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9.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종합 03)
   본문 : 롬 3:21-24 
   제목 : 하나님의 은혜로

  로마서를 한 장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3장의 말씀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1장 18절에서 시작된 인간의 죄에 대한 이야기가 3장 20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2장 17절 이하부터는 유대인들의 죄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교훈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의 표시로 할례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만의 선민의식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게 했으며 심지어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개나 돼지와 같은 짐승으로 생각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죄를 짓는 것은 이방인들과 다름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자랑하고 가르치면서도 자신들도 그 율법을 지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 반포하면서 도적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간음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가증히 여기면서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지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0-12)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파멸과 고생"의 길로 들어서서 하나님의 진노하심 앞에 영원히 멸망을 당할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인류의 죄에 대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만 죄짓는 것이 아니고 모두들 다 죄짓고 사는데 죄짓는 것이 무슨 대수냐 크게 걸리지 않고 적당히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죄 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다른 사람에 비하면 나는 좀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오늘 여기 오신 분은 한 분도 나는 죄를 짓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야 라고 생각을 하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죄인이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이 죄를 어떻게 하면 될까 몸부림을 쳐 보신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지은 죄 때문에 고통을 느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그러시다면 오늘 여러분 여기 잘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의 말씀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몸부림을 치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죄 문제에 대한 깨끗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서 죄 사함의 기쁨을 우리게 했던 말씀입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늘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고통을 당하면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두려움에 짓눌려 살았고 여러 번 좌절하며 자살을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의 죄 때문에 많이 번민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때로는 "내 죄여! 내 죄여! 샘이 솟아나 나를 깨끗하게 씻어 주었으면"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신신한 크리스천의 도움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게 되고 언제나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는 유일한 샘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 24-25절의 말씀을 읽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 때 찬란한 의의 태양이 나를 환하게 비추었다. 예수님이 치르신 속죄가 충분하고 내 죄가 그 피로 사함을 받았고 나를 의롭다 하심이 충분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복음을 믿고 받아들였다"

  훗날 카우퍼는 그 순간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사와 기쁨에 겨웠노라고 회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유명한 "샘물과 같은 보혈은"이라는 찬송시를 써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속함을 얻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 솟듯 하는 피 권세 한 없이 있도다


1.그러나 이제는
  성경에는 우리가 바르게 이해해야 할 중요한 용어들이 있습니다.
  구속 믿음 대속 은혜 칭의...등 아주 중요한 용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별로 하찮아 보이는 단어지만 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용어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제는"이라고 번역된 말이 그런 말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나라 성경에는 "이제는" 이라는 말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어에서나 영어성경에서는 "그러나 이제는" 이라는 말로 씁니다

  지금까지는 우리 인생이 죄인으로서 살아왔고 스스로 선을 행할 수도 없고 스스로 의롭게 될 수도 없고 그래서 구원을 받을 길이 없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그 무엇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이 새로 우리에게 나타남으로 인해서 우리가 이렇게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고 선을 행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꾸 반복해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그래서 멸망받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죄성을 지적한 것은 이제는 이라는 이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후의 상황을 바르게 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를 잘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인생들이 그러나 이제는 이후로 어떤 변화가 있게 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준비하신 위대한 전환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 외에 또 다른 한 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선을 행함으로 스스로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이미 아시고 하나님께서 그것 외에 다른 한 방법을 준비하시고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시점 즉 "그러나 이제는"이라고 하실 때까지 우리 인생들은 참으로 절망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올바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스스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달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위대한 구원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위대한 전환점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1)진노와 의
  그러나 이제는 의 시점에서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변화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하나님의 의로 바뀐 것입니다

  롬 1:18절에 우리가 이전에 처했던 실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인생들은 이렇게 불의를 행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2)정죄와 칭의
  그러나 이제는의 시점에서 두 번째의 변화는 정죄에서 칭의로의 변화입니다
  과거에 인간에게 주어진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그로 인해서 심판을 받고 벌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정죄가 아닌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속박과 자유
  우리는 그동안 율법에 얽매이고 죄에 얽매여서 속박을 받으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죄를 깨닫게 하여 괴로움과 죄책을 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해주신 이 은혜는 이제 우리가 주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4)배척과 참여
  에베소서 2:13절 말씀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우리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
  본문 22절 말씀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는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도 말씀을 많이 드렸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셔서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구원이 인간의 행위와 무관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장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하여 더 높은 도덕적 종교적 수준에 오르거나 불확실한 미래의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종교들이 인간 스스로 높은 경지에 올라가서 구원에 이르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노력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으면서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면서 수고를 하다가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로 주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100% 보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은 자로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2)구원이 인간의 행위와 무관한 하나님의 선물로 오는 것이기에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구원이 인간의 행위로 인한 것이라면 인간 스스로 그 구원을 망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늘 한결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루 이틀 혹 한해 두 해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 날까지 항상 잘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구원이 인간의 행위와 무관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자랑할 것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3.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
  본문 24절 말씀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인 워필드 교수는 기독교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중의 하나가 구속자와 구속이라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구속자로 부르고 구속자로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이 단어가 잊혀져 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매우 염려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구속이란 죄의 값을 대신 물어 주고 구원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빚 때문에 노예로 잡혀 갔을 때 그 빚을 대신 치루어 주고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구속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게 해 주셨지만 그것은 우리 편에서 값없이 구원을 얻는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그 값을 대신 치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 값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루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화목제물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 앞에 있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화목제물로 인해 죄 값을 인정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 주셔서 구속자가 되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가복음 18장 9절 이하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잘 아실 것입니다.
  당시에 율법을 잘 지키고 의롭게 산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바리새인과 가장 악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던 두 사람이 나란히 성전에서 기도했던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습니다
  당시의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바리새인보다 악한 죄인이라고 생각하던 세리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왜 세리가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았을까요
  그것은 그의 기도의 내용이 그를 의인으로 인정을 받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기도는 가장 짧은 기도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 소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그것 하나만 해도 그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이 기도를 문자적으로 옮기면 "하나님 이 죄인에게 시은소가 되어 주옵소서"라는 말입니다.
  여기 시은소라는 말은 화목제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그의 짧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인줄을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죄인인 자신 사이에 화목제물이 있어야 되는 줄도 알았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힘으로 의인이 될 수 없음을 알고 구속주가 화목제물이 있어야 되는 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가  죄인 세리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로 인식하십니까
  세리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에 우리는 죄인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멸망의 길로 달려갈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혀 다른 방법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주가 되셔서 우리를 구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