 꿈을 꾸고 그 이야기를 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입니다.
그러나 사실 요셉의 편에서 보면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없는 사실을 고자질 한 것이 아닙니다. 형들이 못된 짓을 하니까 아버지께 그대로 말씀을 드린 것뿐입니다. 꾸지도 않은 꿈을 거짓으로 이야기 한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꾼 꿈이 하도 희한하니까 가족들에게 있는 그대로 말 한 것뿐입니다. 그것이 자신이 죽임을 당할 정도로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가정을 위해서 바른 말을 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를 하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친 것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유혹을 했을 때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자리를 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모함을 받고 옥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범했다면 감옥에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모함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에 참으로 억울한 옥살이었습니다.
이런 억울하게 당하는 환란에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몰라주고 사람들은 도와주지도 않고 사람들은 비웃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알아주고 개입을 하시고 도와주시고 그 환난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예상인을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조금 마음착한 형을 준비하시고 하나님께서 형들의 마음을 더 악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모면하고 비록 노예였지만 생명을 연장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가 노예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가 하는 일이 형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비록 노예였지만 한 가정의 총무가 되어서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할 때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그가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셔서 형통한 삶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를 높이시어 노예의 신분에서 죄수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일국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개입해주시고 함께 해 주실 때 엄청난 일이 일어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시대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어디 요셉 한 사람뿐이었겠습니까? 그 시대는 인권이라는 것도 없고 법이라는 것도 정당하게 집행되지 않는 사회였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힘이 없고 뒤를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억울하게 노예로 팔려가기도 하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억울함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억울함 가운데 요셉이 당한 억울한 일에만 하나님께서 간섭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환난에서 건져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환난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일개 노예에서 일개 죄수에서 한 나라의 총리가 되는 엄청난 반전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리들도 참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환난도 많이 당하면서 삽니다. 누구나 다 귀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삽니다.
때로는 부모님에게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형제들에게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 몸이라고 생각한 남편에게 아내에게 배반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친한 친구에게 가까운 친척 이웃에게 배반을 당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하지만 잘못된 제도 때문에 잘못된 법 때문에 잘못된 세상의 환경 때문에 억울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벗고 잘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열심히 산 사람들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잘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모든 사람에게 그 모든 억울한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시고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노력한 대가를 얻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억울한 누명을 받고 그런 고생을 하면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그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쓸쓸하게 죽어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억울한 일이 어디 그런 인간관계뿐이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잘 해주고 사는 것도 별 문제가 없이 잘 산다고 해도 반드시 어김없이 찾아오는 억울한 일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세월을 따라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르게 살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세월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억울한 인생에 개입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고통스런 삶에 개입을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을 하셨는데 왜 나는 계속 고통 속에 사는가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바르게 살면 모든 일들이 다 잘 되어야 할 텐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삶에 일시적으로 개입을 하시고 일시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그런 목적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어려움에서 완전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개입을 하시는 것입니다.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팔고 속이고 죽이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그런 죄악이 없는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월 따라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그런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고 오래살고 그런 일시적인 것을 위해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는 아프거나 죽거나 이별이 없는 영원한 세상 완전한 세상으로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을 하실 때 이 세상의 어려움에 대해서 완전히 외면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그때마다 개입을 하십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조정하고 계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여야 했고 노예가 되어야 했고 죄수의 몸이 되어야 했던 요셉의 삶에 개입하시어서 일국의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개입을 하셨습니다. 죄인의 몸이었고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영원한 형벌로 달려가는 우리의 인생에도 개입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고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셨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은총과 지혜를 주시며
요셉의 인생에 개입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일어난 일은 은총과 지혜를 주신 일입니다.
은총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χάρις)라는 단어인데 호의, 은사, 선물, 은혜 등으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의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서 이 은총이 누구의 은총인가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고 본문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조금 다른 의미로 구체적으로 이 단어를 해석합니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만 은총은 바로에게 받은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바로의 꿈을 잘 해석하게 해주셨고 그로 인해 바로가 은총을 베풀어서 그를 인정하고 총리가 되게 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운 삶을 살면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받으면서 살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여 괜히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말 한마디 잘 해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면 성경에서 지혜롭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되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으면서 사는가,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가를 결정하는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말로 지혜로운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짜로 중요한 하나님의 지혜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지혜입니다. 이 진리를 모르고 엉뚱한 것을 가지고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미련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귀한 이신칭의의 진리를 아는 너무나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알게 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대로 가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지혜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닫는 일이 이 일입니다. 믿음은 절대로 인간의 교육이나 훈련으로 가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가 친하다고 제가 잘 안다고 제가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들어오셔서 지혜를 주실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이 믿음이고 이 믿음을 통해서 얻는 은혜입니다. 지혜를 통해서 알게 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애굽과 온 집안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하나님께서 요셉의 인생에 개입을 하셔서 주신 것은 통치자가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애굽의 온 나라와 궁정을 통치하는 총리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 천한 노예와 죄수의 삶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반대로 통치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노예로 죄수로 남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고 오히려 남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통치자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헤게오마이(ἡγέομαι)입니다. 이 단어는 이끌다, 길잡이가 되다, 인도하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고 길잡이가 되고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시면 우리의 삶이 노예처럼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이끌고 가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과거에는 죽음의 노예가 되어서 죽음으로 멸망으로 이끌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이끌고 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른길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스스로 갈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제일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의 타락한 습성입니다. 이 타락한 본성은 우리를 멸망의 길로 죄악의 길로 불신앙의 길로 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런 죄악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불신앙의 자리에서 박차고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나를 이끌고 갈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의 삶에 개입하셔서 요셉의 삶을 바꿔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개입하셨습니다.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환난이나 고통이 없는 영원한 천국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은총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지혜를 주셔서 진리를 알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악한세력에게 끌려가지 않고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여러분의 생애에 항상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더 왕성하게 역사하셔서 영육간에 왕성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