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71)
본문 : 행 5:1-6
제목 :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1.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인류의 비극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때문에 시작이 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을 유혹하기 위한 사탄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로 인해서 시작된 인간의 범죄와 인간의 타락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먹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도 그 사건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처음 시작된 하나님나라에서 이런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던 것처럼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처음 시작되는 교회에서 그런 일이 반복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그런 죄를 지은 자를 엄벌에 처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자기 자랑을 위해서 자기만족을 위해서 가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속이고 거짓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이 엄청난 죄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진실한 신앙고백을 하시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감사하는 참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바친 아나니아.
본문 1-2절 말씀에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시고 신약시대의 교회가 시작되어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도들이 되어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라고 하는 부부도 말씀을 듣고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들도 말씀에 은혜를 받았을 것이고 믿음이 무엇인지도 알았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 부부가 바나바라고 하는 요셉이 밭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바친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밭을 팔아서 교회 앞에 내어놓을 때 사도들이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고 성도들도 위로를 받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요셉을 바나바 즉 위로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칭찬을 했을 것입니다.
위로 전문가라고 치켜세우고 박수를 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같이 좋은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바나바와 같이 밭을 팔아서 교회 앞에 바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부부가 의논을 하기를 우리도 땅을 팔아서 바치자고 의논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부부간에 의논을 해야 합니다.
부부가 의논도 하지 않고 남편이 아내 몰래 아니면 아내가 남편 몰래 팔아다가 바쳐버리면 나중에 부부 싸움을 하게 되고 이혼을 당하기도 하기 때문에 부부가 서로 의논을 하는 일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부가 다 같이 신앙이 좋은 사람이거나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면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밭을 팔아서 다 하나님께 바치자고 의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부부가 다 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밭을 팔아서 바치기는 바치지만 일부는 좀 남겨두고 바치자고 의논이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얼마는 감추고 얼마는 바쳤다고 했으니까 그 얼마가 얼마인지 잘 모릅니다.
반반쯤 했는지도 모르겠고 아주 조금만 바쳤는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거의 다 바치고 조금만 감추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땅을 팔았는데 일부만 바쳤다고 해도 그 액수는 상당한 것이었고 그 마음은 칭찬을 받을만한 일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일은 엉뚱한 데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칭찬은 고사하고 벌을 받았는데 그 벌은 비참한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대목에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은 참 너무하시다.
세상에 많은 돈을 바쳤으면 됐지 그것 조금 감추고 일부만 바쳤다고 그렇게 엄하게 대하실 수가 있는가?
잘못했으면 회개할 기회도 주고 꾸짖어서 다 내게 하면 되지 그렇다고 그렇게 당장 죽여 버리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팔아가지고 다 바친다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땅을 가진 사람은 팔아서 바쳐야 된다는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것인데 자발적으로 팔아서 그만큼이라도 바치면 칭찬을 해 줘야지 어떻게 그렇게 벌을 내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줄 알았는데 해도 해도 너무하신다고 불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위로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잘못을 해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위로하시고 변호하신다고 했는데 그런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하실 수가 있으셨을까 하고 의아해 하실 것입니다.
땅 값 얼마를 감춘 아나니아
본문 3-4절 말씀에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도 벌을 받아 죽임을 당한 이유를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들이 죽임까지 당한 죄목은 속이고 거짓말을 한 죄입니다.
그들은 진실 된 신앙고백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고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를 자랑하기 위해서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속이는 일도 많고 거짓말도 많이 하면서 삽니다.
남을 속이면 벌을 받고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는다고 하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의 아나니아가 거짓말을 한 것은 보통의 거짓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아나니아가 거짓말을 하며 사도들을 속이면서 땅값 얼마를 감추고 얼마만 바친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사탄의 사주를 받아서 성령을 속인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사주를 받아서 성령 하나님을 속인 것은 우리 인류에게 가장 비참한 비극을 가져다 준 것임을 여러분은 기억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사주를 받아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을 했고 또 하나님을 속이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 모든 인류가 죄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죄에서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다시 모여서 시작하는 교회 안에 그와 똑 같이 사탄의 사주를 받아서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처벌을 하신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하나님나라인 교회 안에 그런 불행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사탄의 사주를 받은 거짓선생들이 들어오면 교회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방해를 받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탄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을 내어쫒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2)네 마음대로 할 수 없더냐.
