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1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종합 08)
본문 : 롬 8:31-39
제목 :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구원
미신(迷信)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근거 없는 믿음이나, 이 믿음으로부터 나온 비합리적 신뢰와 행동 등에 반성 없이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뚜렷한 근거도 없으면서 어디서 들었거나 남들이 주장한다고 해서 그렇게 믿고 따르는 것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제사를 드리고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보고 굿을 하고 큰 고목 나무를 보고 신이라고 소원을 빌고 큰 구렁이가 집안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믿는 이런 행위들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거울이 깨졌으니 오늘은 재수가 없다" 라든지 "애인에게 신발을 사 주면 그 신발을 신고 도망을 간다"라는 근거없는 사실을 믿는 것도 미신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사도 아무 날이나 못 가고 대문도 아무 쪽으로나 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물어보고 했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벌을 받고 쩔쩔매고 꼼짝 못하고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미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동네에 가정집에 절 표시를 한 집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표시는 절 표시인데 사실 알고 보면 전통적인 불교와는 거리가 먼 곳들입니다.
사주나 관상이나 점을 처 주고 굿을 해 주는 사람들이 절 표시를 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들이 만든 통계나 심리적인 것들을 가지고 또 사탄의 도움을 받아서 약간의 신비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인간들에게 복을 주기보다는 괴롭히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인데 사람들은 그런 막연한 일에 목숨을 걸고 운명을 걸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이 복음의 진리가 얼마나 확실한 것인가를 말씀 드리기 위해서 미신에 관한 이런 말씀들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부분이 성경의 가장 높은 봉우리와 같은 부분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계시의 최고의 고원" "히말리아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로마서의 에베레스트"라고 표현을 합니다.
또 이 본문을 "확신의 찬송" "승리의 노래"라고 하면서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귀한 것을 말해주는 최고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확실하게 우리를 구원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 일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이 구원은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이 얼마나 확고 부동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알지도 못한 것을 신으로 믿는 이 세상 사람들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
본문 31절 말씀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 일"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29절 30절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선택과 예정)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신 것을 말합니다(소명)
또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고 하신 것을 말합니다(칭의)
또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영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났건 못났건 상관이 없이 선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들을 수 있든 없든 상관이 없이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흠이 있건 없건 상관이 없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법정에서 아예 선고를 내려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갈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해도 또 가지 않으려고 해도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베푸셔서 영화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 백성이 되는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라는 것도
구원의 근거가 되는 이 믿음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위하신다고 한다면 우리를 대적할 세력은 그 무엇도 없으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는데 감히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위대한 능력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대적하는 세력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 자체가 우리를 대적합니다
이 세상의 쾌락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탄의 세력이 우리를 대적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탄을 "삼킬 자를 두루 찾아 우는 사자"(벧전5:8)라고 묘사했습니다.
우리의 육신도 우리를 대적합니다
우리 육신의 속에는 죄의 욕망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적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것은 대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그 사랑 앞에 이런 대적들은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알면 그런 대적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즉 우리를 사랑하시면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바로 뒤 32절 에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사랑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귀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말로만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아끼고 가장 귀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잡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순종하여 그렇게 행하는 것을 보시고 멈추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칭찬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아브라함 너는 네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게 바쳤으니까 나는 네 아들을 아꼈다
그래서 네 아들을 살려 주었고 그리고 그 대신 내 아들을 아끼지 않고 너를 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껴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아껴 주셨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3.아무도 우리를 송사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
오늘 본문 33절 34절 말씀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송사하리요...누가 정죄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송사를 한다는 것은 재판을 받기 위해 고소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죄라는 말도 재판에서 죄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송사나 정죄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이 사실 앞에서 떨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루터라는 사람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복음을 깨닫기 전에 이 것 때문에 무척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내가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라고 자문을 하면서 떨었다고 합니다.
"나같은 마음에서 어떻게 선행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뿌리에서부터 오염된 행위를 가지고 심판장의 거룩하심 앞에 내가 어찌 설 수 있을까"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모르면 진리를 모르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그것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날마다 우리를 송사합니다
아이고 너 같은 것이 예수 믿어 천국에 가 하늘이 다 웃겠다...
