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67)
본문 : 행 4:31
제목 :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우리가 늘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살지만 기도할 때마다 즉시 응답을 받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도 기도를 바르게 한 것인지 잘 못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기고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나 하시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는 기도하고 나서 즉각 응답이 있는 것을 봅니다.
아주 확실하고 뚜렷한 응답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합심해서 기도 하고 나니까 기도 응답이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합심해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즉각 반응을 보이셨는데 모인 곳이 진동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지진이 난 것처럼 건물이 흔들렸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실한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믿음이 시원치 않은 사람들이 근처에 우연히 지진이 났겠지 라고 하고 사람들이 무서워하면서 덜덜 떨다가 보니까 건물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겠지 그게 뭐 하나님의 응답일까 라고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너무나 확실한 기록이기 때문에 그런 것 구별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확실한 응답 신호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신 것이 그도 응답의 증거입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간절히 기도를 했을 때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를 하셨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심을 거기 모인 사람들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그들에게 나타난 기도의 응답은 그들이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이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떨리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두렵기는커녕 아주 담대한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막는 세력은 막강한 세력들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거론 된 사람들은 당시에 권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동원이 된 것을 봅니다.
당시의 분봉 왕이었던 헤롯과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와 대제사장 관원들 장로들 당시에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거기 다 모였습니다.
그 막강한 사람들이 아주 연약한 제자들을 붙잡아다가 재판을 하고 풀어주기는 했지만 다시 한 번 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가르치든지 하면 다시 붙잡아서 처벌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담대한 마음을 가졌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막강한 권력으로 금지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들의 기도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시고 응답해 주신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기도응답을 받고 행한 일이 우리가 기도하고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31절 전반부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그 기도가 얼마나 하나님 들으시기에 좋았던지 하나님께서 박수를 치신 것 같습니다.
기뻐 박수를 치고 칭찬하는 것이 모인 곳이 흔들리게 하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유는 사도들과 성도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기도한 그 내용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기도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천지의 대주재시며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믿고 그 하나님께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들이고 막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고 더 막강하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 세상의 권력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을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와 멸망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은 멸망당할만한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거부합니다.
구원도 영생도 영원한 하나님나라도 거부합니다.
오직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사는 것을 원합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고 영생 얻고 천국에 가자고 하면 이 세상 사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우리들을 사기꾼처럼 쳐다보고 비난을 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이고 너무나 필요한 이야기이고 너무나 복된 소식인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뭔가 착한 일을 하고 뭔가 공로를 세우고 뭔가 사람답게 살아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지 그냥 은혜로 공짜로 받는 것은 자존심 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반대하려고 합니다.
반대까지는 안 한다고 해도 고행이나 선행을 믿음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이미 선택을 받은 민족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들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미 구원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는 필요 없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자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금지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은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성모마리아나 앞서간 성인들이나 하다가 못해 면죄부라도 사야지 구원을 받는 것이지 예수님을 믿는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잘못된 가르침에 반대를 하여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로마서의 말씀대로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강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많은 신학자들이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복음을 반대하고 인간의 행함에 강조점을 두고 가르침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많은 손상들을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한 버림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참된 성도가 아닌 가라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반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구원받는 것을 반대합니다.
예수님의 이름도 싫고 구원도 싫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도 싫고 영원한 생명도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대도 결국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라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을 통해 시작을 해서 세계만방에 전해지기를 바라셨는데 그들이 지금 그것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고 그 기뻐하심이 기도의 응답으로 즉각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지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한 기도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 보다는 내 삶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되는 것을 위해서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쪽으로 가자고 하시는데 우리의 기도는 서쪽으로 가야한다고 우기는 기도가 많습니다.
없어야 좋을 것을 달라고 기도를 하고 꼭 필요한 것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섭섭하게 하거나 화가 나게 하는 기도가 많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한번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진동시키도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기도를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기도의 응답 첫 번째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입니다.
기도를 마쳤을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거기 모인 모든 무리들이 다 성령님이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은 성령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서 동일한 권능을 가지신 분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삼위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분야가 다르십니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사역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이 마음속에서 나오는 진실한 것이라면 우리 속에 성령님께서 와 계심이 확실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면 우리가 예수님을 알 수도 없고 진리를 알 수도 없고 신앙을 고백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바른 삶을 살도록 역사하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아주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가 있으신데 그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해나갈 때입니다.
성령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하게 될 때 충만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지금 거기 모인 사도들에게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셨는데 그 사도들은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파하는 일이었는데 사도들이 그것을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특별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지해야 할 분은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살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늘 내생각대로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것도 힘이 들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실 때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설교가 그냥 사람의 머리로만 듣고 판단하고 넘어가면 늘 들어도 잔소리가 되고 나와 관계가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제가 매주 똑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어떤 때는 은혜가 넘치고 어떤 때는 별로로 들립니다.
똑 같은 설교인데 어떤 사람은 재미가 없다고 졸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감격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설교 말씀을 듣기 전에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위해서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릴 것이고 설교 속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을 보람 있게 사시기를 원하시면 내 삶에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여쭈어 보시고 그 일을 하려고 마음먹고 살아보십시오.
같은 인생이고 같은 삶이지만 그 보람이나 그 기쁨은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그 대가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뭘 조금 하고 내가 하나님 은혜에 보답했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욕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구원받은 백성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더 큰 은혜가 되는 것이고 우리에게 더 큰 행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멋있게 사는 것입니다.
그 삶을 성령님께서 살게 해 주시기 위해서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그 충만하심을 받아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의 응답이 성령 충만하심으로 나타났고 그 성령 충만하심은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지 못하고 내 생각대로 살면 우리 인생이 참 옹졸해집니다.
우리는 원래 걱정이 많고 겁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생각대로 살면 그 겁쟁이처럼 옹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강하게 역사하시면 우리가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가 쓸 것 우리가 살아갈 것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피해 갈 길까지 다 마련하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죽음 이후에 더 좋은 세상 더 좋은 삶을 이미 준비하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지 못하고 내생각대로 이 세상을 사니까 두려워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들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려고 합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는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외치지 못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면 사람들이 안 모이고 교회는 설렁해지고 나는 실패자가 되고 이런 걱정들 때문에 목사가 담대하게 외쳐야 할 복음을 외치지 못하고 성도들의 가려운 곳만 긁어주려고 합니다.
성경을 읽는 목사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만들 때도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없이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니까 늘 헛소리만 하고 쓸데없는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아예 성경을 읽고 덮어놓고 자기 이야기 세상 개동철학 이야기 윤리도덕이야기나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지 못하고 하니까 담대하지 못하고 참 치사하게 겨우 아슬아슬하게 이름만 붙여놓고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리 핑계대고 저리 핑계대고 이리 머리 굴리고 저리 머리 굴리고 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사는 것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먹고 사는 일이 그렇게 걱정되는 일입니까?
돈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전적으로 하나남만 섬기고 살기가 그렇게 어렵게 생각되십디까?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인생을 그렇게 걱정하면서 사십니까?
세상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 이런 것 다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 내 지식 내가 아는 것들 내 뜻 이런 것 다 버리고 성령님을 의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담대하게 한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을 써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면서 맡기신 사명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사는 것에 최선을 다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그 일을 위해서 성령 충만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염려근심 버리고 담대하게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을 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그 기도의 응답을 받고 담대하게 살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쁨으로 담대함으로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