아나니아의 거짓말은 어쩔 수 없어서 실수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부러 자기만족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라고 했습니다.
땅을 팔지 않고 그대로 있을 때도 자신의 땅이니까 팔아도 되고 팔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땅을 판 후에도 그 돈이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 바쳐도 되고 바치지 않아도 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굳이 남을 속이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땅을 팔고 돈을 감추고 그렇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땅도 있고 하니까 팔아서 교회를 위해서 내어놓고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으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희생하지 않고 희생하는 척 하면서 좋은 일 하는 척 하면서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다가 보니까 남을 속이고 거짓말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에 다 인정을 받고 싶고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남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 일입니다.
보통으로 해서 인정을 받기 힘들고 칭찬을 받기 힘듭니다.
열심히 노력을 하고 희생을 하고 헌신을 해서 겨우 몇 마디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열심도 희생도 헌신도 없이 속이고 거짓말해서 칭찬만 받아보려고 하는 마음이 문제입니다.
3)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한 거짓말은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했지만 교회 앞에서 한 거짓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한 거짓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한 거짓말은 때로는 거짓말인 줄 모르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까지 다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금방 다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요 믿는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4)위대한 믿음은 진실한 고백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너무나 고귀한 것입니다.
이 믿음만 진실하게 고백을 하면 우리는 엄청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상속받는 엄청난 고백이기 때문에 이 고백은 진실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가끔 알곡이 아닌 가라지가 들어와서 진짜교인처럼 행세를 하기도 합니다.
이 가라지가 너무 번창을 하면 알곡이 힘을 잃게 되고 교회 전체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라지를 구별하기 위해서 진실한 고백을 요구하고 고백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삶이 뒷받침 되지 않고 입술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교회의 주도권을 잡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는 신앙고백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삶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희생도 헌신도 충성도 없이 그냥 믿는다고만 말하는 사람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충성을 좀 못해도 헌신이나 희생이 없어도 진실로 믿는 믿음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의 기준을 믿음으로 하셨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거짓 없는 진실함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아니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정말로 신앙을 고백한 사람일까 하는데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임하셔서 믿음을 고백한 사람에게 그렇게 사탄이 가득하게 역사할 수 없으며 믿음을 고백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실수 한번 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비참하게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르긴 해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이 그냥 성도들 속에 들어와서 예수님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렇게 행세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면서 성령님을 받은 사람도 아니면서 교회에 다니며 성도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지도 않고 대강 적당히 왔다가 갔다가 하는 사람을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신앙이 그리 시시한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으로 대강 적당히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성경을 좀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세상 재미 다 보고 자기 할 일 다 하고 조금 헌신하고 조금 충성하는 그런 것 가지고 성도가 되었다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 아무런 한 일도 없이 교회에만 다니는 사람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닙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일을 하면서도 진정한 감사가 없이 억지로 마지못해서 형식적으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체면치례로 자기 이름을 위해서 자기 기쁨을 위해서 일을 하고 헌신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보다 하나님나라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진실 된 마음을 가지지 못하면 아나니아와 같은 사람입니다.
안 하니만 못하고 오히려 벌을 받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본문 5,6절 말씀에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대할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엄청나게 높으시고 엄청나게 거룩하시고 감히 우리 인간이 머리를 들고 얼굴을 대하고 말씀을 드리고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와 달라도 너무나 다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합격점은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믿음의 합격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면서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지체 없이 그의 독자 아들 이삭을 잡아 죽여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고 하시며 합격점을 주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감사여야 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구약 백성들이 지키던 절기이지만 오늘 우리들도 그 정신을 살려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특별한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이 전부이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정말로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기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다.
절반은 세상에 감추어두고 절반만 가지고 오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고 일부만 가지고 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부를 원하지 않고 전부를 원하십니다.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다하여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최선을 다하여 모든 것을 다하여 진심으로 주님을 섬기고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진실인척 하다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 비참한 신세가 된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다가 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진실한 고백을 요구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감사가 우리의 헌신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 없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