우리의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송사합니다
자-알 한다 교회 다니는 놈이 자-알 한다 그래 가지고 천국에 가 꿈 깨라 꿈 깨...
사탄도 우리를 송사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10절 말씀에 보면 사탄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나 자신이 그리고 사람들 보기에 사탄이 보기에 정죄할만한 죄를 지어서 송사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우리를 송사할 수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큰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지은 죄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그 큰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죄들에 대해서 감히 송사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아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고소할 때는 때로는 잘못 알고 억울하게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잘 모르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법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은 의롭다라고 선언을 하셨는데 누가 감히 또 법을 조사하고 연구해서 우리를 송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 수 있도록 모든 근거를 이미 마련하셨습니다.
그냥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에 대한 상응하는 조치를 이미 취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그 근거에 의해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근거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없다고 선언을 하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시 우리를 법에 송사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
본문 35절 말씀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고 하는 열 가지의 세력들을 열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사망이나 생명이나
죽음은 우리를 우리의 자녀 우리의 부모에게서 우리를 끊어 냅니다
죽음은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끊어 내고 맙니다
우리가 쌓아 놓았던 부와 권세 그리고 사랑과 우정 모든 것에서 끊어 내버리고 마는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할 수 없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내는 것입니다
끊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으로 들어가게 하는 관문이 되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2)천사들이나 권세자(귀신)들이나
여기 권세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악한 천사 즉 사탄 귀신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수법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꾀가 많고 악하기로 이름이 나 있는 사탄의 권세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이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세월)
세월의 흐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끊을 수가 없고 미래에도 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고 정치가 바뀌고 권력이 바뀌고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4)능력이나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있는 능력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권력이나 천사나 악한 사탄이나 그 어떤 세력이 가진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5)높음이나 깊음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 시간을 말하는 것이라면
높음이나 깊음은 공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사랑은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어디로 가든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거기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푸른 초장에 있거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나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6)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여기에 열거하지 않았던 다른 그 무엇이라도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이렇게 확실한 구원을 보장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필요한 은사를 주십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송사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은 너무나 확실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에게 있는 이 귀중한 보배를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시고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기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 롬 8:31-39
제목 :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구원
미신(迷信)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근거 없는 믿음이나, 이 믿음으로부터 나온 비합리적 신뢰와 행동 등에 반성 없이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뚜렷한 근거도 없으면서 어디서 들었거나 남들이 주장한다고 해서 그렇게 믿고 따르는 것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제사를 드리고 무당을 찾아가서 점을 보고 굿을 하고 큰 고목 나무를 보고 신이라고 소원을 빌고 큰 구렁이가 집안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 믿는 이런 행위들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거울이 깨졌으니 오늘은 재수가 없다" 라든지 "애인에게 신발을 사 주면 그 신발을 신고 도망을 간다"라는 근거없는 사실을 믿는 것도 미신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사도 아무 날이나 못 가고 대문도 아무 쪽으로나 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물어보고 했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벌을 받고 쩔쩔매고 꼼짝 못하고 살았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미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동네에 가정집에 절 표시를 한 집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표시는 절 표시인데 사실 알고 보면 전통적인 불교와는 거리가 먼 곳들입니다.
사주나 관상이나 점을 처 주고 굿을 해 주는 사람들이 절 표시를 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들이 만든 통계나 심리적인 것들을 가지고 또 사탄의 도움을 받아서 약간의 신비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인간들에게 복을 주기보다는 괴롭히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인데 사람들은 그런 막연한 일에 목숨을 걸고 운명을 걸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이 복음의 진리가 얼마나 확실한 것인가를 말씀 드리기 위해서 미신에 관한 이런 말씀들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부분이 성경의 가장 높은 봉우리와 같은 부분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계시의 최고의 고원" "히말리아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로마서의 에베레스트"라고 표현을 합니다.
