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80)
본문 : 행 5:30-32
제목 :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우리가 처음 신앙을 시작할 때는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교회에 다닙니다. 특별히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체험에 의한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뭘 모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뭔가 잘 알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특별한 체험이 없는 사람은 뭘 잘 모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뭘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진리에 대해서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교회에 다니기만 합니다.
뭔가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바르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진리를 잘못 알고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목사라고 해서 다 진리를 바르게 아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서 배우고 무슨 목적으로 목회를 하는가에 따라서 그 가르침이 달라집니다. 하나님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단들이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 배워서 많이 안다는 것이 오히려 진리와 반대되는 것을 알고 반대되는 길로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의 원 복음을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들이 고백한 신앙고백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받은 복음 그들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받은 복음을 성경에 기록했는데 그 복음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한 재판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바른 복음과 잘못된 복음의 싸움이 여기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을 하는 사람들은 당시의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교 지도자들로 구성된 산헤드린공회이고 재판을 받는 사람은 당시에 가장 권력이 없는 연약한 사도들이었습니다.
이 재판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위대한 일을 시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드시고 그 나라를 종 되었던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하시고 왕족을 만드시고 다윗왕을 세우시고 율법을 주시고 절기를 주시고 제사를 드리게 해 주시고 할례를 행하게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주시고 여러 언약을 주신 그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옛날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를 되찾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살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믿는 것을 종교의 하나로 보고 율법을 지키는 일, 제사를 드리는 일, 선한 일을 하며 사는 일,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사는 일, 이런 것들에 충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이 특별한 은혜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이들을 향해서 사도들이 부르짖는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해주시는 것이 그동안 유대인들이 조상대대로 섬겨오던 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할 대목은 이런 재판에 대하여 기록된 이 본문 말씀 중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오른손으로 높이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당신들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오른손으로 높이신 것은 그 이유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회개함을 주시려고 회개하는 자에게 죄 사함을 받게 해 주시려고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임금과 구주가 되신다. 우리를 회개시켜서 하나님나라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임금이 되셨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구주가 되셨다는 것이 오늘 설교의 요지입니다.
회개함을 주시려고 임금으로 삼으셨느니라.
본문 31절에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시고 오른 손으로 높이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를 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오른 손으로 높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높여주셨다는 뜻도 되지만 하늘로 승천하게 하시고 보좌우편에 앉게 하셨다는 뜻도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하늘로 승천하게 하시고 보좌우편에서 임금과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본문에서 이스라엘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하늘로 올리시어 임금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바라던 이 세상의 왕으로 삼지 않으시고 하늘의 왕으로 삼으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사람들은 회개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잘못했다는 말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동안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누가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주면 잘 살펴보고 깨닫고 잘못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바른 길을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잘 없습니다. 너는 그렇게 알지만 나는 그렇게 인정하지 않아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 너나 잘 하세요 라고 비웃어버립니다.
특별히 그 일이 자기의 이권과 관계가 있으면 혹은 자기의 자존심이나 자기의 목표와 관계가 있으면 절대로 고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2.지금 재판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에게는 절대로 회개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이 복음이 전파되면 그들은 큰 낭패를 당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건 사람의 뜻이건 상관이 없이 무조건 막아야 했습니다.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실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첫 번째 이유는 그들이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동안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 열심의 목적이 자신들의 출세를 위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또 착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열심을 낸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고 하니까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유대교 지도자들도 목숨을 걸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래야 그동안 사신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충성을 한 충성이 인정을 받게 되고 자신들이 쌓아온 공로의 대가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이제 겨우 밥 좀 먹고 살게 되었는데 그 이권이 없어져 버린다면 정말로 허무할 것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충성을 다했는데 그 충성이 별 볼일 없는 헛된 것이었다고 한다면 정말로 억울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잘 몰라서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알면서도 자신들의 기득권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을 좋아하고 권력을 좋아하는 사이비 목사들이나 종교를 이용해서 자기의 이권을 챙기려고 하는 이단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이 그들의 이권을 챙기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2)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목적이 이 세상의 임금이 되시는 메시야를 원하고 기다렸는데 이 세상의 구원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나라로의 구원이라고 하니까 실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현세에서의 복된 삶이었습니다. 지금 배고프고 지금 병들어 죽게 되고 지금 정치적으로 로마라는 나라의 학정에 시달려야 되고 지금 괴로운 일들이 많은데 그 일은 해결해주지 않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말하니까 실망을 한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잠깐 이세상의 행복보다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이 비교할 수 없는 큰 복이지만 지금 그것을 믿을 수도 없고 나중보다는 지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도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라면 당연히 이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이고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시고 막강한 나라를 건설하실 것이라고 믿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행동하시는 것을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있을지도 모르는 영원한 세상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지금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뭘 해서 복을 받고 성공하고 그런 말씀들을 더 좋아합니다.