또 이 본문을 "확신의 찬송" "승리의 노래"라고 하면서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귀한 것을 말해주는 최고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확실하게 우리를 구원하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 일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이 구원은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이 얼마나 확고 부동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시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알지도 못한 것을 신으로 믿는 이 세상 사람들과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
본문 31절 말씀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 일"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29절 30절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선택과 예정)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신 것을 말합니다(소명)
또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고 하신 것을 말합니다(칭의)
또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영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났건 못났건 상관이 없이 선택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들을 수 있든 없든 상관이 없이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흠이 있건 없건 상관이 없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을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법정에서 아예 선고를 내려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갈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해도 또 가지 않으려고 해도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베푸셔서 영화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 백성이 되는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이라는 것도
구원의 근거가 되는 이 믿음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한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위하신다고 한다면 우리를 대적할 세력은 그 무엇도 없으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는데 감히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위대한 능력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대적하는 세력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 자체가 우리를 대적합니다
이 세상의 쾌락이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탄의 세력이 우리를 대적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탄을 "삼킬 자를 두루 찾아 우는 사자"(벧전5:8)라고 묘사했습니다.
우리의 육신도 우리를 대적합니다
우리 육신의 속에는 죄의 욕망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적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것은 대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그 사랑 앞에 이런 대적들은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알면 그런 대적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감히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즉 우리를 사랑하시면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바로 뒤 32절 에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사랑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귀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말로만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아끼고 가장 귀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잡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순종하여 그렇게 행하는 것을 보시고 멈추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칭찬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아브라함 너는 네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게 바쳤으니까 나는 네 아들을 아꼈다
그래서 네 아들을 살려 주었고 그리고 그 대신 내 아들을 아끼지 않고 너를 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껴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아껴 주셨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3.아무도 우리를 송사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
오늘 본문 33절 34절 말씀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송사하리요...누가 정죄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송사를 한다는 것은 재판을 받기 위해 고소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죄라는 말도 재판에서 죄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송사나 정죄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이 사실 앞에서 떨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루터라는 사람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복음을 깨닫기 전에 이 것 때문에 무척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내가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라고 자문을 하면서 떨었다고 합니다.
"나같은 마음에서 어떻게 선행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뿌리에서부터 오염된 행위를 가지고 심판장의 거룩하심 앞에 내가 어찌 설 수 있을까"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복음을 모르면 진리를 모르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그것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날마다 우리를 송사합니다
아이고 너 같은 것이 예수 믿어 천국에 가 하늘이 다 웃겠다...
우리의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송사합니다
자-알 한다 교회 다니는 놈이 자-알 한다 그래 가지고 천국에 가 꿈 깨라 꿈 깨...
사탄도 우리를 송사한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2:10절 말씀에 보면 사탄을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나 자신이 그리고 사람들 보기에 사탄이 보기에 정죄할만한 죄를 지어서 송사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우리를 송사할 수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큰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지은 죄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지은 그 큰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죄들에 대해서 감히 송사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아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고소할 때는 때로는 잘못 알고 억울하게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잘 모르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법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은 의롭다라고 선언을 하셨는데 누가 감히 또 법을 조사하고 연구해서 우리를 송사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 수 있도록 모든 근거를 이미 마련하셨습니다.
그냥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에 대한 상응하는 조치를 이미 취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그 근거에 의해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근거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없다고 선언을 하셨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시 우리를 법에 송사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
본문 35절 말씀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고 하는 열 가지의 세력들을 열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사망이나 생명이나
죽음은 우리를 우리의 자녀 우리의 부모에게서 우리를 끊어 냅니다
죽음은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끊어 내고 맙니다
우리가 쌓아 놓았던 부와 권세 그리고 사랑과 우정 모든 것에서 끊어 내버리고 마는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할 수 없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내는 것입니다
끊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으로 들어가게 하는 관문이 되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2)천사들이나 권세자(귀신)들이나
여기 권세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악한 천사 즉 사탄 귀신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수법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꾀가 많고 악하기로 이름이 나 있는 사탄의 권세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이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세월)
세월의 흐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끊을 수가 없고 미래에도 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고 정치가 바뀌고 권력이 바뀌고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4)능력이나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있는 능력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권력이나 천사나 악한 사탄이나 그 어떤 세력이 가진 능력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5)높음이나 깊음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 시간을 말하는 것이라면
높음이나 깊음은 공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사랑은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어디로 가든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거기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푸른 초장에 있거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나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6)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여기에 열거하지 않았던 다른 그 무엇이라도 그 어떤 것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이 믿음은 이렇게 확실한 구원을 보장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필요한 은사를 주십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송사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은 너무나 확실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에게 있는 이 귀중한 보배를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시고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기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