3)세 번째 이유는 그들이 받을 형벌이 두려워서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으로 형벌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이 나야 됩니다. 만약에 그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고 그것도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고 그것도 하늘에 오르시어 임금님이 되셨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 피의 대가를 지불하고 엄청난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되기 때문에 그 사실을 결사반대하고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그런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른손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높이시어 임금으로 삼은 것은 임금이 되어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오히려 회개를 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얼른 잘못을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3.그러면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1)인생을 잘 못 산 것을 회개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 잘해주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할까요? 이런 것 회개하려면 평생 회개하다가 세월 다 보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자랑스러운 것보다 후회스럽고 잘못 된 일들이 더 많습니다. 이제 와서 그런 일들에 대해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와서 그런 일들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미 나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은 다 받았고 이미 나 때문에 고통을 당한 사람은 그 고통으로 고생을 다 했기 때문에 후회하고 회개한들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끝까지 잘했다고 우기고 사는 것 보다야 낫겠지만 미안하다는 한 마디로 조금 위로야 되겠지만 지금에 와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삶들은 회개나 후회보다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2)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회개는 그런 일상적인 잘못에 대한회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일평생 살면서 꼭 한번 해야 할 너무나 중요한 회개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따르지 못한데 대한 회개를 말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종교생활하려고 잘살아보려고 마음이 좀 평안하기 위해서 아니면 이권에 개입하려고 교회에 다녔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믿음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그 은혜에 감동하지 못하고 그 사랑에 감격하지 못하고 그냥 구경꾼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 큰 은혜로 구원해 주셨는데 그 은혜에 그 사랑에 감격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뜨겁게 예배한번 드리지 못하고 살아 온 것에 대해서 회개를 해야 합니다. 남녀 간에 연애를 하는 사람도 보면 정말로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까 봤는데 또 보고 싶고 그냥 옆에만 있어도 행복하고 뭐든지 다 해주고 싶고 하늘에 올라가서 별이라도 다 따서 줄 수 있을 것처럼 열렬하게 사랑을 합니다. 내 생애 단 한번 만이라도 그대를 사랑하게 하여주오. 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그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 사실도 알지 못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님께 예배 한번 드려보지 못하고 종처럼 노예처럼 끌려 다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3)우리가 회개하야 할 것이 이런 것들입니다.
믿음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알면서도 뜨겁게 감사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예배 한번 제대로 드려보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날마다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자기가 아는 것을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간단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고 선하게 살아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 잘 못된 것임을 알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 고집을 바리고 그 교만함을 버리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동안 교만하게 살았던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주시려고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1절 다시 한 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서어 임금만 삼으신 것이 아니라 아울러서 구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담당하는 주인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아 의로운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을 깨닫고 후회를 하고 회개를 한다고 해도 용서를 받을 길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회개를 하나 안하나 똑같이 죄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구태여 회개를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버틸 수 있는 대로 버텨보는 것입니다. 증거를 가지고 와서 잡아뗄 수 없는 지경까지 가도 오리발 내밀고 끝까지 부인을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면 비굴하게 잘못했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시는 것은 그 회개를 통해서 구원의 길로 들어올 수 있게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회개를 하게 해서 그 사람의 잘못을 질책하고 벌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중세시대는 이 믿음에 대한 진리가 너무나 왜곡되어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는 교황들이 횡포가 너무나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개혁자들은 그 시대를 “깡패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는 믿음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장 심각하게 왜곡을 해서 가르치던 시대였습니다. 바르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는 사람들을 협박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고해성사를 하게하고 바르게 살지 못했음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게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하나님의 은혜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회개는 구원을 받게 하는 중요한 핵심사항입니다. 회개를 통하여 죄 사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통해서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고 비참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나쁜 죄인이라고 하신 말씀을 순종하고 죄에서 구원을 받는 길로 가려고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종교생활을 통해 선행을 통해 나의 의로움을 드려내려고 한 그 교만을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로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시고 하늘 보좌에 오르게 하셔서 임금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죄를 회개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죄 사함을 받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이 되는 믿음을 가지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회개하게 하기 위해서 임금이 되셨고 그 회개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임금과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